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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드&버터 작은 패션쇼의 큰 울림

심정희 | 38호 (2009년 8월 Issue 1)
지난 7월 1일부터 3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는 현재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트레이드 쇼 ‘브레드&버터(버터 바른 빵이라는 사전적 의미 외에 ‘생계 수단’이라는 뜻도 있음)’가 열렸다. 패션 브랜드와 바이어가 만나 제품을 사고파는 트레이드 쇼는 허다하다. 그러나 브레드&버터보다 규모가 크고 역사가 긴 쇼는 많아도, 현재 세계 패션계 사람들을 설레게 하는 쇼는 오직 브레드&버터뿐이다. 그 비결은 3가지 차별화 전략에 있다.
  

 
첫째, 패션계 사람들을 끌어들이려면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장소로 가라.브레드&버터의 시작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단독으로 패션쇼를 개최할 자본력이 없는 소규모 브랜드들이 모였던 ‘오프쇼’가 거점을 라인 지역에서 베를린으로 옮긴 게 브레드&버터의 시초다. 베를린을 거점으로 선택한 건 당시 베를린이 독특한 클럽 문화를 바탕으로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장 ‘힙(hip·트렌드를 선도할 만큼 세련되고 현대적이라는 뜻)’한 장소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계 사람들이라면 쇼의 규모나 유명세가 다소 뒤떨어질지언정 베를린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도 브레드&버터를 찾으리라 생각했다. 이 예상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2003년 1월에 열린 첫 번째 브레드&버터는 230개 브랜드, 1만5000명의 방문자가 찾아 예상 밖의 깜짝 성공을 거뒀다. 이후 불과 2년 만에 브레드&버터는 거점을 다시 바르셀로나로 옮겼다. 베를린의 클럽 문화가 조금씩 시들어가고, 세계의 트렌드세터들이 바르셀로나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둘째, 노는 게 곧 패션이다.베를린을 떠나 바르셀로나로 향할 때, 브레드&버터의 사무국장 카를 하인즈 뮐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왜 하필 바르셀로나냐고? 바르셀로나는 젊고, 뜨겁고, 다이내믹하다. 무엇보다 세계 젊은이들을 설레게 하는 ‘나이트 라이프’가 있다.” 이 말에서 브레드&버터가 얼마나 패션계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읽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 사진작가 등 패션계 사람들은 ‘놀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명제를 신봉한다. 진정한 패션 피플이라면 옷을 잘 입는 건 기본이고 음악, 클럽, 유행 문화 등을 제대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만 자신의 작업에 필요한 예술적 영감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패션계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을 정확히 꿰뚫은 브레드&버터 사무국은 행사에서 유흥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였다. 이번 시즌에는 유럽의 인기 밴드 ‘만도 디아오’의 공연으로 전야제를 장식하고, 행사장 한 켠에 DJ 부스를 만들어 유명 DJ들이 시시각각 디제잉을 하게 했다. 베를린에 있을 때는 참여 브랜드들이 행사 기간 내내 베를린 시내의 크고 작은 클럽에서 파티를 연 적도 있었다.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부스에서 바이어들을 상대하느라 지칠 만도 하건만, 행사 참가자들은 저녁이면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클럽으로 달려가 파티와 공연을 즐겼다. 멋진 파티와 클럽 놀이에 대한 기억은 그들에게 브레드&버터를 다시 찾고 싶은 행사로 각인시켰다. 입소문을 통해 한 번도 브레드&버터를 경험하지 못한 전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환상을 심어줬다.
 
셋째, 낙타는 바늘구멍이 작을수록 들어가고 싶어 한다. 브레드&버터는 다른 트레이드 쇼에 비해 참가비가 비싸다. 다양하고도 화려한 부대 행사를 열어야 하니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수많은 브랜드들이 참가하지 못해 안달이다.
 
이는 브레드&버터가 ‘아무나 참가할 수 없는 콧대 높은 행사’라는 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참여 업체 수가 늘어나면 이윤도 자연히 늘어날 테니 주최 측 입장에서는 많은 브랜드를 받는 게 이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레드&버터는 매우 까다롭게 참여 업체를 선발한다. 신청서를 낸 브랜드 중 60% 정도만이 참가 허가를 받는다.
 
그 밑바닥에는 ‘선택된 브랜드를 위한 트레이드 쇼’라는 콘셉트를 지켜야만 자신의 몸값을 유지할 수 있다는 냉철한 계산이 깔려 있다. 까다로운 패션계 사람들, 무엇에든 쉽게 싫증을 느끼는 그들의 마음을 오래 붙잡고 있기 위해 더욱 까다롭고 변덕스럽게 구는 전략을 택한 셈이다.
 
올해 브레드&버터는 베를린으로 다시 거점을 옮겼다.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이 전폭적 지원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공항으로서의 기능을 잃은 템펠호프 공항을 쇼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 지원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2003년에는 베를린의 후광이 브레드&버터에 필요했지만, 이제 베를린에 브레드&버터가 필요하다. 브레드&버터는 이제 세계 패션쇼의 새로운 신화로 거듭나고 있다.
 
패션 칼럼니스트인 필자는 남성 패션지 <에스콰이어>와 여성 패션지 <W Korea> 패션 에디터를 거쳐 현재 <에스콰이어> 패션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10아시아> <한겨레21> 등 다양한 매체에 패션 관련 글을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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