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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서킨 보스턴컨설팅그룹 운영분과 글로벌 총괄이사 인터뷰

세계성 시대의 혁신 키워드는 ‘다양성’

한인재 | 38호 (2009년 8월 Issue 1)
 
 
선진국의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과 개발도상국과의 기술 격차 축소는 한국 기업들에 이중의 압박으로 작용한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는 성장 기회를 필연적으로 해외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한국 기업들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이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을 지속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세계적 컨설팅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해롤드 서킨 글로벌 경영 총괄이사는 ‘세계성의 확보’와 ‘수익성을 동반한 혁신’을 그 해답으로 제시한다. 그는 세계화(globalization)를 넘어선 ‘세계성(globality)’ 시대의 도래를 주창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글로벌 경영 분야의 전문가다. ‘세계화’가 선진국 기업들이 생산 비용 절감을 위해 임금 수준이 낮은 개도국에 생산 기지를 분산하는 ‘일방적 흐름’이었다면, ‘세계성’은 경험을 축적한 개도국 기업들이 선진국 기업들의 경쟁자로 대두되는 ‘양방향적 흐름’이다. 또 세계성이란 경계가 사라진 무한 경쟁 시대에 갖춰야 할 기업의 핵심 역량 자체이기도 하다. 이제 기업들은 전 세계의 ‘다양성(manyness)’을 받아들여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해야 한다. 세계성의 시대에는 수익성을 동반한 혁신에 성공하는 기업만이 번영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수익성 없는 프로젝트에 지속적으로 자원이 투입되는 ‘투자 함정(cash trap)’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지난해 한국의 모 그룹 회장은 서킨이 제기한 ‘세계성’의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기업 역량 강화와 인력 관리의 화두로 삼았다. 나아가 자원 개발과 같은 해외 사업의 비중도 늘리고 있다. 서킨 총괄이사는 그의 장인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가족사를 통해 한국의 현대사와 경제 발전 과정에 대해서도 비교적 잘 이해하고 있다.
 
최근의 경제 위기가 세계화 또는 세계성의 확산을 저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와 세계성의 확산 속도가 느려질 것으로 생각하나, 실상은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전 세계적 경기 침체가 오히려 세계화와 세계성의 확산을 촉진시키고 있다. 그 이유로는 다음 3가지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비용’ 요인이다. 경기 침체가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비용 절감’의 압박이 임금 수준이 보다 낮은 국가로의 생산 기지 이전을 촉진하고 있다. 불황기에는 ‘비용’이 기업 경영에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요소로 부각된다. 많은 소비자들이 ‘하향 구매(trading down·가격이 싸고 양이 많은 제품을 찾게 되는 현상)’ 경향을 보임에 따라 기업들은 비용을 더 낮춰야만 한다. 이를 증명해주는 좋은 사례가 월마트다. 저가 대량 판매로 유명한 월마트는 불황기에 유일하게 매출이 늘어난 미국의 대규모 소매 유통기업이다.
 
둘째, ‘성장’ 요인이다. 선진국일수록 금융위기가 가져온 소비 침체의 타격이 컸다. 호황기에 투자를 많이 한 선진국 기업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수요처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선진국 기업들은 아시아와 같이 불황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은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할 수밖에 없다. 또한 개도국 기업들은 자국 시장에서의 꾸준한 매출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를 높일 좋은 기회를 맞고 있다.
 
셋째, ‘인수합병(M&A)’ 요인이다. 금융위기가 주식시장을 무너뜨려 기업 인수 가격을 크게 낮췄다. 이는 선진국 기업들뿐만 아니라 개도국 기업들에도 시장 기반을 넓힐 기회를 제공해준다. 개도국 기업들이 선진기업을 인수해 앞선 기술과 판매 채널을 확보하고, 선진국의 고객층에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선진국의 정치인과 이익집단을 중심으로 자국 산업에 대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보호무역주의의 대두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기업에는 큰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은 기우에 불과하다. 과거 대공황 때 많은 국가들이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했으나, 이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뿐이라는 교훈을 얻은 바 있다.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 해결책은 자국 산업의 보호가 아니라 자국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다. 보호무역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다국적 기업들은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고, 결국 보호무역은 실패할 것이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이러한 견해에 공감한다고 알고 있다.
 
최근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각국의 정치권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보호무역 정책이 강화되는 게 아니라, 보호무역 정책에 대한 ‘말’만 많아지는 것이다. 정치인들은 그런 ‘립 서비스’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결국 일부 보호무역 정책이 나올 수는 있지만, 보호무역주의가 대세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넛크래커(nut-cracker)’ 상황에 놓여 있다. 즉 한국이 선진국 대비 비용 우위를 빠르게 잃어가는 반면, 개도국들의 기술 수준은 턱밑까지 쫓아왔다.
 
“이런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은, 한국이 더 이상 개도국이 아니라 선진국 반열에 올라서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는 선진국으로 진화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이 자연스럽게 겪었던 문제다. 따라서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됐는지를 고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젊은 시절에 작은 삼성 TV가 집에 있었다. 가격이 쌌기 때문이다. 지금도 삼성 TV를 갖고 있는데 최신형 LCD TV다. 지금 내가 삼성 TV를 보는 이유는 가장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이러한 삼성의 사례는 다른 한국 기업들이 나아갈 바를 제시해준다. 한국은 더 이상 1970년대에 저가 제품을 생산하던 나라가 아니다. 한국의 다른 기업들도 기술 기반의 고급 제품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이제 어떻게 하면 좀더 강한 국가, 강한 기업을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 해답은 지속적인 혁신이다. 한국 기업들은 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올리고,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세계성의 확산이 선진국과 개도국의 기업들이 함께 경쟁을 하고 있다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뜻한다면, 이러한 변화가 기업 경영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이제는 ‘모든 기업들이 모든 영역에서 모든 요소에 대해 경쟁하는’ 시대다. 즉 어느 기업이 미국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미국 기업’으로서의 정체성만 고수해서는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기업들은 이제 진정한 ‘글로벌 기업’이 돼야 한다. 그 시작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 최고의 인재를 뽑는 데서 출발한다. 외국인 인재들이 능력을 발휘하려면 이들에 대한 차별 대우, 특히 보이지 않는 ‘천장(ceiling)’을 없애야 한다. 외국의 인재들이 동등한 승진 기회를 가지며 심지어 한국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또 전 세계 사람들이 가장 많이 구사하는 영어를 회사의 공식적인 언어로 삼아야 한다. 언어 장벽을 없애야만 문화적 장벽도 없앨 수 있다. 이미 몇몇 일본 기업들은 영어를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 한 국가의 기업으로만 머무르면(national company), 진정한 글로벌 기업(global company)과의 경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
 
인도의 타타가 좋은 성공 사례다. 이 회사는 다른 나라의 기업을 인수할 때 다른 기업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어느 나라의 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최고 경영진에 인도 사람을 파견하지 않는다. 랜드로버나 재규어 같은 자동차 회사를 인수했지만, 최고 경영진에는 인도 사람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을 앉혔다.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양성(manyness)’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타타는 인도에서의 경영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인수 기업에 가장 적합한 경영 방식과 경영진을 도입했다.”
 
한국 기업들이 ‘체리피킹(cherry-picking·자신에게 필요한 것만 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행태)’의 대상이 된 사례가 있다. 한국의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중국 회사가 최근 핵심 기술만 빼내가고 철수해 쌍용자동차는 껍데기만 남았다.
앞으로 이런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쌍용자동차 건은 유감스러운 사례다. 그러나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와 유사한 체리피킹은 지난 수십 년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났다’는 점이다. 쌍용자동차는 한국에서 발생한 하나의 예일 뿐이다. 기업이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 단지 기술 때문에 다른 기업에 인수될 정도로 경영이 악화되는 상황을 피해야 한다. 타타가 인수한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보자. 타타가 그 회사들을 인수한 것은 단지 기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회사들의 브랜드 파워와 디자인 능력, 충성 고객층을 보고 인수한 것이다. 타타는 두 기업을 전략적으로 키우고 있다. 세계성의 시대는 기업들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경쟁에서 패배한 약한 기업들을 도태시키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보호 조치를 취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당신은 한국 기업들이 강해지기 위해 지속적 혁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혁신이 무엇인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당신이 정의하는 ‘혁신’이란 무엇인가?
“내가 정의하는 혁신은 ‘새로운 지식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프로세스의 변화’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을 창출해야만 진정한 혁신이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영어에 ‘invention(발명)’과 ‘innovation(혁신)’이라는 두 단어가 있다. 얼핏 유사해 보이지만 두 단어에는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발명이란 이상적인 무엇을 창조해냄을 뜻한다. 그러나 이 발명 자체가 혁신이 될 수는 없다.
 
에디슨은 축음기를 만들었다. 그는 소리를 녹음하는 방법을 세계 최초로 고안했지만, 몇 번 재생하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얇은 금속 호일을 사용했기 때문에 상품화에 실패했고 어떠한 수익도 창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는 위대한 발명이지만 혁신이라 할 수는 없다. 다른 사람이 에디슨의 특허를 사서 상품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음반 산업은 물론 영화 산업, 심지어 아이팟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단 13기만 생산된 콩코드 비행기를 들 수 있다. 런던과 뉴욕 사이를 3시간 만에 주파하는 콩코드는 엄청난 발명이었다. 그러나 결국 아무런 수익도 창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는 혁신이라 할 수 없다. 어떤 항공사도 콩코드를 구매하려 하지 않았다. 콩코드를 운행해서는 전혀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영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영국 항공이 13기 전부를 인수했다. 그런데 인수 가격은 대당 단 1파운드였다. 제조사는 물론 항공사에도 전혀 수익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가 보잉의 747기 개발 사례다. 보잉도 초음속 제트 여객기 생산을 검토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음을 깨닫고 개발 계획을 취소했다. 대신 보잉은 747기를 개발했다. 747기는 단지 동체가 매우 크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제트 여객기와 다른 점이 없었다. 그러나 이는 놀랄 만한 혁신의 사례가 됐다. 747기는 제조사와 항공사에 큰 수익을 가져다줬고, ‘여객기의 경제학’ 자체를 바꿨다.”
 
그렇다면 수익성을 동반한 혁신을 이루기 위한 핵심 성공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언제 멈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 하더라도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면 혁신이 아니다. 그런데 일단 투자가 시작되면 이를 멈추기 어렵다. 수익을 낼 수 없는 아이디어임에도 지속적으로 자원이 투입되는 현상을 ‘현금 함정’이라고 부른다. 경영자들은 항상 이러한 현금 함정에 빠지는 일이 없는지 지속적으로 주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발견했을 때 과감히 투자를 중단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혁신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계속 ‘왜(why)’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어렵다. ‘왜 이 가정이 실현될 것이라 생각하는지’ ‘왜 이 아이디어가 다른 경쟁자와 차별화되는지’와 같은 질문을 지속적으로 던져야 한다.
 
셋째, 혁신이 실현되는 전체 프로세스를 관리해야 한다. 기업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가 ‘좋은 아이디어는 저절로 혁신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혁신이 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부터 설계, 생산, 배분, 판매까지 경영의 모든 프로세스를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전체 프로세스를 보고 관리할 지휘자가 필요하다. 어디서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 지원이 필요한지 재빨리 판단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위의 3가지를 가능하게 하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특히 관료주의가 만연해 있는 공공기관이나 거대 기업들은 리더의 강력한 독려와 지원 없이는 혁신에 성공하기 어렵다. 혁신에 성공하는 직원에게는 확실한 보상을 해줘야 한다. 심지어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을 추진하다 실패하는 사례에도 보상해줘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혁신 성공 사례를 내부로부터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박종호 인턴연구원(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 참여했습니다.
 
  • 한인재 한인재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 AT 커니 코리아 컨설턴트/프로젝트 매니저
    - 에이빔 컨설팅 컨설턴트/매니저 - 삼성생명 경영혁신팀 과장
    db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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