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채석장에서 지상낙원으로, 부차트 가든

김민주 | 37호 (2009년 7월 Issue 2)
캐나다 서편에 있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도 제일 서쪽에 밴쿠버 섬이 있다. 이 섬은 남한 면적의 3분의 1 규모로, 북위 48∼51도에 걸쳐 기다랗게 놓여 있다. 상당히 북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서안해양성 기후 덕분에 비가 자주 내리고 수목들이 잘 자란다. 지구상에 흔치 않은, 이른바 온대 우림 지역이다.
 
캐나다는 영연방 국가이기 때문에 영국의 분위기가 곳곳에 많이 남아 있다. 특히 밴쿠버 섬 남단은 영국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영국 회사 허드슨 베이가 일찍이 1670년 이 지역에 모피 교역소를 세우면서 개발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주도(州都)는 밴쿠버 시가 아니라, 밴쿠버 섬 제일 남단에 위치한 빅토리아 시다. 빅토리아 시는 영국풍이 매우 강하다. 웅장한 주 의사당 건물과 바로 인근의 페어몬트 엠프레스 호텔이 볼만하다. 유명인들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놓은 로열 왁스 박물관이나, 정교한 모형들로 가득한 미니어처 월드도 볼거리로 유명하다. 또 로열 브리티시컬럼비아 박물관, 브리티시컬럼비아 해양 박물관, 빅토리아 곤충 동물원, 크리스털 가든도 이름난 명소다.  

빅토리아 시 인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은 100여 년 역사를 지닌 부차트 가든(Butchart Gardens)이다. 이곳은 빅토리아 시에서 북쪽으로 21km 떨어진 토드 하구(Tod Inlet)에 22만㎡ 면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정원 부지는 원래 시멘트 원료인 석회암을 파기 위한 광산 지역이었다. 로버트 부차트(1856∼1943)는 캐나다 동부의 온타리오 주에서 1888년부터 포틀랜드 시멘트 제조업자로 일했다. 그러다 시멘트 원료인 석회암 채석장을 개발하기 위해 1904년 밴쿠버 섬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1909년에 이르러 이 석회암 채석장을 모두 개발하고 나니 푹 패어져 휑한 구덩이만 남게 됐다. 이때 로버트의 아내 제니 부차트(1866∼1950)가 이 공간을 이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정원으로 가꿔 나가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부부는 이 멋진 아이디어에 동의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우선 스코틀랜드 출신 정원사 휴 린제이를 고용한 후, 인근 농장의 흙을 광산 지역으로 옮기고 포플러나무와 꽃도 심기 시작했다. 또 전 세계 여러 지역을 여행하면서 희귀하고 이국적인 관목, 나무, 각종 식물들을 들여와 이 정원에 심었다.
 
1913년이 되자 지금의 선큰 가든(Sunken Gar-den)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당시 사진을 보면, 이 정원 지역에는 꽃만 있었던 게 아니라 가동이 중단된 시멘트 공장 건물도 바로 옆에 있었다. 정원 이름을 ‘선큰’으로 붙인 이유는 석회암 채굴을 하느라 땅이 푹 파였기 때문이다. 이 정원 가꾸기는 부차트 부부의 취미 활동으로 시작됐지, 영리 목적으로 시작된 게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정원을 보러 왔다가 탄복하며 소문을 내고 몰려들자 점차 사업으로 바뀌었다.
 
선큰 가든 외에도 이후 로즈 가든(Rose Gar-den), 재패니즈 가든(Japanese Gar-den), 이탈리안 가든(Italian Garden)이 계속 조성됐다. 재패니즈 가든은 일본인 조경사 이사부로 기시다의 도움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부차트 집안의 테니스 코트장은 1926년부터 이탈리안 가든으로 조성됐다.
 
부차트 가든의 계곡 아래에는 아주 커다란 로스 분수가 있는데, 이 분수는 음악에 맞춰 아주 현란한 움직임을 보여 경탄을 자아낸다. 이탈리안 가든 바로 옆에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전경이 매우 아름다워 결혼식장으로도 많이 애용된다. 레스토랑에서는 영국 전통의 애프터눈 티를 맛볼 수 있는데, 차만 마시는 게 아니라 음식도 같이 먹기 때문에 가격은 결코 싸지 않다.
 
부차트 가든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의 다섯 시즌으로 나눠 조경을 바꿔 나간다. 시즌에 따라 꽃이 피는 식물들이 달라지므로 그때마다 정원의 식물들을 바꾼다. 또한 공연을 비롯해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이나 꽤 큰 규모의 콘서트 등 각종 행사도 개최한다. 밤에는 음악에 맞춰 환상적인 불꽃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특히 크리스마스 시즌의 밤 행사가 유명하다. 이때 선큰 가든과 스타 폰드의 나무에는 작은 전구들이 수없이 달려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부차드 가든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흉물스러운 공간이 얼마나 아름답고 수익성 있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지 여실히 알 수 있다.
 
부차트 가든은 이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1991년 캐나다 우표에도 실렸으며, 2005년에는 ‘캐나다 국가 역사 유적지’로도 지정됐다. 이곳을 처음 만든 부차트 부부는 물론, 제니 부차트 사망 이후 버려졌던 정원을 1946년 복구해 지역 활성화에 크게 기여한 공으로 그들의 손자인 이안 로스도 우수시민상을 받았다.

부차트 가든은 얼마나 많은 경제적 이익을 올리고 있을까. 우선 유료 입장비가 있다. 가격 구조를 보면 흥미롭다. 18세 이상 성인을 기준으로 여름 성수기 가격이 가장 높아 어른은 28달러(이하 캐나다 달러)이고, 또 다른 인기 시즌인 크리스마스 시즌과 10월에는 23.50달러다. 다른 계절에는 가격이 내려간다. 물론 성인 25명 이상 단체와 어린이의 입장료는 더 싸다. 계절에 관계없이 가격이 항상 일정한 우리나라 관광지들이 생각해봐야 할 가격 정책이다.

입장료 외에도 기프트숍에서 각종 식물들의 씨앗과 다양한 고급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으며, 우편 판매로도 매출을 올리고 있다. 또 레스토랑 운영과 결혼식장 대여, 보트 투어도 짭짤한 수입원이다. 부차트 가든의 연 방문객은 130만 명에 달한다. 중요한 것은 밴쿠버 섬에 오는 관광객들 중 부차트 가든을 보러 오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부차트 가든의 지역경제 파급 효과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부차트 가든을 산책하다 보면 매우 상쾌하고 즐거워진다. 우리나라에도 광산 기업이나 시멘트 기업들에 의해 파헤쳐져 흉물이 된 석회암 채석장이 여러 곳 있다. 라파즈한라시멘트 같은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 환경 단체(NGO)들은 채광이 끝난 후 이 공간을 친환경적이면서도 공공성과 수익성을 갖춘 명소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부차트 가든은 채석장 복원과 관련해 좋은 아이디어를 주고 있다.
 
충남 태안반도 끝자락에는 천리포수목원이 있다. 1945년 우리나라에 미군 장교로 왔다가 귀화한 칼 밀러(한국명 민병갈, 1921∼2002)는 1962년 만리포 해수욕장 바로 옆의 천리포 지역 땅을 우연한 기회에 매입했다. 그 후 꾸준히 이 지역에 전 세계에서 가져온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꿔 세계적인 수목원을 만들었다. 2000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국제수목학회에 의해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천리포수목원은 그동안 유료 회원들만 이용할 수 있도록 폐쇄적인 운영을 해왔다. 그러나 2009년 4월부터 일반인들에게도 개방돼 이제는 약간의 입장료만 내면 이용할 수 있다. 보다 나은 수익 모델을 추구하고 있는 천리포수목원은 앞서 말한 캐나다의 부차트 가든을 성공 모델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세계적 지명도나 수익성에서 부차트 가든을 뛰어넘는 수목원이 우리나라에서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편집자주 한국 최고의 마케팅 사례 연구 전문가로 꼽히는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가 전 세계 도시의 혁신 사례를 분석한 ‘City Innovation’ 코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급격한 환경 변화와 거센 도전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도시를 운영한 사례는 행정 전문가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자들에게도 전략과 조직 운영, 리더십 등과 관련해 좋은 교훈을 줍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김민주 김민주 | - (현)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 이마스 대표 운영자
    - 한국은행, SK그룹 근무
    - 건국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mjkim8966@hanmail.net
    이 필자의 다른 기사 보기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