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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터진 명란젓이 불티나게 팔린 이유는?

니시카와 요시아키(西川義昭),이진호 | 36호 (2009년 7월 Issue 1)
일본의 유명 포털 라쿠텐(www.rakuten.co.jp)의 인터넷몰(라쿠텐 시장)에는 이상한 광고가 있다. 이 광고는 불량품 전병(煎餠)을 ‘부서진 센베이’라며 떳떳하게 홍보한다. 제조사는 놀랍게도 76년 역사를 가진 꽤 유명한 회사다.
 
이 회사는 “제조 과정에서 갈라지거나 부서져 정상 제품이 되기 힘든 것들을 소비자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싸게 제공한다”고 말한다. 개별 포장도 없이 상자 단위로 팔리는 ‘부서진 센베이’의 가격은 1kg에 1050엔(약 1만3000원)으로 무척이나 싼 편이다. ‘부서진 센베이’는 올해 2월 시판 후 4일 만에 품절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지금은 제조사 인터넷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싸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가치로
일본 소비자들은 지난해 하반기 찾아온 경제 위기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이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장기 불황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기 변화에 따라 빠르게 소비 모드를 전환했다.
 
기업들의 반응도 빠르기 이를 데 없었다. ‘부서진 센베이’와 비슷한 상품들이 속속 생겨났다. ‘옆이 터진 명란젓’이 대표적 예로, 이런 제품들은 소위 ‘이유 있는 할인 상품(품질에는 이상이 없지만 약간의 하자로 싸게 판다는 뜻)’으로 불린다. 심지어는 패키지 상품을 분리해 팔거나, 유통 기한이 ‘약간’ 넘었다는 점을 일부러 강조하며 판매하는 저가 상품까지 등장했다.
 
‘유니클로’로 유명한 의류회사 퍼스트리테일링은 올해 3월 ‘지유’라는 브랜드로 ‘990엔 진즈(jeans)’를 내놓았다. 1만 원이 약간 넘는 파격적인 가격의 이 청바지 덕분에 퍼스트리테일링 점포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70%나 늘어났다. 이에 따라 퍼스트리테일링은 ‘990엔 진즈’의 당초 판매 목표를 2배로 상향 조정했다.
 
이동통신 사업자인 소프트뱅크 모바일은 지난 한 해 심플한 휴대전화 단말기로 재미를 봤다. 단순 기능의 휴대전화는 소프트뱅크 모바일의 지난해 판매량 중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TV 수신이나 터치 패널, 블루투스 등 소비자의 실질적 요구와는 무관하게 발달해온 ‘과잉 기능’을 과감히 빼버린 전략이 들어맞은 셈이다. 심플 휴대전화가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 소비자들에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자, 소프트뱅크 모바일은 올해 초 관련 기종을 3개에서 5개로 늘렸다.
 
앞의 사례들을 보면,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싸다(money)’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한 ‘가치(value)’로 바뀜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좀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통하는 것은 단순한 가격 인하 상품들이 아니란 점이다. 품질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지유의 ‘990엔 진즈’는 한낱 웃음거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일본에 진출한 스웨덴 의류 브랜드 H&M의 인기 비결은 매일 새로운 디자인의 상품을 저렴하게 선보여 ‘절약’과 ‘멋쟁이’의 콘셉트를 동시에 강조했다는 데 있다. 불황기의 소비자를 잡기 위해서는 낮은 가격 외에 품질이나 패셔너블한 이미지 등 고객이 납득 가능한 최소한의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친환경 의식이 보상 판매와 중고품 구매의 저항감 없애
이런 ‘플러스 알파’의 아이디어도 다양하다. 대표적 사례는 최근 일본에 불고 있는 ‘보상 회수 세일’이다. 대형 할인점 이토요카도는 지난해 말부터 의류나 생활 잡화를 3000엔어치 이상 구매하는 고객이 중고품을 내놓으면 물건 값을 깎아주고 있다. 할인액은 중고품 한 점당 500엔이다.
 
‘보상 회수 세일’은 할인점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윈윈 게임’이다. 이토요카도는 소비자의 구매를 자극하고 매출의 규모(volume)를 늘릴 수 있어 좋다. 일부 상품은 세일 이후 매출이 60% 이상 늘었다고 한다. 고객은 가격 부담을 줄이면서 어차피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보상 회수 세일 붐은 빅 카메라(BIC CAMERA) 같은 가전유통업계까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고 가구, 책 등의 재활용(recycling)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 통계에 따르면, 재활용 시장의 최근 규모는 약 4200억 엔에 이른다. 보상 회수 붐으로 회수된 물품의 양이 늘어나면서 재활용 관련 사업 규모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올해 4월 15일에는 하드오프코퍼레이션을 위시한 재활용품 구입·판매업자 8개사가 ‘일본 리유스(reuse)업 협회(JRAA)’를 설립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이런 추세의 근저에 ‘친환경’이라는 요소가 공통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환경 보전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은 보상 판매 이용이나 중고품 구매에 대한 저항감을 상당히 누그러뜨린다.
 
최근 일본에서는 식당에서 남은 음식을 싸가는 ‘도기 백(doggy bag)’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에코 포인트(에너지 절약 가능성이 높은 TV, 에어컨, 냉장고를 사는 경우 구입액의 5%를 포인트로 주는 정부 지원 정책)와 연계한 가전유통업체의 보상 판매도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달 이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일부 양판점의 매출이 2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절약도 하고 환경에도 기여한다’는 지출의 명분이 성립한다는 말이다.

‘needs-offer gap’을 찾아라
일본 소비자들은 오랜 저성장 시대를 겪어 이미 ‘성숙한 불황 소비’ 문화를 갖고 있다. 이런 일본 소비자들의 소비 트렌드와 기업들의 대응은 한국의 기업들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심각한 수준의 경기 침체는 구매에 대한 태도 및 가치관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쳐, 어느 정도 경기가 회복된 이후까지 신중한 소비 패턴이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DBR 31호 스페셜 리포트 ‘불황기 고객 관리’ 참조).
 
불투명한 경제 상황이 오면 분명 소비가 위축된다. 하지만 이것은 동시에 다양화되고 세분돼 흩어졌던 활황기 고객의 소비 형태가 경기 침체를 계기로 하향 수렴해 일종의 매스(mass)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음을 뜻한다. 저렴한 가격은 닫힌 지갑을 열기 위한 중요한 방법임에 틀림없지만, 이러한 소비 행태의 변동에 기업이 무조건적인 저가화로 대응한다면 브랜드 가치 파괴 등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
 
기업이 오히려 좀더 집중해야 할 과제는 ‘고객이 원하는 것과 서비스 사이의 간극(needs-offer gap)’을 줄이는 요소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것은 보상 회수 세일의 예처럼 ‘처치 곤란한 집 안 물건의 효과적인 정리’일 수도 있고, ‘친환경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존감’일 수도 있다. 다행히도 경기 침체기에는 활황기에 비해 소비자 니즈(needs)의 상대적인 수준이 낮아진다. ‘싼 가격’과 ‘납득 가능한 플러스 알파’의 이중 효과로 고객을 만족시키기가 쉽다는 말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불황기의 소비 패턴은 큰 폭으로 움직이며 재편된다. 이런 시기의 기업은 소비 욕구에 동조해 움츠러들지 말고,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침체된 여건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요소를 찾아내 과감히 실행에 옮겨야 한다.
 
니시카와 요시아키(西川義昭)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컨설턴트는 유통 서비스와 소비재 부분의 전문가다. 현재 서비스사업 컨설팅부 부장을 겸하고 있다. 이진호 노무라종합연구소 서울오피스 컨설턴트는 유통 서비스와 통신 분야 컨설팅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

편집자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일본 최대 컨설팅 회사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이번 호부터 일본 소비 시장의 최신 트렌드를 살펴보는 ‘Eye on Japan’ 코너를 연재합니다. 일본 소비자 트렌드는 한국 소비 시장 흐름의 ‘선행지수’ 또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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