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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고객의 가벼움

이동우 | 34호 (2009년 6월 Issue 1)
고객은 바람둥이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는 두 종류의 바람둥이가 등장한다. 애인을 자주 바꾼다는 점에서 이들은 공통점이 있지만, 애인을 바꾸는 기준은 대조적이다. 바람둥이 A는 늘 비슷한 유형의 애인만을 찾는다. 이런 탓에 주위 사람들은 A가 애인을 바꿔도 잘 알아채지 못한다. 반대로 바람둥이 B는 늘 다른 유형의 애인을 만난다. B는 애인과 애인 사이의 ‘차이’ 혹은 ‘새로운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며 그 어떤 사람에게도 집착하지 않는다. B는 단순히 ‘차이’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기가 누구를 만났는지조차 잊어버린다.
 
애인을 상품 및 서비스라고 한다면 과거의 고객은 바람둥이 A와 유사하다. 기회가 생기면 더 나은 상품 및 서비스로 이동하지만, 기존 상품이나 속성에 대한 일종의 ‘충성심(loyalty)’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고객들은 끊임없이 새롭고 차별화된 상품을 찾아 나서며 기존에 이용하던 상품이나 서비스를 가차 없이 포기하고 쉽게 전환한다는 점, 또 시간이 흐르면 본인이 무엇을 써왔는지조차 개의치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둥이 B에 가깝다.
 
고객 고착화와 전환 비용
기업은 고객들이 지조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즉 자신의 상품 및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자신의 품을 떠나지 않고 계속 머물러주기를 바라며 이를 위한 전략을 세운다. 이른바 고객 고착화(lock-in)라고 불리는 전략이다. 고객이 고착화되면 다른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로 전환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고객 고착화는 왜 일어날까?
 
고객 고착화의 가장 큰 이유는 ‘전환 비용(switching cost)’이다. 전환 비용이란 말 그대로 상품 및 서비스를 전환할 때 생기는 절차적, 경제적, 관계적 비용을 총칭하는 개념인데, 최근에 고객 충성도의 핵심 요인으로 재조명을 받고 있다. 토머스 존스와 얼 새서가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논문을 보면, 전환 비용이 높으면 고객 만족도 수준이 낮아도 고객들의 충성도는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그림1)
 
고착화 전략은 무용지물?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등과 같은 하이테크 산업의 선두주자들은 고객 고착화 전략으로 엄청난 수익을 누려왔다. 고착화 전략은 부익부 빈익빈의 경쟁 구도를 만들어낸 원동력이며, 경쟁 기업들의 전의를 꺾는 높디높은 진입 장벽이었다. 최근에는 서비스 산업이나 일부 제조업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는 전략이다.
 
그러나 요즘 들어 고착화 전략이 과거와 같은 위력을 떨치지 못하는 사례가 생기고 있다. 10년 동안 한 통신사를 이용해오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번호 이동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또 지난 수십 년간 MS의 윈도에 길들여진(고착화된) 고객들이 상당한 전환 비용을 감수하며 애플의 맥(Mac)으로 옮겨가고 있다. 왜일까? 고착화 전략을 방해하는 요인은 크게 3가지다.

첫 번째 원인은 ‘진부화’다. 기업은 고착화 전략을 통해 소비자를 묶어두려 했으나, 제품 및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가치가 점차 진부화돼버린 탓에 이 전략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한때 돌풍을 일으킨 싸이월드는 막강한 관계적 전환 비용(일촌)과 절차적 전환 비용(기존의 업로드된 자료들)을 바탕으로 고객을 강하게 고착화시켰으나, 그 핵심 기능이 진부화되면서 고객이 체감하는 전환 비용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새로운 돌파구를 빨리 찾지 않으면 고객 이탈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바람둥이는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는 ‘진부한’ 애인을 떠나게 돼 있다.
 
두 번째 원인은 ‘와해성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다. <성공 기업의 딜레마>를 저술한 크리스텐슨 교수가 제시한 와해성 혁신 이론에 따르면, 작고 싸고 가벼운 혁신 제품들이 크고 강한 고성능 제품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 역사적으로 반복돼왔다. 메인 프레임 컴퓨터를 미니 컴퓨터가, 미니 컴퓨터를 데스크톱이, 데스크톱을 노트북 컴퓨터가 대체했으며, 요즘은 넷북이 노트북 컴퓨터마저 대체할 기세다. 특정 제품에 고착화된 고객일지라도 더 쉽고 빠르고 편리한 신제품 앞에서는 지조를 헌신짝처럼 내버린다. 소니 디지털 카메라가 특화된 저장 기기나 전용 애플리케이션 사용 및 관련 기기와의 연동을 통해 아무리 사용자를 고착화하려 해도, 사용자는 편리한 휴대전화 카메라 앞에서 사족을 못 쓰게 된다는 뜻이다. 블로그의 파워 유저가 트위터(Twitter)와 같은 마이크로 블로그를 사용하면서 기존 블로그를 덜 사용하게 된다든지, MS의 설치형 오피스 애플리케이션 대신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웹 오피스를 사용하게 되는 현상도 와해성 혁신에 의해 고착화가 무너진 사례다.
 

마지막으로, 산업 간 컨버전스(융합)가 진행되면서 그 경계가 무너져 가치 사슬의 핵심 축이 변함에 따라 고객 고착화가 풀리는 사례도 자주 관찰되고 있다. 한국에서 무선인터넷은 그동안 ‘월드 가든(Walled Garden)’이라 불리는 WAP 기반의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및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왔기 때문에 통신사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애플의 앱스토어(App Store)가 뜨면서 이동통신사가 아닌 개인이나 콘텐츠 업체가 그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과거에는 특정 통신사를 통해서만 게임 및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공급받던 고객이 이제 통신사를 거치지 않고 다른 경로를 이용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통신사의 고객으로 ‘등록’돼 있다 하더라도, 이런 고객은 더 이상 고착화된 고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래도 고객을 고착화시켜라!
그렇다면 고객 고착화 전략은 이제 폐기해야 하는 ‘구닥다리’ 전략인가? 그렇지 않다. 기존 고착화 전략의 문제는 한번 만들어놓은 방에 고객을 계속 가둬놓으려는 기업의 태도에 있다. 방이 없어지거나 고객이 방에 있을 필요가 없는데도 억지로 고객을 방에 가둬놓으려는 태도가 이러한 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애플은 고객 관찰을 통해 제품과 서비스의 진부화 여부를 검토하고, 경쟁사의 와해성 혁신을 지속적으로 경계하고 있으며, 1년에 2번씩 개최하는 맥월드를 통해 기존 제품을 뛰어넘는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다. 앞서 말한 쿤데라의 소설에서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바람둥이에 맞춰 애인 스스로가 계속 변신을 시도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아이폰은 기존 제품인 아이팟의 진부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MP3 플레이어 시장이 휴대전화에 의해 와해되고 있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제품이다. 애플은 MP3 플레이어, 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PMP), 휴대전화가 컨버전스 돼가는 가운데 가치 사슬상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를 선점해 고객을 지속적으로 고착화시키고 있다. 이는 방에 있는 고객이 지루해할 때쯤 친절하게 다른 방으로 안내하는 것과 같다.
 
바람둥이 고객과 결혼하라
고객은 바람둥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길들일 수 있다. 바람둥이 고객을 길들여 결혼에 성공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기존 제품 및 서비스로 고객을 만족시키고 전환 비용을 높여 고객을 1단계로 고착화시킨다. 그 다음, 고객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기술 변화의 추이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진부화를 막아야 한다. 즉 끊임없이 고객을 긴장시키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 쉽게 자신을 떠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치 사슬상의 스위트 스팟(sweet spot)이 어디인지를 경쟁자보다 먼저 알아내고 이를 선점해 지속 가능한 고착화 구조를 만들어낸다면, 천하의 바람둥이 고객도 기쁜 마음으로 당신의 품에 영원히 안길 것이다.(그림2)
  • 이동우 | - (현) 북세미나닷컴 대표
    - 한국경제신문 출판국 기업정보팀
    - 미래넷 전략기획실
    - JCMBA 전략기획팀장
    - 한국일보 서울경제 백상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ceo@booksemina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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