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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웬 버튼이 이리 많아?” 고객은 화난다

안상훈 | 34호 (2009년 6월 Issue 1)
기업은 고객이 원하는 차별적 제품과 서비스를 가장 낮은 비용으로 제공함으로써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 고객 가치 혁신과 원가 절감을 동시에 달성하는 제품 가치 최적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고객에 대한 몰이해와 즉흥적 의사결정에 기초한 제품 개발 관행은 고객 만족도를 낮추고 원가를 높여 기업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킨다. 다음 사례를 보자.
 
유료방송 사업자 A사는 매우 난감한 상황에 부딪혔다. TV 시청이 원활하지 못하다며 화가 난 고객이 본사를 찾아와 셋톱 박스와 리모컨까지 집어 던지며 거세게 항의했기 때문이다. 이 고객은 높은 요금에 맞지 않는 A사 제품의 품질 수준에 불만을 털어놓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TV는 화면이 잘 나오고 채널과 볼륨 조정만 잘되면 그만이다. 왜 이리 쓸데없는 기능과 버튼이 많단 말인가.” 이 사건은 A사에 큰 화두를 던졌다. 비싼 돈을 들여 개발한 첨단 제품 및 기능이 고객에게는 별다른 효용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은 셈이다.
 
휴대용 미디어 플레이어의 선도업체 B사의 사례는 이와 정반대다. B사가 거둔 성공에 자극받은 국내외 기업들은 막강한 마케팅 역량과 기술 혁신을 무기로 다양한 신제품들을 속속 내놓으며 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에 B사는 시장에서의 선도 지위를 강화하기 위해 차별적 제품을 개발하는 일에 매달렸다. 하지만 극심한 경쟁 상황으로 경영 성과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한 B사는 기존의 성공 비결을 버리고 고객을 재발견하기 위해 수차례에 걸쳐 고객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자사의 핵심 고객이 젊은 여성들이며, 이들은 다양한 기능보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휴대의 용이성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에 B사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신제품에서 단순 음악 재생 이외의 모든 부가 기능을 과감히 없앴다. 대신 휴대 편의성을 고려한 작은 크기와 유명 캐릭터를 활용한 세련된 디자인을 핵심 가치 요소로 채택해 제품의 개발 및 제조 원가를 크게 줄였다. B사는 이 비용 우위를 바탕으로 신제품 가격을 기존 제품보다 70% 낮게 책정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여성 고객들은 매력적인 제품과 파격적인 가격에 뜨거운 호응을 보냈고, B사는 손쉽게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두 회사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그림1>은 제품 기능과 고객 만족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준다. 제품의 기능은 본질적 가치를 제공해주는 중심 기능과 부가적 가치를 제공해주는 주변 기능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신용카드의 결제 기능은 중심 기능이고, 포인트 적립은 주변 기능이다. 문제는 고객 만족도에 미치는 중심 기능과 주변 기능의 영향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중심 기능은 일정한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그림 1-A) 고객의 불만을 야기한다. 하지만 적정 성능 수준 이상을 넘어서면(그림 1-B)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초고속 인터넷의 접속이 불안정하거나 속도가 느리면 고객들의 항의가 빗발치지만, 속도가 100Mbps 수준을 넘어서면 고객 만족도가 늘어나지 않는다. A사는 이 원리를 파악하지 못했기에 실패했다. 즉 원활한 TV 시청이라는 중심 기능에서 고객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생각을 하지 않고, 다양한 첨단 기능이라는 주변 기능으로 중심 기능의 부족함을 메우려 한 셈이다.
 
주변 기능은 성능 수준이 낮거나(그림 1-C),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그림 1-D) 비용 대비 효과가 떨어진다. 휴대전화에 장착된 카메라는 이제 휴대전화의 기본 사양으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카메라 해상도가 매우 낮았던 초기 제품이나, 1000만 화소를 넘어선 최고급 기능의 휴대전화 카메라는 모두 고객으로부터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고객들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중심 기능이 아닌 주변 기능으로 여겼을 뿐인데, 디지털 카메라와 맞먹는 고화소 카메라를 굳이 휴대전화에 장착할 이유가 없었던 셈이다.
 
B사는 이 점을 잘 간파한 덕분에 성공했다. 고객들이 B사 제품에서 원하는 중심 기능은 음악을 잘 듣는 것이지만, 이 중심 기능으로는 더 이상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이에 따라 B사는 가치 창출의 원천을 디자인이라는 주변 기능으로 전환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제품 디자인을 경쟁자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미미하게 개선하거나, 제품의 본질을 흐릴 정도로 명품화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능을 어느 수준으로 제공해야 고객 만족도와 원가 절감이라는 2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 이에 관한 해답이 바로 제품 가치 최적화다. 그 방법은 다음 4가지다.
 
첫째, 고객을 제품의 소비자나 사용자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인간 중심 사고를 가져야 한다. 평이한 개선 사항을 고객 조사에 기초해 검증하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방법으로는 돌파구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모든 선입관과 고정관념을 버린 상태에서 고객이 실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욕구를 지니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고객의 생활상을 비디오로 가감 없이 녹화해 분석하거나, 역할 놀이극을 하거나, 자사 제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듯한 이종 산업의 트렌드를 관찰하는 방법 등이 대표적이다.
 
미국 2위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저축 계좌의 수를 늘리기 위해 골몰했다. 이자나 수수료 혜택만으로는 획기적인 계좌 증가가 어렵다고 판단한 BOA는 고객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비디오 녹화 등의 다양한 관찰법을 통해 사람들이 물건을 구매한 후 생기는 잔돈을 처리하는 일에 상당히 불편해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BOA는 KTC(Keep The Change)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즉 고객이 체크카드로 제품을 구매할 때 센트 단위의 잔돈을 올림해 달러 단위로 결제를 청구하고, 대신 추가 청구된 금액은 고객의 저축 계좌에 적립해줬다. 초기 3개월간 저축 계좌에 적립된 금액은 현금 100%, 이후 적립된 금액은 일정 기간별로 현금 5%를 추가 적립해주는 인센티브도 제시했다. 그 효과는 대단했다. 출시 8개월 만에 가입자 수 250만 명, 신규 저축 계좌 수 100만 구좌를 돌파했다. 고객 유지율도 99%라는 경이적인 수준을 기록했다. 고객의 생활을 관찰한 결과였다.
 
일본 냉장고 시장에서 4, 5위 업체에 그쳤던 히타치도 인간 중심 사고로 성공했다. 1995년 일본 냉장고 업계의 화두는 냉동식품 시장 확대에 발맞춘 대용량 제품 개발이었다. 하지만 히타치는 기술 혁신에만 집중하지 않고, 주방에서 일하는 주부들의 모습을 면밀히 관찰해 고객의 숨은 욕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히타치는 주부들이 냉장고 제일 하단의 채소 칸을 가장 많이 이용하며, 이때 허리를 구부리는 일을 상당히 불편해 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에 채소 칸을 냉장고 중심에 설치한 신제품을 내놓았다. 결과는 역시 대성공이었다. 이 제품이 나온 첫해 히타치의 냉장고 매출은 지난해보다 44% 늘었고, 대형 냉장고 시장에서는 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둘째, 혁신 아이디어에 대한 고객의 효용 가치와 지불 의향을
사전에 면밀히 검증해야 한다.
새로운 제품이나 기능을 개발하는 일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는 일이다. 마케팅 담당자의 감에만 의존해 제품을 내놓으면 예기치 않은 낭패를 맛볼 수 있다. 따라서 혁신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일은 자유롭고 과감하게 전개하되, 아이디어의 실효성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점은 검증이 단순한 고객 선호도 파악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고객은 새로운 제품에 대한 선호 여부를 묻는 평이한 설문에 대체로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으므로 상당한 착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때문에 컨조인트 분석(소비자들이 특정 제품 브랜드, 기능, 가격 중 어떤 부문에 가장 관심을 갖는지를 알아내는 분석법)과 같은 상세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가격 최적화에도 쓰이는 컨조인트 분석법은 제품 가치 최적화에도 매우 유용하다.
 
<그림2>는 컨조인트 분석법에 따라 프린터 제품의 고객 효용 가치 및 지불 의향을 측정한 결과다. 고객이 프린터를 살 때 가장 민감하게 고려하는 요소는 가격과 해상도다. 인쇄 속도나 급지대의 용량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가격과 해상도에 비하면 영향력이 작다.
 
추가 분석을 하면 각 기능별 개선 정도에 따른 고객의 추가 지불 의향도 계산할 수 있다. 해상도가 300dpi에서 1200dpi로 개선될 때 고객의 효용은 34만큼 커진다. 이는 가격이 700유로에서 300유로로 떨어질 때의 고객 효용인 39와 비슷하다. 해상도가 900dpi 개선되면 350유로 정도의 가격 인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일 이 업체가 해상도를 900dpi 개선했을 때 들어간 단위 원가가 350유로 미만이면 이 제품 개선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
 
이렇듯 면밀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품 개선이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마케팅 담당자가 고객이 인쇄 용지를 자주 보충하는 일에 불편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가정해보자. 구체적인 분석 결과가 없다면 담당자는 당장 인쇄 용지 칸의 용량을 50장에서 250장으로 늘리는 식의 제품 개선을 추진할 것이다. 하지만 담당자의 주관적 선택에만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은 큰 위험을 가져온다. 인쇄 용지 칸의 용량을 늘리는 일이 고객의 효용을 어느 정도 증대시켜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고객이 프린터를 살 때 핵심적으로 고려하는 사안은 아니다. 엉뚱한 일에 매달리다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점을 놓치거나, 원가 및 가격 책정상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셋째, 특정 기능의 개선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얻었다면 해당 기능의 최적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 <그림3>은 특정 성능이 향상될 때, 고객의 한계 효용은 줄어들지만 한계 비용은 늘어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고객 효용(value-to-customer)과 관련 비용(cost-to-make)의 차이가 가장 커지는 지점을 찾아 최적 성능 수준을 정의해야 한다.
 
LCD 디스플레이 패널 제품을 보자. 화면 크기가 커질수록 고객의 추가 지불 의향은 줄어들지만 제조 원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최근 LCD 패널 업체들이 과거 16:10 비율 제품보다 16:9 비율 제품 비중을 늘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풀 HD 콘텐츠의 보급 확대로 16:9 비율 제품에 대한 고객의 선호도가 높아진 반면, 해당 제품에 필요한 기판 유리 크기는 상대적으로 작아 제조 원가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컨조인트 분석은 최적 성능 수준을 찾을 때도 매우 유용하다.
 
넷째, 개별 기능을 상세히 분석해 혁신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이에 따라 제품과 가격을 차별화해야 한다. 이때 최우선 판단 기준은 고객 가치 개선에 미치는 효과다. 하지만 <그림4>처럼 시장의 경쟁 구도 또한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업계 판도가 제품의 중심 기능 위주로 전개되고 있다면 주변 기능에 혁신의 우선순위를 둬야 차별화를 이뤄낼 수 있다. 반대로 업계 판도가 주변 기능 위주로 전개되고 있다면 중심 기능 혁신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 철강회사 뉴코어는 ‘품질과 가격’이라는 중심 기능 위주의 경쟁이 펼쳐지는 상황에서 ‘납기’라는 주변 기능을 혁신함으로써 큰 성과를 창출했다. 이 회사는 경쟁 업체에 대한 고객들의 불만이 상당히 긴 납기에 있음을 파악하고, 내부 시스템을 개선해 납기를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고객 주문 후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품을 인도함으로써 차별적 고객 가치를 제공한 셈이다. 뉴코어는 이 혁신으로 가격 할인을 폐지하면서도 고객들의 높은 호응을 얻었다. 매출과 이익도 크게 늘었다.

제품 가치 최적화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기능을 더하거나 성능을 개선시키는 일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는 불필요한 기능을 없애거나 성능 수준을 낮추는 일이 오히려 유용할 수 있다. 물론 이때 가격을 합리적으로 조정함으로써 고객 가치를 증대시키는 일이 필수적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복잡한 게임 기능을 과감히 없애는 한편, 제품 가격을 적절히 낮춤으로써 큰 성공을 거둔 닌텐도의 혁신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비싼 돈이 필요한 기능 개선은 전 제품에 일괄적으로 적용하지 말고, 업그레이드 제품에 한정 적용하거나 유료 선택 사항으로 제공해야 바람직하다.
 
불황기 고객은 꼭 필요한 가치나 기능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가격에 매우 민감해진다. 이는 기업에 위협이 아니라 오히려 중요한 기회다. 호황기에 남발된 혁신의 폐해를 줄이고, 본질적인 관점에서 고객 가치를 혁신할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제품 가치 최적화로 고객 가치 증대와 원가 절감을 동시에 실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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