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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망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라

안상훈 | 33호 (2009년 5월 Issue 2)
기업이 혁신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특히 유통망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하면 기껏 좋은 제품을 만들어놓고도 목표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제품을 어떻게 고객에게 전달하느냐’는 ‘어떤 제품을 개발하느냐’는 문제 이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기업들은 모든 제품을 모든 고객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판매하는 사업자 중심의 유통망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자 중심으로 유통망을 운영하면 <그림1>처럼 많은 문제점이 생긴다.
 
첫째, 판매자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는 제품 및 서비스만 뽑힐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가 목표 고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둘째, 유통망 내부의 판매 경쟁 및 가격 경쟁이 커지기 때문에 판매 수익률이 떨어진다. 이에 따라 인기 제품은 실질 판매 가격이 낮아지고, 신규 제품이나 비인기 제품은 판매가 줄어든다. 특정 유통망에 대한 판매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사업자의 협상력이 줄어든다는 문제점도 생긴다. 판매 의존도가 높은 몇몇 유통망에 많은 보상과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때문에 유통망을 운영할 때도 차별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부분적이고 기술적인 개선이 아닌 전면적인 유통망 최적화가 필요하다. 이를 4C 관점에서 살펴보자.

첫째, 고객(Customer)이다. 즉 목표 고객이 필요로 하는 차별적 구매 경험과 편의성을 제공해야 한다. 고객 입장에서 유통망은 또 다른 형태의 제품이다. 백화점, 대형 마트, 편의점, 인터넷 쇼핑몰, 방문 판매는 절대 같은 판매 창구가 아니다. 그 자체로 고객의 차별적 지불 의향을 유발하는 제품이다. 기업은 자사의 제품 특성과 목표 고객의 구매 행태를 신중히 고려해 선별적으로 유통망을 선택하고 운영해야 한다.
 
둘째, 접근성(Coverage)이다. 즉 목표 고객이 자사 제품을 언제나 접할 수 있도록 폭넓은 접촉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때 접촉 기회를 단순히 지리적 의미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 전국을 아우르는 유통망을 구축한다고 해서 판매 성과가 절로 나아지지는 않는다. LG텔레콤은 뱅크온이라는 모바일 뱅킹 제품의 신규 유통망으로 은행 지점을 활용했다. 동원F&B 역시 보성녹차의 초기 유통망으로 고속도로 휴게소를 선택했다. 유통망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린 사례다.
 
셋째, 비용(Cost)이다. 즉 브랜드 가치나 고객 서비스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총 유통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일부 기업은 동일 제품을 팔 때 판매 비용이 50% 이상 덜 드는 고효율 유통망이 있는데도 판매의 90%를 고비용 유통망에 의존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그 유통망과 거래해왔다는 이유에서다.
 
기존의 영업 관례에 얽매여 유통망을 바꾸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인터넷이나 콜 센터는 물론이고 사업 파트너의 유통망 또한 자사의 유통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초콜릿 제조업체 A사는 제과업체 B사와 제휴를 맺었다. 이후 A사는 B사의 유통망을 활용해 초콜릿 판매를 대대적으로 늘릴 수 있었다.
 
넷째, 통제력(Control)이다. 즉 자사의 마케팅 및 영업 전략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유통망에 대한 강력한 통제력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판매망을 적절히 분산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소니나 샤프 같은 일본 가전업체들은 자사 제품의 판매를 야마다덴키 등 대형 양판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바람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대형 양판점에 많은 판매 마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림2>에서 보듯, 기업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직접 유통망과 외부 사업자를 활용하는 간접 유통망은 판매 성과에 대한 비용 탄력성, 고객 서비스의 질과 양 등 모든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기업은 자사의 마케팅 전략, 판매 목표, 예산 규모 등을 감안해 직간접 유통망을 적절하게 섞어 사용해야 한다. 

4C
원칙을 통해 유통망 최적화를 달성하려면, <그림3>에서 보듯 현재 자사의 유통망 현황과 성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분석 질문은 다음과 같다.

-
우리 고객은 어떤 이유로 어떤 유통망을 활용하고 있는가?
- 고객의 생활 환경 및 습관 변화에 따른 새로운 구매 행태는 무엇인가?
- 특정 제품의 유통망 유형별 직간접 판매 비용과 가격 할인 추이는 어떠한가?
- 특정 제품의 유통망 유형별 매출, 이익, 점유율 추이는 어떠한가?

이 결과를 꾸준히 축적하면 유통망 최적화의 방향을 쉽게 뽑아낼 수 있다. 문제는 많은 기업들이 이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판매량과 그 판매를 달성하기 위해 쓴 총 비용만 관리하는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어떤 제품이 어떤 유통망을 통해 얼마만큼 팔렸으며, 이에 따라 얼마의 이익을 만들어냈는지’를 낱낱이 분석하고 관리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활동 기준 원가(Activity-based costing) 방식을 사용하면 영업 생산성도 개선할 수 있다.

문제점을 발견하면 향후 활용해야 할 유통망을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림3>에서 보듯 각 유통망은 제품의 특징, 고객 접근성, 소요 비용 면에서 각각 다른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기업은 각 유통망별로 판매해야 할 제품군과 고객 서비스를 다르게 부여하고, 판매 목표와 그에 따른 판매 비용도 합리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미국 은행 웰스파고는 상품 및 업무 특성에 따라 다양한 유통망을 배치해 높은 성과를 올렸다. 웰스파고의 유통망 유형과 제공하는 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 뱅킹 스토어: 전통적인 지점 형태로 종합 금융서비스 제공(3318개)
- 모기지 스토어: 모기지 상품 전문 상담 및 판매 서비스 제공(2400개)
- 컨슈머 파이낸스: 자동차 대출 및 리스 등의 소비자 대출 서비스 제공(1078개)
- 슈퍼마켓 스토어: 슈퍼마켓과 제휴해 펀드 판매, 신용카드 발급(567개)
- 인터넷 뱅킹: 상품 안내, 단품 판매, 조회 및 이체
- 폰 뱅킹: 상품 안내, 조회 및 이체 등의 단순 서비스 제공 및 고객 문의사항 접수
-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조회 및 이체 등 24시간 서비스(6900개)
 
웰스파고는 1997년 이후 연평균 15%의 놀라운 이익 성장률을 기록했다. 2006년에는 영업이익률이 무려 24% 늘어났다. 교차 판매 중심의 마케팅 전략과 유통망 최적화의 결과다.
 
유통망을 최적화할 때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3가지 있다. 첫째, 유통망 최적화 과정에서 기업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특히 유통망을 무모하게 확장하면 수익성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구찌는 한때 고가의 명품을 일반 대중에게 판매하는 신규 유통망을 만들었다가 큰 손해를 입었다. 아무나 살 수 없는 명품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사라지면서 구찌의 핵심 고객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결국 구찌는 500여 개의 명품 전문 매장을 제외한 나머지 일반 유통망에서 모두 철수했고, 이후 구찌의 영업이익은 46% 늘었다.

델 컴퓨터도 한때 무리하게 유통망을 확장했다가 실패했다. 델은 매장에서 직접 컴퓨터를 사기를 원하는 중소기업 고객 및 일반 소비자를 위해 비즈니스디포와 같은 소매 유통업체를 신규 유통망으로 활용했다. 이 결정으로 델의 매출은 늘었지만 이익은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소매 유통업체에 매우 높은 판매 마진을 제공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가형 PC만 다량 판매하는 소매 유통업체의 특성 때문에 델 제품의 실질 판매 가격과 재고 회전율이 현저히 낮아졌다.
 
매출이 늘수록 적자 또한 커지자 델은 소매 유통망에서 철수했다. 그 후 직접 판매에 전념하자 델의 이익은 곧바로 회복됐다. 소매업체는 델 컴퓨터의 경쟁 우위를 가져온 맞춤형 즉시 생산이나 직접 판매에 전혀 맞지 않는 유통망이었다.
 
둘째, 유통망을 정비한답시고 고객의 체험 가치를 훼손하면 안 된다. 고객의 체험 기회나 해당 브랜드에 대한 독특한 경험이 사라지면 오히려 성과가 떨어질 수 있다. 미국 자동차 업체 C사는 한때 인터넷 판매를 강화하고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했다. 문제는 자동차라는 상품 특성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자동차를 사려는 고객은 제품의 성능을 오프라인 매장에서 체험하기를 원한다. 인터넷을 통해 차를 사더라도, 그 전에 오프라인 매장에서 성능을 시험하는 고객이 대부분이다. 오프라인 매장 수가 줄자 C사의 인터넷 판매 또한 줄어들었다.
 
반면 혼다는 다른 노선을 취했다. 혼다는 아큐라를 내놓으면서 기존의 혼다 딜러망을 이용하지 않고 아큐라 전용 딜러망을 새롭게 구축했다. 신규 딜러망 구축에는 상당한 비용 투자가 불가피했다. 하지만 고객들에게 차별적 경험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아큐라의 고급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아큐라 매장에 온 고객들은 아큐라의 제조회사가 혼다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했다. 아큐라를 어코드나 시빅과 같은 혼다의 중저가형 차량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덕분에 아큐라는 고급 자동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초반 일본 오토바이의 공습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부활한 할리 데이비슨 또한 고객의 체험 가치를 향상시키는 유통망 정비에 성공했다. 할리 데이비슨은 다양한 브랜드의 오토바이를 같은 장소에서 판매하는 외부 딜러망에 의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자사 제품만을 판매하는 전용 딜러망을 구축했다. 미국 전역에 할리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플래그십 매장도 만들었다. ‘플래그십 매장’은 특정 브랜드의 모든 상품을 갖춘 독립 매장을 뜻한다. 고객이 그 브랜드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도록 흥미를 유발하는 경험 요소로 꾸며놓았다.
 
할리 데이비슨은 딜러망에 대한 인센티브 체계도 바꿨다. 판매 인센티브만 지급했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고객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지원금을 지급했다. 딜러들과 고객 간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 셈이다. 이는 할리 데이비슨 고객의 높은 충성도와 독특한 브랜드 정체성을 낳게 한 출발점이었다.
 
셋째, 각 유통망 사이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판매 제품, 가격 체계, 유통망 보상 체계 등을 적절히 차별화해야 한다. 같은 가격의 동일 제품이 복수 유통망에서 판매된다면 불필요한 내부 경쟁만 생겨 유통망의 충성도와 판매 성과 모두 떨어질 수 있다. 
 
컴퓨터 시스템 제조업체 D사는 영업 사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중소기업 고객을 위해 자사 제품을 편리하고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인터넷 판매망을 만들었다. 하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다. 영업 사원들이 영업 실적을 늘리기 위해 D사의 핵심 고객인 대기업 고객의 인터넷 구매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타이어 제조업체 굿이어는 1990년대 초반 극심한 판매 실적 악화에 시달렸다. 경쟁사 미쉐린은 자동차 정비소나 대형 할인점을 신규 유통망으로 적극 활용해 굿이어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했다. 그러나 굿이어는 그간 판매를 전적으로 의존해왔던 직영 대리점 및 독립 타이어 딜러들의 반대로 해당 유통망을 활용할 수 없었다. 이 와중에 굿이어 내부에서는 기존 유통망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과 유통망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서로 엇갈리면서 격심한 논쟁까지 벌어졌다.
 
굿이어는 문제 해결을 위해 회사 내부, 딜러, 고객들에 대한 조사를 광범위하게 실시했다. 그 결과 고성능 타이어를 구매하려는 고객들은 타이어 전문점에 대한 신뢰가 높은 반면, 구매 편의성이나 가격을 중시하는 고객들은 자동차 정비소와 할인점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에 굿이어는 마진이 높은 고성능 신제품을 기존 유통망에 배타적으로 공급했다. 동시에 할인점과 정비소 등 신규 유통망에는 중간 성능의 기존 제품이나 해당 망 전용 신규 제품을 개발해 공급했다. 기존 유통망의 불만을 최소화하면서도 유통망을 넓힌 셈이다. 이후 굿이어의 매출과 이익은 획기적인 수준으로 늘었다.
 
유통망을 최적화하면 기업은 매출 증가와 비용 절감이라는 2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경쟁자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강력한 경쟁 우위 요인을 확보하는 셈이다. 현상 유지에 급급한 안일함과 빈약한 상상력에 기초한 사업자 중심의 사고만 없다면 누구나 유통망 최적화에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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