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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형 마케터 LG생활건강 이정애 상무

고객 가치 결정하는 디테일로 승부하라

하정민 | 32호 (2009년 5월 Issue 1)
여성용 생리대는 대체재가 거의 없는 상품이다. 때문에 일단 시장에만 진입하면 안정적인 수익이 따라오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생리대 시장의 진입 장벽은 의외로 높다. 제품 간 품질 차이가 크지 않고, 한번 쓴 제품을 계속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쌍용제지, 모나리자 등의 업체가 줄기차게 생리대 시장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어려운 시장에 뒤늦게 들어온 LG생활건강은 일본 업체 유니참과 손잡고 2006년 ‘바디피트’를 내놓았다. LG라는 대기업의 후광, 소비재 분야에서 오랫동안 입지를 다져온 LG생활건강의 기업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연 성공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LG생활건강은 후발주자임에도 과감히 고가격 정책을 택하며 ‘프리미엄 생리대’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2006년 6.3%에 불과했던 바디피트의 시장점유율은 불과 2년 만인 2008년 15%에 가까울 정도로 늘었다. LG생활건강은 현재 ‘화이트’ ‘좋은느낌’ 등을 생산하는 유한킴벌리와 ‘위스퍼’를 앞세운 한국P&G에 이어 업계 3위를 달리고 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바디피트를 성공시킨 주역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LG생활건강 지류(紙類) 부문을 맡았던 이정애 상무다. 그는 바디피트의 성공을 인정받아 2008년 말 LG그룹 최초로 공채 출신 여성 임원이 됐다.
 
1986년 LG그룹에 입사해 20년 넘게 마케팅 업무만 담당해온 이 상무는 ‘소비자와의 밀착’을 강조했다. 시도 때도 없이 매장을 방문하고 소비자, 매장 파견 직원, 경쟁 회사 직원, 학자 등 관련 인사들의 의견을 전방위로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마케팅은 디테일의 싸움이다. 아무리 하늘로 날아가고 싶어도 절대 땅바닥에서 발을 떼면 안 된다. 발이 떨어지는 그 순간, 소비자를 잃어버린다”고 강조하는 그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마케팅은 디테일 싸움
생리대는 디자인이나 색상에서 변화를 줄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사실 각 업체의 제품들이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는지 구분하는 소비자도 별로 없다. 이정애 상무가 ‘마케팅은 디테일 싸움’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양과 착용감이 비슷한 두 종류의 생리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두 제품이 아무리 유사해도 디테일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분명히 미세한 차이가 생깁니다. 그 미세한 차이를 소비자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느냐를 연구하는 사람이 마케터죠. 이 작은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거든요.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릴 것인가? 오감을 직접 자극할 것인가? 오감을 자극한다면 어떤 감각을 주로 공략할 것인가? 등 소비자가 미세한 차이를 확실히 느끼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바디피트가 자랑하는 디테일은 흡수력이다. 비슷한 두께를 지녔음에도 다른 제품보다 실제 흡수량이 훨씬 많다. 비결은 간단하다. 제품의 가운데 부분만 조금 볼록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언뜻 보기에는 똑같아 보이지만, 이 작은 차이가 흡수력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써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이런 디테일은 바디피트의 품질에 대해 소비자들이 입소문을 내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마케팅 업무를 폄하하는 몇몇 사람들은 원가가 얼마 안 되는 상품을 비싼 값에 판매하도록 돕는 게 마케팅 아니냐며 ‘상술(商術)’ 운운하기도 하죠. 피카소 그림의 원가가 비싸서 사람들이 피카소의 작품을 수백억 원에 사는 것은 아니잖아요. 이 제품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 어떤 스토리를 제공할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 요소가 디테일입니다.”
 
후발주자도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유한킴벌리와 P&G는 국내 생리대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쟁쟁한 두 업체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상황에서 LG생활건강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경쟁 제품보다 높게 가격을 정했다. 바디피트의 가격은 화이트나 위스퍼보다 10∼15% 정도 비싸다. 가격 민감도가 높은 소비재의 특성상 후발업체가 선택하기 쉽지 않은 전략이다. 당시 LG생활건강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특히 영업 부서가 많이 반발했다. 하지만 이정애 상무는 품질에 자신이 있는데 왜 가격을 낮게 책정해야 하느냐며 자신의 의견을 밀어붙였다.
 

“LG생활건강의 조직 규모나 영업력은 이 분야에서 최고 수준입니다. 소비자에게 가치를 줄 수 있고, 그 가치를 제대로 구현했다면 굳이 실패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부러 낮은 가격을 책정해 기회 이익을 포기할 필요도 없구요. 자신에게 가치를 주는 제품이라고 판단하면, 절대적인 가격 수준이 높더라도 구매하는 이들이 요즘 소비자들입니다.

값을 비싸게 매겼더니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장점도 있더군요. 바로 사용자들이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보내오는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도 않은 당신 회사 제품을 내가 비싼 돈을 주고 샀다. 제품 똑바로 만들고 있는 거냐’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 제품을 낱낱이 분석하고 활발히 의견을 제시하는 고객들이 많았습니다. 고객의 피드백은 돈 주고도 사기 어려운 귀중한 참고 자료 아닙니까. 고객들의 다양한 피드백은 저희가 디테일 싸움에서 앞서갈 수 있는 바탕으로도 작용했습니다.”
 
책상 앞보다 매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많은 경제학자들은 경기를 전망할 때 통계 자료만 활용하지 않고, 택시 기사나 호텔 도어맨처럼 각계각층의 인물을 접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참조한다. 이런 의견을 계량화할 수는 없지만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정애 상무도 비슷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최소 3, 4번은 매장을 방문한다. 수도권 매장을 불시에 방문해 제일 먼저 제품의 진열 상태부터 파악한다. 제품이 제대로 들어와 있는지, 눈에 띄는 좋은 장소에 진열돼 있는지, 청결 상태는 어떤지 등을 살펴본다. 이후 같은 방법으로 경쟁사 제품을 살펴보고, 매장의 파견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매장에서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이 상무는 자사 제품이나 경쟁 제품을 사는 소비자를 보면 반드시 ‘그 제품을 왜 사느냐’고 물어본다. 심지어 직접 팔기도 한다. 어떤 제품을 살까 궁리하는 소비자를 만나면 ‘나도 이 제품 써봤는데 이래서 좋더라’며 동료 소비자로서 제품의 장점을 알려준다.
 
“남들은 왜 그렇게 매장에 자주 가느냐, 소비자 조사로 대체하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제가 매장에 자주 가는 목적은 단순히 품질, 사용감,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듣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진짜 목적은 전략적 이슈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신제품을 내놓거나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등 회사의 운명을 좌우할 전략적 이슈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치죠. 이런 중요한 결정을 내리면서 단순히 소비자 조사가 이렇게 나왔으니 이 제품을 내놓으면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조사 결과라는 데이터 자체보다 마케터의 감이 훨씬 중요합니다. 소비자에 대해 집요하게 관찰해야 그 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땅에서 발을 떼면 안 되는 거죠.”
 
한국 시장 고유의 특성을 파악하라
생활용품의 특성상 LG생활건강의 경쟁 제품은 P&G, 유니레버 등 대형 다국적 기업의 제품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 상무는 덩치 큰 경쟁자를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한다. 한국 시장과 소비자의 특수성을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무조건 자사의 글로벌 전략만 밀어붙였다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입사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니베아 담당이었습니다. 지금은 니베아가 독립했지만 그 당시는 LG와 제휴해 국내 시장에 진출했죠. 진출 초기에는 사업이 잘되는 듯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체에 빠지더군요. 원인은 지나치게 단조로운 제품 라인업이었습니다. 니베아의 주력 제품은 파란색 원형 캔에 든 크림이 전부였거든요. 한국 시장은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가 매우 빠른데, 당시 니베아 본사에서는 한국 시장 상황과 빠른 소비자 기호 변화를 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저희가 알려줘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때가 많았구요. 한국 시장과 괴리를 좁히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거죠.
 
바디피트로 저희와 손잡은 일본 유니참도 마찬가지더군요.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지만, 유니참은 ‘소피’라는 브랜드로 10년 넘게 한국 시장에서 생리대 사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도 지극히 미미한 점유율과 브랜드 인지도를 보인 것은 한국 시장의 특수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일본 유니참에는 없지만 한국 시장의 특수성에 맞춰 개발한 제품이 바로 ‘한방 생리대’입니다. 한국 시장에서 ‘한방’은 어떤 계층, 어떤 카테고리에서도 효과적으로 먹히는 마케팅 재료입니다. 하지만 외국 업체들은 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모르죠. 이것이 바로 디테일의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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