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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케팅 ‘산 역사’ 한경희생활과학 나종호 부사장

마케팅 일관성, ‘100-1=0’이다

문권모 | 32호 (2009년 5월 Issue 1)
나종호
한경희생활과학 부사장은 27년째 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국 마케팅의 ‘산 역사’다. 그는 CJ, 태평양, 보령메디앙스 등 해당 업계의 정상급 회사에서 우리나라 마케팅 역사에 또렷한 자취를 남긴 제품을 만들어왔다. 그가 개발과 마케팅에 주역으로 참여한 히트 제품은 비트, 메디안 치약, 식물나라, 엔프라니 등 일일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경희생활과학 본사에서 나 부사장을 만나 27년간의 마케팅 노하우와 전략적 시사점을 들어봤다. 그의 마케팅 시사점은 △최소한 1%는 달라야 한다 △함부로 반격하지 말라 △일관성을 유지하라 △항상 변화하라 등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최소한 1%는 달라야 한다
나 부사장이 가장 강조한 포인트는 ‘경쟁에서 이기려면 제품에 뚜렷한 차별점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마케팅은 소비자의 머릿속을 누가 차지하느냐와 관련한 싸움입니다. 수많은 브랜드와 제품이 쏟아지는 시장 상황에서 소비자의 머릿속에 강한 이미지를 심으려면 자기 제품이 뭐가 다른지를 계속 강조해야 합니다. 최소한 경쟁 제품과 다른 점이 1%라도 있어야 성공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 부사장은 1990년대 초 세탁용 세제 시장을 뒤흔든 ‘비트’를 예로 들었다. 당시 세제 시장은 L사와 A사가 양분하고 있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제일제당(현 CJ·당시 삼성그룹 소속)은 세제 시장 진출을 앞두고 1년여 동안 치열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 팀은 당연히 기존 제품과의 명확한 차별화에 초점을 뒀다. 무려 30여 차례나 되는 소비자 조사 결과 나온 차별화 포인트가 바로 ‘적게 써도 때가 잘 빠지는 세제’였다. 당시 1위 상품들의 ‘덩치’가 크다는 것에 착안했다.
 
하지만 세제 제품은 소비자의 가격 민감도가 높은 대신 관여도가 낮다는 점이 문제였다. 주요 고객인 가정주부들은 가격이 싼 제품을 주로 선택했으며, 한번 선택한 제품을 습관적으로 쓰고 있었다. 비트는 기존 제품보다 훨씬 비싼 반면 양이 절반밖에 되지 않아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기가 어려웠다.
 
제일제당은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차별화 포인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기존 제품을 모방하면 큰 성공이 힘들었고, 심지어 1위 제품을 도와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 부사장은 이와 관련한 예로 ‘비타500’과 ‘햇반’을 들었다. “비타700이나 비타1000 같은 유사 제품은 결국 비타500을 광고해준 셈이 됐습니다. 햇반을 겨냥해 만든 경쟁사 제품을 광고했는데 햇반의 판매량이 더 늘어난 사례도 있구요.”(나 부사장은 햇반 개발에 상품개발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제일제당은 결국 차별화 포인트를 포기하지 않았고, 비트는 시판 2년 만에 시장점유율 20% 이상을 차지하며 성공적으로 시장에 자리잡았다.
 
함부로 반격하지 말라
비트의 성공에는 사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경쟁사 L사가 비트의 개발 정보를 입수해 1주일 먼저 비슷한 콘셉트의 제품을 시판한 일이었다. “우연히 패키징 업체를 통해 L사의 신제품 개발을 알게 됐습니다. 비트와 정말 똑같은 콘셉트의 제품이더군요. 하늘이 노래져 부랴부랴 심야에 대책 회의를 했습니다. L사와 차별화가 되게 마케팅 전략을 꽤 많이 수정해야 했지요.”
 
하지만 L사의 견제는 결국 비트의 선전에 ‘약’이 됐다. “L사의 가세가 시장 전체 분위기를 저희에게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갔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콤팩트형 세제는 나름대로 약점이 있었는데, 양사가 동시에 광고를 하니 소비자 인식이 생각보다 쉽게 바뀌더군요. 콤팩트형 세제의 시장점유율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늘었습니다. 저희가 비트와 관련해 연간 70억 원 정도를 광고비로 썼는데, L사가 아니었으면 광고비가 배로 들었을 겁니다.”
 
콤팩트 세제가 선을 보인 지 2년 만에 관련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50%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그 속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일제당의 승리였다. 신제품이 잘 팔리기는 했지만, L사는 기존 세제의 시장점유율이 줄어드는 문제에 부딪혔다.
 
나 부사장은 “때로는, 특히 후발 제품이 새로운 속성을 가지고 있을 때는 무대응이 가장 좋은 대응책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이 치고받으면 상대방 페이스에 말려들 뿐만 아니라, 경쟁사에 여론의 관심이 쏠리게 됩니다.” 맥주 시장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하이트맥주는 OB가 맥주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 ‘청정 암반수 맥주’라는 카피로 OB를 자극했다. 급기야 OB는 하이트를 공정위에 제소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여론의 관심은 더욱더 하이트에 쏠리게 됐다.
일관성을 유지하라
나 부사장의 대표작 중에는 ‘식물나라’라는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 1993년 등장한 식물나라는 ‘미샤’나 ‘더페이스샵’ 같은 중저가 화장품의 원조다. 당시 제일제당은 ‘태평양을 따라잡을 대항마’를 찾아 소비자 조사를 실시하고 있었다. 신제품 태스크포스팀(TFT)을 이끌던 그는 소비자들이 ‘화장품은 매일 쓰는 필수품인데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TFT는 추가 조사를 통해 ‘싸지만 좋은 자연주의 화장품’과 ‘깨끗한 피부 필수품’이라는 콘셉트를 만들고, 슈퍼마켓을 유통 채널로 하는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사내외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식물나라는 시판 첫해 4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식물나라의 성공은 글로벌 기업인 로레알이 브랜드 인수를 제의할 정도로 놀라웠다. 그렇지만 성공은 계속되지 않았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 영업 부서에서 판매점을 지나치게 늘린 것이 원인이었다. 진열 매장이 늘자 본사의 관리가 힘들어졌고, 매대에 먼지가 하얗게 앉는 일이 흔해졌다. 급기야 소비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했다. “TV에서 ‘깨끗함’을 콘셉트로 광고하는 제품이 매장에서는 먼지투성이로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매출이 떨어지니까 점주들의 반품 요청이 늘어나게 됐지요.”
 
나 부사장은 ‘마케팅의 일관성은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른 분야에서는 ‘100-1=99’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마케팅 일관성과 관련해서는 ‘100-1=0’이 됩니다. 브랜드와 광고, 포장 등 모든 요소가 통일된 메시지를 기준으로 정렬되지 않으면 실패하고 맙니다.”
 
항상 변화하라
나 부사장이 마지막으로 지적한 포인트는 ‘마케팅은 한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항상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물론 교과서적인 교훈이지만, 마케터들이 항상 잊지 말아야 하는 ‘기본 덕목’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마케팅 지식은 물론 기본으로 갖고 있어야 하지만, 좋은 마케터는 기본 지식을 시장과 소비자의 변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바꿉니다.”
 
그가 특히 최근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는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고객을 제품 개발과 마케팅에 참여시키는 활동이다.
 
“요즘에는 물건만 잘 만들었다고 통하지 않습니다. ‘대중적 감정’을 통과하고, 그들과 공감해야 제품이 인정을 받으니까요. 이를 위해 마케터들은 카페나 블로그를 이용한 홍보에 좀더 노력을 기울여 소비자들이 제품 개발에 참여하거나, 적극적으로 입소문을 내게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기업도 연예인처럼 자사 제품에 열광하는 ‘팬덤’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이를 위해 고객 모임인 ‘스팀홀릭’을 만들었다. 스팀홀릭은 제품 개발과 평가에 참여하는 체험단 역할을 하는 동시에, 구전 마케팅을 해주는 ‘팬클럽’ 역할도 한다. 또한 고객 모임 관리를 다른 기업과 차별성화하기 위해 ‘지속성’이라는 원칙을 도입했다. 다른 기업에서는 고객 모임이나 체험단 활동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한경희생활과학은 체험단 활동이 끝난 주부 고객들을 대상으로 카페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하고 의견을 모은다.
 
나 부사장은 “최근에는 신제품을 시판할 때마다 주부 블로거를 대상으로 체험 이벤트를 진행한다”며 “이런 이벤트는 입소문은 물론, 예열 시간을 1분으로 줄인 스팀다리미와 건강 관리 개념을 더한 청소기(아토스팀, 살균 스팀청소기) 등 소비자의 숨겨진 욕구를 찾아내주는 기능도 있다”고 설명했다.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고객군이 비슷한 다른 회사와 제휴 마케팅을 진행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최근 황사 철을 맞아 기획한 아토피 예방 스팀청소기 체험 이벤트를, 자사 홈페이지 대신 분유 생산업체 남양유업의 홈페이지에서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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