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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Study

기존 데이터에서 ‘숨은 보물’ 캐내라

문종훈 | 31호 (2009년 4월 Issue 2)
고객은 모든 비즈니스의 기반이다. 특히 불황기에는 고객의 중요성이 호황기보다 훨씬 더 높아진다. 호황기에는 남들이 고객을 빼앗아 가더라도 쉽게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다. 하지만 불황기에 고객을 뺏기는 것은 ‘사망 선고’와 같다. 불황기에는 고객들이 지갑을 닫고 잘 움직이지 않으며, 기업이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자금을 마련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관계관리(CRM)는 불황기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핵심 기능이다. CRM은 고객과 기업의 관계 유지 및 강화를 통해 지속적인 매출 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해준다.
 
다만 불황기에는 기업이 한정된 마케팅 비용 안에서 고객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므로 불황기의 CRM은 새로운 고객의 확보보다는 기존 고객과의 관계 유지·강화와 이들로부터 더 많은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 또 기존의 CRM 데이터를 창의적 시각에서 재해석하거나, 기존에는 CRM의 대상이 아니었던 부분을 분석하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다음은 위기 상황에서 뛰어난 고객 관리 전략을 세워 경영상의 어려움을 극복한 기업의 사례들이다. 각각의 사례를 자세히 검토해 불황 극복의 인사이트(insight)를 얻기 바란다.
 
기존 고객과의 관계 유지·강화
타사와 고객을 공유하라 가전제품 양판점 전자랜드는 2006년, 6개월 또는 1년 이상 구매 실적이 없는 ‘휴면 고객’의 재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DM(Direct Mail)을 보내기 시작했다. DM은 고객이 전자랜드 매장을 방문하면 사은품이나 가격 할인 등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혜택만으로는 고객이 ‘차별화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전자랜드는 매장 방문 고객 대부분이 주로 개인 차량을 이용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고객들에게 가전제품 할인 이외에 자동차 정비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전략을 생각해냈다. 업종 간 고객 공유는 시장 잠식(cannibalization)이 없고, 공통 고객군(30∼40대 남성 또는 20∼30대 고객)을 쉽게 끌어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추가 비용 지출도 거의 없었다.
 
전자랜드는 자동차 정비 업체인 스피드메이트와 공동 프로모션 계약을 맺고, 고객들에게 보내는 DM에 계절이 반영된 다양한 서비스(에어컨 정비, 황사 대비 에어컨 살균 세척, 냉각수 주입)를 더해 성공적으로 고객 유입을 늘릴 수 있었다. 스피드메이트도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신규 고객 유입 채널을 확보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우수 고객 기반을 늘려라 불황기에 우수 고객을 찾아 이들을 잘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기존의 우수 고객에 충성도가 높은 새로운 고객 기반을 더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패밀리레스토랑 TGIF는 2005년, 우수 고객 관리 프로그램을 놓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VIP 고객을 대상으로 한 ‘케이준(Cajun) 클럽’ 프로그램의 매력도와 고객 호응이 점점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객 데이터 분석을 하던 TGIF는 케이준 클럽 회원이 되기를 원하지만 실적이 약간 밑도는 고객군이 있음을 알아냈다. 회사는 이들 고객을 ‘워너비(Wannabe)’라고 이름 붙였다. 담당 팀은 워너비 고객들을 케이준 회원에 편입시키면 여러 가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알았다.
 
첫째, 워너비 고객들은 사업 경쟁에 필요한 최소 임계치(critical mass)를 채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당시 패밀리레스토랑 업계는 극심한 경쟁을 치르고 있었고, 일정 수익을 얻기 위한 최소 고객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었다.
 
둘째, 워너비 고객의 ‘포섭’은 그들 자체는 물론 ‘조금만 더 충성도를 높이면 특별 회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높여 일반 고객들의 매출도 늘리는 효과가 있었다. 실제로 개선된 프로그램을 통해 워너비 고객은 14%, 일반 고객은 5%의 1인당 거래 금액 증가가 있었다.
 
물론 TGIF는 신규 케이준 클럽 회원이 된 워너비 고객들에게 기존 회원들보다 조금 적은 혜택을 제공했다. 이는 기존 고객들의 반발과 이탈을 막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
 
기존 고객에게서 새로운 사업 기회 발굴
영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 세인즈베리는 900만 명이 넘는 고객 정보를 기반으로 전혀 새로운 분야인 은행 사업에 진출한 독특한 사례다. 1990년대 중반 영국의 슈퍼마켓 시장은 포화 상태에 달해 있었다. 세인즈베리는 기존 시장에서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이 회사는 방문 고객들이 구매하는 제품을 분석한 결과 이들에게 독특한 금융 니즈가 있음을 알아냈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나 DIY(Do It Yourself) 제품을 많이 사는 고객들은 집수리나 리모델링을 하려는 니즈가 무척이나 높았다. 세인즈베리는 보다 자세한 니즈를 알아내기 위해 슈퍼마켓 고객의 구매 패턴과 함께 가족 구성원 수, 새로운 자동차 구매, 이사 등과 같은 인구 통계학적 정보를 분석했다. 그 결과 부엌 리모델링, 차고 증축, 집수리와 연계한 대출 및 손해보험과 같은 패키지 상품을 개발할 수 있었다.
 
세인즈베리는 1997년 슈퍼마켓에 가장 잘 어울릴 듯한 ‘신선 은행(Fresh Banking)’이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약 400개에 달하는 슈퍼마켓 매장에서 은행 업무에 돌입했다. 이 은행은 기존 은행과 다른 참신한 방식으로도 고객들의 호응을 얻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슈퍼마켓 상품과 연계한 금융 상품을 계속 개발했고, 은행원 없이 진열대에 저축 예금, 개인 대출, 모기지론, 주택보험 등의 가입 신청서만 진열하기도 했다.
 
세인즈베리 은행은 출범 8주 만에 10만 명의 고객과 1900억 원 규모의 예금 유치를 이뤄냈다. 2008년 기준 수신고는 7조 원 규모에 이른다. 

[DBR TIP] 우수 고객 집중의 함정
 
우수 고객에만 집중하다 나머지 고객을 놓치는 일은 불황기 기업이 저지르기 쉬운 가장 큰 실수다. 외환위기 이후 일부 국내 은행들은 ‘돈 되는 고객’에만 집중해 일반 창구를 줄이고 VIP 창구를 확장했다가 나머지 고객의 강한 불만에 부딪혔다. 사실 ‘돈 안 되는 고객’을 홀대하는 것은 우량 고객에게도 부정적인 메시지가 된다. 우량 고객들은 해당 회사의 ‘고객에 대한 진심’을 의심하며, 나아가 자신들도 홀대를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결과적으로 ‘돈 안 되는 고객’에 대한 어설픈 차별은 기업 이미지를 해치고, 브랜드 관리에 어려움을 가져올 수 있다. 부정적인 입소문이 퍼져 회사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는 것은 향후 신규 고객 유치에도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또 수익성이 낮은 고객 중에 그동안 좋은 입소문을 적극적으로 내주던 우호적인 사람들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
 
기업은 우수 고객 집중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나머지 고객’의 불평 관리에 힘써야 한다. 고객과 사전에 합의하지 않은 조치는 가급적 최소화하고, 부득이 조치를 취해야 할 때는 고객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또 이들의 거래 이력, 신상 자료 등의 데이터를 가급적 계속 유지하면서 향후 다른 경쟁사의 우량 고객이 되지 않도록 하는 장기적 사후 관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의 이익은 없을지라도 이미지를 높여주는 공익적 성격의 마케팅은 이런 맥락에서 큰 도움이 된다.
 
확보된 고객 인프라 새롭게 보기
고객 데이터는 사업 아이디어의 보고(寶庫)다. 그렇지만 위기의 시대에는 그 보물창고에서 보다 많은 보물을 캐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데이터를 새로운 관점에서 가공해 ‘차별적 가치’를 생산하려는 노력이 대표적이다.
 
SK마케팅앤컴퍼니는 숫자로만 돼 있던 고객 데이터를 고객의 생애 단계(life stage)와 라이프스타일(lifestyle)이라는 기준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인사이트를 얻었다.
 
원래 이 회사는 OK캐쉬백의 국내 최대 규모 고객 데이터(회원 3200만 명)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의 데이터 분석만으로는 ‘고객의 마음속’을 완전히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점이 고민이었다. 소비 행태와 설문 자료를 아무리 분석해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고민과 연구 끝에 ‘데이터를 배제한 채 고객을 먼저 바라봄으로써 고객의 본원적 추구 가치를 찾자’는 대담한 생각을 하게 됐다. 방윤식 K-hub그룹 매니저는 이를 “CRM 1.0에서 CRM 2.0으로 넘어가려는 시도”라고 표현했다. 데이터 없이 고객을 그대로 관찰해 본원적 니즈와 인사이트를 찾은 후, 이를 기반으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추가 연구를 진행하자는 생각이었다.
 
그 결과 SK마케팅앤컴퍼니는 11개 삶의 영역 및 이를 생애 단계와 라이프스타일을 기준으로 세분화한 40여 개 고객 유형을 뽑아낼 수 있었다. 11개 영역과 40여 개 고객 유형은 데이터를 보기 전에 고객을 분석하는 프레임워크 역할을 한다. SK마케팅앤컴퍼니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일반적 개념과 비즈니스적 개념들을 조합해 수백 개의 가설 조합을 생성해내고, 이것을 타당성을 기준으로 검증해 프레임워크를 만들었다.
 
방윤식 매니저는 “11개 영역·40여 개 고객 유형 프레임워크는 구매 행위 전 고객의 니즈와 의사결정 배경을 설명하고, 마케팅 전략에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그림1) 

 
[DBR TIP] 남들이 전혀 생각지 못하는 분야에 CRM을 적용하라
 
미국 13개 주에서 26개 카지노를 운영하는 하라(Harrah) 그룹은 1997년 업계 최초로 고객 정보 통합을 위한 CRM을 도입해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대부분의 카지노 업체들은 ‘이런 분야에서 뭘…’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고객 분석보다는 설비 투자와 고급화에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하라 그룹은 매출과 고객 정보를 분석해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기존의 믿음과 달리 VIP보다는 슬롯머신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매출 기여도가 훨씬 크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하라 그룹은 여러 가지 고객 정보를 성별과 연령, 주소, 돈 씀씀이의 4가지 기준으로 분류해 60여 개 고객군을 뽑아냈다. 그리고 각각의 고객군에 맞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이에 따라 카지노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고객에게는 우편으로 무료 비행기표를 제공했으며, 인근 지역 고객들에게는 식사권이나 공연 입장권을 줬다. 비슷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개개의 고객이 원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해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이제는 미국의 대다수 카지노들이 하라의 성공을 선례로 삼아 비슷한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문종훈 SK마케팅앤컴퍼니 전무는 현재 마케팅솔루션 BU 부문장을 맡고 있다. SK네트웍스 에너지 판매 부문 상무와 SK Car Life 사업부장 겸 사업개발 담당 상무를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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