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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합 고객의 본질적 욕구 충족시켜라

안상훈 | 29호 (2009년 3월 Issue 2)
풍랑은 항상 능력 있는 항해자의 편이다. 닻을 내릴 것인가, 돛을 올릴 것인가? 최근 주요 기업들의 경영 실적은 마치 줄 끊어진 엘리베이터처럼 급전직하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멀리 보고 불황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경영 구루들의 조언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심각한 불황기라고 해서 생존과 경쟁력 강화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은 언제나 위기 극복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불황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25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한 닌텐도를 보자. 닌텐도에도 심각한 위기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2000년대 초 닌텐도는 일본의 경제 불황, 미국의 닷컴 붕괴, 소니와 같은 막강한 경쟁자들의 마케팅 공세로 매우 암담한 처지였지만 ‘위(Wii)’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다. 한국 기업들이 닌텐도의 위기 극복 신화를 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가장 먼저 현상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불황의 근본 문제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비용을 줄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공급과 수요를 맞출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10%의 비용 절감을 이뤄낸다 해도, 매출이 20% 감소한다면 이는 기업 생존의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은 단편적인 비용 절감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마케팅의 고도화를 통한 이익 극대화 및 미래 경쟁력 강화에 조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단순한 위기 극복이나 생존을 위해 닻을 내리기보다는 불황 이후 시장 질서의 재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돛을 높이 올려야 한다는 의미다.
 
시급한 당면 과제인 이익 극대화를 위해 취해야 할 전략적 방침은 무엇일까? 해답은 이익 창출에 관한 핵심 변수들과 이들의 영향도를 살펴보면 자명하게 드러난다. <그림1>에서 보듯 이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는 가격과 변동비다. 판매량과 고정비 또한 주요 변수이긴 하나 그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 부분에 자칫 잘못 접근할 경우 오히려 이익이 줄어들거나 경쟁력이 저하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다음의 4가지 방침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1)가격 하락 방지 및 가격 누수 통제
 
2)제품 기능 및 서비스의 합리화를 통한 직접 변동비 절감
 
3)과도한 현금 할인 및 리베이트에 의한 판매량 확대 지양
 
4)일괄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의 구조조정 지양
 
문제는 이 같은 방침들이 고객 가치 훼손, 가격 경쟁력 약화, 판매량 감소를 가져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적지 않은 기업들이 이와 비슷한 문제로 고민하다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림1)

이때 다음과 같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객의 자발적인 지불 의향을 측정할 수 있다면, 기업의 매출 및 이익 목표를 실현할 최적의 가격을 책정할 수 있지 않을까? 고객에게 별로 필요 없는 제품 및 서비스 요소를 찾아내 없앨 수 있다면, 관련 변동비를 절감할 수 있지 않을까? 고비용 저효율의 유통망을 재정비하고 신규 유통망을 활용한다면, 더 낮은 비용으로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마케팅 자원의 내부적 중복과 구조적 누수 요인을 제거할 수 있다면,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마케팅인텔라이트의 VfM(Value for Marke- ting)은 이러한 문제 의식에 기초해 고객 가치(Va-lue for Money)와 사업 성과(Value for Mana-gement)를 충족시키는 마케팅 혁신 방법론이다. 풍랑에 맞서 돛을 올린 기업들을 즉각적 성과 개선 및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 지점으로 정확하게 이동시켜주는 나침반인 셈이다. 각 구성 요소와 의미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그림2)

첫째, VfM의 기본 전략은 적합 고객의 본질적 요구에 맞춰 불필요한 비용과 기회 손실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선 적합 고객(right customer)의 개념부터 명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다. 모든 기업들은 자신의 자원과 역량에 부합하는 차별적 포지셔닝 전략을 취하게 마련인데, 적합 고객은 이 차별성을 기꺼이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수용해주는 고객을 의미한다. 즉 게임기의 성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젊은 남성 게이머는 닌텐도의 적합 고객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TV 시청을 즐기는 중년 여성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적합 고객이 아니다.
 
하지만 기업들은 종종 자신들의 고객 기반을 적합 고객 이상으로 과도하게 확장하려는 우를 범한다. 기업용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A사는 시장 확대가 한계에 이르자, 자사 서비스에 휴대전화를 접목해 일반인들에게 공급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기술 개발을 통해 자체적으로 휴대전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자, A사는 저렴한 요금과 다단계 판매망을 무기로 가입자들을 적극 유치했다.

한때 가입자와 매출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휴대전화업계의 막강한 경쟁자들로부터 고객들을 끌어오려다 보니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휴대전화의 고품질 서비스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유치 비용이 회수되기도 전에 숱한 불만들을 쏟아내며 가입을 해지했다. 재무 성과뿐 아니라 브랜드 가치까지 심각하게 훼손된 사례다.
 
A사가 이런 시도를 한 이유는 명쾌했다. 2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휴대전화 시장에서 1%의 고객만 끌어와도 상당한 수익원이 될 것이라는 계산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2000만 명 중 단 1%도 A사의 적합 고객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이후 A사는 다시 적합 고객으로 초점을 맞췄다. 기업 고객들이 본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업무 생산성 증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A사는 단순한 통신 서비스 제공을 넘어 적합 고객의 본질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다양한 업무 지원 서비스들을 개발했다. 불필요한 요금 할인을 통제하고 고비용 저효율의 유통 구조를 쇄신해 이익 누수도 차단했다. 이후 매출과 이익은 곧 꾸준한 성장세를 회복했다.
 
불황기에 판매가 급감하는 이유는 고객이 소비를 미루거나 대체재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고객이 반드시 필요로 하고, 지불한 돈의 가치에 부합하는 제품만 구매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기업은 자사의 적합 고객에게 시선을 돌리고 이들을 집중적으로 재발견해야 한다. 불필요한 비용 절감과 새로운 이익 창출의 기회는 오직 적합 고객에게서만 나온다.
 
둘째, 가격 최적화(Value for Pricing)다. 가격 최적화는 고객의 지불 의향을 계량적으로 측정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가격을 책정하고, 이를 고객별로 맞춤화하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제품 원가에 적정 마진을 붙여 가격을 책정한다. 하지만 원가 중심의 가격 책정법은 경쟁이 심하지 않은 시장에서는 그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떨어뜨리고,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는 그 기업의 수익성을 하락시킨다. 가격 책정 과정이 오로지 담당자나 의사결정자의 감각과 관행에 기초해 이뤄질 경우 실패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제약회사인 B사는 새로운 의약품 출시를 앞두고 해당 제품의 가격을 1000원 정도로 책정하려 했다. 기존의 관행대로 원가에 적정 마진을 붙여 산출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계량 측정을 통해 고객의 지불 의향을 파악해보니 최적 가격이 1900원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B사는 과감하게 1900원에 신제품을 출시했고, 기대 이상의 매출 및 이익을 올렸다.
 
만일 B사가 1000원에 신제품을 출시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가격이 싸다고 그냥 약을 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므로 매출과 이익이 거의 20∼30%가량 줄었을 것이다.
 
C사 역시 자사의 교통 운임을 책정할 때 학생 할인 도입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요금 할인이 손실을 야기한다는 우려가 높았지만, 공공재라는 서비스의 특성상 학생들의 요금 부담을 외면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고객들의 지불 의향을 계량적으로 분석하자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정가 대비 30%의 학생 할인을 적용할 경우, 그로 인한 학생들의 이용률 증가가 할인으로 인한 손실분을 상회할 정도로 이익을 준다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정가 대비 23%의 할인을 적용할 경우, 그로 인한 학생들의 이용률 증가가 할인으로 인한 손실분에 미치지 못함으로써 사업자는 손실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할인을 해주는 것이 사업자에게 더 이익이 된다니 이처럼 행복한 경우가 또 있을까?
 
앞서 언급했듯 가격은 이익 창출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자 날카로운 경쟁 무기다. 감이나 관행에 의지해 결정을 내리기에는 너무나도 예민한 마케팅 도구다. 특히 고객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는 불황기에는 기업들 또한 미세한 가격 조정에도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고객과 기업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창의적 가격 기법을 활용해야 한다.
 
셋째, 유통 최적화(Value for Delivery)다. 유통 최적화는 전체 유통망의 생산성(return on channel sales)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고객의 다양한 구매 행태와 편익 요구를 효율적인 방식으로 충족시켜줄 대안을 찾아내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구축해온 특정 유통망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이는 기업의 경쟁 우위를 이루는 중요한 자산이지만, 한편으로는 고객의 새로운 구매 행태를 방해하는 장애물이기도 하다.
 
통신 사업자인 D사는 총 신규 가입자의 70%가량을 위탁 대리점에 의존해 유치했다. 문제는 해가 갈수록 대리점 통제력은 약화되고 고객 획득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데 있었다. 1000여 개에 달하는 위탁 대리점의 성과를 분석해보니, 상위 20%에 속하는 175개 대리점이 전체 성과의 70% 정도를 점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상당수의 군소 대리점이 유명무실한 존재였다는 의미다.

고객 조사를 한 결과, 고객들의 새로운 요구는 D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50%가 넘는 고객들이 대표적인 저비용 고효율 채널인 인터넷이나 콜센터를 이용하고 싶다고 한 것이다. 물론 당시 D사의 홈페이지나 콜센터는 가입자를 모으기에는 턱없이 열악한 상황이었다.
 
D사가 위탁 대리점을 복합화, 대형화해 영업력을 높이고, 인터넷이나 콜센터의 가입자 모집 기능을 온라인 쇼핑몰 수준으로 개선한다면 어떨까? 유무선 결합상품이나 방송통신 결합상품이 나오는 시대적 환경에 맞춰 새로운 제휴 유통망이나 직영 매장을 활용한다면?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가입자 수는 30% 늘어나고, 비용은 5%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통망은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오랜 시간 쌓아온 끈끈한 한국식 인간관계가 유통망 구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유통망을 최적화하려면, 고객의 요구 및 유통 생산성에 대한 정확한 계량 분석과 합리적인 이행 계획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넷째, 오퍼링 최적화(Value for Offering)다. 오퍼링 최적화는 적합 고객의 본질적 욕구와 지불 의향을 계량적으로 측정해 추가 이익을 얻는 방법이다.
 
1980년대 초 일본 모터사이클 업체의 공습으로 급격히 실적이 떨어졌던 할리 데이비슨은 수 차례의 고객 조사를 통해 적합 고객의 요구가 독특한 디자인의 차체,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신뢰성 높은 엔진, 독특한 엔진 배기음이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할리 데이비슨은 이 3가지 핵심 요소에 연구 개발 역량을 집중하는 한편, 나머지 비핵심 부품은 저렴한 일본제를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적합 고객의 본질적 욕구를 확고히 충족시키면서도 변동비 부담을 한층 경감했던 결정이었다.
 
제품 포트폴리오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레이서와 소형 모델들을 과감히 퇴출했다. 반면 크루즈 타입의 제품 라인은 더욱 확장했다. 이로써 관련 생산 및 판매 비용도 대거 절감했고, 할리 데이비슨의 강력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할 수 있었다.
 
많은 기업들은 종종 ‘다다익선이 선(善)’이라는 맹신에 빠진다. 고객에게 되도록 많은 기능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며, 매출이 발생하는 한 되도록 많은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해야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때로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보다는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게 더욱 유익할 때가 있다. 불황기가 바로 그 시기다.
 
앞서 언급한 VfM은 풍랑을 맞아 결연히 돛을 올린 기업들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나침반이자 항해술이다. ‘가격 최적화’는 고객의 지불 의향을 만족시키고, 적정 가격과 가격 맞춤화 방안을 제시해준다. ‘유통 최적화’는 불필요한 현금 할인과 부대 유통 비용을 절감한다. ‘오퍼링 최적화’는 고객 가치 증진과 직접 변동비 절감을 가져온다. 투자비가 거의 없는 반면 그 효과는 빠르게 나타난다는 점에서 특히 불황기 때 유용한 혁신법이다.
 
필자는 서강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공공정책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SDS, KPMG, 앤더슨 컨설팅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마케팅 전략 컨설팅사인 마케팅인텔라이트 대표로 있다. 사업 전략, 혁신 전략, 마케팅 전략 분야의 전문가로 국내외 선도 기업들의 성과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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