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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콴(公款) 소비’로 멍들어가는 중국 사회

배영준 | 28호 (2009년 3월 Issue 1)
안녕하십니까, 밍런주자(名人酒家)의 왕경리입니다. 저희 식당에서는 이번 달부터 ‘포인트 현금 환급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결제하시는 금액만큼 쌓인 포인트를 원하실 때 바로 현금으로 환급해 드리는 제도랍니다. 사용금액 1만 위안당 5%를 포인트로 적립해 드립니다. 영수증 처리 문제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대형 호텔이나 음식점에서 매일같이 열리는 무슨 논단이니, 살롱이니 하는 것 상당수가 쿵콴(公款) 빼먹기 행사라고 보면 됩니다. 주최 측에서는 수천 위안 하는 참가비를 받아 놓고서는 참석자들한테 가지가지 선물을 안깁니다. 일부는 백화점 상품권 같은 걸 주기도 한답니다. 놀랄 일도 아니에요. ‘공개된 비밀’이라고 할 정도로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요.”(중국 대형호텔 기업영업팀 담당자)
 
먹고 남으면 싸가지고 가라
쿵콴’은 우리말로 바꾸면 ‘공금(公金)’에 해당하는 말이다. 중국인들은 쿵콴에 대해 ‘내 돈은 아니지만 명분만 있으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시쳇말로 ‘눈먼 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이 눈먼 돈은 먼저 낚아채는 사람이 임자이며, ‘부정축재(不正蓄財)’의 주요 수단이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 관료들의 쿵콴 남용이 위험 수준을 넘어선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곤 한다. 서민들 입장에서는 울화통이 치밀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중국 관료들의 ‘쿵콴 소비’ 실태를 풍자한 말들이다.
 
먹고 남으면 싸가지고 가라(吃不了兜着走).”
월급은 거의 쓸 필요가 없고, 마누라는 거의 건드릴 일 없으며, 세 발짝 네 발짝 스텝을 밟으며, 서너 근 술로는 취하지도 않는다(工資基本不用,老婆基本不動,三步四步全會,三斤四斤不醉).”
안 먹으면 손해, 먹어도 헛일, 공짜인데 누군들 마다해, 마다하면 바보(不吃白不吃, 吃了也白吃, 白吃誰不吃, 不吃是白痴).”
 
첫해 월급이 고작 2000위안(약 42만 원) 수준인 데도 최근 중국의 명문대 졸업생들이 그토록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월급통장에 찍히지 않는 소득이 급여의 몇 배나 되기 때문이다. 속칭 3공(公), 즉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은 내 돈 들여서 할 필요가 없다는 고위 관료들의 행태가 사회생활을 시작하지도 않은 대학생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쿵콴 소비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다 보니 관련 산업들의 ‘쿵콴 모시기’ 서비스도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고급 음식점이나 호텔의 주차장에 한국의 러브호텔 주차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자동차 번호판 가려주기’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마음 놓고 쿵콴을 쓸 수 있게 해 주는 업소 측의 배려가 가상하기까지 하다. 대표적인 쿵콴 산업으로는 호화 식당, KTV(룸살롱), 사우나, 레저타운 등이 있다. 이들 업소의 1인당 소비금액은 1000위안을 쉽게 넘는다.
 
이런 쿵콴 빼먹기는 관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필자가 아는 중국 내 글로벌 기업 재무 담당자는 월말 결산 때마다 ‘바오샤오(영수증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며 투덜거린다. 있지도 않은 고객 이름을 대 개인적 식사비로 처리한다든지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 소재 모 한국기업에서 10년 동안 근무한 한 중국 직원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 줬다.
 
어느 나라에든 공금 횡령이 있기는 하죠. 그런데 중국의 공금 횡령이 다른 나라보다 더 심각한 이유는 상당수 사람들이 공금 횡령을 ‘누구나 다 하는 일, 크게 해먹는 놈이 똑똑한 놈’이라고 인식한다는 데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둔 OB들과 몇 년 만에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 하는 말이 가관이더군요. 저희 회사가 참 너그럽고 고마운 곳이라면서 모든 직원이 다 공금을 빼먹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거라고 하더군요.”
 
한편 필자가 얼마 전에 중국인 친구들과 식사를 마친 뒤 계산하면서 ‘영수증은 필요 없다’고 말하자, 테이블 분위기가 술렁거린 적이 있다. 친구들은 ‘왜 영수증을 요구하지 않느냐, 회사에 가서 어떻게 처리하려고 하느냐’며 재촉하듯이 물었다.

이봐 친구들. 오늘 자리는 내가 개인적인 일로 밥을 먹는 자리이지 않은가. 어떻게 공금을 사적인 일에 쓰겠는가”라고 말했더니 그들은 ‘별 희한한 소리를 다 한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기업의 대응 방안은?
그렇다면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한국 기업들은 기업 내 쿵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중국을 잘 아는 한국 기업 관리자들은 ‘쿵콴 누수현상을 근본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제도나 시스템이 있다면 7080% 막을 수는 있겠지만 완벽하게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지 직원들이 개인별로 매달 청구하는 비용에 대해 상식적인 선에서 관리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묘책이 없다는 사람도 많다. 일부 기업에서는 개인별로 월별 쿵콴 한도를 정해 주는 방법을 도입하고 있지만 이렇게 되면 오히려 쿵콴을 월급이라고 생각하고 한도 안에서는 개인 돈처럼 써댄다는 부작용도 있다고 한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일본이나 한국보다 저신뢰사회(低信賴社會)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중국의 근현대사적 배경을 보면 이해가 간다. 중국인들은 청나라 말기부터 시작해 1970년대 후반까지 수 차례의 전쟁과 혁명을 겪었다. 제국주의에 굴복한 문호 개방, 중일전쟁, 공산당 혁명,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등 반세기의 짧은 세월 동안 그들이 흘린 엄청난 피는 고스란히 상처로 남았다. 나와 내 가족이 살아남는 것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 사회에서는 ‘나와 내 주변인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으며, 내 이익을 우선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이런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채 중국인 임직원에게 한국적인 직업관이나 도덕적 가치관을 기대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 사실 많은 한국 기업 관리자들이 한국식 잣대로 중국인들의 습관을 관리하려다가 더 큰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 주재 한국 기업인들의 경험을 통해 검증된 가장 효율적인 관리방법은 ‘중국인에 의한, 중국인을 위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을 관리하는 데에는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감사 부서에 중국인을 고용하되 고인 물이 썩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2년마다 사람을 교체하는 방법, 관리팀장으로 한국인과 코드가 잘 맞는 충성도 높은 중국인 직원을 육성하는 방법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DBR TIP] 세수(稅收) 절반, 공무원 쿵콴 소비로…
 
중국 정부의 싱크탱크인 국가신식중심(國家信息中心) 보고서(2006년)에 따르면 중국 공무원들의 쿵콴 소비 규모는 1조2000억 위안(약 250조 원)을 넘어섰다. 1조2000억 위안이라면 산술적으로는 당해 연도 중국 정부 세수(稅收)의 47%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이며, 한국 정부의 연간 예산과 맞먹는다. 항목별로는 접대유흥비가
3700억 위안, 공공차량유지비가 3986억 위안, 해외견학 비용이 2400억 위안 등이다.
 
특히 먹고 마시는 접대비 외에 공무용 차량과 관련한 과소비 문제는 무척 심각하다. 베이징 거리를 다니다 보면 일반 차량과 다른 색깔의 번호판을 단 차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는 모두 공무용 차량이다. 정부기관 주차장에는 검은색 세단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공무용 차량 대수가 얼마인지 공식적인 숫자가 발표되지는 않지만 일반의 예상을 크게 넘어서는 수준일 것이다. 베이징에 국제적 규모의 행사가 있어 공공 부문 차량 운행이 금지되기라도 하면 답답하게 막혔던 간선도로가 거짓말같이 뻥 뚫리곤 한다. 공용차가 어림 잡아 베이징 전체 자가용 차량의 20%는 되지않나 생각된다.
 
이것은 대도시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어떤 향진(鄕鎭·농촌 도시)은 대당 연간 6만 위안의 유지비가 드는 공무용 차량을 3대나 보유하고 있으면서 연간 향진의 위생복리 비용은 달랑 3만 위안만 지출한 것이 밝혀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쯤 되다 보니 서민들은 “세금 운영의 원칙이 ‘백성에게서 거둬 백성에게 쓴다(取之于民 用之于民)’에서 ‘백성에게서 거둬 관리에게 쓴다(取之于民 用之于官)’로 바뀌었다”며 푸념을 늘어놓고 있다.
 
쿵콴 규모는 발표하는 자료마다 기준이 달라 그 차이가 10배나 되며, 사실상 공식적인 통계치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중국인 누구나가 이제는 쿵콴 소비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 배영준 | - (현) 로이스컨설팅 연구위원
    - LG경제연구원 중국 시장 전략 연구 및 컨설팅 수행
    - 오픈타이드차이나 컨설턴트
    - 포스코경영연구소 베이징 주재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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