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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차별대우 원칙

한국에서 위스키는 왜 비쌀까?

안덕근 | 27호 (2009년 2월 Issue 2)
한국의 산업화 시기를 생생하게 체험한 세대는 1980년대에 길거리에서 경찰이 외제담배를 단속하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외제담배 단속의 취지는 현재의 음주단속처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국산품 애용 운동에 역행하는 반역 행위를 처벌하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은 먼 발치에서 담배 연기만 보고도 외제담배를 식별해 내는 단속원들의 능력에 감탄하곤 했다.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룬 1970∼1980년대 우리 경제는 한국의 산업 구조가 만들어낸 만성적인 국제수지 적자에 시달렸다. 이는 고스란히 외제품 소비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나 정부 정책까지도 외제품 소비를 매국 행위라 비난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대표적인 정책이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수입처 다변화 제도다. 1980년대 워크맨을 앞세운 일본 가전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할 때 한국은 일본 제품에 대한 문호를 굳게 걸어 잠갔다. 때문에 한국 주부들은 어떻게든 일본 조지루시의 ‘코끼리 밥통’을 구하려고 동분서주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국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통상 규범이 바로 비차별대우 원칙이다. 비차별대우 원칙에는 2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 대외적으로 여타 국제무역기구(WTO) 회원국에 최선의 혜택을 비차별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최혜국 대우 의무다. 둘째, 국내 시장으로 들어온 수입품에 대해서는 국산품과 차별할 수 없다는 내국민 대우 의무다.
 
한국은 1990년까지 국제수지 문제가 많은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로 수입시장을 제한할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그러나 이 제도적 특혜는 사라졌다. 국내시장에서건 해외시장에서건 그야말로 기업의 순수한 기술력과 경쟁력만이 관건인 WTO체제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최혜국대우 원칙과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0년대 중반에 의욕적으로 출범시킨 최초의 국민차 사업에서 기아자동차의 세피아를 모델로 한 ‘티모르’라는 국민차 생산을 개시했다. 기아차는 수하르토 대통령의 3남 후토모가 이끄는 TPN과 함께 자본금 1억 달러의 ‘기아티모르’를 설립하고 현지 생산을 시작했다. 1997년에는 치캄펙 지역에서 공장 건설도 착수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현지 국산화율에 따라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차등 적용해 왔다. 그러나 기아차가 생산하는 국민차에 대해서는 1999년까지 60%의 현지 국산화율 달성을 조건으로 무관세 특혜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기아차가 생산한 자동차는 일본·미국 및 유럽의 경쟁업체에 비해 월등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국민차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기도 전인 1996년 10월 초 일본·미국·유럽연합(EU)은 WTO에 인도네시아의 국민차 사업이 WTO 회원국을 차별할 수 없다는 최혜국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분쟁해결기구는 WTO에서 통상 분쟁을 담당하는 일종의 세계무역법원 기능을 한다. 분쟁해결기구는 인도네시아 정부가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기아차의 국민차에 대해서만 관세 특혜를 제공하는 것은 경쟁국들이 수출하는 동종 제품에 대해 부당하고 차별적인 대우를 야기한다고 판정, 시정을 요구했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WTO 판정을 수용하고 기아차에 대한 특혜 부분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기아차는 당시 약 20% 수준이던 현지 국산화율에 따라 50%의 관세를 물 수밖에 없었다. 판매 시점에서는 35%의 사치세를 추가로 내야 했다.
 
다만 1998년 7월 WTO의 최종 판결이 내려진 당시 기아차는 이미 부도 사태를 겪고 있었다. 게다가 한국과 인도네시아 양국 모두 외환위기로 고전하던 상황이어서 마침내 국민차 사업권 자체가 취소됐다.
 
내국민대우 원칙과 위스키 酒稅
위스키는 애주가들에게 인기가 높은 반면에 원산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가격이 비싸기로 유명하다. 워낙 품질이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자국의 고유 전통주를 보호하고 국민 보건을 증진한다는 차원에서 고율의 수입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정부는 1991년 이전까지 위스키에 대해 주세 200%, 국방세 30%, 교육세 10% 등 총 280%의 세금을 부과했다. 여기에 추가되는 부가세와 수입할 때 부과되는 관세까지 감안하면 위스키에 붙는 세금은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전 세계 어느 면세점의 위스키 코너 앞에서 서성대는 한국 사람이 많았던 이유다. 이후 정부는 주세제도 개편을 통해 1996년부터 위스키 주세를 200%에서 100%로 인하했다. 기타 추가 세금도 교육세 30%로 일원화했다.
 
반면에 정부는 우리의 대표적인 술인 소주에 대해 주세 35%, 교육세 10%를 부과했다. 이 주세제도에 대해 위스키의 주요 수출국인 유럽과 미국이 내국민대우 위반을 이유로 1997년 우리 정부를 WTO에 제소했다.
 
당시 핵심 분쟁 사안은 국내 시장에서 소주와 위스키가 직접적으로 경쟁 또는 대체관계에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한국 시장에서 두 상품 간에 직접적인 경쟁 또는 대체 관계가 성립한다는 판정을 받을 경우 한국 정부가 시행해 온 차별적 주세 체계는 내국민대우 원칙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1995년에 이미 한 차례 WTO 분쟁이 벌어졌었다. 당시 일본 시장에서도 소주에 비해 보드카와 위스키 세금이 높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 주종별로 세금을 달리한 것은 한국과 같았지만 일본은 종가세가 아니라 용량 기준으로 정액의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를 기초로 삼았다는 점만 달랐다.
 
일본 주세 분쟁에서 WTO 분쟁해결기구는 보드카와 일본 소주는 ‘동종상품(like product)’이므로 주세 차이를 둘 수 없으며 위스키와 소주의 경우 직접적으로 경쟁 또는 대체관계에 있으므로 유사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제품 성격이 거의 동일하고 소비문화나 시장 상황 또한 유사한 일본 시장에서 소주와 위스키에 대한 세제상 차별이 내국민대우 위반이라고 판정 난 마당에 한국 시장에서 두 상품에 대한 차별적 세제를 정당화할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는 국내 시장에서의 소주 소비문화와 위스키 소비문화의 차이를 부각함으로써 두 상품의 시장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우선 희석 방식이 주를 이루는 소주 제조법과 증류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위스키 제조법을 근거로 상품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또 대중 음식점에서 반주로 애용되는 소주와 룸살롱 등 고급 술집에서 고가에 소비되는 위스키의 소비 패턴을 부각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WTO 상소기구에 근무한 필자는 한국 정부가 얘기하는 룸살롱이 어떤 곳이냐는 재판관들의 질문에 식은땀을 깨나 흘렸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일부 소주의 경우 증류 방식에 의해 생산되는 점, 위스키와 소주가 동일한 배급망과 유통 구조를 통해 공급되는 점, 소주와 위스키가 일반적으로 유사한 목적으로 소비되는 점 등에 입각해 WTO는 한국 시장에서 소주와 위스키 세율이 각각 35%, 100%로 다른 것은 내국민대우 원칙 위반이라고 판정했다.
 
WTO 판정에 따라 우리 정부는 2000년에 주세 체계를 개편했다. 위스키 주세를 소주 주세 수준으로 낮춘 것은 아니다. 국민 보건과 과도한 주류 소비를 억제한다는 취지 아래 주세 72%, 교육세 30%로 통일했다.
 
칠레의 위스키 주세 문제
위스키 주세 문제는 칠레에서도 발생했다. 일본과 한국의 주세 관련 WTO 분쟁을 본 칠레 정부는 주종별로 차별 세금을 부과하는 기존 세제를 개편했다. 앞 장의 <표>처럼 주종과 상관없이 알코올 도수에 따라 주세를 차등화하는 세제를 도입했다. 

이 주세 제도는 주종별 차별대우가 없어 언뜻 보면 내국민대우 원칙을 위반하지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EU는 칠레를 WTO에 제소했다. 칠레의 전통주인 피스코가 대부분 35도 이하의 알코올 도수를 지니는 반면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위스키는 일반적으로 40도 이상의 알코올 도수를 지닌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국내 상품인 피스코의 주세는 27%지만 위스키의 주세는 47%라는 점을 항의한 것이다. WTO 분쟁해결기구는 칠레의 주세 체계가 사실상 수입상품을 차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판정했다. 주세 체계상 4도의 알코올 도수 차이가 20%의 세제 차이를 야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피스코에 대한 세제상 특혜를 유지하기 위한 편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쇠고기 구분 판매제도와 비차별대우
이처럼 비차별대우 원칙은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제도의 차별적 구조뿐 아니라 실제 시행 단계에서 발생하는 차별적 효과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단순히 세제 체계뿐 아니라 유통·판매 등 기업 활동 전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시행하던 쇠고기 구분 판매제도다. 우리 정부는 1999년 10월부터 수입 쇠고기 전문 판매점에서만 수입 쇠고기를 판매할 수 있는 쇠고기 구분 판매제도를 시행했다. 수입 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파는 사기성 행위가 만연하기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수입 쇠고기 전문점에서만 수입산을 팔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WTO 분쟁해결기구는 이 쇠고기 구분 판매제도가 내국민대우 원칙을 위반한다고 판정했다. 기존 유통망에서 수입 쇠고기를 배제해 시장 진입에서부터 차별적 효과가 나타난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한때 등장했던 수입 쇠고기 전문점들이 사라지고 지금처럼 동일판매점에서 수입 쇠고기와 한우가 동시에 팔리는 것이다.
 
비차별대우 원칙이 우리 기업에 주는 시사점은 간단하다. 국내 기업의 아성인 한국 시장에서도 더 이상 차별적인 제도나 관행을 통한 시장 보호가 불가능하다. 한때 우리 주부들이 그리도 갈망하던 ‘코끼리 밥통’이 국내 시장에서 사라진 것은 수입처 다변화 제도가 철폐된 이후다.
 
당시 많은 국내 밥솥업체는 국내 시장을 보호하던 장막이 걷혔다며 ‘줄도산’을 우려했다.그러나 제품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고 괄목할만한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우리 기업들은 곧바로 시장을 장악했다. 이제 국내 시장에서 아무도 일본제 밥솥을 찾지 않을 만큼 우리 제품의 경쟁력도 향상됐다. 차별을 제거한 경쟁 환경에서 우리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보다 더 잘 알려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 안덕근 | - (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세계무역기구(WTO) 근무
    - 스위스 세계무역연구소(WTI) 근무
    -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임
    dah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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