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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시대, 건축도 움직인다

장윤규 | 27호 (2009년 2월 Issue 2)
건축물이 유기체처럼 발이 달려 걸어 다닐 수 있다는, 1960년대 아키그램(Archigram)이 제안한 ‘걸어 다니는 도시(Walking City)’는 더 이상 상상속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상적 과학과 히피적 자유스러움이 결합된 ‘아방가르드적 상상력’이 실제로 재현되는 추세다.
 
건축가 데이비드 피셔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선보인 ‘움직이는 타워(Rota -ting Tower)’는 움직이는 기계로서의 건축적 상상력을 실현하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68개 층을 이루며 각기 다른 형태로 쌓인 각 층은 음성작동 기술에 의해 자동적으로 회전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각 층의 회전 속도가 조절돼 360도 어느 방향에서라도 일조와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적 자유가 확보된다. 각 층의 선택적 움직임에 따라 타워의 전체적인 외형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야말로 역동적인 건축을 보여 준다.(그림1)

 
독일 건축가그룹 ‘자이페르트+슈톡만(Seifert+Stockmann)’이 제안한 서랍장과 같은 공간으로 이뤄진 ‘레몬하우스’도 흥미로운 프로젝트다. 내부적 공간을 서랍과 같은 장치를 통해 외부 공간으로 끄집어내 자연친화적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구조다.(그림2)
 
이처럼 오늘날의 건축은 건축의 근본적인 정의에 대해 새롭게 질문한다. 공간 개념부터 공간을 규정하는 개념적 부분, 물리적 요소까지 의문을 던지고 새롭게 정의 내린다. 무한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사회적 구조의 속도, 인간의 유목적 라이프스타일의 변화, 테크놀로지의 무한한 발전 등은 건축의 공간적인 기본 속성마저 변화시킨다. 우리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은 가치마저도 많은 변위와 변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상력의 끝에 고정돼 있던 건축은 움직이는 하나의 기계 장치로 바뀌고 있다.
 
오는 3월 말부터 7월까지 서울 경희궁에 설치되는 렘 쿨하스의 ‘프라다 트랜스포머’도 움직이는 건축으로 흥미로움을 선사한다. 이 움직이는 오브제 건축은 미술·영화·패션 등을 담는 이벤트 공간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행사와 프로그램에 따라 크레인을 이용해 회전이 가능한 4면체 건축물로 설계되는 것이 특징이다. 쿨하스는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건축물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깨고 자의적으로 변하는 역동적인 유기체적 특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고 흥미로운 구조물이다”라고 설명했다.(그림3) 
 
 
쿨하스의 이러한 작업은 20세기 초 미래주의(퓨처리즘)와 러시아 구성주의(아방가르드)와 연결된다. 미래파는 무엇보다 현대적인 삶의 속도와 기계의 합일을 목표로 했다. 변화를 요구하며 전통적인 예술로부터의 단절을 표명하고 기계를 통한 경험, 속도, 현대 도시의 찬양, 새로운 재료의 혁신을 꿈꿨다.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기계를 예술의 오브제로 생각했을 뿐 아니라 건축의 본질로도 생각했다. 이에 따라 기계 부속품과 같은 금속질의 기하학적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과학 및 기술과 관련된 모든 테크놀로지의 이점과 현대적인 삶의 투영을 총합해 미학적 장치를 만들려고 했다. 미래주의나 러시아 구성주의는 회화·조각 등의 작업을 통해 기계적 역동성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건축적 공간화의 실현은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건축가가 수많은 가능성을 발견했으며, 새로운 적용을 탐닉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는 러시아 구성주의 체르니코프의 건축과 기계의 결합으로 이뤄진 ‘건축적 판타지’를 현대적으로 재현했다. 이 건축물은 각 면이 각각 다른 장치로 꾸며진 4면체 구조로 설계됐다. 4면체의 각 면은 육면체·십자형·직사각형·원형의 철제 구조물로 꾸며졌다. 이 4면체는 문화 이벤트나 프로그램에 따라 회전하면서 실시간으로 형태를 바꾼다. 각각의 프로그램에 맞춰 이전의 바닥은 벽면이 되고 벽면은 다시 천장이 되는 등 공간 구조 자체가 바뀐다. 각 프로그램의 필요에 따라 매번 새롭고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건축 자체가 프로그램을 변화시키는 ‘트랜스포머’가 되어 스스로 변신한다는 점이다. 건축의 형태나 구조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공간적 혁신을 꾀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건축은 이제 하나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시스템이나 장치가 아니라 요구와 변화를 수용하며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실험적인 틀이 되었다.
 
필자는 서울대 건축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운생동건축가그룹’ 대표,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 ‘갤러리정미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건축 작품으로 금호복합문화공간 크링, 예화랑, 서울대 건축대학, 홍익대 대학로캠퍼스, 파주출판단지의 생능출판사, 광주 디자인센터, 이집트 대사관 등이 있다. 세계적인 건축상인 AR Award와 뱅가드상을 비롯해 2008년 한국공간디자인대상 대상, 대한민국 우수디자인(GD)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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