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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도 ‘자선’도 아닌 선물의 미학

정재승 | 25호 (2009년 1월 Issue 2)
연말연시가 되면 사람들은 연하장을 보내고 그동안 신세 진 사람들에게 감사의 선물을 전하느라 분주하다. 덕분에 침체된 경제도 잠시나마 활기를 되찾는 듯 보인다.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지 않는다면 시장에는 어떤 일이 생길까.
 
역사적인 기록에 따르면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은 서기 700년께라고 한다. 그러나 원시 조상들도 사랑하는 연인에게 코끼리뼈를 조각하고 들꽃을 선물하지 않았을까? 부모님이나 사랑하는 연인, 고마운 분들께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뚱맞은 질문 하나만 던져 보자. 선물은 진정 말 그대로 선물일까, 일종의 교환일까. ‘진정한 베풂’은 무엇이든 돌려받겠다는 계산이 깔리지 않는 행위다. 그렇다면 선물은 진정한 베풂일까, 교환행위일까. 얼핏 실없는 질문 같아 보이지만 이 질문은 철학적 논제이기도 했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선물’은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물이 보답해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선물이 아니고 교환의 시작이며, 거리의 노숙자에게 돈을 줄 때 선물을 준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거저 주는 것이라면 그 또한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질적으로 선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주고받아온 것일까.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의 저자이자 덴마크의 과학저술가 토르 뇌레트란데레스는 ‘구두’라는 똑같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선물일 때와 상품일 때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물건을 사고파는 상품 판매는 판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거래를 하는 순간에 볼일을 다 본 셈이므로 그것으로 끝이다.
 
그러나 선물이 오가면 그들 사이에 남는 것이 있다. 선물은 ‘관계를 맺고 싶다’라는 값비싼 신호이기 때문이다. 연인들이 사랑에 빠진 ‘초기’에 그토록 선물에 신경을 쓰는 이유도, 결혼 30년 차 부부들이 선물에 그토록 무심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물은 관계를 형성한다.
 
데리다의 말처럼 애초에 선물이란 말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지만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시간’이란 요소를 도입해 이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 선물 교환은 교환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시간 차이를 두고 교환하는 행위다. 그래서 베풂의 성격을 담는다. 그에 따르면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비연속적 베풂의 행위’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받은 선물에 대해 곧바로 답례하는 것은 ‘받은 선물을 거절하는 것과 다름없는 결례’라고 여기는 문화가 있다. 답례를 하지만 그 자리에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교환을 하는데, 그 시간 차이가 관계를 형성한다는 얘기다. 선물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답례하면 “당신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라는 뜻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생일에 선물했다면 나는 그 답례를 내 생일 때 받게 된다. 물론 이 동안에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선물은 시간차를 이용한 기술
사랑을 고백하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가 한 달이라는 시간 차이를 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선물을 받으면 관계가 형성되고 그다지 머지않은 시점에 답례를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생겨난다. 뇌레트란데레스의 표현대로 선물은 서로에 대한 지배력을 갖게 한다.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진 빚은 미래를 공유하고 우리를 한데 묶는다. 전 세계적으로 선물을 주고받는 날인 크리스마스를 제외하면 연인들은 그 자리에서 선물을 주고받지 않고 시간 차이를 둔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의 관계는 점점 깊어진다.
 
사회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선물을 받을 때 기대를 하는데 그 기대가 선물의 기쁨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선물의 실체가 불명확할 때 기쁨은 더 크다. 남자가 여자 친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10만 원을 통장에 넣어주는 것보다 선물 포장에 담긴 근사한 5만 원짜리 가방을 줄 때 더 기쁘다.(아내의 경우에는 다르다. 세상의 모든 부모와 배우자는 관계 맺기가 더 이상 의미 없으므로 선물보다 현금을 더 선호한다)
 
선물에 대한 심리학은 회사가 보너스를 지급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회사가 설 연휴 때 지급하는 보너스 100만 원보다 30만 원짜리 로또 당첨이 더 기쁘다. 따라서 회사가 보너스를 지급할 때 사원들의 기쁨을 증대시키는 노하우 가운데 하나는 ‘당연히 줘야할 때 주는 보너스 금액을 조금 떼어내서 어느 날 느닷없이 지급하는 것’이다.(추가로 지급하면 더 좋겠지만 돈이 없으면 기존 보너스 금액을 조금 떼어내도 좋다) 그러면 사원들은 정규 보너스를 받을 때보다 더 기뻐할 것이다. ‘예상 밖의 보너스가 금액이 적더라도 기쁨이 더 크다’는 사실, 잊지 마시길.
 
옵션 형태의 보너스가 만족도 높아
보너스를 지급할 때 사원들의 기쁨을 증가시키는 노하우 가운데 하나는 두 가지 옵션을 제시하고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금으로 100만 원을 받을 것인가, 당첨 확률이 50%인 200만 원짜리 로또를 받을 것인가’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안정지향적인 사람들은(이런 사람이 약 80%에 이른다) 현금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20% 정도의 모험 지향적 사람들은(이런 사람들의 80%는 남성이다) 로또를 선택할 것이다. 이런 행사는 회사 입장에서 전혀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사원들에게 큰 기쁨과 추억을 줄 수 있다. ‘꽝’을 뽑은 사람들은 우울한 설을 보내게 될 거라고? 아니다. 이 행사의 백미는 ‘꽝’을 뽑은 절망에 빠진 사원에게 회사가 몰래 위로금 50만 원 정도를 건네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애사심은 하늘을 찌를 것이다. 보너스 가지고 너무 장난하지 말라고? 인생의 중요한 목표는 재미와 만족감이다.
 
보너스를 지급할 때 ‘하지 말아야 할’ 철칙이 하나 있다. 결코 보너스 금액을 미리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적게 책정했다가 많이 주는 것은 상관없지만 많이 주겠다고 했다가 적게 주면 그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돈을 주면서 욕먹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보너스 금액이 확정되기 전까지 미리 금액을 알려 먼저 상상하도록 만들지 마라.
 
끝으로 사람들은 보너스를 월급과 서로 다른 ‘마음 속 계좌’에 입금한다. 그래서 쓰는 용도도, 돈을 대하는 태도도 보너스는 월급과 다르다. 월급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어서 아껴 써야 한다는 마음이 강하지만, 보너스는 추가로 얻은 여윳돈이라는 생각이 강해 소비로 이어지는 비율도 더 커진다. 충동구매도 더 잘하게 된다.
 
따라서 보너스 지급과 함께 회사가 그 가운데 일부를 좋은 일에 기부할 수 있는 정보를 함께 알려주면 사원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기부에 동참할 확률이 더 커진다. 신경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열심히 일한 대가를 받을 때 뇌의 ‘쾌락의 중추’가 활성화된다. 그 가운데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대가 없이 기부할 때도 ‘쾌락의 중추’가 크게 요동을 친다. ‘받을 때보다 줄 때가 더 기쁘다’는 서양 속담이 과학적으로도 사실이라는 얘기다.
 
연말연시 어려운 이웃을 위해 회사가 큰 돈을 기부할 때 사원들도 함께 동참하게 할 수 있다면 더 뜻 깊은 기부가 될 것이다. 그런 얘기를 꺼내기가 조심스럽다고? 월급에서 일괄적으로 공제하겠다고? 그러지 말고 보너스 지급하는 날 넌지시 물어보라.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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