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달콤한 인생’‘놈놈놈’ 연출한 김지운 감독

“비전 제시하니 최고 연기 나와”

DBR | 24호 (2009년 1월 Issue 1)
조한상 KT 미래사회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배우 이병헌의 뒷모습이 인상적인 영화 ‘달콤한 인생’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은 불교 경구로 시작한다.
 
어느 맑은 봄 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이다.”
 
이 말의 의미는 진리란 그대로 있는데 나뭇가지보다 더 가벼운 사람의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려 진리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최근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해 경영 환경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기업들은 불안한 마음에 많은 돈을 들여 이런저런 조사를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바람이 답인지 나뭇가지가 답인지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해 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경우 정답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조직 안이나 구성원들의 마음속, 나아가 고수들의 깊은 통찰력에 기대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우리 시대 각 분야의 뛰어난 고수들을 만나 그들의 인사이트를 들어보는 ‘New Wave Spotter’는 4번째 인터뷰의 주인공으로 영화 ‘달콤한 인생’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의 연출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영화감독 김지운을 선택했다.
 
김지운. 그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2001년 이후 최악의 상황을 맞은 2008년에 유일하게 관객 688만 명을 동원한 ‘놈놈놈’을 연출한 감독이다. 뿐만 아니라 청룡영화상 감독상, 영화감독들이 뽑은 ‘디렉터스 컷 어워드’ 감독상, 시체스 국제영화제 최우수 감독상, 하와이국제영화제 매버릭상 등을 수상하며 남들과 다르게(?) 행복한 한 해를 보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자퇴한 후,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10년 가까이 백수 생활을 보낸 그는 라면집 아주머니가 쟁반 대신 깔아준 ‘시네21 시나리오 공모전’ 기사를 보고 1주일 만에 시나리오 한 편을 써내 당선됐다. 그 시나리오가 바로 코믹과 공포를 결합한 ‘조용한 가족’이었다.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영화판에 입성한 김 감독은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장화, 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 ‘놈놈놈’(2008) 등 블랙코미디부터 공포, 누아르, 웨스턴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의 장편영화를 모두 성공시켰다. 그는 또 평균을 뛰어넘는 흥행 성적으로 충무로 제작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감독은 전문가 도움 받아 판타지 전달
그는 2006년에 펴낸 에세이 ‘숏컷’에서 영화감독이 되기 전에는 캠코더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2008년 12월17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사무실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자 “저는 사실 카메라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도 잘 모르는 ‘기계치’에 가깝습니다”라고 말했다. ‘기능적인 것을 몰라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냐’ 는 질문에 꽤 철학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영화는 미학이 기술보다 우선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판타지’고, 기술은 판타지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이지요. 저는 감독은 전문가 도움을 받아 영화의 핵심인 판타지를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감독은 미학적인 면을 맡고 기술적인 부분은 전문가들이 실행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영화는 교과서적인 지식이 아니라 삶의 고민과 문화적 체험을 바탕으로 만드는 것이란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영화는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고 정서적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매체니까요.”
 
전문가에게 권한을 이양 하신다는 것은 비즈니스 분야에도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기업의 리더나 최고경영자(CEO)도 재무, 마케팅, 인사, 홍보 분야를 완벽하게 아우르는 지식을 가지기가 어렵거든요. 이런 점에서 리더의 역량과 바람직한 리더십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영화감독은 지금까지도 가장 독단적이고 독재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직업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저는 리더가 전문가들의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하고, 그들을 솔직하게 대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들의 영역을 넘거나, 간섭하거나, 아는 체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캠코더도 다룰 줄 몰랐다고 말씀드렸지요? (웃음)
 
정말 중요한 것은 제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를 그들에게 전달해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저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이렇게 하고 싶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유연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합니다. 그들의 창작 의욕도 증폭 및 고취시킬 수 있지요.
 
기업의 CEO나 리더라면 ‘우리가 이런 기업이 되었으면 한다’거나 ‘이런 상품을 만들고 싶다’고 얘기하고 구체적인 방법은 전문가에게 결정하도록 할 수 있겠지요. 저는 리더가 아는 것이 많아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어도 좋지만 각 담당자가 자발적으로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들이 신나게 일하지 못하면 결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실제 영화 관련 사례를 들어 주신다면…
 
“ ‘반칙왕’이라는 레슬링 영화를 만들려고 우리나라 최고의 영화무술 전문가인 정두홍 감독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정 감독은 레슬링 전문가가 아니라면서 ‘김 감독은 레슬링에 관해 잘 아느냐’고 되묻더군요.
 
그때 저는 ‘나도 잘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당신을 찾아왔다. 내 안에는 어떻게 영화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그림만 있을 뿐이다. 함께 고민해 만들어 보자’고 말했습니다. 결국 저는 정두홍이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무술 감독과 함께 작업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정 감독은 저의 솔직한 자세에 ‘이런 사람과 작업하면 좋은 결과가 있겠구나’란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적합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처럼 리더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저러한 부분에 관해 도움을 받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화 감독은 개성이 매우 강한 배우와 스태프들을 하나로 잘 묶어내야 하는 어려운 직업입니다. 이 어려운 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비결을 말씀해 주십시오
 
공동의 목표와 비전을 제시하고 사심 없는 입장과 태도를 보여 주려고 노력한 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배우가 육체적으로 고통스러운 연기를 할 때 감독은 그 사람이 ‘내가 왜 이렇게 이유 없이 고통을 치러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이것을 이겨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좋은 영화를 만들자는 목표와 비전을 명료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말이지요. 배우가 해당 장면의 목표점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비전을 갖추면 순간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참아낼 수 있습니다.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 씨가 비오는 날 와이셔츠 하나만 입고 흙더미 속에 들어가는 장면을 찍은 것이 11월쯤이었습니다. 1년 중 체감온도가 가장 낮은 때이지요. 한겨울에는 추위에 몸이 적응돼 오히려 덜 춥게 느껴지니까요. 주변에 난방 시설이 하나도 없는 경기 청평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현장 사정이 아주 열악했습니다.
 
이 장면은 주인공이 복수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심리를 묘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병헌씨에게 ‘육체의 고통스러움이 극한으로 치닫는 것과 비례해 복수심도 높아지는 것을 표현하자’고 말했습니다. 장면의 목적과 비전을 알려 주려는 것이었습니다. 병헌 씨는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연기를 해 냈습니다.
 
기업도 자사의 비전을 구성원들과 실질적으로 공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비전 공유는 단순한 목표 설정이 아닙니다. 구성원들이 느끼는 많은 고통과 수고가 대가 없는 막연한 희생이 아니며, 이를 이겨내고 나면 공동의 성취가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이는 조직원들이 여러 고통과 수고를 인내하며 목표점에 이르게 하는 필수 조건입니다.”
 
영화를 촬영하다 보면 배우나 스태프가 감독의 지시에 반론을 제기하거나 자신의 의견이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이런 때에는 리더가 유연한 사고를 해야 합니다. 목표에 관한 공감은 이뤄졌지만 리더와 구성원 간의 실행 방법이 다를 때, 즉 ‘어떻게’에 관한 실행 방안의 차이가 확연하게 다를 때는 우선 끊임없이 토론하고 설득하는 작업이 선행해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면 구성원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그래도 그 간극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저는 제가 생각하는 버전과 배우들이 생각하는 버전 두 가지 모두를 촬영해 둡니다. 나중에 그 두 가지 모두를 다 함께 평가하고 최종적으로 더 좋은 것을 함께 고릅니다. 영화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옳을 때도 있고 배우 생각이 더 옳을 때도 있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 분명 더 좋은 것이 보이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무작정 리더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업도 이런 식의 유연한 시스템을 가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인재 경영의 유연성은 다른 말로 풀어 보면 ‘지성적 경영’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지성은 결국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 보는 것, 남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자기 것만 고집하는 것은 반(反)지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리더 역할은 ‘운을 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과 기업의 리더는 나아가야 할 방향에 ‘첫 운’을 떼 주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다른 구성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리더는 이 가운데 최종적으로 필요한 것을 취사선택하고 ‘요리’하는 사람이지요.”
 
영화 작업 때 애드리브 등 순간적인 대응이 무척 중요하다고 들었습니다. 시나리오 또한 필요하면 촬영이 끝나는 순간까지 수정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업들은 대체로 애초에 만든 시나리오(비즈니스 플래닝)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한마디로 즉흥성이나 순발력이 떨어집니다. 이 점에 대해 조언을 부탁합니다
 
우리나라 기업에게 현장 상황에 맞는 즉흥성이 취약한 것은 프로세스의 복잡함에 기인한다고 봅니다. 의사결정 절차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로 인해 모든 결정과 피드백이 굉장히 더디더군요.
 
사실 제가 투자나 협조, 협찬 요청 관계로 기업인과 만나면 어쩔 수 없이 ‘배경’을 쓸 수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위에서 낙하산 식으로 지시가 떨어져야 그나마 조금 빨라집니다. 그러나 이 경우 해당 실무자들의 불만이 생깁니다. 이것은 결론적으로 기업에 바람직한 프로세스가 아니지요.
 
반대로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어떤 것들은 너무 빨리 변합니다. 우리 나라 자동차를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지나치게 빨리 변하지 않습니까? 해외에서처럼 수십 년씩 유지되는 브랜드도 드물지 않습니까. 너무 트렌드만 좇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기업들이 눈앞에 드러나는 변화에만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외적 성과에 지나치게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금 더 장기적인 시각과 긴 호흡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국내 브랜드의 빈티지 명품들을 보며 감동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기업이 과거보다 훨씬 더 창의적인 인재를 원하고 있습니다. 창의적인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맡고 있는 업무에서 소외당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것은 바꿔 말해 자기 일을 즐기는 것입니다.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자기 스스로 즐거워서 자발적으로 무엇인가를 했을 때 가장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습니까? 어떤 조직의 구성원도 자기 자신이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원하는 일을 찾아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 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창의적 인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학교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백수 시절에는 그렇게 하기 싫던 공부가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제가 스스로 찾아서 공부를 했기 때문입니다. 역사, 경제, 문화 등 많은 책을 읽었고, 그것들이 지금 제 영화 작업에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창조성은 결국 스스로 찾아서 하는 즐거움 속에서 생성된다고 봅니다.
 
창의성 극대화를 위해서는 출퇴근 시간을 자율화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가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뭐 하고 있어’라고 물으면 ‘아무 일 안 해’라든가 ‘인터넷 서핑 중이야’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그래서 ‘왜 집에 안 가’라고 다시 물으면 ‘상사가 아직 집에 안 갔어’라고 대답합니다. 이게 무슨 불필요한 시간 낭비입니까. 자신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것, 그러니까 어떤 기일까지 결과물을 가져오는 한도만 제시하고, 방법은 직원에게 맡겨주며, 직원 자신이 스스로 시간을 계획하고 운용하는 창의적인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기업이 덜 창의적인 다른 이유는 아마 리더 자리에 폭넓은 분야의 교양을 갖춘 분들이 많이 안 계신 것 때문인 듯 합니다. 창의성은 여러 분야의 교양이 합쳐져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이라도 우리 기업에서 좀 더 폭넓은 교양 수준을 갖춘 멋진 기업인이 많이 나타나기를 기대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트렌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단일한 주류와 주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우리 사회가 상당히 다원화되고 다양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 분야의 마니아들이 작은 주류들을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메인 스트림은 이제 모두 파편화됐습니다. 2008년 한 해 히트한 우리 영화들은 어느 특정 장르가 아니라 스릴러, 코미디, 액션물에 이르기까지 다 걸쳐져 있습니다. 과거처럼 특정 장르가 시장을 휩쓸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의 가장 주요 트렌드가 ‘다원화된 작은 주류들의 면밀한 발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의 영화 ‘반칙왕’을 보다 생각난 것인데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끔찍한 ‘반칙왕’은 누구라고 보십니까
 
우리 사회의 지나치게 전시적이고 과시적인 행태들이라고 봅니다. 몇몇 기업이 문화적 관심을 갖고 있다 해도 대개 하드웨어만 중시하고 있습니다. 외형적 하드웨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그다지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기업이 미술관을 지었다고 생각해 보죠. 미술관의 외형적 모습은 아주 근사합니다. 그러나 관객의 접근성 등은 거의 외면하고 있습니다. 기업뿐만이 아닙니다. 한강을 한 번 보세요. 우리 나라에 한강보다 더 좋은 시민을 위한 자원이 있습니까? 그런데 시민들이 그 좋은 한강을 방문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한강에 자주 가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강 주변에 사는 분이나 자가용을 이용하는 분입니다.
 
둔치를 가봐도 먹고 놀거리만 파는 시설이 전부입니다. 한강에 가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강에 갤러리나 도서관, 책방, 문화상품을 파는 쇼핑몰, 무료 도서대여점을 만드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자원을 놔두고 아무런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는 건 한강을 거의 방치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우리도 하루빨리 외형적 하드웨어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미술관이나 한강 등 기반 시설을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사고로 전환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김 감독은 무척 피곤해 보였다. 전날 ‘놈놈놈’ 송년회에서 난생 처음으로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고 했다. 17일 오전에 ‘서면으로 대치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비치기도 했고, 인터뷰 도중에 배우 이병헌 씨가 괜찮냐면서 안부 전화를 하기도 했다. 취재팀은 김 감독을 위해 숙취 해소제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힘들면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숙취 해소제에 손을 대지 않고 침착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김 감독은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요청에 “지식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저는 촬영 전 연기자들에게 묻습니다. ‘시나리오를 읽고 해석해 봤나?’ 그렇다고 대답하면 연기를 하게 합니다. 그런데 연기가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진정으로 해석을 안 해서 그렇다’라고 말합니다. 실천이 없는 삶은 이루어질 수 없어 슬픈 꿈과 같습니다.”
 
편집자 주 KT 경영연구소 미래사회연구센터와 동아비즈니스리뷰(DBR)는 문화, 예술, 사회, 경영 등 각계의 트렌드 리더로부터 미래 트렌드 변화의 단초와 그들의 통찰력 있는 아이디어를 들어보는 코너를 시리즈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키우고, 세상과 소비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