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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위기는 한국 IB 글로벌화의 호기”

DBR | 23호 (2008년 12월 Issue 2)
현재의 금융위기는 한국 투자은행(IB) 업계에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호기입니다. IB의 핵심 경쟁력은 인력인데 지금 월가 인재들이 헐값에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잃을 것도 없습니다. 현 상황을 세계 시장의 중심으로 나아갈 발판으로 이용해야 합니다.”
 
골드만삭스 출신의 호바트 엡스타인 KTB 투자증권 사장이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다. 오랜 월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 아시아 선도 IB를 탄생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진 그는 시종일관 ‘이미 벌어진 상황’을 보지 말고 ‘앞으로 무엇이 벌어질지’에 집중하라고 강조했다.
 
모두가 합심해서 금융위기에 대처해야 할 상황에 뒤늦게 남을 비판하는 소위 ‘세컨드 게스’가 횡횡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예로 아직까지도 금융계 일각에서 산업은행이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했어야 하느니 마느니 하는 논란이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엡스타인(한국명 이병호) 사장은 미국, 아시아, 유럽에서 25년의 국제금융 업무 경력을 지닌 기업금융 전문가다. 1957년생인 그는 유년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경제학,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취득했다. 베어스턴스, CSFB, 골드만삭스 등을 거쳤으며 로스앤젤레스(LA) 페퍼다인대 경영대학원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올해 3월 KTB 투자증권 사장으로 부임했다.
 
정부의 여러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이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주가 하락이 계속될 것으로 보나
 
지금 주가지수를 예측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부동산 시장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 한국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아직 다 빠지지 않았다. 미국은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는 과정에서 거래 규모는 조금씩이나마 증가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부동산 시장은 거래 자체가 사라졌다. 이 때문에 가격 자체는 고점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 경제 규모나 근로자들의 평균 소득에 비해 집값이 너무 높아 거래가 활발하게 일어날 수 없다. 고점 대비 가격이 덜 떨어진 것보다 거래 자체가 없다는 게 훨씬 무서운 사건이다.
 
현 상황에서 실업률이 올라가고 소비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시장의 펀더멘털은 좋기 때문에 주식시장의 장기 전망을 낙관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 등 한국이 가진 경쟁력이 있는 한 과도하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
 
미국발 금융위기와 별도로 한국 주식시장 하락폭이 유달리 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내 기업의 부채 비율은 아직 낮고 영업 실적도 좋은 편인데…
 
아이러니하지만 IMF 때 선진국의 충고를 상당부분 따른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당시 IMF는 한국에 ‘결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시장을 대폭 개방하라’고 거듭 주문했다. 그 결과 지금 전 세계에서 한국 시장만큼 외국인에게 열려 있는 곳이 없다.
 
나는 미국 시민권자지만 거래 장벽이나 투자 장벽이 가장 심한 곳이 바로 미국이다. 외국인이 미국 은행을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는가. 미국 정부는 이를 철저히 막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식의 규제가 없다. IMF 이후 시장을 대폭 개방했으며, 경제 규모와 자본시장의 깊이도 커졌다. 한국의 주가지수 선물옵션 시장은 세계 1위 아닌가. 투자금을 청산하기 쉽고 청산 물량을 받아 주는 세력이 많기 때문에 외국인이 가장 먼저 한국시장을 떠난 것이다. 한국의 잘못이 아닌데도 피해를 본 사례라고할 수 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일부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시장을 더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펴는 주장에 불과하다.”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이나 하락폭이 커진 이유로 일각에서는 정부 관계자들의 부적절한 언행을 문제 삼기도 한다. 장관의 바람직하지 못한 구두 개입이 환율 상승폭을 키웠다는 주장도 많다
 
미국적 시각에서 한국 상황을 볼 때 가장 아쉬운 점이 이와 연관이 있다. 한국인은 결과가 다 밝혀진 뒤 뒤늦게 남을 비판하는 소위 ‘세컨드 게스’가 너무 심하다.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보인다. 그러나 막상 그 상황이 눈앞에 닥쳤을 때 상황이 끝났을 때처럼 모든 것을 또렷하게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경제를 망치고 싶어서 그런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이미 끝난 일을 ‘그때 이랬어야 했는데. 저랬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산업은행의 리먼브러더스 인수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인의 투자 행태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 및 중국시장이 꼭짓점에 다다랐던 지난해 여름 펀드에 처음 가입한 사람이 상당수다. 그래서 현 상황에서 손실 폭이 더 크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시장에서 왜 이렇게 쏠림이 과도한 것일까
 
한국 투자자들은 아직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과 이에 맞는 투자 목적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서툰 것 같다. 그리고 분산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가진 저축이 1억 원이고, 10년 뒤 은퇴해서 이 1억 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면 이를 인도 시장에 100% 투자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1억 원 가운데 20%는 없어져도 좋다는 생각이라면 인도가 아니라 파키스탄 시장에도 투자할 수 있다.
 
70세 할머니와 30세 젊은이가 인도에 1억 원을 투자한다는 것은 매우 다른 의미다. 투자 금액이 똑같아도 70세 할머니와 30세 젊은이가 짊어져야 할 리스크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이런 부분을 간과하는 게 아쉽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해 이번 위기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교수가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 적극 대응한다. 반면에 버냉키 의장은 전형적인 학자 스타일이다. 데이터를 우선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는 데 중점을 뒀기 때문에 그 와중에 시간이 흐르고 타이밍을 놓치는 수가 생겨났다.
 
그린스펀 의장은 ‘정치적 동물’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가 FRB 의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4명의 대통령이 바뀌었다. 대통령을 4명이나 거치는 동안 그린스펀이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저금리를 통한 경기 부양에 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거품이 생겨났지만 그린스펀에게는 중국 경제의 부상이라는 행운이 존재했기 때문에 저금리의 폐해를 어느 정도 가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와중에 미국 중산층과 저소득층은 완전히 빚쟁이로 전락했다. 주택담보대출, 자동차, 의료보험 등 미국인들은 매달 납부해야 하는 대출금이 얼마냐는 것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저금리 때문에 자기 능력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 써도 매달 갚아야 할 대출금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으니 빚에 무감각해지고, 결국 현재의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리더로서 그린스펀은 자신의 행동이 향후 가져올 결과에 좀 더 신중하게 생각했어야 한다고 본다.”
 
자산가격 디플레이션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세계 각국이 금리인하를 해 봤자 디플레이션을 잡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식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어떤 식으로든 디플레이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환자가 마비 상태에 처했는데 의료보험이 없다고 치료를 안 해주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일단 환자를 살려 놓고 봐야 소비가 살아날 것 아닌가. 미국은 이미 경기 침체에 빠졌고 한국도 마이너스 성장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마이너스 성장이 2, 3년 이어지면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 상황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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