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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의 기술

“비아그라처럼…” 희망 담으면 고객 움직인다

현병택 | 23호 (2008년 12월 Issue 2)
선물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present’에는 ‘나타내다’ ‘전달하다’라는 뜻도 있다. 우리는 선물을 전할 때 상대에게 무엇을 나타내고 싶어 할까. 혹시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보다 체면이나 권위를 보여 주려 하진 않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4년 전 기업은행 경인지역본부장으로 있던 시절의 일이다. 내가 근무하던 건물의 1층이 지점이었는데 ‘10억 원짜리 매니큐어’ 일화로 유명한 직원이 있었다. 평소 고객들에게 싹싹하기로 소문난 ○○지점 김 모 계장을 그날 찾아 온 고객은 칠순이 훨씬 넘은 할머니. 여느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는 수수한 옷차림이었는데, 김 계장의 눈에 띈 것은 할머니의 손톱에 칠해져 있는 빨간색 매니큐어였다. 지점 근처 아파트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기만 한 할머니는 살갑게 대해 주는 김 계장이 손녀딸처럼 마냥 사랑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약도까지 그려가며 주변 편의시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까지 해주니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날 저녁 할머니의 첫 거래 기념으로 김 계장이 준비한 선물은 1000원짜리 매니큐어 3개. 다음날 은행 창구를 다시 찾은 할머니에게 김 계장은 깜찍한 선물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단다. “할머니, 어제 퇴근하다가 할머니 생각이 나서요. 요즘 유행하는 색깔이래요. 이것도 발라 보시고, 요것도 칠해 보세요.” 그 다음날 그 고객은 다른 은행에 넣어둔 예금 10억 원을 김 계장에게 선물(?)했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 가운데 선물은 가장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이다. 상대에 대한 관심의 표현이며, 나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 바로 선물이다. 그러나 선물을 잘못할 경우 들인 정성에 비해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Present(선물)’를 제대로 ‘present(전달)’ 할 수 있는 방법, 선물이 흉물이 되지 않게 하는 방법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선물은 가격보다 관심과 정성에 비례한다
김 계장 사례에서 매니큐어 3개가 10억 원을 유치한 일등공신은 아니다. 김 계장의 선물에는 단돈 1000원으로 살 수 없는 특별한 ‘관심’과 ‘정성’이 있다. 우리가 선물을 정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1순위가 바로 ‘관심’과 ‘정성’이다. 보통 우리는 선물을 정할 때 가격과 실용성 등을 가장 먼저 따지거나 가격대에 맞춰 선물을 고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객의 성향이나 수준 등은 아예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비용 압박 때문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김 계장의 사례에서 보듯 무엇보다 선물은 관심과 정성의 표현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작은 것이라도 자주, 수시로, 여러 번 선물을 건네다 보면 고객과의 관계가 자연스러워진다. 선물은 곧 ‘I like you’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선물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라
외환위기 당시 필자는 분당지점장을 맡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렵던 그 시절에 필자는 의기소침해 있는 고객들을 위해 사랑의 묘약인 ‘비아그라’를 준비했다. 낯 뜨거운 선물이라 할 수도 있지만 당시 실의에 빠진 고객들에게 에너지와 활력을 주고 싶었다. 비아그라 절반씩을 청심환 캡슐에 담아 보기 좋게 포장한 뒤 이런 메시지도 덧붙였다. ‘당신의 힘찬 앞날을 위해 2분의 1을 준비했습니다. 나머지 2분의 1은 저희 기업은행에 힘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이 선물은 주로 기혼여성 고객들에게 전해졌다. 때에 따라서는 남성용을 여성, 여성용을 남성에게 전할 때 효과가 크다. 선물을 건네주는 쪽과 받는 쪽 모두가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아그라 선물을 받은 고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누구도 그 선물이 선정적이라 탓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간절했던 선물은 골프공도 고급 지갑도 아닌 바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응원은 고객을 춤추게 한다
응원의 선물을 보낸 사례를 하나 더 소개한다. 2004년 자금난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경기도 화성에 있는 A사. 이 회사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1000만 달러 수출탑을 받는 영예를 누리는 등 지역 경제의 일등공신이었다. 전남 벌교 출신 사장은 고향 후배들과 함께 맨주먹으로 회사를 일으킨 불굴의 한국인이었다. 그렇게 잘 나가던 회사가 점점 기울더니 결국 조업 중단 사태까지 맞게 됐다. 큰형님 같은 이 회사 사장이 몸져눕자 근로자들의 사기는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떨어졌다.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땐 몇몇 직원들만이 스산한 공장을 배회할 뿐 예전의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고생들 많으시죠?” 생뚱맞게 들어서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들을 향해 “자, 이리 와 한잔씩 합시다”하며 가져간 소주와 안줏거리를 풀어 놓았다.
 
소주라는 말에 귀가 번뜩 뜨인 듯 하나둘 눈빛이 빛나더니 어느새 조촐하게 차려진 테이블 주위로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 잎새주네?” “그려? 우리 고향 소준디?” 내가 그들에게 내민 것은 그냥 소주가 아니라 그들의 푸근한 고향이었다. 고향을 떠나오며 다짐한 그 첫 마음처럼 지금의 위기가 그들을 집어삼키려 해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나의 간절한 부탁이었다. 그날 밤 우린 다시 희망을 이야기했다. 회사를 나간 후배들을 다시 부르고 일어설 것을 다짐했다. 그날 그들과 함께 목청껏 부른 ‘아빠의 청춘’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고객과 소주 한 잔 나눌 기회가 생기면 그 상대의 고향 소주 브랜드를 반드시 알아두자. 당신과 고객의 거리가 훨씬 빨리 좁혀짐을 느낄 수 있다. A사는 그 이후 재기에 성공해 제2의 수출탑 영예를 노리고 있다.
전달하는 방법도 정성이 반이다
내가 기업은행 지점장으로 일하던 때 내 가방 속에는 항상 여성 속옷 상하 세트(팬티와 브래지어)가 들어 있었다. 선물은 남성용보다 여성용이 훨씬 효과가 큰 편이다. 특히 신체와 접촉할 수 있는 속옷 등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또 여성들은 깜짝 이벤트나 예상치 않았던 무언가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항상 가지고 다니다 보니 우연히 고객을 만나더라도 난 항상 선물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고객의 손에 살짝 쥐어주며 필자는 이렇게 속삭였다. “안 맞으면 말씀하세요.” 다음에 그를 보면 다시 물었다. “부인께서 만족하셨는지요.” 필자는 항상 얘깃거리가 넘쳤다. 서먹서먹한 관계를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방법이 선물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선물도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안 하니만 못하게 된다.
 
필자는 직원들에게 영업점 객장에서 선물 주는 것을 절대 금지한다. 선물을 받지 않는 다른 고객이 보면 소외감을 느낄 수 있고, 이게 고객 불만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가능한 한 계속성의 원칙을 지킨다. 선물은 자신을 기억해 준다는 표시이므로 맥이 끊기게 되면 몹시 서운한 법이다. 선물은 받는 즐거움도 크지만 못 받는 섭섭함이 더 클 수도 있다. 가능하면 택배를 이용하지 말고 직접 전달하는 것이 좋다. 눈빛을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인가. 우린 종종 이것을 잊는다. 선물은 나를 담고 있다. 고객에게 선물을 전할 땐 반드시 나를 함께 보내자. 나의 눈빛과 나의 미소, 나의 마음도 함께.
 
타이밍을 잘 맞춰라
신데렐라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밤 12시만 되면 호박으로 바뀌는 마차는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지나서 보내는 선물, 퇴원 후 병원으로 보내는 선물 등은 아무리 비싸고 좋은 것일지라도 제 값어치를 못한다. 특히 생일엔 늦은 시간이라도 반드시 당일에 선물을 전달하자. 공연이나 연주회 티켓도 마찬가지다. 공연일로부터 넉넉히 1달 전, 적어도 보름 이전에 초대장을 보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일정을 피할 수 있다. 공연 일에 임박해서 보내는 초대장은 초대가 아니라 ‘박대’다. 상대의 일정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고객의 취향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클래식 공연을 지루해 하는 고객에게 2시간은 참을 수 없는 생고생이다. 수준 높은 공연이라며 무조건 권하지 말고, 고객이 좋아하는 장르와 가수 등을 미리 점검해 두자. 고객이 열광하는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오면 그가 사기 전에 CD를 선물하자.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든다. 그러나 그 음악은 반드시 그가 좋아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 ‘音樂’을 ‘音惡’으로 만드는 것도 당신의 마케팅 지략에 달려 있다.
 
환경친화적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다
불같고 단호한 성격이던 서울 중구 장충동의 한 고객은 고향이 함경도 장산곶이다. 워낙 까다로워 누구도 쉽게 친해질 수 없었지만 명절 때면 고향을 그리며 눈시울을 붉히는 그였다. 그런 그에게 필자는 명절 때마다 가마니쌀을 선물한다. 현대적 포장은 튼튼하고 깔끔하긴 하지만 왠지 푸근한 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에 고향을 담고 사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선물은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에 뛰놀던 고향 들녘, 부모 형제와 저녁밥을 지어 먹던 가난했지만 따뜻하던 시절들…. 선물은 물질적 가치보다 심리적 가치가 더 큰 서비스라 생각한다. 몇 해 전에 한 여성 고객에게 고추를 선물할 때는 이런 편지를 함께 보냈다. ‘시골 가는 길에 손마디가 굵으신 할머니께서 고추를 말리고 계셨습니다. 고객님 생각이 나더군요. 집사람이 손질을 하긴 했는데, 행여 상하지나 않았는지 염려됩니다. 이것으로 제 마음을 대신해도 될는지요. 명절 잘 보내십시오.’ 환경친화적인 선물, 특히 사람의 향기가 배어 있는 선물은 늘 충만한 감동을 준다.
 
선물은 유·무형의 것을 다 포함한다
선물이 꼭 유형적일 필요는 없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할 수 있는 나의 노력 또한 고객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 수원 쪽 지점을 거래하다가 대출이 거절당하자 은행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C 기업. 내가 몇 차례 그곳을 방문했을 때 사장은 날 만나려 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경리 여직원이 은행 업무를 보고 가려는데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나는 팀장을 시켜 우산도 없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그 여직원을 회사까지 안전하게 바래다주도록 했다. 연방 고맙다고 하는 그 여직원은 회사에 가는 동안에 여러 요긴한 정보를 알려줬고 우리는 드디어 사장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그 여직원에게 호의를 선물했으며, 그 여직원은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선물했다.
 
편집자주 금융 영업의 ‘달인’으로 통하는 현병택 기은캐피탈 사장이 30년 동안 축적한 세일즈 노하우를 동아비즈니스리뷰(DBR)에 공개합니다. ‘아이디어 뱅크’라는 별명을 얻은 현 사장이 현장에서 체득한 생생한 경험과 노하우는 비즈니스맨들에게 큰 교훈을 전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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