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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고객 뇌 속의 ‘섬’을 주목하라

정재승 | 22호 (2008년 12월 Issue 1)
영국에서 내려오는 전설 가운데 고다이바 부인의 ‘알몸 시위’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11세기 무렵 영국의 코번트리는 레오프릭 백작이 다스리고 있었다. 봉건 영주인 그는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해 원성이 높았다. 그의 아내인 고다이바 부인은 백성들의 세금을 가볍게 해 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다. 화가 난 백작은 부인의 부탁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는 농담 삼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인간의 나신을 신이 만든 최고의 예술품으로 생각했다고 하는데, 당신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장을 한 바퀴 돌면 내가 세금을 줄여 주지”라고 부인에게 말했다.
 
이튿날 고다이바 부인은 심사숙고 끝에 이 제안을 받아들여 알몸으로 말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이 소식을 전해 듣고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창에 커튼을 드리우고 아무도 보지 않기로 하고 이 일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그런데 고다이바 부인이 알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 때 약속을 깨고 창문 틈으로 이를 지켜 본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이 톰(Tom)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의 사생활을 몰래 훔쳐보는 사람을 영국에선 ‘peeping Tom’(엿보는 톰)이라 부르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톰은 고다이바 부인을 지켜본 다음부터 눈이 멀게 되었다고 한다.
 
고다이바 부인의 용기와 백성을 아끼는 마음은 이후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그녀의 알몸 행진은 ‘나체 시위’(nude demonstration)의 시초가 됐다.(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나체 시위가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고다이바 부인의 용기와 착한 마음을 기리며 코번트리 시에서는 지금도 매년 축제를 열고 있다. 그녀를 기리며 만든 세계적인 초콜릿 제품도 있다. 이것이 바로 ‘고다이바(GODIVA)’다.
 
이로부터 1000년이 지난 오늘날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의 소비 행태를 연구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종종 고다이바 초콜릿을 주며 행동실험을 한다. 2007년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브라이언 크너슨 교수가 한 흥미로운 실험에도 고다이바 초콜릿이 등장한다.
 
그는 젊은 남성 26명을 자신의 실험실로 불러 먼저 2만 원의 돈을 실험 참가비로 주었다. 그 돈으로 초콜릿을 구입할 수 있으며, ‘맛있지만 비싼’ 고다이바 초콜릿을 1530% 가격에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 안에 눕게 한 뒤 컴퓨터 화면으로 고다이바 초콜릿 사진을 천천히 보여 주면서 구입하고 싶은 초콜릿이 나올 때 구입 버튼을 누르라고 주문했다.
 
화면 영상은 간단했다. 먼저 고다이바 초콜릿 사진을 4초 간 보여 주고, 다음 4초 간 이 초콜릿 가격이 어느 정도 되는지 함께 표시했다. 그러고 난 뒤 이 제품을 구매할지 여부를 물어보는 ‘YES OR NO’ 버튼이 나온다. 참가자는 45초 안에 버튼을 눌러야 한다. 이런 과정을 40여 개의 초콜릿에 대해 반복적으로 물어보면서 ‘초콜릿을 구매할지 안 할지 고민하는 동안 뇌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뇌영상 장치를 통해 촬영했다.
 
쾌락의 중추와 구매 의사결정
크너슨 박사는 초콜릿을 구매하겠다고 버튼을 누른 경우와 구매하지 않겠다고 버튼을 누른 경우에 실험 참가자의 뇌 활동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했다. 놀랍게도 그들의 뇌는 전혀 달랐다.
     
첫 번째 가장 주목할 만한 시험 결과는 그들의 뇌가 이미 처음에 초콜릿을 보는 순간 전혀 달랐다는 사실이다. 나중에 구매 버튼을 누를 피험자들은 물건을 보는 순간 뇌의 쾌락의 중추인 측좌핵(Nucl -eus accumbens)이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는 양상을 볼 수 있었다. 구입하고 싶은 제품을 볼 때 우리 뇌 가운데 ‘쾌락의 중추’ 영역이 자극을 받는다는 얘기다. 주부들이 샤넬이나 루이비통 명품 가방을 볼 때, 아저씨들이 페라리 스포츠 카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볼 때 이 영역은 산불처럼 격렬하게 타오른다. 사람들은 쇼핑이 필요해서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서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실험이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쇼핑에 중독이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소비자들이 제품을 볼 때 얼마나 사고 싶은지를 정량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신경마케팅에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제품을 출시하기 이전에 잠재적 소비자들에게 미리 제품에 대한 신경생리학적 반응을 측정해 보라. 제품에 대해 수정도 가능하고, 타깃으로 할 소비자 대상도 정할 수 있고, 광고나 마케팅 포인트를 찾는 데도 도움이 된다.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결과는 ‘막상 버튼을 누르는 동안에는 두 그룹 사이의 차이는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이미 제품을 보는 순간 우리의 뇌는 이 제품을 구입할지 말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크너슨 교수가 이 연구를 뉴런(NEURON)이란 저널에 발표했을 때 붙인 제목도 ‘구매 행동에 대한 신경활동적 예측’(Neural predictors of purchase behavior)이다. 미래에 멀리서도 뇌 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뇌영상장치(remote wireless neuroimaging techniques)가 등장한다면 매장 주인들은 이 장치를 마치 도난 방지를 위해 폐쇄회로 카메라를 달듯이 모든 매장 내에 달 것이다.
 
언니, 이거 얼마예요?”라고 고객이 물어보는 순간 뇌영상 카메라는 지금 이 고객의 쾌락 중추가 얼마나 활성화되어 있는지, 구매를 할 사람인지 아닌지 말해 준다. 구매할 의사가 없는 사람에겐 점원이 별로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수도 있고, 구매 의사가 있는 사람에겐 지나친 친절을 베풀 수도 있다. 하여튼 무시무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세 번째로 주목할 만한 결과는 가격을 보여 주면 뇌의 이성적 중추인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때로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작은 기쁨을 참고 견디기도 하고, 행동에 앞서 ‘노력에 대비해 얻을 수 있는 쾌락의 정도’를 수학적으로 따지기도 한다. 바로 이 영역이 이런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다. 이 영역은 우리 앞에 놓인 상황을 파악하고, 미래 상황을 예측하며, 다음 행동을 결정한다. 이 영역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모든 고등한 의사결정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가격을 보는 순간 사람들의 전전두엽은 가격 대비 성능을 열심히 계산한다. ‘이 물건이 과연 내가 이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인가?’ 또 전전두엽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쾌락의 중추를 억제하는 기능’이다. 우리가 시도 때도 없이 쇼핑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측좌핵을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전전두엽의 주요 역할 중 하나라는 얘기다. 고다이바 초콜릿을 구매할 사람들은 이 과정도 무사히 통과해야만 한다.
 
구매하겠다는 그룹은 그렇지 않겠다고 버튼을 누른 그룹보다 이 영역의 활동이 훨씬 더 활발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면 ‘섬’(insula)라 불리는 뇌의 다른 영역이 활성화되는 반면에 전전두엽 피질(mesial prefrontal cortex) 부위는 덜 활성화된다.

마지막으로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섬’이라고 부르는 영역의 활동이다. 이곳은 우리가 지나가다가 길거리에서 ‘똥’을 봤을 때, 술 먹은 아저씨가 밤새 전봇대 앞에 ‘따끈한 피자’를 게워 놓은 걸 봤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거나 불편한 심기일 때도 이 영역은 작동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역겨움’이나 ‘사회적 고통’의 센터라는 얘기다. 이 영역은 구매 의사가 없는 제품을 볼 때 명확히 활성화 된다. 사람들은 구매할 의사가 없는 제품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 자못 흥미롭다.
 
세계 최대 브랜드 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는 매년 매출액과 브랜드 가치를 평가해 ‘글로벌 브랜드 베스트 100’를 선정해 발표한다. 이 명단에는 코카콜라나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으며 그들 브랜드의 자산가치도 함께 공개된다.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만든 제품에 대한 신뢰를 제공하고 구매로 이어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브랜드의 가치’를 평가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다.
 
사람들은 또한 제품을 구입할 때 제품의 질, 가격 대비 성능, 브랜드 외에 그 기업의 명성(reputation)을 본다. 일등 기업이라고 인정은 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기업이 있고, 최고의 브랜드 가치는 아니지만 수많은 추종자를 만드는 기업이 있다. 뇌섬인 인슐라는 바로 기업의 브랜드 가치와 명성에 대해 반응하는 영역이다. 앞으로 기업이 사람들의 뇌에서 가장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할 곳이기도 하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합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 보기 바랍니다.
 
필자는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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