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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초콜릿폰 통념을 뒤엎다

박남규 | 2호 (2008년 2월 Issue 1)
 
 남규 서울대학교 경영전문대학원 교수

한 때 LG전자 휴대전화는 ‘사연이 있어야’ 사는 제품이란 뼈있는 농담이 회자됐었다. 사은품으로 받
았다거나,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급하게 구매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지금 LG전자 휴대전화는 ‘사야 할 이유가 있는’ 제품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실제 LG 휴대전화는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차별화된 디자인과 기능으로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혁신적 제품의 첫 출발은 ‘초콜릿폰’ 이었다. 파격적인 디자인의 초콜릿폰은 총 1500만대가 팔려나가면서 휴대전화 산업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
다. 특히 2007년 연말에는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철수 선언을 한 일본시장에서 초콜릿폰은 진출 한 달 만에 30만 대 이상의 판매 실적을 기록하며, 새로운 성공 신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성공신화의 비밀은 무엇일까?
 
관행 깬 혁신적 감성브랜드
2005년 초가을 LG 전자 MC(Mobile Communi-cation) 사업부 회의실에서는 새로 시판할 휴대전화의 브랜드를 결정하기 위해 뜨거운 논쟁이 한창이었다. 경쟁사를 추격해 글로벌 시장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져야 하는 핸드폰 사업부의 명운을 걸고 내놓는 제품인 만큼 이름을 짓는 데도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격렬하고 진지한 토론 끝에 제품의 기술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이름을 짓는 업계의 기존 관행을 혁신적으로 파괴하고 ‘초콜릿’이라는 감성브랜드가 탄생했다.

 
2004년은 휴대전화 시장에서 항상 선두업체에게 밀려왔던 LG전자가 새로운 전략을 심각하게 모색하던 시점이었다. 휴대전화 산업은 경쟁자간 시장점유율 변동이 거의 없는 성숙기 시장으로 어떤 전략적 수단을 사용해도 시장변화를 일으키기 힘든 구조였다. 게다가 제품의 수명주기가 매우 짧아져 수익구조는 점차 악화됐다. 산업 전문가들은 2010년에 이르면 글로벌 1∼3위 외의 기업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기술경쟁도 치열했다. 누가, 얼마나 신속하게 신기술을 개발해 시장을 선점하느냐가 브랜드의 성패를 가름했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하면서 더 이상 기술에 의한 차별화가 어려워졌다. 따라서 많은 제조회사는 진정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갖기 시작했다. 즉 기술개발을 게을리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기술개발만으로는 차별화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바로 이 시기에 나타난 것이 초콜릿폰이었다.
 
디자인이 최우선 가치
초콜릿폰이 기존 관행을 뛰어넘은 것은 이름뿐만은 아니었다. 프로젝트팀은 고객가치를 창조하는 진정한 차별화만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 판단하고 경쟁사 제품과 자사 제품 간 면밀한 비교 분석을 진행했다.
당시 휴대전화 업체들은 시장에서 기능과 가격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누가 더 화려한 벨소리를 구현하느냐, 누가 더 음질을 향상시키느냐, 누가 더 카메라 성능을 높이느냐가 관건이었다. 하지만 시장조사를 해보니 고객의 67%는 제품을 살 때 디자인을 먼저 본다고 응답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개발팀은 과감한 도전을 선택했다. 디자인을 제품 개발의 최우선 가치로 결정한 것이다. 이는 기능이 좀 떨어져도, 가격이 더 높아져도 뛰어난 디자인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보통 기능과 가격을 정하고 그 범위 안에서 디자인 요소를 가미했던 다른 경쟁사의 접근법과는 완전히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런 지침 하에서 디자이너는 과감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외관 전체를 코팅하고 두께를 대폭 줄였으며 터치 스크린 방식을 적용한 게 대표적이다. 물론 기술진은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무조건’ 존중해서 기술을 개발해야 했다.
  
기술적 한계 돌파
소비자의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디자인을 차별화하기 위해 개발팀은 핸드전화 부피와 두께의 한계에 정면 도전했다. 당시 삼성전자 휴대전화의 볼륨을 100으로 가정 하면 LG전자는 110정도의 볼륨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개발팀은 경쟁사를 뛰어넘어 아예 80정도의 부피를 갖겠다고 도전했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서도 다양한 부서간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업계의 기존 관념상 불가능으로 여겨지는 목표에 도전하기 위해 LG전자는 임원급을 팀장으로 선임하는 새로운 조직체계를 구축했다. 임원급을 팀장을 선임함에 따라 결제 단계가 크게 줄었고 결과적으로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했다. 최고경영진도 전폭적으로 프로젝트를 지원했다.
 
기술적으로 가장 해결하기 어려웠던 난제는 바로 휴대전화의 슬림화. 당시 마의 장벽 14mm의 벽을 넘기 위한 해법으로 복층 구조였던 단말기 구조를 단일층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단일층을 구성하려면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플랫폼 사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따라서 슬림폰을 위해 모든 부품을 처음부터 다시 개발해야 했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위해 부품개발 단계에서부터 협력업체까지 모두 회의에 참여했고, LG전자는 부품업체의 기술개발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당시 휴대전화 업계에서는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는 비밀 아닌 비밀이어서 제품 출시 이전에 이미 개발 중인 제품에 대한 정보가 떠돌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LG전자는 슬림화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관련 부서나 업체에도 알리지 않았다. 또 최종 결제가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소문을 내기도 해 경쟁사들은 LG전자가 슬림폰 개발에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게 유도했다.
초콜릿폰 등장
LG전자는 2005년 11월 22일 서울 W호텔에서 대대적인 초콜릿폰 시판 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에서 박문화 LG전자 사장은 “오늘 선보인 ‘블랙라벨’ 시리즈는 기능 위주의 차별화가 아닌 고객의 감성적 구매기준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차원의 휴대전화입니다. 싸이언 ‘블랙라벨’ 시리즈는 단순한 휴대전화가 아닌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패션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의 혁신적 디자인에 대한 시장 반응은 초기부터 폭발적이었다. 한국 출시 3주 만에 하루 개통수가 1000대를 돌파했다. 국내뿐 아니라 유럽 및 아시아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이 급증했다. 이는 늘 후발업체로서 1위 기업들의 게임의 법칙에 따라 가기만 했던 분위기를 역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LG전자는 초콜릿폰에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또 다시 디자인 차별화에 도전했다. 바로 스테인레스 스틸을 활용키로 한 것이다. 스테인레스 스틸은 고객들이 매우 좋아하는 소재여서 가전제품이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휴대전화에는 이 소재가 사용되지 않았다.
  
후속 제품 성공
전파 송수신을 방해하는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디자인이 결정하면 무조건 기술을 개발한다’는 검증된 성공 방정식을 토대로 LG전자 기술진은 전파 방해 문제를 해소하고 스테인레스 스틸을 이용한 샤인폰을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이어갔다. 또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와 손을 잡고 ‘프라다폰’도 시장에 출시했다. 혁신적인 디자인과 관련해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가진 미국 애플사가 야심차게 내놓은 ‘아이폰’이 프라다폰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일 정도로 이 휴대전화는 진가를 인정받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디자인에서 차별적 역량을 획득한 LG전자는 이후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능에 특화한 제품도 만들어 시장 확대를 추진했다. 대표적인 게 ‘뷰티폰’이다. 이 제품은 500만화소 카메라를 장착했으며 손 떨림 보정 기능을 갖췄다. 차별화한 디자인을 접목하면서도 확실한 기능 하나를 더 추가한 것이다. 감성과 디자인의 결합을 통해 뷰티폰은 미국과 유럽시장에서 출시한 첫 달부터 무서운 속도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한국기업들이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국내와 차원이 다른 시장이다. 이런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진정한 의미에서 글로벌 1위 기업이 되어야 한다. 남들이 쉽게 모방하기 힘든 역량을 갖기 위해서는 내수시장에서 지켜오던 기존 관념과 관행을 혁신적으로 타파해야 한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서 글로벌 시장에 출시하는 관행부터 과감히 손질해야 한다. 일례로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전자제품, 자동차, 컴퓨터 같은 상품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소비자들이 왜 이런 제품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힘든 경우가 많다. 이렇게 평범한 제품을 갖고는 글로벌 경쟁에서 진정한 고객가치를 창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생존을 보장받기도 힘들다.
 
“고객들이 우리 제품에서 진정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글로벌화를 생각하고 있는 경영자라면 반드시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
 
[INTERVIEW]
마창민
 LG전자 모바일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 상무
 
초콜릿폰 개발 과정에서 기능이나 가격보다 디자인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는데 내부 반발은 없었나.
“기능을 추가하면 가격이 높아지고, 디자인을 더 아름답게 하려면 기능이 줄어든다. 기능과 디자인, 가격은 트레이드오프(trade-off)관계가 있다. 모두를 다 만족시키는 제품은 ‘신이 만든 제품’ 외에는 없다. 어느 정도 기능과 품질이 보장된다면 고객들은 디자인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반발이 있었지만 소비자들에게 우월한 디자인으로 설득하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다.”
 
디자인 때문에 휴대전화 편의성이 다소 떨어졌다는 단점도 지적됐는데.
“정도의 문제인 것 같다. 실제 다소 불편함이 있다. 전화 번호를 누르는 버튼이 작고 터치스크린 방식도 소비자들에겐 낯선 것이다. 하지만 그 불편함의 강도는 세지 않았던 것 같다. 많이 불편했더라면 이런 성과를 못 냈을 것이다. 유럽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에는 번호 버튼의 크기를 키우기도 했다.”
 
삼성이나 노키아 같은 글로벌 휴대전화 업체도 일본 시장에서 철수했는데 LG가 선전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일본은 매우 발전된 시장이고 소비자들도 까다롭다. 하지만 우리는 상당한 기술력을 갖췄고 일본인에게 어필할 수 있는 디자인이나 감성적 역량도 갖고 있다. 특히 초콜릿폰처럼 감성적 제품을 출시하고 마케팅을 할 때에는 초기 3개월간 기능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기능을 하나만 언급하더라도 감성적 강점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이런 원칙을 함께 적용했다.”
 
고객의 숨어있는 욕구를 발굴해서 제품화하는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면.
“조직의 분위기가 중요하다. 경영진부터 고객의 숨은 욕구를 찾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어야 한다. 직원들도 성공 체험을 하면서 자신감을 갖고 고객으로부터 통찰을 얻어내야 한다. 또 특정 부서만 고객 조사를 해서는 안 된다. 모든 부서가 이런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제품 개발 단계부터 고객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뉴욕대에서 경영전략 및 글로벌경영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영전략 분야 최고 학술지인 ‘Strategic Management Journal’ 등에 다수의 논문을 실어 연구 역량을 인정받았고 서울대 MBA스쿨에서 최우수 강의상을 받았으며 국내 주요기업 사장단을 대상으로 경영자문 및 강의를 하고 있다.
  • 박남규 | - (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주요저서 <전략적 사고> <화이트칼라 이노베이션전략> <창조적 사고> 등
    - (전)미국 마이애미, KAIST에서 교수.
    namgyoo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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