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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값 비싸다

정구열 | 21호 (2008년 11월 Issue 2)
사회·경제 각 분야에서 요즘처럼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이 없다. 금융위기로 미국 정부가 사상 최대인 7000억 달러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은 아직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필자 역시 최근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을 신뢰 문제에서 찾고 싶다. 미국의 사회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선진국과 후진국 차이는 바로 신뢰의 차이이며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이 급격하게 커져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학자 스티븐 낵과 필립 키퍼도 논문에서 ‘다른 조건이 동일할 때 국가 신뢰지수가 10%포인트 높아지면 그 나라의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상승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신뢰 문제는 한국이 선진국으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신뢰의 경제학을 도입하고 신뢰 비용을 구체적인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최근 한국 주식시장의 급락 또한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 현재 한국 상장회사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0에도 못 미친다. 세계 평균에 비해 훨씬 낮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식시장 하락폭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 것은 한국이 신뢰 비용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기업 가치의 상당 부분은 무형의 브랜드 가치로 이뤄진다. 코카콜라의 브랜드 가치는 670억 달러(약 87조 원)로 코카콜라 시가총액의 70%를 차지한다. 브랜드 가치를 형성하는 기본은 신뢰다. 신뢰가 기업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S&P 500 지수 소속 기업의 가치 가운데 무형자산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 80%에 이른다. 지난해 말 한국 상장회사에서 차지하는 무형자산 비중은 불과 20%에 그쳤다. 따라서 한국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기업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인에 대한 신뢰도 큰 폭으로 추락했다. 필자는 최근 여러 곳에서 금융 인재 교육을 위한 커리큘럼을 수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듣곤 한다. 학교 커리큘럼도 위험관리 및 금융윤리 강화 등 신뢰 비용을 극소화 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이제 모든 금융상품을 설계할 때 신뢰 비용을 하나의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편승한 면은 있지만 종합주가지수 1000선을 무너뜨린 주요 매도 세력은 외국인이었다. 여기에는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 비용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국가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고 있다. 외국에서 한국의 국가 위험 프리미엄을 예사로이 보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책 실행과 정부 고위 당국자들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며 신뢰 비용과 경제학을 이제 주요한 정책 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신뢰를 얻으려면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무너지는 건 한 순간이다. 우리에게는 외환위기를 극복한 귀중한 경험이 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다.”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과의 전쟁’을 선포할 때 강조한 말이다. 우리 국민은 뛰어난 위기 극복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위기를 통해 우리 경제·사회·정치의 모든 면을 신뢰의 경제학에 입각해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회계학 전공) 학위를 받았다. 2000년 KAIST 교수로 부임해 한국회계학회 부회장, 회계학연구 편집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부터 KAIST 금융전문대학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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