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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Money in the Brain

최후통첩 게임, 불합리성을 밝힌다

정재승 | 20호 (2008년 11월 Issue 1)
여러 사람이 전략을 세워 게임할 때 내가 취해야 할 ‘최적의 전략’이란 것이 과연 존재할까. 최적의 전략이 존재하고 내가 그것을 찾을 수 있다면 게임에서 항상 지지 않고 이득을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20세기 수학자들의 골칫거리였다.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과 존 내시는 여러 사람이 함께 게임할 때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이 최대가 되기 위해 노력할 뿐 아니라 ‘내가 속한 집단 또는 우리 편의 이익이 최대가 되도록 노력한다’는 가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런 상황이라면 게임에서 ‘최적의 전략’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게임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들의 전략이 주어졌을 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가장 적절한 전략이 내 앞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다. 이것이 항상 ‘최적’이라 할 순 없겠지만 굳이 바꿀 필요가 없는 전략이라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이라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게임이론에서는 이것을 ‘내시 평형’(Nash equilibrium)이라고 부른다.
 
존 내시는 이 사실을 증명한 공로로 199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게 된다. 그가 이것을 증명하는 과정은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매우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배우 러셀 크로가 존 내시 역을 맡았다)
 
그렇다면 최근 신경과학자들 사이에 주목받고 있는 경제학 게임인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에서 가장 합리적인 전략인 ‘내시 평형’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본 얼티메이텀’의 제목에 나오는 바로 그 ‘얼티메이텀’이 들어가는 이 게임에서 얼티메이텀이란 자신의 메시지를 마지막에 상대방에게 던지는 ‘최후통첩’이란 뜻이다.
 
이 게임의 규칙은 매우 간단하다. 게임을 위해서는 두 명의 참가자가 필요하다. 한 명은 제안자, 다른 한 명은 반응자라고 부른다. 이 게임을 주재하는 사람이 제안자에게 1만 원을 건넨다.(10만 원이나 100만 원으로 해도 된다) 제안자가 하는 역할은 이 돈을 자기 몫과 상대방(반응자)의 몫으로 나누는 일이다. 자신이 6000원을 갖고 상대방에게 4000원을 줘도 좋고, 자신이 9000원을 갖고 상대방에게 1000원을 줘도 좋다. 이 비율을 정하는 사람은 제안자다.
 
제안자가 돈을 어떻게 나눌지 제시하면 반응자는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제안자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반응자가 제안자가 제시한 금액을 받아들이면 두 피험자는 제안된 몫대로 나눠가지면 된다. 그러나 반응자가 제안을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반응자는 제안자가 0이 아닌 이상 아무리 적은 금액을 제시해 오더라도 거절하는 것보다 무조건 받는 것이 이득이다. 다시 말해서 반응자의 내시 평형은 0이 아닌 어떤 금액을 제안 받는다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제안자는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이득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방(반응자)에게 최소한의 금액만 제시하면 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은 내시 평형과 거리가 멀었다. 제안자는 자신의 몫과 반응자의 몫을 5대5로 나누겠다는 경우의 비율이 가장 많았고, 6대4나 7대3으로 나누겠다고 제안한 사람들의 비율까지 합하면 거의 80%가 넘었다. 반응자는 아무리 낮은 금액이라도 무조건 받는 것이 이득임에도 불구하고 8대2나 9대1로 나누겠다는 제안을 받으면 제안자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경우가 67%나 됐다. 그들은 왜 받는 것이 명백히 이익인 상황임에도 기대 이하의 금액이 제시되면 거절해서 둘 다 받지 못하게 하는 걸까.
 
fMRI로 의사결정시 뇌 반응 분석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프린스턴대의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조너선 코언과 그의 학생 앨런 샌피는 이 게임을 하는 동안 반응자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 안에 넣어 두고 9대1이라는 매우 불공정한 제안에 대해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할 때 뇌 활동 패턴을 촬영했다. 흥미롭게도 반응자가 제안을 받을 때와 거절할 때 뇌 활성 패턴은 매우 달랐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결정하기 이전에 반응자의 뇌는 ‘전전두엽의 측배 쪽’(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이 매우 활성화 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 영역은 오래 전부터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 영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즉 10%만 가지라는 제안자의 제안이 불공정하더라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렇게 결정하는 반응자는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우리에게 ‘내시 평형을 계산하는 영역은 측배 전전두엽’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기도 하는 것이어서 신경과학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연구라고 할 수 있다.(이 연구는 저명한 저널인 사이언스에 실렸다)
 
그러나 9대1의 제안을 거절한 반응자는 결정을 하는 동안 측배 전전두엽이 그다지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슐라(insula)와 전대상회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이 크게 활성화 되었다. 인슐라와 전대상회피질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인슐라는 ‘길을 가다가 바닥에 똥이 있을 때 또는 전봇대에 전날 술 취한 사람이 피자를 거하게 한 판 쏟아낸 걸 볼 때’ 활성화되는 부위다. 다시 말해서 역겨움이나 인간관계에서 얻는 고통이 표상되는 곳이다. 그들이 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냐고? 문자 그대로 ‘더럽고 치사해서’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슐라의 활성화 패턴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제안자는 돈 1만 원을 적당한 비율로 나눌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으니 제안자가 더 많은 돈을 가지려고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들이 나눈 몫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는 반응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반응자는 매우 중요하고 힘든 결정되는 내린다. 그런데 그런 대가로 그들에게 돌아오는 몫이 겨우 10%라니 너무나도 적은 양이 아닌가. 그래서 반응자들은 기꺼이 자신의 경제적 이득인 10%의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상대방인 제안자도 경제적 이익을 취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복수하려는 것이다.
 
전대상회피질은 현재 자신이 갈등 상황에 놓여있음을 인식하고 갈등적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conflict monitoring) 영역이다. 돈을 받는 것이 이득인 것은 당연히 알겠는데 도저히 돈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 이 갈등적인 상황에서 전대상회피질은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영역이 활발히 활동한다는 것은 반응자의 마음속에 거절의 의지가 상당 부분 자라고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이런 비합리적인 선택이 잘못된 것인가. 인간은 눈앞에 놓인 돈을 포기하면서까지 왜 이렇게 비합리한 선택을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최후통첩 게임을 수행한 인류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북미 대륙과 남미의 국가들, 아시아의 여러 나라, 유럽의 여러 나라, 심지어 아프리카의 부족 국가들을 돌며 서로 다른 민족, 서로 다른 국민들을 대상으로 같은 조건에서 최후통첩 게임을 실시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게임’이라는 개념조차 없어서 그들에게 최후통첩 게임을 설명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그들은 무사히 실험을 마치고 통계를 낼 수 있었다.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제안자가 제시하는 금액이 매우 달랐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5대5를 제시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9대1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서 어떤 나라 사람들은 매우 너그러운 금액을 제시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게임이론이 말해주는 대로 가장 합리적인 금액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익이 생겼을 때 공평하게 나누는 문화’가 발달한 나라일수록, 자급자족보다는 시장을 통해 서로 협력해 물건을 교환하는 나라일수록 제안자가 ‘제안하는 금액’이 더 높더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부족들 중에는 가족 단위로 사냥하거나 농사를 짓고 이로부터 얻은 수익으로 가족이 먹고 사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반응자에게 제시하는 금액은 매우 낮았다. 그러나 여러 가족에서 남자 10명이 모여 사흘 동안 집중적으로 사냥한 뒤 잡아온 사냥감들을 모두 합쳐서 10분의 1씩 균등하게 분배하는 부족들은 5대5에 가까운 너그러운 제안을 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품앗이를 하는 농사문화가 있는 곳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처럼 공동의 이익이 생겼을 때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려는 문화가 있는 곳, 사람들 간의 신뢰도가 높은 곳일수록 사람들은 내시 평형으로부터 먼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게임 이론이 증명한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들은 일견 비합리적인 선택을 통해 눈앞의 이익은 적게 얻게 되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구성한다면 그 사회는 좀 더 신뢰할 만하고 공평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수학이 아니라 오랜 협동 생활을 통해 이런 지혜를 얻은 것이다.
 
편집자주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정재승 교수가 인간의 뇌에 대한 최신 연구 성과 및 경제적 의미를 연재합니다. 인간 심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나 보기 바랍니다.
 
필자는 카이스트 물리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를 거쳐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도전, 무한지식> 등이 있다.
  • 정재승 정재승 | - (현)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부교수
    - 미국 컬럼비아의대 정신과 교수
    - 예일대 의대 정신과 연구원,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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