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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아름다움은 전략이다

김현진 | 357호 (2022년 11월 Issue 2)
10여 년 전 프랑스의 경영대학원에서 럭셔리 브랜드 매니지먼트 과정을 시작하기 전, 첫 수업이 무엇일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럭셔리 마케팅 개론’이나 ‘재무 기본’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던 예상을 깨고 공개된 첫 수업의 과목명은 바로 ‘미학(Aesthetics)’이었습니다. 미학이 자본주의 끝판왕인 럭셔리 경영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예술사와 소비자 심리 등 철학과 역사, 심리학을 함께 다루는 ‘인문학 종합 선물세트’였습니다.

인간의 창의력을 총동원하고 천재 예술가들의 재능까지 더해 ‘극단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럭셔리 산업은 감각을 기본으로 하는 인간의 미적 능력이 최고조로 발현되는 산업 영역입니다. 이런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본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이 수업의 취지였습니다.

효율성과 숫자를 중시하는 경영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논하는 미학은 자칫 한가한 영역으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LVMH그룹 북미 지역 회장 출신인 폴린 브라운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하버드경영대학원으로부터 처음으로 강의 제의를 맡았을 때도 스스로 신설하겠다고 주장한 수업이 다름 아닌 ‘미학 경영’이었습니다. MBA 과정 졸업 직후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의 영향으로 감성보다는 분석적 판단에 익숙했던 그를 변화시킨 것은 이후 럭셔리 기업들에서의 근무 경험이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극단적으로 오감의 만족감을 이끌어내며 소비자를 ‘꿈꾸게’한 결과 차별화된 브랜드 가치를 갖고, 결국 수백 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명품’으로 사랑받게 됐음을 직접 목도한 결과입니다.

대공황이나 전염병, 전쟁 등 전 인류적 위기 속에서도 럭셔리 브랜드들은 꿋꿋이 살아남아 100년 이상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가 곧 생존 공식이었던 겁니다. 브라운 교수는 이렇게 아름다움을 보는 힘을 ‘미적 지능(AI•Aesthetic Intelligence)’으로 부르며, 또 다른 AI인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만큼이나 중요하면서 기술에 대체될 수 없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자산이라 설명했습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불황일수록 디자인이 세련된 명품이나 존재감이 뚜렷한 붉은 립스틱 등 신체적 매력을 높여줄 제품이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로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이 생존에 유리한 조건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름다움이 곧 ‘우월함’을 상징하고, 이것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는 사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돼 왔습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아름다움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무언가를 기대할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신호’를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신호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번 코로나 팬데믹에는 마스크 착용 탓에 붉은 립스틱보다 향수의 인기가 거셌다고 하는데, 이 역시 시각 대신 후각으로 아름다움을 발산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발현된 결과일 수 있습니다. 또한 젊고 잘 가꿔진 외모가 곧 ‘몸과 마음의 건강함’ ‘성실함’ 등의 키워드로 해석되면서 운동, 시술, 패션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사회적 생존력’을 높이려는 시도도 부지런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의 담론을 산업으로 확장해보면 요즘 뜨는 브랜드들의 공통점으로 ‘미적 감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새벽 배송’이라는 서비스 특성에 맞춰 새벽을 상징하는 보라색을 채택한 마켓컬리는 대표 색상 덕에 브랜드 감성을 효율적으로 알리는 데 성공한 사례로 꼽힙니다.

한편 보다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의 성공 엔진, 즉 창의성을 기업 문화에 탑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현재 기업 교육의 90%가 기능 분야에 치중돼 있는 만큼 적어도 50%는 창의성을 자극하는 인문, 예술 교육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브랜드 홍수와 과잉으로 밀레니얼세대의 92%가 “특정 브랜드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 와중에 불황과 인플레이션 공포마저 드리워져 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생존력을 높이려면 대체불가능한 탁월성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차별화 전략으로 기업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줄 비밀 병기는 미학, 즉 아름다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이번 호 스페셜 리포트는 아름다움의 선행 요소인 창의성, 아름다움을 기술과 기업 전략에 장착하는 방법 등을 입체적으로 담았습니다. 아름답지 않게 하 수상한 시절, 어둠을 뚫고 미래로 안내할 빛이 될 아름다움의 세계에 주목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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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편집장•경영학박사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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