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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고피자(GOPIZZA)’의 스케일업 전략

3분 만에 구워내는 1인용 화덕피자!
AI로 품질 관리하며 글로벌 입맛 유혹

이규열 | 351호 (2022년 0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화덕에 구운 1인용 피자 브랜드 ‘고피자(GOPIZZA)’는 피자 업계의 맥도날드가 되겠다는 목표로 출범했으며 2016년 여의도 밤도깨비 푸드트럭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매장 출점 이후에는 인공지능(AI), 로봇 등 다양한 기술을 주방에 적용, 사람이 일하기 쉽게 주방을 효율화하고 제품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국내 시장이 가진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 해외 시장을 창업 초기부터 공략했다.



편집자주

DBR가 Case Study와 관련된 독자 여러분들의 의견을 구하는 ‘생각해볼 문제’를 마련했습니다. 기사 말미에 소개된 안내에 따라 여러분의 생각을 공유해주세요.

어느 피자 가게의 주방 안. 도우 성형, 토핑 올리기, 피자 굽기 등 해야 할 작업은 산더미인데 직원은 단 한 명뿐이다. 이제 출근한 지 1달도 안 된 신입 직원이지만 프로처럼 피자를 만들어낸다. 미리 초벌된 수타 파베이크 도우를 토핑 테이블에 올리면 인공지능(AI)이 어떤 재료를 얼마큼 올려야 할지 알려준다. 토핑 작업이 완료되면 피자는 컨베이어 형식의 자동 화덕으로 들어간다. 피자가 구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분. 일반 화덕처럼 열을 고루 전달하기 위해 사람이 직접 화덕 속 피자를 삽으로 돌려 줄 필요도 없고, 프랜차이즈에서 사용하는 오븐보다 2배 이상 빠르다. 피자가 다 구워지면 로봇 팔이 피자를 자르고, 피자 종류에 맞는 소스를 뿌리며, 다른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피자가 식지 않도록 온열 장치로 옮긴다.

먼 미래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1인 화덕 피자 브랜드 ‘고피자(GOPIZZA)’의 주방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고피자는 매장이 빠르게 늘어나자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AI, 로봇 등을 활용한 푸드 테크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했다. 사람의 감에 의존하던 프랜차이즈 매장 내 업무들을 일관적, 효율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주방의 자동화 솔루션을 비롯해 매장 관리 IoT 솔루션 등을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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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테크 스타트업의 면모가 강한 고피자지만 사실 출발점은 푸드트럭이었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임재원 고피자 대표는 야근을 마치고 나온 퇴근길에 피자가 먹고 싶었고, 빠르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1인용 피자가 있었으면 싶었다. 그때부터 ‘피자 업계의 맥도날드’가 되겠다는 목표로 피자 매장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며 피자를 공부했고, 피자가 패스트푸드가 되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기존의 프랜차이즈 방식으로는 피자를 만드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란 걸 깨닫고 이후 맥도날드처럼 되기 위한 방법을 기술에서 찾았다. 빠르게 피자를 만들기 위해 자동 화덕, 파베이크 도우를 개발했고, 품질 유지를 위해서는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 협업 로봇 고봇 스테이션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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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피자는 2018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첫 매장을 낸 데 이어 현재 전 세계에서 157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2020년 매출은 약 107억 원으로, 그해 중소기업벤처부 아기 유니콘 기업에 선정됐다. 2021년 매출은 약 135억 원, 연평균성장률(CAGR)은 260%로 올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꼽은 ‘아시아태평양 고성장 기업’ 전체 11위, 외식 업계 2위로 뽑혔다. 국내 외식업 시장이 지닌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19년 인도 진출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홍콩 등 약 30개의 해외 매장을 내는 등 해외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5년 미국 시장에 상장하고, 2030년까지 전 세계에 매장 1만 개를 출점하는 게 고피자의 목표다. 푸드트럭으로 시작한 고피자는 어떻게 푸드 테크 기업으로 성장해 유니콘을 꿈꾸게 됐을까. 또한 어떤 기준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해 스케일업에 성공했을까. DBR가 기술로 고성장을 이루고 있는 고피자의 스케일업 전략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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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피자

피자 업계에는 왜 맥도날드가 왜 없을까

맥도날드와 도미노피자, 세계 최대의 글로벌 프랜차이즈이자 정크푸드를 판다는 점에서 두 브랜드는 얼핏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맥도날드와 도미노피자를 찾는 고객들의 소비 행태는 매우 다르다. 맥도날드의 핵심은 속도다. 맥도날드를 창업한 맥도날드 형제는 캘리포니아에 드라이브인 식당을 냈고, 1948년 스피디(Speedee) 시스템을 도입해 ‘30초 만에 음식이 나오는 레스토랑’을 구현하며 맥도날드만의 경쟁 우위를 마련했다. 두 형제는 헨리 포드의 자동차 생산 조립 라인에서 힌트를 얻었다. 햄버거, 감자튀김, 음료 등 조리가 빠르고 간편한 음식 위주로 메뉴를 제한했고 주방 동선 효율화와 분업화 등 과학적 관리를 통해 패스트푸드의 시초가 됐다.1

이처럼 맥도날드의 고객들은 간편하고 빠른 식사 또는 간식을 즐기기 위해 맥도날드를 찾는다. 반면, 피자는 식사를 위한 배달 음식이다. 도미노피자에서 음식이 나오는 데는 맥도날드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고객들은 매장을 찾기보다 배달을 통해 집에서 피자를 즐긴다.

2015년 2월, 야근이 끝나고 퇴근하던 길에 임 대표는 피자가 먹고 싶었다. 그러나 이내 발길을 맥도날드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입 짧은 임 대표에게 피자는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심지어 당시 스타트업의 신입 사원이었던 임 대표의 월급은 200만 원 남짓. 한 끼 식사로 피자를 먹겠다고 2만 원 넘는 돈을 쓰기엔 부담이 컸다. 당장 허기를 달래고 싶지만 주문 후 적어도 1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피자는 크기, 가격, 시간 등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음식이었다.

전 세계 피자 시장의 규모는 약 1400억 달러.2 이렇게 전 세계 사람이 피자를 많이 먹는데 왜 빠르고, 저렴하고, 작은 피자는 없는 걸까. ‘맥도날드 햄버거처럼 3분 만에 완성되고 저렴한 1인용 피자를 만들겠다’는 영감이 임 대표의 뇌리에 강하게 꽂혔고, 그날 밤 이 아이디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PPT로 정리했다. 이 목표는 임 대표가 향후 고피자를 이끌어나가는 데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의 준거점이 됐다.

3분 만에 구워지는 1인용 화덕 피자 4900원
푸드트럭, 팝업 매장 거쳐 1평 매장으로

임 대표는 피자가 부담스러운 음식이 된 원인을 찾아 나섰다. 주변인들은 임 대표의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 ‘가능한 일이면 누군가 이미 했을 것’ ‘누군가 이미 해보고 실패했을 것’이라는 등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백문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임 대표는 두 눈으로 그 이유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소심한 성격이었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우연히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피자 배달부에게 피자 조리 시간을 물을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직접 현장을 경험해 보기로 결심하고 한 글로벌 피자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3개월간 주말에 피자 만드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이때의 경험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피자 시장의 문제점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우선, 피자를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가장 큰 원인은 오븐에 있었다. 보통 피자가 완성되는 데 15∼20분가량이 걸리는데 이 중 약 8분이 오븐에서 피자를 굽는 데 소요됐다. 보통 피자 프랜차이즈에서 사용하는 컨베이어벨트 형식의 오븐은 뜨거운 바람으로 피자를 익힌다. 사람의 손을 거칠 필요 없이 열이 고르게 전달된다는 게 장점이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 단점이었다. 피자 도우를 성형하는 과정 또한 고난도로 특히 초보자들에게 많은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임 대표는 구글에 ‘피자 빨리 굽는 법’을 검색했다. 구글은 생각보다 친숙한 방법을 솔루션으로 내놓았다. 바로, 화덕을 이용하는 것. 화덕의 고열을 활용하면 피자를 3분 만에 구울 수 있다. 임 대표는 300만 원짜리 소형 화덕을 구입해 서울 인사동에 있는 어머니의 한식당 주방 한편에 두고 퇴근 후 화덕 사용법을 익히면서 메뉴를 개발했다. 또한 한 차례 초벌돼서 판매되는 파베이크 도우를 사용하면 복잡한 반죽 성형 과정 없이 더욱 빠르게 피자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임 대표는 1인 피자에 맞는 사이즈로 타원형 모양의 파베이크 도우를 만들었다. 타원형 모양은 임 대표만의 시그니처 디자인으로 기존 피자의 문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뜻이 담겼다.

임 대표는 3분 만에 구워지는 1인 화덕 피자의 가능성을 시장에서 직접 테스트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임 대표는 27세의 사회 초년생이었다. 당장 매장을 내기에는 돈도 부족했고 직장을 관둘 용기도 없었다. 임 대표는 주말마다 푸드트럭에서 장사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에 은행에서 일부 대출을 받고 부모님, 심지어 현재 아내가 된 여자친구에게서 돈을 빌려 2000만 원의 예산으로 푸드트럭을 준비했다. 300만 원짜리 중고 트럭을 매입해 개조했고, 마침 2016년 3월 서울 여의도에서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입점할 푸드트럭 30개를 선발하는데 운 좋게 입점에 성공했다. 가게 이름은 ‘쉽게 가서 먹고 나온다’는 뜻으로 ‘고피자’로 지었고 지금의 회사와 브랜드 이름이 됐다. 그렇게 시작한 ‘4900원짜리 1인 화덕피자’를 파는 푸드트럭은 대박이 났다. 첫날부터 매출 300만 원을 기록한 데 이어 입소문에 힘입어 웨이팅이 점점 길어졌다. 트럭을 개조해 화덕을 3개까지 늘리며 1시간에 피자를 200개씩 만들었고 하루 700만∼800만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 임 대표는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2017년 법인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고피자 키우기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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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매장을 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푸드트럭을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돈도 확신도 부족했다. 마침 백화점으로부터 팝업 매장 입점 제안이 왔다. 매장을 내기까지의 징검다리 단계라 생각하고 제안을 수락했다. 팝업 매장은 매출에는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자리를 잡을 만하면 다른 지점으로 옮겨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고, 정산이 느려 현금 관리에 어려움을 겪게 된 탓에 법인 통장에 현금이 8만 원밖에 남지 않는 순간도 있었다. 다행히 기술보증기금의 프런티어 벤처기업으로 선정됐고 엔젤투자자를 만나 어려운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돈 관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백화점 팝업 매장을 운영하며 프랜차이즈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갖춰 나갔다. 그 과정에서 기술이 필요했다. 우선 화덕을 손봐야 했다. 빠르게 피자를 굽는 화덕은 고피자의 핵심이었으나 직원들이 화덕 사용 방법을 익히는 데 많은 시간과 힘이 들었다. 보통 화덕은 한쪽 면에만 불이 있어 고루 음식을 익히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삽 등으로 화덕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을 돌려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삽 자체도 무거워 건장한 성인 남성들도 쉽게 지치기 마련이었다. 임 대표는 푸드트럭을 함께 개조했던 기술자와 함께 자동으로 회전하고 온도를 조절하는 화덕 ‘고븐(GOVEN)’을 개발했다. 파베이크 도우를 대량 생산해 매장에 공급할 수 있도록 강원도에 공장 설립도 계획했다. 외부 업체로부터 파베이크 도우 1장을 구입하는 값이 약 2000원에 달했기에 마진을 개선하기 위해서라도 자체 생산이 필요했다.

본격적으로 매장을 차릴 준비를 마친 임 대표는 2018년 9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사거리에 위치한 3.3㎡(1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 매장을 얻었다. 푸드트럭을 경험해 보니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매장 크기를 줄일수록 월세 부담을 낮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학원가에 위치해 있어 학생들의 수요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가격대 역시 4900원부터 시작해 학생들의 간식으로 포지셔닝하기에 맞춤이었다. 특히 청소년들은 음식에 대한 편견이 적어 고피자가 추구하는 바대로 피자를 패스트푸드처럼 즐길 것이라 생각했다.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품질 관리
맥도날드 80년 매뉴얼 따라잡는 푸드 테크

고피자 1호점은 성공적이었다. 주 고객인 대치동 학원가의 학생들은 임 대표의 의도대로 학교와 학원이 끝나면 떡볶이, 햄버거를 먹듯 고피자에서 피자를 먹었다. 매장은 공실로 나온 옆 가게 공간까지 흡수해 42.9㎡(13평)로 확장했다. 1호점을 내고 3개월 만에 국내 20호점을 돌파했고 다음 해인 2019년 6월에는 인도 벵갈루루에 매장을 내며 글로벌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모든 게 순탄 대로를 달리는 듯 보였지만 매장이 약 30개가 넘어가는 순간 일이 터졌다. 임 대표는 고객들이 찍어 올린 리뷰 사진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본사에서 개발한 메뉴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피자들이 판매되고 있었던 것. 심지어 몇몇은 고객들에게 내놓기에 부끄러운 수준이었다. 매장 수가 적을 때는 본사 직원이 직접 매장을 방문하며 철저하게 품질을 관리할 수 있었지만 매장이 국내외로 뻗어가다 보니 품질 관리에 구멍이 생긴 것이었다. 프랜차이즈의 본질은 맛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제품의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달은 순간이었다.

사실 품질 관리 실패는 모든 프랜차이즈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다. 맥도날드는 그 해답을 시스템으로부터 찾았다. 실제 맥도날드는 전 세계 어디서 빅맥을 주문해도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자부한다. 린다 니클라슨 품질 시스템 담당 이사는 2019년 국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맥도날드의 글로벌 존재감은 메뉴의 일관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맥도날드는 농장에서 재료를 수급해 공장에서 가공하고 매장에서 제품이 조리돼 고객에게 이르기까지 모든 공급망 사슬을 표준화했다. 주방의 위생은 물론 재료가 이송되는 차량과 보관되는 창고의 온도까지 관리한다. 공급 업체에도 관련 교육이나 평가를 엄격하게 진행한다.3  

이처럼 프랜차이즈 사업자들은 세분화된 매뉴얼을 만들지만 문제는 매뉴얼 역시 사람 손을 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소스 등 일부 재료의 경우 그 양을 사람의 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엄격한 품질 유지를 위해 매뉴얼을 고도화할수록 이를 따르는 직원들의 부담이 늘어난다. 매뉴얼을 꼼꼼히 숙지해도 까먹고 실행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자기 입맛대로, 기분대로 피자를 만드는 직원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직원들의 잦은 퇴사도 복병이다. 보통 3개월은 일해야 숙련이 되는데 아르바이트생이거나 학생인 직원 비율이 높아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퇴사한다. 그 공백은 2주 정도 인수인계를 받은 새로운 아르바이트 직원이 채운다. 초보 입장에서는 레서피와 동선을 외우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이며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지 못해 병목이 생기기도 한다.

고피자는 매뉴얼을 체계화하는 작업이 중요하지만 품질 유지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030년까지 전 세계에 1만 개 매장을 내야 하는데 맥도날드가 전 세계에 매장을 약 4만 개 세우는 데 걸린 80여 년 동안 쌓은 매뉴얼과 노하우를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에 따라잡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매장 관리 직원의 채용을 늘리는 것 역시 비용이 많이 들고 교육에도 시간이 걸려 빠른 개선에는 적합하지 않을 듯했다. 또 이들이 방문할 때만 매뉴얼을 반짝 잘 지키는 매장도 부지기수다.

임 대표는 CCTV라도 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전 매장의 CCTV를 일일이 확인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문득 ‘스스로 생각하는 CCTV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품이 고객에게 나가기 전 AI가 한 차례 품질을 검수할 수 있다면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언제나 일정한 품질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매장에 카메라, 클라우드 컴퓨터만 있으면 되기에 보급도 용이해 보였다.

고븐, 파베이크 도우 등 기술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 임 대표였지만 AI는 훨씬 더 고차원적인 기술이었다. 마침 군대 훈련소 동기가 떠올랐다. 현재 고피자의 미래기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이범진 씨였다. 그는 한 대학의 바이오지능연구실에서 머신러닝을 연구하고 있었다. 임 대표는 조언을 구하고자 그를 찾아갔고 마침 책 속 지식만을 익히는 데 염증을 느끼던 이 소장은 흔쾌히 고피자에 합류했다. 2020년 2월 미래기술연구소가 설립되며 고피자의 기술 역량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동시에 푸드 테크 기업으로 발돋움을 하는 순간이었다.

주방에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술은 ‘사람 도우미’가 돼야

그렇게 약 3년간 고피자의 ‘테크 별동대’는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다. 피자를 만드는 전 과정에 기술을 적용해 비용, 생산성 등을 꼼꼼히 테스트했다. 첫 아이디어였던 제품 품질 감독용 AI 카메라뿐 아니라 도우를 성형하거나 토핑, 커팅을 하는 로봇 등 갖가지 종류의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기술이 할 수 있는 일과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의 범위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됐다.

고피자는 현재로서는 주방을 완전 자동화하는 일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사람이 하면 큰 고민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로봇이 해결하기 위해선 막대한 비용과 부품이 필요하다. 또한 수많은 개발자가 매달려 모든 의사결정에 대한 알고리즘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로봇이 조리 중 흘린 소스를 닦는 작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소스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가 있어야 하고, 이 소스를 닦을 로봇 팔이 필요하다. 로봇 팔에서 손과 같은 역할을 하는 그리퍼에 행주가 달려야 하며, 행주를 세척할 수 있는 세척 도구도 필요하다. 현재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그리퍼의 가격은 억 원 단위다. 고작 소스 닦는 작업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고비용 부품이 필요한데 주방의 모든 작업을 자동화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큰 비용을 들여 주방을 완전 자동화했다고 하더라도 운영상의 문제가 남는다. 로봇은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없다. 본사에서 진행한 프로모션이 대박이 나 매장에 고객이 몰려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양 이상을 생산할 수 없어 주문이 밀린다. 직원들이 일하는 주방이라면 평소보다 작업을 더 빠르게 진행하거나 급하게 직원을 더 불러 밀린 주문을 해소할 수 있다. 실제 프랜차이즈의 특성상 가족 경영이 많기에 일이 많을 때 집에 있던 가족을 부르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홀 직원이 주방의 상황을 파악하고 고객에게 양해를 구해 불만을 줄일 수도 있다.

크고 작은 고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로봇의 문제였다. 본사 매장에 로봇을 비치했다가 고장으로 인해 매장 문을 닫은 날도 많다. 로봇 기술이 더욱 발전해 고장의 위험이 줄고, 로봇이 상용화돼 부품이 저렴해져야 완전 자동화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피자가 생각하는 기술의 역할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것’이다. 완전 자동화가 불가능하기에 주방에 사람은 꼭 필요하다. 사람이 보다 일관적이고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술의 몫인 것이다. 토핑 등 핵심 작업은 사람이 하되 AI는 사람이 보다 편하게 레서피를 익히고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할 수 있도록 보조, 관리한다. 소스 드리즐, 커팅 등 복잡한 의사결정이 필요 없는 후반부 작업은 로봇 팔을 통해 이뤄지고 이로써 절약한 시간만큼 사람은 매장 청소, 설거지 등 다른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 이들 작업이 조리 마무리 단계라 주문이 밀려도 보다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로봇이 전반부 작업을 맡으면 조리 초기 단계부터 병목이 발생해 전 과정에 차질을 빚는다. 마지막 단계에서 로봇으로 인해 병목이 발생하면 로봇을 끄고 사람이 그 작업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DBR minibox Ⅰ: 고피자의 혁신 기술력)

각 기술은 모듈화돼 있어 매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선택해 적용할 수 있다. 몇몇 매장에는 꼭 필요한 기술이 다른 매장에는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컨대, 로봇 팔인 고봇 스테이션은 6000만 원에 이르며 비용과 생산성을 따졌을 때 월 매출이 5000만 원 이상 나오지 않는 매장에는 불필요하다. 매출이 뒷받침되고 쇼핑몰, 공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에 위치한 매장이라면 로봇 자체가 사람들을 끄는 볼거리로 작용하기도 해 고봇을 쓰는 편이 좋다. 자동 화덕인 고븐 역시 컨베이어 자동화를 적용해 고봇과의 연계가 가능한 고븐 2.0과 사람이 직접 음식을 넣었다 빼는 고븐 1.0 중 매장 상황에 맞는 버전을 선택할 수 있다. 단, 직원 교육과 품질 유지의 핵심을 담당할 관리용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은 내년 2023년까지 전 매장에 도입할 예정이다. 카메라와 클라우드 컴퓨터 등 설비가 단순해 비용은 약 100만 원 수준이다.

고피자는 주방뿐 아니라 매장을 관리하기 위한 기술도 개발 중이다. 매장의 온도, 조도, 음악 크기 등을 감지해 자동으로 조절하는 센서도 개발했다. 특히 여름에는 냉방으로 인한 높은 전기세가 자영업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매장 마감 이후에도 에어컨을 켠 채 매장을 떠나는 직원들도 많다. 다음 날 개장 시간에 일하는 직원들이 출근해서 더울까 봐 밤새 에어컨을 켜두는 것이다. 고피자는 매장 관리 센서를 통해 전기세를 매장당 평균 월 50만 원 절약했다. 플랫폼의 주문 데이터, POS의 판매 데이터, 창고의 재고 데이터 등을 연동해 자동으로 재료를 발주하는 시스템도 개발 중이다. 재고 관리와 발주 역시 사람이 일일이 남은 재료를 세고 필요한 재료를 가늠하는 등 사람의 감이 크게 개입되는 작업이다. 예측이 잘못될 경우 재고가 많이 남아 폐기 처리를 하거나 반대로 모자라 매장을 일찍 닫는 일이 발생한다. 여러 데이터를 복합적으로 분석해 재고를 자동으로 추정하고 예측 수요에 따라 자동으로 재료를 발주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임 대표는 고피자가 ‘피자계의 맥도날드’인 동시에 ‘프랜차이즈 업계의 오라클’이 될 것이라 말한다. 그간 프랜차이즈 매장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얻은 디지털 전환의 성과들을 다른 기업에 B2B 솔루션으로 제공할 예정이다. 최근과 같이 구인난,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을 고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최소의 인원이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도록 돕는 고피자의 솔루션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시작점은 본사의 관리를 위한 것이었지만 매장을 운영하는 점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셈이다. 실제 한 프랜차이즈 대기업과 주방 자동화 관련 프로젝트를 논의 중이며 2023년에는 기술 영업 조직을 신설해 기술 제공 관련 사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인도에서 맛보는 K-피자
해외시장은 고성장 위한 선택 아닌 필수

국내에서 프랜차이즈로 낼 수 있는 매장은 약 1000개 정도로 한정돼 있다.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국내 외식 업계에서 유니콘이 탄생하지 못하고 외식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장에 성공해도 기업 가치가 작다. 유니콘이 되고자 한다면 해외 진출은 필수이며 고피자의 투자자들 역시 중국, 미국, 인도 중 한 시장은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국은 국내 외식 업체가 수차례 진출했지만 크게 성공한 전례가 없어 첫 해외 진출 국가로는 큰 모험이었고, 미국은 거리가 멀어 출장과 물자 조달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장 조사 겸 처음 인도에 출장을 다녀온 임 대표는 인도의 광활한 땅과 다이내믹하게 변하는 시장을 보고 난생처음 느껴보는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단적으로 유선 전화를 사용하다 바로 5G로 넘어갈 정도로 기술이 급발전하고 있는 게 인도였다. 시장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코트라에 따르면 인도의 피자 시장은 약 7조 원 규모로 연간 20%씩 성장하고 있었다. 국민 평균 연령이 28세인 젊은 국가로 피자와 같은 서양 음식과 한류 문화에 우호적이란 점도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도미노피자 외엔 마땅한 글로벌 피자 프랜차이즈가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인도 시장을 개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내 1호 매장을 낸 지 약 9개월 만인 2019년 6월, 인도 벵갈루루에 첫 해외 매장을 열었다. 벵갈루루는 인도의 주요 산업도시 중 하나로 인도의 실리콘밸리라 불린다.

고피자는 현지에서 파트너를 찾거나 라이선스를 판매하지 않고 직접 해외 법인을 설립해 진출했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 한국 고피자의 시스템을 그대로 이식해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함이다. 한국 고피자와 마찬가지로 파베이크 도우와 화덕을 이용한다. 올해 중 인도 내에 파베이크 도우 공장도 세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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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국가에 맨땅에 헤딩하듯 진출을 선언하다 보니 겪어야 할 우여곡절도 있었다. 우선, 인도 사람들의 일 처리 속도가 매우 느렸다. 건설 업자들이 일정을 어기고 당일에 잠수를 타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한국에서는 2∼3일이면 끝나는 일이 인도에서는 3달 가까이 소요됐다. 종교가 많은 만큼 공휴일도 많아 일 처리는 더욱 느려졌다. 인종차별인가 의심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약속을 미루는 게 일상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장의 잠재성은 막대하지만 한국과 같이 빠른 확장을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였다. 당장의 대박을 바라기보다는 장기적인 가능성을 믿고 인도 시장에서 먹히는 방법을 모색하는 편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인도 시장에 맞게 포지셔닝을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인도에서는 한국의 가성비 전략과는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사실 한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국가에서 도미노피자는 저가 브랜드에 속한다. 인도의 도미노피자에는 900원짜리 피자도 있다. 인도에서는 가성비보다는 푸드 테크를 통한 높은 품질을 앞세워야 도미노피자와의 경쟁에서 차별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피자와 비슷한 난이 인도인들의 주식인 만큼 이들이 보다 익숙하게 고피자의 피자를 즐길 수 있도록 마살라 양념 등 인도식 재료를 활용해 메뉴를 현지화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 덕에 낯선 인도 시장에서 2021년 고피자의 매출은 전년 대비 500% 이상 성장했으며 올해 들어 월 매출은 2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고피자는 싱가포르, 홍콩에도 진출했으며 현재 해외에 있는 고피자 매장은 약 30개에 달한다. 싱가포르는 규모는 작아도 동남아시아의 경제 허브로서 전반적인 경제 수준이 높다. 무엇보다 임 대표가 유학 생활을 한 만큼 문화적으로 이해도가 높은 동시에 한류 열풍이 강하게 일어난 나라다. 한식을 가미한 불고기피자, 양념치킨피자 등이 주요 메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싱가포르에도 비건식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어 비건 피자도 개발했다. 홍콩 시장은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올해 9월에는 인도네시아에 매장을 열고 내년에는 미국 진출도 모색해 2025년 미국 상장을 준비할 예정이다.


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DBR mini box I

고피자의 혁신 기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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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

AI를 적용한 토핑 테이블에서 카메라가 작업자와 토핑 및 소스의 종류, 양, 위치 등을 파악해 작업자별 숙련도를 파악한다. 만약 일부 재료가 모자라게 들어가면 경고음을 통해 바로 알리는 등 조리 과정 중 실수를 방지하고 반복적으로 실수하는 작업자를 파악해 이들에 대한 재교육을 제안하기도 한다. 교육용으로 개발된 모델은 작업 중 레서피를 음성으로 안내해 레서피를 숙지하지 못한 초보도 바로 숙련자처럼 피자를 만들 수 있다. 특히 초보자든 숙련자든 모두에게 익숙지 않은 신메뉴의 경우 품질 유지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이 더욱 유용한 솔루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재료 모형을 활용해 초기 알고리즘 제작에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했고, 현재는 매장으로부터 하루에 약 3000∼5000개의 피자, 수만 개의 토핑 데이터를 수집해 알고리즘을 정교화하고 있다.

2. 협동로봇 고봇 스테이션(GOBOT STATION)

고피자가 개발한 로봇 팔이다. 조리 마지막 단계 작업들을 담당한다. 피자가 구워져 나오면 피자를 자르고, 그 위에 소스를 뿌리고, 온열 공간으로 운반한다. AI 스마트 토핑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카메라가 부착돼 있어 피자 종류에 맞는 소스를 뿌린다.

3. 수타 파베이크 도우

파베이크란 빵 반죽을 70∼80% 정도만 구운 뒤 급속 냉동한 것. 고피자는 매장에서 반죽을 성형할 필요 없이 빠르게 피자를 만들기 위해 파베이크 도우를 사용한다. 2019년 강원도에 파베이크 전용 공장을 설립했고, 2021년에는 수타 파베이크 도우를 출시해 전국 매장에 납품하고 있다. 수타 파베이크 도우의 장점은 배달 이후에도 빵이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4. 자동 화덕 고븐(GOVEN)

기존 화덕은 불이 한쪽 면에만 있고 회전 기능이 없어 고루 음식을 익히기 위해서는 사람이 직접 삽 등으로 음식을 돌려야 하지만 고븐은 자동으로 회전하고 온도도 자동으로 조절한다. 한 번에 5개의 피자 및 파스타를 조리할 수 있고 피자의 경우 3분이면 완전히 구워진다.

DBR mini box II: Interview: 임재원 대표

“로봇과 AI 주방… 직원들이 테크 회사라며 뿌듯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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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원 고피자 대표는 싱가포르대에서 경영학 학사, 카이스트에서 경영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스타트업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6년 1인 화덕 피자를 파는 푸드트럭을 시작으로, 2017년 본격적으로 법인을 설립해 창업의 길로 뛰어들었다. 2019년에는 걸그룹 블랙핑크, 축구 선수 이강인 등과 함께 미국 포브스지가 꼽은 ‘아시아의 30세 이하 리더 30인(30/30 Asia 2019)’에 선정됐다.

임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피자계의 맥도날드’가 되겠다고 선언하며 2030년까지 전 세계에 1만 개의 매장을 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임 대표에게 이처럼 확고한 목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해결책을 찾아야 할지 제시해주는 북극성 같은 존재였다. 고피자는 빠른 속도로 가파른 성장을 이루기 위해 일찍이 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등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큰 포부를 좇는 과정에서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사업 초기부터 기술을 개발하고 해외시장을 공략하는 등
진취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기술 개발이나 해외 진출 등을 특별히 빠르게 진행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피자 업계의 맥도날드가 되겠다는 목표가 확고했기에 그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을 확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현재 맥도날드가 전 세계에 매장을 약 4만 개 내기까지 80여 년이 걸렸다. 비슷한 관리 체제를 10년 만에 갖춰야 하는 입장에서는 기존의 방법으로는 도통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고 기술을 통해 승부수를 띄울 수밖에 없었다.

국내에 상장한 프랜차이즈 기업의 PER(수가수익비율)는 약 5∼6배, PSR(주가매출비율)는 1배가 채 안 된다. 반면, 글로벌 기업인 도미노피자의 PER는 40배, PSR도 4배가 넘는다. 2025년 상장을 목표로 하는 만큼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도 해외시장 진출은 필수다. 2019년 처음 해외시장에 진출했는데 직후에 팬데믹이 덮쳤다. 그때 해외로 나가지 않았으면 현재까지도 해외 사업 개척은 어렵지 않았을까. 목표로 하는 매장 수가 많아서 큰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유리한 측면도 있다.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내부의 반대는 없었나.

기존 외식 업계에서 온 임원들은 오히려 환영했다. 다들 업계 관행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온 사람들이라 그랬던 것 같다. 반면, 사업부와 연구소 사이에 갈등은 있었다. 초기에 사업부는 연구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돈을 벌어오는 사업부 입장에선 마땅한 결과물도 없는데 큰돈을 쓰는 연구소가 못마땅해 보였을 것이다. 로봇을 실험한다고 매장에 설치해 뒀다가 고장 문제로 매장 문을 닫은 날도 여럿이었다. 개발자들에게 외식 업계가 익숙지 않아 이직도 잦았다.

그러나 겪어내야 할 성장통이라고 생각했다. 사업부에서는 불만을 표하기도 했으나 연구소에 대한 지원은 끈기 있게 밀어붙였다. 기술로서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선 응당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 동안 ‘실패해도 괜찮다’ ‘다시 하면 된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연구소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대하며 도전을 장려했다.

그러다 보니 쓸 만한 기술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의 그럴싸해 보이는 결과물이 나오기 앞서 점주들이 본사의 공지를 읽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사업부 직원들이 메신저로 점주들에게 공지를 알리고, 답변이 없으면 일일이 전화해서 공지를 읽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사업부에 도움이 되는 기술이 탄생하자 사업부도 연구소의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연구소에 대한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 7월 그간 연구소에서 개발한 결과물을 ‘Future of Restaurants’i 라는 영상을 만들어 공개했다. 그간 말로만 만들겠다고 들었던 AI와 로봇이 적용된 미래형 주방의 모습을 고객뿐만 아니라 사업부, 투자자 모두가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영상이 공개되고 직원들과 투자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이게 되네’였다. 몇몇 사업부 직원은 단순히 피자 회사가 아니라 테크 회사에 다닌다며 주변에 자랑했다고 한다. 현장에 기술을 적용하기 전에 반발을 줄이고자 만든 영상인데 이 영상 하나로 조직이 딴딴해졌다. 얼마 전에는 연구소에서 자체적으로 피자 만드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사업부에 교육을 요청하기도 했다. 요즘 사업부와 연구소의 소통이 부쩍 늘어난 모습을 보면 마냥 행복하다. 3년 전 이범진 소장 혼자였던 연구소도 하나둘 인원이 충원돼 10명까지 늘었다. 이 영상은 연구소의 끈기, 사업부의 배려, 투자자들의 믿음으로 탄생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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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도 기술을 앞세워 피자 시장에 진출했다
실패한 사례들이 있다.

대부분 미국의 스타트업인데 패착은 ‘기술을 과신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예컨대, 이들 업체 대부분은 토핑 작업을 자동화하려 했다. 보통 통에 보관된 토핑들이 관을 타고 내려와 원형의 도우 위에 떨어지는 식이다. 토핑에 맞는 보관 통, 관의 형태가 정해지고 한 번 설비가 갖춰지면 토핑과 메뉴의 종류가 한정될 수밖에 없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기 힘들다. 토핑이 지나다니는 관은 쉽게 썩어서 세척이 필요하므로 결국 막대한 비용을 쏟아 설비를 구축했음에도 사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실패 원인으로 맛이 떨어진다는 평가와 더불어 직원의 숙련도 문제가 꼽히기도 한다.

고피자는 토핑 작업을 핵심 작업으로 여겨 로봇에 맡기지 않는다. ‘피자는 보이는 게 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맛있어 보이면 실제로도 맛있고 그 중심에는 토핑 작업이 있다. 고장의 위험이 있는 로봇에 핵심 작업을 맡길 수는 없다. 즉, 사람의 작업이 피자의 품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대신, 사람의 토핑 작업을 보조하고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기술로 시작한 푸드 테크 스타트업이라면 데이터를 축적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대부분 연구실에서 데이터를 쌓아 활용할 데이터세트가 부족하거나 이를 테스트할 매장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고피자는 프랜차이즈로 시작해 기술 개발에 돌입했을 때부터 직영점이라는 훌륭한 테스트베드가 있었다. 초기 다양한 사업적 실험을 위해 직영점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린 점이 큰 도움이 됐다. 현재 하루 수만 건의 토핑 데이터가 매장 현장으로부터 수집되고 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술과 인적자원 양 날개 전략… ‘K-맥도날드’ 기대감

고피자의 비전은 피자 업계의 맥도날드가 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30∼40년 전에 맥도날드가 피자의 패스트푸드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점이다. 피자 제조에 오랜 시간이 걸려 주방이 주문량을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피자는 기술 혁신을 적절히 활용해 피자의 패스트푸드화에 성공했고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고피자의 성공 요인 및 시사점을 살펴보자.

첫째, 고피자는 업계의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개선했다. 블루오션 전략의 핵심인 가치 혁신은 업계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을 제거하거나 감소시켜 비용을 절감하고 업계에서 간과됐던 요소를 강화하거나 추가해 차별화를 모색하는 것이다. 고피자는 각 매장에서 개별적으로 행해지던 도우 숙성 및 펼치기 과정을 없애고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파베이크 도우로 대체했다. 조리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자동으로 회전하는 ‘고븐’을 고안했다. 이 모두가 ‘피자란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는 업계의 관행에 의문을 제기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은 결과물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고피자의 해결 방식이 이 세상에 없던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한 게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 통용되는 방법을 피자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파베이킹 공법은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가맹점의 효율성을 높이고 품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보편화된 방식이다. 화덕의 고열이 골고루 닿을 수 있도록 판을 회전시키는 방식은 전자레인지와 유사하다. 관행은 업계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로 과거의 시행착오를 통해 검증된, 오랜 세월 축적된 지식의 한 형태이다.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는 도전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는 다른 업계에서 인정받고 통용되는 방법, 즉 다른 업계에서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타 분야에서 합법성(legitimacy)을 인정받은 방법을 새로운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최적 차별화(optimal distinctiveness)ii 를 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Zhao et al., 2017).iii 친숙한 참신성, 즉 그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보다는 새롭지만 익숙한 아이디어가 성공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둘째, 고피자는 사용자 중심의 기술 개발을 추구했다. 혁신적인 기술로 조직의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이는 기술에만 의존해서는 조직 성과를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기술적 요구와 사회적 요구의 공동 최적화(joint optimization)가 중요하다는 사회기술시스템이론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즉, 조직의 상황을 무시한 혁신적인 기술 개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고피자는 각 매장에서 누가 조리하든지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도록 기술 혁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파베이크 대량 생산을 통해 도우의 일관성을 유지했고 ‘고븐’에도 디지털식 온도계 2개를 달아 피자에 가해지는 열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등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했다.iv 최근에는 비전과 AI 기술을 활용해 작업자가 요구되는 토핑을 올바르게 작업했는지 판단하고 교육할 수 있는 장비도 개발했다. 로봇을 통한 완전 자동화를 지향하기보다 피자 커팅 등 사람이 일관되게 수행하기 어렵고 큰 의사결정이 필요하지 않은 작업을 로봇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로봇을 중단시키고 사람이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사람이 기계보다 수요 변동성에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피자는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팀이 현장의 니즈를 이해하고 보완적인 기술을 개발하도록 노력했다. 기술로 대체 가능한 영역과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 조직 내 기술 시스템과 사회 시스템이 상호 보완적인 균형 상태를 유지한 것이 주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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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기업 가치 제고를 위해 고피자는 조기 국제화를 추진했다. 일반적으로 외식업은 기업 가치를 높이 평가받기 어렵다. 국내 시장만을 목표해서는 성장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고피자는 창업 후 2년 만인 2019년,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인도에 진출했다. 조기 국제화로 더 큰 규모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첫 진출 국가로 인도를 선택한 것도 적절했다. 유럽이나 미주 지역은 자국 문화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아시아 지역의 외국 기업이 현지에서 자리 잡기 쉽지 않다. 반면, 인도는 유럽, 미주에 비해 한국 문화 수용도가 높고 지리적 거리가 짧아 커뮤니케이션이 편하다. 절대적인 시장 규모가 크고 외국 문화에 개방적인 젊은 인구 비중이 높기 때문에 현지에서 매장 한두 개만 성공시켜도 투자자로부터 높은 성장성을 인정받아 기업 가치를 키우기 수월하다. 만약 고피자가 국내에서 매장 숫자를 충분히 늘린 다음 점진적으로 국제화를 추진했다면 빠른 성장과 기술 개발에 필요한 외부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보처리 기술과 로봇 기술의 발달로 여러 푸드 테크 회사가 생겨났지만 상당수가 실패했다.v 그중에는 2015년 미국에서 창업한 줌(Zume)같이 피자 산업에 도전장을 내민 기업도 있다. 줌은 AI, 빅데이터, 로봇 기술을 활용해 자체 공장에서 초벌구이한 피자를 트럭에 싣고 다니면서 도착 4분 전 트럭 내 오븐에서 피자를 구워 따끈따끈한 피자를 고객에게 배달하는 사업을 했다. 오프라인 매장 대신 오븐을 탑재한 트럭이 이동하면서 배달 과정에서 피자를 굽는 방식이었다.VI 2017년 최고의 스타트업 중 하나로 언급됐고 2108년에는 소프트뱅크의 대규모 투자도 유치했다. 그러나 2020년 배달 피자 사업을 중단하고 식품 패키징 사업으로 피버팅했다. 기술에 함몰된 나머지 인적 자원의 중요성과 고객 경험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반면, 고피자는 적정한 수준으로 기술을 활용해 독보적인 사업 모델을 구축했다.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술을 활용한다는 점이 줌과는 다르다. 최근에는 AI, 빅데이터, 로봇을 활용하는 등 푸드 테크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앞으로 고피자가 전 세계 매장을 연 최초의 ‘K-맥도날드’가 될 날을 기대한다.

강신형 충남대 경영학부 조교수 sh.kang@cnu.ac.kr
필자는 KAIST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경영공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LG전자 본사 전략기획팀에서 신사업 기획, M&A, J/V 등의 업무를 수행한 바 있으며 LG전자 스마트폰 사업부에서도 근무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영 혁신으로 개방형 혁신, 기업 벤처캐피털(CVC) 등과 관련된 논문을 발표했다.

생각해볼 문제

1. 줌과 고피자를 비교하라. 무엇이 유사하고, 무엇이 다른가? 이를 통해 고피자의 성공 요인을 논의해보자.
2. 고피자는 창업 후 2년 만인 2019년 인도에 자회사를 설립하는 직접 투자 방식으로 국제화를 시도했다.
    고피자의 빠른 국제화 전략의 유효성을 국제화 시점, 진출 국가, 진출 방식 세 가지 측면에서 논의해보자.
3. 고피자에서 로봇화 전략은 유용하다고 보는가.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이나 유효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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