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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염색 효과 샴푸, ‘모다모다’의 혁신 실험

“따뜻한 관심과 냉철한 기술이 만났다”
새로운 방식 넘어 새 시장을 창조하다

조윤경 | 348호 (2022년 07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2021년 국내외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은 ‘모다모다 샴푸’는 오래된 바나나와 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폴리페놀’의 갈변 현상을 이용했다. 모다모다 샴푸를 개발하고 상품으로 출시한 바이오 코스메틱 기업 ‘모다모다’는 20년 동안 폴리페놀을 연구해 온 카이스트 교수와 협업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결합하고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모다모다 샴푸는 염색약처럼 염색이 되는 효과와 샴푸의 기능을 모두 갖춘 새로운 제품 카테고리를 탄생시켰으며 해외시장을 먼저 공략해 제품력 있는 중소기업의 장점을 살렸다. 규제와 안전성 이슈에는 보다 정밀한 안전성 검증과 더불어 기술 피벗과 신제품 라인 출시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머리 색깔이 사과처럼 ‘갈변’될 수 있다니 말도 안 된다.”

“염색약을 쓰지 뭣 하러 ‘염색 샴푸’를 쓰나.”

머리를 감는 것만으로 염색 효과를 주는 갈변 샴푸 ‘모다모다’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모다모다의 아이디어를 접한 업계 실무자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방식의, 새로운 기능성 효과의 샴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해외에서 먼저 흥행해 입소문을 타고 국내로 인기가 번지더니 불붙듯 퍼져나갔다. 모다모다 샴푸는 이제 기존의 일반 샴푸와 염색약 사이 사각지대를 정확하게 공략해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연에서 나오는 천연 성분을 기반으로 한 모다모다 샴푸는 잦은 염색이나 예민한 두피를 가진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으로 꼽힌다. 임상 결과에 따르면 염색을 할 때 자주 발생하는 피부 트러블이나 따가움, 눈 시림이 모다모다 샴푸를 사용할 때 확연하게 줄어든다.

모다모다 샴푸는 기존 염색약처럼 즉각적인 염색 효과를 볼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이용이 편해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중장년층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배형진 모다모다 대표는 “나이가 들면 주기적으로 염색을 해야 한다는 기존 염색약이 주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한 것이 첫 출발이었다”며 “연배가 있는 소비자들이 염색을 할 때마다 실감하게 되는 노화로부터 자유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도 모다모다 샴푸는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중소기업이 이전받아 제품화하고 소비자들의 선택까지 받고 있는 드문 사례다. 모다모다 샴푸는 20년 가까이 폴리페놀을 연구해 온 이해신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와 화장품 유통 사업을 꾸려오던 배 대표가 만나 탄생했다. 산학 협력이 활발한 미국과 같은 해외 국가에 비해 국내에선 수준 높은 학계의 연구가 논문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다모다가 국내 산학 협력의 성공 모델이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반면 새로운 기술과 시도엔 어려움도 따르기 마련이다. 모다모다의 경우 정부 규제와 안전성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숙제를 안고 있다. 모다모다는 논란이 되는 성분을 제외한 새로운 신제품 라인을 개발하는 한편 해당 성분의 안전성 테스트를 발 빠르게 거쳐 난항을 극복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DBR가 천연 갈변 샴푸 모다모다의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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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혁신 아이디어의 결합으로 탄생한
신(新)비즈니스

20년간 국내 제약 회사에서 영업과 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배 대표는 2009년 퇴사 후 전 직장에서의 근무 경험을 살려 화장품 도소매 및 유통 사업체를 시작했다. 화학 성분이나 효능에 대해선 나름 잔뼈가 굵다고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배 대표는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자연스럽게 뷰티 브랜드 창업에도 관심이 생겼다. ’K-뷰티’ 바람이 막 불기 시작한 중국 시장에 글루타티온(Glutathione) 성분을 이용한 미백 화장품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루타티온이란 사람이나 동물, 식물의 체내에서 생성되는 천연 항산화제로 해독 작용이 있어 항암제 등의 치료 보조제로 쓰인다. 당시엔 의약품 이외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으로는 널리 쓰이지 않았던 성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배 대표는 신문에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학협력단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석학들이 개발한 기술을 유통과 마케팅 경험이 있는 회사가 사업으로 이어 나간다면 서로의 부족한 점을 메워줄 수 있는 좋은 시스템이란 생각이 들었다. 2014년 무작정 카이스트 산학협력단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만난 이해신 KAIST 화학과 교수는 배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곧장 ‘재미있겠다,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해 보자’고 찬성했다. 이 교수는 과거 바다생물 홍합의 접착 메커니즘을 활용한 의료용 지혈제, 피 안 나는 주사기 등을 개발하고 상용화한 경험이 있었다. 그 덕분에 원천 기술을 활용한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도 했다. 배 대표와 이 교수는 곧장 글루타티온 관련 기술을 세계 특허 출원하고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삼아 상품화에 나섰다. 그렇게 탄생한 제품이 바로 5가지 다기능 미백 화장품 ‘닥터라벨라’였다.

닥터라벨라는 한때 중국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서 화장품 카테고리 판매 순위 5위에 오를 정도로 소비자들 사이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순조로울 것만 같았던 닥터라벨라는 생각지도 못한 역풍을 맞아야 했다.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 사태와 2020년 중국 전역에 봉쇄령이 떨어지게 만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을 받아 매출이 크게 떨어졌다. 사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다른 비즈니스 모델이 시급했다.

다행히 당시 회사엔 미백 화장품 말고도 새로 연구 개발 중인 샴푸 신제품이 있었다. 닥터라벨라를 개발하기 시작할 즈음 이번엔 이 교수가 십수 년 동안 연구해왔던 폴레페놀을 이용한 샴푸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회사는 미백 화장품에 주력하는 한편 이 교수의 샴푸 아이디어의 제품화 프로세스도 조금씩 진행을 해 놓은 상태였다. 그 덕분에 사드 사태가 한창이던 2016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가 과제 심사를 통과하며 막바지 개발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렇게 2021년 모다모다 샴푸가 세상에 나왔다. 이 교수가 갈변 샴푸 아이디어를 내놓은 지 6여 년 만이었다. 중국 시장에서의 미백 화장품으로 뼈 아픈 실패를 겪은 배 대표는 이 새로운 원리의 샴푸를 주력으로 하는 새로운 유통과 마케팅 방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브랜드 이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다. 모발을 위한 다음 기술, ‘모다모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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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페놀을 이용한 세계 최초의 ‘갈변 샴푸’

모다모다 샴푸는 바나나와 사과가 산소를 만나 까맣게 변하는 갈변 현상을 이용한다. 기존 염색약들은 염모제와 타르 색소를 이용해 머리카락에 색을 입히는 원리인 반면 모다모다 샴푸의 갈변 기술은 발색이 되는 원리로 작동한다.

본래 이 교수가 염색이 되는 샴푸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것은 두피 통증으로 염색을 포기한 백발의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2013년 봄 이 교수는 어머니가 염색약의 독한 성분 때문에 눈 시려움과 자극으로 힘들어 하시는 것을 보며 연구 중이던 물질 ‘폴리페놀’로 샴푸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다. 사실 이 교수의 주 연구 분야는 바다생물인 홍합이 가진 ‘접착력’이다. 그리고 그 접착력의 핵심엔 폴리페놀이란 물질이 있다. 폴리페놀이란 물질엔 바나나와 사과가 갈변하는 것처럼 산소와 만나면 흑갈색으로 변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 폴리페놀은 단백질에 잘 달라붙기도 한다. 이 교수는 이런 폴리페놀의 성질을 통해 ‘사람의 혈액이나 머리카락에도 단백질이 들어 있으므로 폴리페놀이 혈액에 붙으면 지혈제, 머리카락에 붙으면 염색 샴푸가 되겠구나’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 교수 본인의 어머니와 같은 노인뿐 아니라 항암 치료로 인해 백발이 된 환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사실 미용 업계에서 폴리페놀을 이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오랜 시간 샴푸를 사용하면서 천천히 모발색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가 실용성이 없다고 판단해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교수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모다모다의 제품 개념을 발표하고 공동 제품 개발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기업에선 거절 의사를 밝혀왔다. 폴리페놀로 샴푸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제조 과정에서 산소가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기존 샴푸를 제조, 판매해오던 업체 입장에서는 공정 변경과 같은 매우 번거로운 추가 작업이 필요하다. 폴리페놀 성분의 특성상 물에 잘 녹지 않아 샴푸 제형에 적합하지 않다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었다. 이에 아이디어가 독창적인 걸 인정하면서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배 대표와 이 교수를 비롯한 모다모다 임직원들은 새로운 메커니즘의 샴푸를 개발해야겠다는 도전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모다모다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국가의 제품 개발 지원 및 카이스트의 연구 지원을 바탕으로 실험을 지속해 나갔다. 샴푸 제조 공정 전부를 수정하는 노력도 마다하지 않은 덕분에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산소 노출을 최소화했다. 폴리페놀을 물에 녹이는 방법도 찾아냈다. 폴리페놀 성분의 일부가 머리를 감는 과정에서 씻겨 내려가더라도 발색이 될 만큼은 충분히 남아 있도록 한 것이다. 모다모다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약 3년 동안의 제품 개발 단계에서 샴푸 속 폴리페놀 성분이 머리카락에 잘 붙어 있을 수 있는 배합을 찾아냈다. 그 결과 남아 있는 성분들이 자연스럽게 갈변하며 발색으로 이어지는 샴푸를 개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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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까지 되는 ‘기능성 샴푸’로의 포지셔닝

한편 배 대표는 ‘폴리페놀을 이용한 모발 염색’이란 사실만으로는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완전한 제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비자들이 얼마의 시간이 지나 염색에 대한 효과가 나타나기를 원하는지, 염색 이외 모발에 대한 고민은 무엇이며, 이를 해결하는 기능이 추가되길 원하는지 등을 조사해야 했다. 또한 소비자들이 지불 의사를 보여야 하는 완제품엔 기능뿐만 아니라 이용 편의성까지 고려돼야 한다고 봤다. 새로운 기술이 완전한 제품으로 홀로서기가 가능한 수준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먼저 배 대표와 이 교수는 샴푸 개발에 성공한 이후 상품화가 가능한 수준의 제품이 나오기 전까지 본인과 가족, 지인 100여 명을 대상으로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종의 소비자 테스트를 거쳤다. 200㎖ 플라스틱 물약 통에 담긴 보잘것없는 테스트용 샴푸였지만 지인들은 그야말로 ‘환호’했다. 시중에 파는 염색약과 달리 눈 시림이 적다는 점, 새까맣고 인위적인 검은색이 아닌 자연 흑갈색으로 모발을 변하게 한다는 점, 새로운 머리카락이 자라날 때마다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두피 트러블이 적다는 점 등이 모다모다 샴푸만의 장점으로 꼽혔다.

그 덕분에 지인들로부터 작은 물약 통에 담긴 샴푸가 동이 날 때마다 ‘더 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 쇄도했다. 지인들 중에는 이 교수의 동료 교수들도 포함돼 있다. 화학,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인 이들 또한 너도나도 감탄했다. 갈변 샴푸에 대한 소비자 니즈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배 대표는 “일반 염색약은 머리 색을 변화시키기 위해 화학 반응을 일으켜야 하기에 성분이 독할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모발이 얇아지고 잘 빠지게 된다”며 “갈변 샴푸는 이런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덕분에 흰머리가 계속 자라나 한 달에 한 번꼴로 염색을 해야 하는 중장년층의 선호도가 높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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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아직은 부족한 점도 확연히 드러났다. 40∼60대 소비자들은 새치나 염색 이외에도 적은 머리숱, 탄력 없이 가늘고 힘없는 모발, 푹 꺼지는 볼륨과 같은 고민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지인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각각의 기능이 있는 여러 가지 헤어 제품을 따로따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모두가 이 과정을 번거롭고 불편하게 여긴다는 걸 알게 됐다. 이에 모다모다는 탈모 기능성 원료인 판테놀, 살리실릭애시스, 나이아신 아마이드를 배합해 모발에 두께감이 생길 수 있도록 제품을 수정했다.

소비자 피드백은 갈변 샴푸의 포뮬러 배합비를 설계하는 데도 영향을 줬다. 샴푸로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염색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가 중요했다. 너무 빨리 염색 효과가 나타난다면 샴푸보다는 염색약으로 인식되기 쉽고, 너무 느리게 효과가 나타난다면 소비자 만족도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고민 끝에 모다모다 샴푸는 염색약이 아닌 ‘염색까지 되는 기능성 샴푸’로 정체성을 굳히기로 했다. 마침내 모발이나 수돗물 상태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염색 효과가 나타나는 시기를 평균 4주 정도가 되도록 포뮬러 배합비를 수정했다. 배 대표는 “주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 테스트에서도 4주의 시간에 대해 가장 많은 사람이 만족감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제품 기능 최대로 살리는 전용 포장재 개발

제품력만큼은 자신 있었던 모다모다에도 시장에 나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아직 넘어야 할 큰 산이 남아 있었다. 산소와 빛을 차단하는 샴푸 용기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배 대표가 전용 용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예비 소비자들의 의견 덕분이었다. 지인들에게 선물한 테스트용 샴푸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간장처럼 까맣게 변색되기 일쑤였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폴리페놀의 갈변 성질 때문이었다.

이렇게 변색된 샴푸는 제 기능을 100% 다 하지 못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산소와 빛에 노출된 샴푸는 염색 효과를 25∼50%가량 떨어뜨렸다. 배 대표는 산소와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용기 없이는 상품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제품의 이용 편의성만 아니라 샴푸의 기능을 구현하는 것과 직결된 부분이다 보니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함께 열정을 갖고 용기 개발에 긴 시간을 투자해 줄 협력 회사를 찾는 데만 수개월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많은 업체가 갈변 샴푸라는 개념에 의구심을 품었다. 배 대표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게 되겠느냐’며 협업을 거절했다. 그렇게 퇴짜를 맞으며 여러 업체를 전전하던 배 대표는 마침내 펌텍코리아의 이도훈 대표를 만나게 됐다. 펌텍코리아는 밀폐 용기에 사용되는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었다. 이 대표 역시 처음엔 갈변 샴푸와 갈변 샴푸를 위한 용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배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배 대표가 두고 간 모다모다 샴푸 샘플의 효과에 감탄해 뒤늦게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물론 그 과정은 무척 어렵고 지난했다. 특히 샴푸 용액을 용기 밖으로 펌핑(pumping)해서 꺼낼 때 용기 안으로 산소가 새어 들어가는 것을 막을 길이 없었다. 수백여 번의 시도 끝에 공기를 차단하는 방법을 찾아내도, 이번엔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은 디자인이 발목을 잡았다. 외부 공기 유입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지 밸브와 펌프 기능을 집어넣다 보니 용기 토출구 모양이 크고 길어져 우스꽝스러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모다모다와 펌텍코리아는 용기 개발을 시작하고도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야 자체적으로 산소와 빛을 100% 가까이 차단하는 샴푸 용기를 개발하고 특허를 내는 데 성공했다. 알루미늄 소재의 파우치로 샴푸 제형을 보호하고 디스크 밸브, 진공 펌프 등을 활용해 토출구에서 샴푸가 나올 때도 외부 공기 유입이 없도록 했다. 배 대표는 “마음에 드는 수준의 용기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샴푸 출시는 없던 일로 하겠다는 마음으로 포장재 기업들을 찾아다녔다”며 “이제는 갈변 샴푸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으며 펌텍코리아와 모다모다 모두 발전적인 윈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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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

해외 산학 협력 사례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산학 협력으로 제품을 만들어 일반 대중들의 편의를 높인 제품은 아직까지 많지 않다. 학계는 학계대로 연구를 진행하고, 기업에선 자체적으로 상품을 개발하면서 긴밀한 연구와 상품화 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해신 카이스트 교수는 “국내 학계 논문 수준과 인용 지수 등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안타깝게도 연구 실적이 문서로만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국내에서 산학 협력을 통해 상품화가 이뤄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이런 국내 상황과 달리 해외에선 학계의 스타트업 창업 문화가 활발하다.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해진 기업 ‘모더나’가 대표적이다. 미국 제약사 ‘모더나’는 데릭 로시 하버드대 의대 교수가 밥 랭어 MIT 교수, 투자자인 누바르 아페얀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 회장과 손잡고 2010년 창업해 20여 개 신약과 백신을 선보였다. 특히 모더나가 연구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감염병의 확산과 동시에 미국 정부로부터 1조 원의 시험 비용을 지원받아 단시간에 상용화에 성공했고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외에도 제프리 글렌 스탠퍼드 의대 교수가 2010년 설립한 이글바이오사이언스 등이 해외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글바이오사이언스는 전 세계 연구자와 임상 실험실에 최고 품질의 항체 및 분석 제품을 제공하는 업체로 유명하다.

글로벌 시장 진출로 강소 기업 장점 살려

모다모다 샴푸는 국내 기술로 개발됐지만 미국에서 먼저 출시됐다. 배 대표는 모다모다 샴푸를 준비하면서부터 국내보다는 해외 론칭에 더 무게를 두고 있었다. 국내에선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을 때 시장과 고객의 반응이 차갑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해외의 경우 SCI급 논문 인용 지수 상위 1%인 세계적인 화학자가 제품 개발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제품 자체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시장 규모로 따지면 중국 역시 매력적인 시장이지만 중국 대신 미국 시장을 택한 것은 과거 미백 화장품을 출시하며 배운 교훈 때문이었다. 중국은 정치 및 외교적 영향에 크게 좌우되는 시장인데다 2016년 이후로는 실력을 갖추지 못한 채 K-뷰티 바람에 덩달아 흥행하던 국내 중저가 브랜드들의 거품이 빠지던 상황이기도 했다. 중국 유통사에 의존해 중국에 물건을 풀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해외 진출을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배 대표는 외부로부터 돈을 끌고 오는 것보다는 자체적으로 수익성을 조금씩 확대해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이에 해외 진출처로 미국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의 문을 두드렸다. 제품력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21년 6월 모다모다 샴푸는 9일 만에 7000여 명으로부터 목표치 대비 10배나 되는 102만 달러(약 13억 원)의 모금액을 거뒀다. 킥스타터로서도 헤어케어 분야에선 역사상 최대 금액이었다. 그 덕분에 이후 미국 아마존, 쇼피파이, 대형 마트 등으로도 판매 채널을 다양화할 수 있게 됐다. 예산 부족으로 광고도 하지 못하는 브랜드 제품이었지만 배우 윤여정, 소프라노 조수미, 야구 선수 추신수 등 해외에서 인지도 높은 인사들에게도 판매되며 그 인기를 실감케 했다.

광고비에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짧은 시간에 최소한으로 브랜드를 노출해 확실한 홍보 효과를 얻자는 생각에 뉴욕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제품 광고를 실었다. 대기업에서 일하다 뒤늦게 합류한 직원의 아이디어였다. 이 직원은 “타임스퀘어가 주는 상징성이 있다”며 “노출량은 적더라도 여러 군데 광고하는 것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회사도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타임스퀘어에까지 광고를 낸 이국의 작은 샴푸 회사는 대체 어디냐”는 문의와 함께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브랜드 이름을 알렸다. 그 덕분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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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키자 미국 한인사회를 통해 국내 소비자들에게도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021년 하반기엔 생산량이 많지 않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탓에 카페와 중고 거래 커뮤니티에서 한 병이 정가의 2∼3배 가격에 거래될 정도로 품귀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자사 몰과 아마존에서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1시간 만에 품절이 되고 이마트, 올리브영 등 오프라인 판매처에서도 이른 시간부터 소비자들이 줄을 서는 ‘오픈런’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다모다에 따르면 이 샴푸는 출시 이후 약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총 320만 병이 생산됐으며 국내에서 약 320억 원, 미국에서 약 280억 원 등 총 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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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I

124-THB 성분 안전성 논란

식약처가 모다모다 샴푸의 갈변 작용을 돕는 124-THB의 안전성을 문제 삼고 화장품 원료로 쓸 수 없도록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취한 데 대한 회사 측의 입장은 다르다. 모다모다에 따르면 식약처가 근거로 삼은 유럽의 SCCS 논문에는 ‘124-THB’ 성분은 박테리아 단계에서 잠재적인 유전 독성 양성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는 브로콜리, 생강, 파프리카와 같은 여러 식자재에서도 나오는 수준이고,박테리아 바로 위 단계에서부터 포유류 단계까지의 모든 실험에서는 유전 독성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모다모다 측의 주장이다. 또한 모다모다는 식약처가 124-THB 금지 근거로 삼은 유럽의 규제는 124-THB가 염모제 성분과 결합할 때를 전제한 것이라 THB가 폴리페놀과 결합하는 모다모다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밝혔다.

결국 모다모다는 124-THB가 유해하지 않다는 과학적 근거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결과 당장의 위기는 모면한 상황이다. 2022년 4월 규제개혁위원회는 식약처에 성분 금지에 대한 재검토를 권고했고 이 결정으로 모다모다는 향후 2년 6개월 동안 국내 판매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식약처와 모다모다, 소비자단체를 주축으로 진행 중인 성분 안전성 논란과 이에 따른 검증 절차는 2022년 6월 현재까지 아직 진행 중이다. 경쟁 제품을 내놓은 타사들까지 그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술 피벗, 신제품 라인 확대로
안전성, 규제 이슈 대응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소비자들의 성원에 2021년 11월 자체 몰과 홈쇼핑 등으로 유통을 시작하며 모다모다는 기술 발명의 대가로 달콤한 ‘꽃길’을 걸을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상황은 의외로 녹록지 않게 전개됐다.

사업 확장에 박차를 가하려던 찰나, 식품의약안전처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경고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갑자기 모다모다 샴푸의 갈변 작용을 돕는 124-THB를 화장품 원료로 쓸 수 없도록 전면 금지하는 개정안을 마련하고 2022년 1월부터 사실상 판매를 중단하도록 행정 예고했다.(DBR minibox II ‘124-THB 성분 안전성 논란’ 참고.) 해당 성분이 DBA 돌연변이를 일으켜 암을 유발하는 유전 독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에 모다모다 측은 강력 반발했고 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의 ‘손톱 밑 가시’를 해결해주는 소통 창구 격인 규제개혁위원회에 심의를 의뢰했다. 이에 2022년 4월 규제개혁위원회는 모다모다와 식약처가 2년 6개월 내 공동으로 안전성 검증 연구 결과를 발표하라고 권고했으며 식약처 역시 이를 받아들인 상황이다. 2024년 10월까지는 무리 없이 제품 판매를 이어가게 됐지만 뜻밖의 규제 속에 허둥지둥하는 동안 시장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경쟁사의 유사 제품들이 출시되면서 잠재적인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기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새롭게 출시한 염색 샴푸만 15종에 이른다. 모다모다 샴푸가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자 비슷한 효과를 내는 유사 제품들이 줄지어 출시된 것이다. 자연 갈변 원리를 적용한 모다모다 샴푸와 달리 일부 경쟁사 제품엔 강제 착색을 위해 염색제에 쓰이는 일시 염모제와 타르 색소가 고농도로 사용됐고 그 덕에 염색 속도가 빠르다. 모다모다 제품과는 작용 기제 자체가 다르지만 염색 샴푸의 인기를 등에 업고 소비자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제품의 성분 표시만 봐서는 어떤 게 민감한 피부에도 사용 가능한 저자극 제품인지, 독성이 강한 화학 제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모다모다는 현재 추가적인 안전성 입증 연구를 진행 중이며 2022년 하반기 이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 교수는 “모다모다의 발색 원리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메커니즘인 만큼 독성 평가도 ‘새로운 독성 기작’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생각해 국내 관련 분야 저명 학자들과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다모다 측은 이처럼 안전성 관련 연구를 지속해 정부를 설득하는 한편 문제가 되는 성분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 피벗’을 통해 신제품 라인을 출시할 예정이다. 일례로 124-THB를 대신해 폴리페놀을 수용화하는 새로운 물질을 적용한 샴푸 라인을 빠르면 2022년 하반기 출시할 방침이다. 2022년 6월 현재는 폴리페놀을 수용화하는 물질을 당국에 등록하는 행정 절차를 진행 중이다. 7월엔 기존 갈변 샴푸 기능과 효과를 업그레이드한 ‘프로체인지 다크닝 샴푸’를 선보일 예정이다. 더 빠르고 짙게 오래가는 갈변력을 구현한 최상의 배합비를 만들어 내는 동시에 기존 제품 대비 124-THB 성분 사용량은 줄이고 폴리페놀은 증가시켰다. 이 제품은 기존에 색을 내기 위해 사용하던 검은깨 등의 ‘블랙 푸드’ 대신 해조류에서 추출한 폴리페놀을 활용한 갈변 샴푸다. 해조류 성분에는 모근과 두피 건강에 좋은 성분들이 포함돼 있어 탈모 및 두피 관리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갈변 샴푸와 함께 사용했을 때 발색력을 강화시켜주는 ‘부스팅 트리트먼트’ 등의 제품도 출시된다. 1020 소비자들을 겨냥해 머리 색을 금발에 가깝게 물들여주는 ‘블론드 샴푸’ 등 샴푸 사용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머리카락 색의 수를 지금보다 더 다양화하는 시도도 진행 중이다.

이렇게 안전성 논란이 있었음에도 소비자들의 호응이 여전하단 사실은 고무적이다. 모다모다 측에서는 식약처의 판단과 소비자 불안을 반영해 2022년 1∼3월 국무총리실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국내 주력 채널인 홈쇼핑 유통과 오프라인 영업 활동을 자체적으로 축소한 바 있다. 하지만 4월 규제개혁위원회 발표 이후 재개한 홈쇼핑 채널에서 매회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시간대와 날짜, 요일에 따라 다르지만 홈쇼핑을 통해 기록 중인 매출고는 매회 5억∼15억 원 수준이다. 모다모다 샴푸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이 획기적인 신제품에 대한 안전성, 제품력을 높게 평가하고 신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다모다는 미국, 중국, 일본 등 염색 샴푸 시장의 잠재력이 높은 국가에서 갈변 샴푸 카테고리를 새롭게 창출해 이 분야에서 1위를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모다모다의 미국 법인은 2022년 상반기 설립됐고 중국 법인도 연내 설립된다. 배 대표는 “자체적으로 진행 중인 안전성 실험의 결과가 긍정적”이라며 “제품의 독보적인 기술과 안전성 검증 자료를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히 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 및 시사점

염색이라는 새 카테고리를 샴푸에 혁신적으로 결합

혁신은 발명이 아니다. ‘파괴적 혁신 이론’의 주창자인 고(故)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대 교수는 발명이 과거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과정이라면 혁신은 어떤 조직이 노동과 자본, 그리고 정보를 한층 더 높은 가치의 제품과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혁신을 이야기할 때 혁신을 하나의 획일적인 무언가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혁신이 성장의 발판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혁신은 동일하게 창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다모다’가 보여준 혁신도 이러한 관점에서 평가돼야 한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그들이 보여준 새로운 염색 방식 자체가 아니다. 바로 시장을 새롭게 창조해냈다는 점이다.

모다모다의 시장 창조 혁신

크리스텐슨 교수에 따르면 혁신은 지속성 혁신(sustaining innovation)과 효율성 혁신(efficiency innovation), 시장 창조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으로 구분된다. 먼저 지속성 혁신은 더 나은 성능을 요구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기존의 해법을 개선하는 혁신이다. 이는 이미 자기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추가적인 흥미를 유발할 수 있도록 기존 제품의 향이나 색깔, 특징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차(Tea) 브랜드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맛을 출시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지속적 혁신은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목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기존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금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해내고자 시도된다. 열선 시트가 추가된 신규 자동차 모델은 조금 더 비싼 가격에 팔 수는 있지만 말을 타던 사람들이 자동차를 선택하도록 만들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지속성 혁신으로 새로운 고객군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효율성 혁신은 기업이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한다. 일반적으로 공정 혁신이 여기에 해당한다. 해당 산업에 참여하는 기업의 수가 많아지고 경쟁이 심화되면 효율성 혁신은 기업 생존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효율성 혁신을 통해 기업의 수익은 높아지고 현금흐름이 개선된다. 효율성 혁신의 문제는 기업 차원에서는 유리할 수 있지만 직원에겐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외주화나 자동화가 대표적이다. 많은 경우 효율성 혁신은 그것이 창조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제거해버린다. 이로 인해 지속성 혁신이나 효율성 혁신은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는 새로운 동력원으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다모다가 보여준 혁신은 다르다. 모다모다는 새로운 염색 방식을 고안해냄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시장 창조 혁신을 이뤄냈다는 의미다. 여기서 새로운 시장이란 기존 제품을 아예 사용하지 못했거나 혹은 기존 제품이 있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접근이 불가능했던 사람들에게 이득을 주는 시장을 의미한다. 두피 통증으로 염색을 포기했던 백발의 어머니를 보고 갈변 샴푸 방식의 모염(毛染)을 생각해냈다는 점이 바로 그 대목이다. 시장 창조 혁신이 이뤄지면 접근이 어려웠던 제품이 더 많은 사람이 구매하고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바뀌게 된다. 심지어는 모다모다 샴푸의 경우와 같이 완전히 새로운 제품 범주가 창조되기도 한다. 샴푸의 범주에 염색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범주에 수많은 후발주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염색 샴푸를 앞다퉈 출시하는 모습은 시장 창조 혁신이 어떻게 시장을 확대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모다모다가 불러온 시장 창조 혁신의 효과

모다모다가 보여준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힘은 수익과 일자리, 새로운 문화 창조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수익은 모든 면에서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의 발판이 된다. 2021년 6월 ‘킥스타터’ 출시 9일 만에 목표치 대비 10배나 되는 102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거나 국내 출시 5개월 만에 매출 600억 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낸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한편 새로운 시장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낸다. 새로운 고객이 등장하면 기업은 그 시장에서 제품 생산, 마케팅, 유통, 판매, 애프터서비스 등을 담당할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해야 한다. 그동안 다양한 이유로 염색약을 구매할 수 없었던 사람들, 즉 ‘비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할 때, 제품이나 서비스 제조 과정에서뿐만 아니라 새로운 고객이 새로운 상품에 접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영향은 사회 구성원의 시각을 넓히는 문화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이다. 시장 창조 혁신은 더 많은 주체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긍정적 전염도 일으킨다.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이 투자자, 해당 기업의 직원, 소비자로 참여하게 되면 이들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새로운 시장의 탄생으로 인한 이득이 사회 곳곳으로 확산될 때 번영과 성장에 공감하는 주체들이 많아지고, 이는 경제 선순환의 중요한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된다.

모다모다 혁신의 완성을 위한 과제

한편 모다모다의 시장을 창조한 혁신은 아직 미완성이다. 샴푸의 갈변 작용을 돕는 124-THB 성분을 두고 식약처와의 이견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유럽에서와 같이 THB 성분을 화장품 사용 금지 원료로 지정할 방침이었지만 국무총리실 산하의 규제개혁위원회가 별도의 검증이 필요한 의사결정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기존 법 분류 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신기술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도 있는 만큼 위해성을 재검증하자는 것이다. 모다모다는 전 세계 240개국 가운데 200여 개 국가에서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유럽에서 전면 금지한 독성 물질들 대부분도 국내 식약처가 1∼2% 정도의 한도를 정해줘 왔으면서 THB 성분에 대해서만 유독 전면 금지를 주장하고 있다고 반문한다. 시장 창조 혁신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퍼즐로 ‘제도’가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시장과 달리 제도는 그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 창조 혁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면에 녹아 있는 한 사회의 문화와 가치관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모다모다가 안정성과 관련된 연구를 누구보다도 심도 있고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관련 전문가의 검토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책 의사결정자에게 자료를 제공하고 대중을 상대로 홍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제도가 한 사회와 관련돼 있음을 생각해볼 때 해외의 제도를 설득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무의미하다. 해외에서 작동하는 제도와 기준은 쉽게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제도가 그 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어떤 유인으로 작용하는지, 왜 그런 기준이 결정됐는지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랜트 프리칫 하버드케네디공공정책 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문제는 법률 조항이나 규정이 아닌 한 사회의 ‘규범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제도의 문제로 혁신을 완성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논의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문제로 흘러가게 된다. 제도가 먼저인지, 혁신이 먼저인지를 논한다면 많은 혁신가는 ‘제도가 먼저’라고 강조할 것이다. 제도 없는 환경에서 혁신을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들이 느꼈을 답답함과 한계를 알기에 충분히 와닿는 주장이다. 하지만 반론도 가능하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을 때 좋은 제도는 의미가 없다. 1950년대 전쟁 직후의 우리나라 상황에 오늘날의 제도를 그대로 복제한다고 한들 그 제도는 유지될 수도, 어떠한 효과를 창출할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초점은 모다모다의 존재가 사회에 어떤 이로움을 주는지에 맞춰져야 한다. 사실 안정성에 대한 입증도 이를 위한 단계일 뿐이다. 제품이 주는 효용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의 노력이 사회에 어떤 이득을 줬는지에 집중할 때 사회가 공감하고, 그 공감은 보수적인 문화와 제도의 변화로 이어질 것이다. 제도는 문화를 반영하지만 문화는 제도를 이끌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모다모다의 도전이 점점 더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모다모다 측이 제도를 받아들이며 묵묵히 안전성에 대해 검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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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선순환

국내에서 산학 협력으로 시장에 성공적으로 출시한 상품은 많지 않다. 협력이 ‘새로운 시장’ 창출의 기반이 된 사례는 더더욱 없다. 모다모다의 혁신이 우리 사회에서 소중한 사례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모다모다가 이뤄낸 시장 창조 혁신은 그 과정에서, 그리고 혁신의 결과물로 개별 경제 주체 각각에 인식 개선과 이를 통한 문화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모다모다가 밟아온, 그리고 앞으로 밟아 갈 노력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혁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며, 혁신이 우리 사회의 성장과 회복에 어떠한 힘을 가져다주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kimdy@kdi.re.kr
필자는 한국개발연구원 전문 연구원으로 디지털 플랫폼 경제를 연구하고 있다. DBR, 한국경제신문 등에 연재하고 있으며 중앙대 겸임교수, 비영리사단법인 모빌리티&플랫폼 협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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