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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코미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세계관

재미와 불편이 공존하는 ‘킹받는’ 캐릭터
하이퍼 리얼리즘 세계관으로 팬덤 구축

장재웅,최호진 | 335호 (2021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개그맨 3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은 2030을 위한 코미디 콘텐츠를 선보인다는 목표 아래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한 결과 2021년 10월 말 기준 147만 명의 구독자를 확보하며 두터운 팬덤을 형성했다. 과거 TV나 소극장 중심의 코미디를 유튜브라는 플랫폼에 맞게 재해석해 성공한 피식대학은 과거의 성공 문법에서 벗어나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또한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포맷을 따르기보다 멤버들이 강점을 가진 상황극 기반의 코미디에 몰두했다. 실감 나는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를 만들어 시청자들의 공감과 몰입을 높였다. 특히 재미와 불편을 동시에 유발하는 ‘킹받는’ 캐릭터로 기존에 흥행한 ‘부캐’들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콘텐츠가 가진 세계관이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면서 두터운 팬덤이 형성됐다.



지난 5월30∼31일 양일간 서울에서 열린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한국 정부가 처음 개최하는 기후환경 분야 정상회의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이 연사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 행사와 관련해 유튜브상에서 대중의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사람은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미래전략실 본부장이었다. 김갑생할머니김은 시가총액 500조 원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김 생산 기업으로 그동안 APEC 정상회담, G20 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호창 본부장은 이 회사의 3세 경영인이자 미래전략실 본부장으로 이날 강연을 통해 김갑생할머니김의 ESG 전략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 동영상에는 “스티브 잡스 이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이라는 댓글이 달렸고 동영상 게시 하루 만에 50만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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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에서 이 본부장은 ESG 경영에 대해 “기업이 자사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데서 벗어나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며, 투명하고 윤리적인 지배구조를 갖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 친환경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인다는 계획도 밝혔다. 금빛 김 포장지를 활용해 ‘딱지’를 만들겠다는 것. 이 본부장은 “‘김갑생 김딱지’를 통해 그 옛날 골목을 가득 채웠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되찾겠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읽고 “김갑생할머니김?” “이호창 본부장?” 하며 의아해 하고 있다면 당신은 트렌드에 뒤처져 있다. 김갑생할머니김은 인기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대표 콘텐츠고 이호창 본부장은 그 콘텐츠의 주인공이다. 앞서 언급한 김갑생할머니김의 ESG 경영 전략 발표 동영상은 정부가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홍보 차 피식대학에 의뢰해 만든 홍보 동영상이지만 기발한 발상과 허를 찌르는 패러디 덕분에 2021년 10월 말 기준으로 조회 수 171만 회를 기록했다.

김갑생할머니김이라는 기업은 실존하는 기업은 아니지만 피식대학 안에서 이 회사는 실존하는 기업처럼 일한다. 앞서 설명한 대로 ESG 경영 일환으로 ‘업사이클링 딱지’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공개 채용 절차에 MBTI 검사와 사주팔자 전형을 도입하고 채용 우대사항으로 ‘김 씨 할당제’를 적용하기도 한다. 또한 연초 신년사에서는 자기 전에 주문한 김이 아침상에 오를 수 있도록 배송하는 ‘김팡맨’ 시스템 도입과 김을 장에 찍어 먹는 ‘김앤장’, 신재생에너지로 돌아가는 ‘김 클러스터 단지’ 등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김에서 정육까지. 정육에서 전기 자동차까지. 흙에서 우주까지”라는 신사업 청사진을 제시하며 지구 너머를 바라보는 새 비전을 선포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피식대학과 김갑생할머니김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다. 이호창 본부장의 ESG 경영 전략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을 본 시청자들은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갑생할머니김과 이호창 본부장이 유튜브 채널 내 가상의 인물임에도 이들의 세계관에 적극 동참해 마치 회사가 실제 존재하는 것처럼 댓글 놀이를 한다. 이호창 본부장의 2021년 신년사에 대해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아무 말 대잔치”라며 호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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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대학은 지상파 공채 출신 개그맨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가 운영하는 유튜브 코미디 채널이다. 김갑생할머니김의 이호창 본부장을 포함한 남성 5명이 영상 통화로 소개팅을 진행하는 ‘B대면데이트’, 중년 남성 4명이 등산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한사랑산악회’ 등 채널에는 2021년 10월 말 기준 10개 코너가 올라와 있다. 코너 대부분이 캐릭터가 특정 상황을 연기하는 상황극 콘텐츠다. 이 때문에 피식대학은 캐릭터를 ‘찰떡’같이 소화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라면 객원 멤버라도 적극 협업한다. 피식대학 정식 멤버 세 명 외에도 이호창을 연기하는 개그맨 이창호 등 객원 멤버가 채널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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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 나는 캐릭터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피식대학의 신선한 콘텐츠는 ASMR, 먹방 등의 포맷에 피로해진 시청자의 눈을 번쩍 뜨게 했다. 2019년 4월 문을 연 피식대학은 개설 2년 만인 올해 4월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했다. 한사랑산악회 김영남 회장이 외치는 “열정, 열정, 열정!” 등 피식대학 콘텐츠에 등장하는 대사는 밈과 유행어가 돼 온라인상에 퍼졌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한 거리에는 피식대학 캐릭터가 벽화로 그려져 팬들의 ‘인증샷 성지’가 되기도 했다.

2021년 10월 말 기준 피식대학 구독자 수는 약 147만 명, 채널 누적 조회 수는 3억9000만 회 이상이다. 이들은 지상파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잇달아 폐지되며 위축된 코미디 콘텐츠를 유튜브라는 새로운 무대에서 부흥시켰다. 피식대학은 어떻게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며 코미디 전성기를 되찾아 왔을까? DBR가 피식대학의 정재형 크리에이터와 소속사 메타코미디의 정영준 대표를 만나 이들의 성장 과정과 흥행 비결에 대해 들었다.

유튜브에 2030 대상 코미디
채널 없다는 점에 착안

피식대학을 처음 준비하던 2019년 당시, 유튜브는 코미디 불모지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른들이 볼 만한 코미디가 없었다. 당시 MCN 회사 샌드박스의 엔터테인먼트 리드로 재직 중이던 정영준 대표는 유튜브 코미디 채널들이 아이들을 타깃으로만 제작된다는 점을 발견하고 어른들, 그중에서도 2030들이 좋아할 만한 코미디 채널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특히 정 대표는 대학생들이 SNS 유머 계정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코미디 콘텐츠를 소비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대학생을 타깃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면 움츠러든 코미디 판을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2019년을 전후해 국내 코미디 산업은 침체에 빠져 있었다. 과거 큰 인기를 누리던 개그콘서트 등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식었고 대학로 중심의 소극장 공연도 큰 돈벌이가 되지 못했다. 정 대표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개그맨 지인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며 유튜브에 코미디 채널을 만들 것을 제안한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으로 근근이 버티던 개그맨들에게 유튜브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비즈니스 모델(BM)의 수익성을 이야기하며 설득을 한 것이다. 그의 제안에 KBS와 SBS 공채 개그맨인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가 의기투합했고 2019년 4월, 피식대학 채널이 오픈했다.

채널 개설 후 초창기에 선보인 콘텐츠는 대학교 선배나 신입생 유형 등을 다룬 ‘피식대학’과 ‘대학공감’이었다. ‘대학교에 꼭 있는 선배 유형’이나 ‘조 모임에 늦는 놈들 특징’ 등 초기 타깃 시청자로 설정한 대학생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콘텐츠였지만 결과가 좋지는 않았다. 특히 유튜브 경험이 전혀 없던 멤버들이 영상 편집 방법 등을 직접 배워가며 콘텐츠를 만들었기 때문에 제작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또 콘텐츠 방향을 잡기 위해 회의도 자주 진행하다 보니 거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유튜브 제작에 쏟았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채널 개설 후 6개월간 거둔 수익은 ‘0원’. 들인 노력에 비해 경제적인 성과는 없었다. 당시 유튜브에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인 구독자 1000명과 전체 동영상 합산 시청 4000시간이 안 됐기 때문이다. 전략을 바꿨다. 현재 나이를 비춰볼 때 요즘 대학생 문화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본인들이 잘 알고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는 과거의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기로 했다. 이에 2000년대 문화를 재연한 코너 ‘08학번이즈백’을 기획했다. 동묘시장에 가서 옷을 사 입고 동대문 쇼핑 문화를 콘텐츠에 녹였다. ‘엽기’ ‘OTL’ 등 당시 유행어를 사용하고 ‘가르텐비어’ ‘쪼끼쪼끼’ 같은 추억의 장소를 찾아다녔다.

이때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08학번이즈백 코너를 본 동료 개그맨들로부터 재밌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 개그맨들도 인정한 콘텐츠가 된 셈이다. 그러나 조회 수는 몇 달이 지나도 오를 기미가 안 보였다. 기껏해야 100∼200회에서 멈춰 있었다. 알고리즘을 통한 추천의 수혜가 덜 미쳤기 때문이다. 정재형 크리에이터는 “유튜브 알고리즘상 사람들이 많이 보는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추천 혜택을 잘 받는데 ‘08이즈백’은 유튜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피식대학 크리에이터 정재형 씨는 당시 겪은 가장 큰 어려움으로 생활고를 꼽았다. 당장 생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익 창출로 연결될지 확신할 수 없는 콘텐츠를 계속 만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08학번이즈백’도 마찬가지. 멤버들은 이 코너를 계속하는 게 맞는지 의심했다. 논의 끝에 최소 10번 정도는 해보고 반응을 분석해 본 후 지속 여부를 결정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오르지 않는 조회 수에 멤버들은 결국 제작을 중단했다.

탈북자 몰래카메라를 기점으로 주목받기 시작

초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제작 역량과 구독자를 쌓아가던 피식대학은 ‘탈북자 몰래카메라’를 기점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2019년 10월에 올린 ‘편의점에서 탈북민들의 비밀 계획을 듣는다면?’ 편이 유튜브에서 폭발적 반응을 일으킨 것. 몰래카메라 형식의 이 콘텐츠는 탈북민 두 명이 나와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면서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구성한다. 이를테면 “남조선에서 어찌 그리 돈을 많이 벌었냐?”는 질문에 “아오리라면 없어지고 나서 아오지랭면이란 평양냉면집을 차려서 돈을 벌었다”라고 답하거나 ASMR가 뭐냐는 탈북자의 질문에 “A: 아가리 S: 소리 내면서 M: 먹는 R: 령상”이라고 설명하며 몰래카메라의 대상이자 곁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는 일반 시민의 반응을 살피는 콘텐츠다. 제일 처음 올라온 ‘탈북민 몰카’ 영상의 경우 2021년 11월 말 기준 조회 수가 615만 건, 댓글은 4350개에 달했다. 영상에 등장한 탈북민 리민철 캐릭터를 중심으로 ‘풍계리민철TV’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면서 피식대학 채널에 유입된 시청자들은 이전에 만들어진 영상들도 찾아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몇 달간 오르지 않던 08학번이즈백 콘텐츠의 조회 수까지 급상승했다. 팬들의 뜨거운 요청에 피식대학은 ‘05학번이즈백’으로 코너명을 바꿔 제작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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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중년 남성들이 함께 등산하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한사랑산악회’, 소개팅에서 소위 ‘폭탄’이라 불릴 법한 남성이 영상 통화로 비대면 소개팅을 하는 ‘B대면데이트’ 등을 연달아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는다. 이들 콘텐츠는 먹방이나 ASMR 등 유행하는 콘텐츠를 따르지 않고 멤버들이 직접 구상한 ‘피식대학 오리지널 콘텐츠’다. 이들 오리지널 콘텐츠의 인기 덕분에 피식대학은 2021년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구독자 수 역시 급성장해 2021년 2월 50만 명을 넘겼고 두 달 뒤인 4월 100만 명을 돌파하며 유튜브 내 최대 코미디 채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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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대학의 주요 콘텐츠와 세계관

피식대학의 주요 콘텐츠들은 스스로 세계관을 확장하며 상호 연계되고 그 과정에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B대면데이트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는 5명. 카페 사장 최준(김해준), 재벌 3세 이호창(이창호), 언더그라운드 래퍼 임플란티드 키드(김민수), 다단계 직원 방재호(정재형), 중고차 딜러 차진석(이용주)이다. 이 중 카페 사장 최준은 영상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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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운영해요. 커피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죠. 에티오피아에서 유학을 했어요. 철이 없었죠. 커피가 좋아서 유학했다는 자체가. 커피를 만드는 그들의 열정과 노력을 안다면 커피를 더욱더 진지하게 대할 수 있게 되죠. 어떤 커피 좋아해요? 카페라테? 부드러운 우유가 들어간 카페라테 좋아하는구나. 우유 좋아해요? 나도 우유 좋아하는데. 아이 러브 우유.”

과한 느끼함에 시청자들은 아찔함을 느끼지만 묘하게 빠져든다. 이 영상에는 댓글 1만 개 이상이 달렸다. “제가 약간 고통을 즐기는 타입인가 봐요. 자꾸 들어오게 돼.” “준독되고 다시 보니 넘 설렌다… 사랑해 최준” 등 반응은 뜨거웠다. ‘준독되다(최준+중독되다)’ ‘준며들다(최준+스며들다)’ 같은 신조어도 생겼다.

이 코너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기 캐릭터 래퍼 임플란티드 키드는 최근 케이블채널 Mnet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10’에 출연했다. “피식대학 ‘한사랑산악회’에 나오는 분이랑 좀 닮으신 거 같다”라는 심사위원의 말에 임플란티드 키드는 “저희 큰아버지다”라고 답한다. 한사랑산악회에 등장하는 산악회장 김영남과
B대면데이트의 임플란티드 키드는 실제 동일 인물이다. 모두 크리에이터 김민수가 연기하는 캐릭터, 즉 ‘부캐’다. 그러나 피식대학 크리에이터들은 이 사실을 능청스럽게 숨기며 세계관을 확장한다.

실감 나는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구축한 ‘피식대학 유니버스’는 옴니채널로 확장돼 시너지를 내고 있다. 한사랑산악회의 이택조 캐릭터는 ‘스핀오프 채널’로 개설됐다. 중년 남성 이택조가 운영하는 개인 유튜브 콘셉트로 10월 말 기준 구독자는 약 14만 명이다. B대면데이트의 이호창 본부장은 피식대학과 ‘빵송국’ 채널을 넘나들며 다양한 콘텐츠로 시청자들에게 소구하고 있다. 빵송국은 이호창을 연기하는 이창호가 동료 개그맨 곽범과 함께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로 약 36만 구독자(2021년 10월 말 기준)를 보유하고 있다. 피식대학이 김 공장 시찰 등 공식 일정을 소화하는 이호창 본부장을 담는다면 빵송국에서는 직원에게 호통치는 등 그의 사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일종의 ‘스핀오프 콘텐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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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만 구독자 사로잡은 피식대학의 콘텐츠 전략

2030 코미디 불모지에 가까웠던 유튜브에서 147만 구독자라는 두터운 팬덤을 만들고 섭외 1순위 크리에이터로 도약한 피식대학의 콘텐츠 전략은 무엇일까?

1. 기존의 성공 문법에서 벗어나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

유튜브는 추천 알고리즘에 따라 시청자가 선호할 만한 영상을 보여준다. 지난 2018년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서 닐 모한 유튜브 최고제품책임자(CPO)가 “이용자들이 보는 영상의 70%는 AI가 추천한 것”이라고 밝힌 바도 있다. 보통 시청자가 본 것과 비슷한 콘텐츠를 추천하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따라 하거나 살짝 변형해 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 방식을 따르면 시청자에게 더 많이 노출될 순 있지만 새롭고 창의적인 콘텐츠가 나올 리 만무하다.

피식대학은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따르기보다 ‘재미’라는 본질에 집중했다. 채널 초기 몰래카메라 등 유행하는 포맷을 차용하기도 했지만 결국 피식대학 멤버들이 강점을 가진 상황극 기반의 코미디 콘텐츠에 집중해 급성장했다. 05학번이즈백, 한사랑산악회, B대면데이트가 대표적이다. 이 코너들은 ‘피식대학 오리지널 콘텐츠’라 불릴 정도로 흥행하며 채널 대표 코너로 자리매김했다. 정 대표는 “현재 유행하는 것에서 벗어나 재미를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이 볼 것”이라며 “지금 당장 BM이 세워져 있고 밸류체인이 완전히 구축된 콘텐츠를 만들기보다 우리가 보기에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타깃에 구애되지도 않았다. 대학생이라는 ‘타깃’보다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미션’을 우선했다. 한사랑산악회, 05학번이즈백 같은 히트 코너가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엄밀히 따지면 20대 초중반 시청자가 공감하기 어려운 소재이지만 재미있는 콘텐츠는 어느 세대에나 통했다. 특히 2030 ‘패션 피플’들이 05학번이즈백 코너에 열광했다. 이 코너에는 2000년대 유행한 아디다스 저지, 어깨 부분이 파인 망고 나시, 울프컷 등 지금 보면 촌스러운 스타일의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정 대표는 “2030 ‘패피’들이 10여 년 전에 태어났으면 저런 옷을 입고 다녔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라며 “시대는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기에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로 시청자 홀린 ‘킹받는 매력’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The most personal is the most creative).” 지난해 열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 수상 소감을 밝히며 한 말이다. “영화는 개인적인 것이 돼야 하고 제스처와 대사 한 줄도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에서 나온다”는 영화계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처럼 개인적인 경험에서 끌어낸 창작물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마련이다. 보는 이도 현실에서 한 번쯤 겪어 봄 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피식대학 멤버들도 이를 노렸다. 현실감 높은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로 시청자에게 소구했다. B대면데이트가 대표적이다. TV에서 방영하는 데이트 프로그램에는 왜 멋있고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만 나올까라는 물음에서 출발한 콘텐츠다. 또한 소개팅은 흔히 이뤄지지만 실제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에 착안해 코너를 구상했다.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캐릭터다. 실제 있을 법한 캐릭터를 구상하고 실감 나게 연기할 때 시청자의 몰입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피식대학 멤버들이 ‘사람 연구’에 몰두하는 이유다. 주위 사람들과 일상 속 에피소드에 평소 촉각을 세워 콘텐츠 소재를 찾고 캐릭터를 구상한다.

김갑생할머니김 미래전략실 본부장 이호창 캐릭터도 이렇게 탄생했다. 정 대표가 친하게 지내던 육포 제조업체 2세 친구에서 캐릭터를 따왔다. 막대한 부를 가진 재벌과 육포라는 친근한 소재의 괴리에서 코미디적인 요소를 발견한 것이다. 정 대표와 멤버들은 이를 차용해 김 제조업체 3세로 이호창 캐릭터를 구상했다. ‘김갑생할머니김’이라는 회사명 역시 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개그맨 이창호의 할머니 성함인 ‘김갑생’에서 따왔다.

‘킹받네.’ 피식대학의 하이퍼 리얼리즘 콘텐츠를 본 팬들의 반응은 주로 이렇다. 피식대학 영상 댓글에 자주 등장하는 ‘킹받네’란 표현은 ‘킹(King)’과 ‘열받네’의 합성어로 ‘완전 열받는다’는 뜻의 신조어다. 부정적인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 쓰이는 맥락은 다르다. 보통 짜증과 호감을 동시에 느낄 때 쓴다. 잔뜩 허세를 부리는 재벌 2세 이호창과 느끼한 카페 사장 최준을 보며 시청자들은 “진짜인 것 같아서 킹받는다”고 하지만 이를 ‘찰떡’같이 묘사하는 캐릭터가 웃겨 동시에 매력을 느낀다. 정 대표는 “실패한 소개팅, 즉 짜증 나는 기억을 불러일으키지만 불편함과 재미를 동시에 줘 일종의 매운맛에 중독시키는 것”이라며 “유산슬, 둘째 이모 김다비 등 기존에 흥행한 부캐도 있었지만 호감형에 가까운 이들 캐릭터와 피식대학 캐릭터들이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은 이 ‘킹받는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3. 세계관 강화로 팬덤 확장

피식대학의 실감 나는 캐릭터와 탄탄한 스토리는 일종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세계관이란 일반적으로 콘텐츠의 배경이 되는 가상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뜻한다. 이 세계관이 구축되면 시청자는 콘텐츠 속 설정을 마치 실제처럼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세계관 놀이에 참여한다.

다음은 이호창 본부장이 등장한 ‘김갑생할머니김 2021 ESG 경영 발표’ 영상에 달린 한 댓글이다. “요즘 해외에선 김을 간식으로 먹는다죠? 한인 마트에 가면 김갑생할머니김이 항상 품절이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김을 세계화시킨 GGS물산의 이번 ESG 경영 소식은 GGS물산이 지속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진정한 친환경 기업이라는 것을 또 한 번 입증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호창 본부장님의 지구를 지키는 그린 경영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Gim for prim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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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김갑생할머니김을 실존하는 기업처럼 받아들이고 기꺼이 세계관 놀이에 동참한다. 그리고 피식대학은 이들의 놀이를 섬세하게 들여다보며 세계관을 강화했다. 팬들이 김갑생할머니김을 ‘GGS물산’ ‘GGS그룹’이라 부르는 것을 보며 GGSAT라는 디테일을 세계관에 녹였다. GGSAT란 삼성직무적성검사 SSAT를 패러디한 김갑생할머니김 온라인 인적성 검사다. 이를 콘텐츠로도 연결했다. 실제 취업 강의 전문 해커스잡 강사를 섭외해 인터넷 강의 형식의 ‘GGSAT 유형별 풀이’ 영상을 만들었다. 2021년 10월 말 기준 이 영상 조회 수는 약 45만 회다. 정 대표는 “피식대학은 댓글 기능의 포텐셜을 최대한 끌어올려 활용하는 크리에이터”라며 “댓글을 모두 다 읽으면서 팬들의 피드백과 아이디어를 반영하려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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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의 정점을 찍은 건 김갑생할머니김의 출시였다. 피식대학은 김갑생할머니김과 이호창 본부장 세계관을 강화하기 위해 실제 김 출시를 추진했다. 당시 소속사이던 샌드박스 MD 팀에 요청해 성경식품과 손을 잡고 김갑생할머니김을 생산, 11번가를 통해 지난 5월 출시했다. 결과는 3시간 만에 완판이었다. 정 대표는 “라이선스 사업은 사실 중간에 이해관계자가 많아 크리에이터들이 가져가는 수익은 미미하다”며 “수익보다는 실제 출시된 김갑생할머니김을 보면서 ‘이게 진짜 제품화돼서 나오네’라는 팬들의 반응을 끌어내고 싶었고 세계관이 굉장히 풍부해졌다는 점에서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말했다.

4. 채널 방향 고려한 전략적 협업

지난 5월, 2021 P4G 서울 정상회의 홍보를 위해 외교부와 피식대학이 컬래버래이션한 영상 조회 수는 2021년 10월 말 기준 약 103만 회, 댓글은 4400여 개다. 이 같은 성과가 가능했던 건 광고주의 의도와 채널 방향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외교부 P4G준비기획단은 기획 단계에서 P4G가 다루는 ESG 개념과 피식대학의 이호창 본부장 캐릭터라는 접점을 찾았다. ‘이호창 본부장이 ESG 경영을 강의하는 영상’이라는 콘셉트를 제안했고 피식대학은 이를 수락했다. 이호창 본부장과 김갑생할머니김 세계관을 강화하기 위해 이런 콘셉트의 영상이 평소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피식대학은 외교부와의 컬래버 영상을 고퀄러티로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 포럼처럼 보이기 위해 전국에 있는 호텔 수십 군데를 물색해 촬영 장소를 섭외했다. 이호창 본부장의 ESG 경영 발표 스크립트도 정재형 크리에이터가 밤새 작업해 완성했다. 단순 광고 영상이 아닌 세계관 강화에 필요한 핵심 콘텐츠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외교부와 협업한 ESG 경영 발표 영상을 업로드한 뒤 피식대학에 추가적으로 컬래버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 영상을 참고해 비슷하게 자기 회사 콘텐츠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었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고사했다. 똑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건 채널 운영 면에서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MD 상품도 마찬가지다. 피식대학은 김갑생할머니김 출시 이후 ‘김갑생할머니김치’ ‘김갑생할머니밀키트’ 등 여러 제안을 받았다. 이 또한 고사했다. MD 상품을 단순 수익 사업이 아닌 세계관 확장 과정의 일환으로 고려해 내린 선택이었다. 정 대표는 “팬들이 불편함 없이 용인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수익을 추구해야 비즈니스가 영속 가능하다”며 “팬들과 광고주를 실망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형태의 광고안과 사업을 엄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성공 요인과 시사점
윈윈하는 ‘컬래버 궁합’은 따로 있다

재미없으면 주목받지 못하는 ‘호모루덴스’의 시대. 기업은 물론 보수적이고 경직된 이미지의 정부 부처도 피식대학 같은 유튜브 채널과의 컬래버에 눈을 돌리고 있다. 무거운 이슈도 가볍게 풀어 타깃으로 하는 대상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피식대학과 같은 유튜브 채널과 제대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하려면 어떤 전략적 접근이 필요할까. 기업 관점에서 세계관이 뚜렷한 유튜브 채널과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보자.

1. ‘한 방’ 노리기보다 자체 채널에 콘텐츠 축적

기업은 보통 타깃 고객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질 때 유튜브 채널 콘텐츠 또는 크리에이터와의 컬래버를 고려한다. 이렇게 협업 관계를 맺을 경우 그저 단발성 홍보 효과를 내는 기업이 있고, 이를 브랜드 빌딩의 발판으로 효과를 이어나가는 사례가 있다. 성패를 가르는 차이점은 기업의 자체 채널에 있다. 가령 기업이 운영하는 자체 유튜브에 이미 흥미를 끄는 콘텐츠가 많이 축적돼 있다면 컬래버로 유입된 소비자들을 묶어 둘 수 있다.

매일유업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매일유업은 지난 4월 유튜브 ‘빵송국’ 채널과 협업해 ‘이호창 X 바리스타룰스 전략적 제휴 공장 시찰 영상’을 만들었다. 이호창 본부장이 바리스타룰스 제품 생산 공장을 시찰하고 매일유업 관계자의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듣는 영상으로 10월 말 기준 이 영상 조회 수는 약 137만 회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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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은 이 콘텐츠 외에도 바리스타룰스 관련 영상을 공식 유튜브 채널 ‘Maeil’에 꾸준히 업로드해왔다. ‘바리스타룰스’ 코너에 누적된 영상만 60개다. 단백질 건강 기능 식품 ‘셀렉스’ 등 다른 주력 상품 관련 영상도 인기가 좋다. 반전 드라마 형식으로 만든 셀렉스 광고 콘텐츠 2편은 각각 조회 수 650만 회를 돌파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꾸준히 콘텐츠를 누적한 결과 2021년 10월 기준 매일유업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는 5만2000여 명, 누적 조회 수는 약 2억4000만 회에 달했다.

2. 컬래버레이션은 제로섬이 아니다

광고와 콘텐츠는 악어와 악어새다. 수익 모델이 얽혀 공생하는 관계다. 서로의 접점을 잘 찾아 협업하면 시너지를 내지만 그렇지 않으면 양쪽 모두 낭패를 보기도 한다.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와 마케팅 담당자가 충돌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크리에이터가 기획한 콘텐츠의 표현을 수정하는 등 마케팅 담당자는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담으려 해 광고 효과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좋은 컬래버를 위해서는 콘텐츠 기획이나 구성에 있어 크리에이터의 방식을 어느 정도 신임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 콘텐츠나 채널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CJ E&M, YG엔터테인먼트, 샌드박스를 거치며 마케팅과 콘텐츠 업무를 모두 경험한 정 대표는 “마케팅은 100개 정보 중에 1∼2개를 뽑아 소비자들의 인식 속에 각인하는 작업”이라며 “광고주가 너무 긴 텍스트와 많은 정보를 담아 달라고 요구하면 시청 지속 시간이 떨어져 유튜브 알고리즘상 영상 추천도 적어지고 트래픽도 감소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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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피식대학과 외교부의 P4G 서울 정상회의 홍보 영상 컬래버는 좋은 예로 꼽힌다. P4G준비기획단은 ‘이호창 본부장이 ESG 경영을 강의하는 영상’이라는 간략한 요청만 하고 디테일한 콘텐츠 기획과 구성은 모두 피식대학에 일임했다. 조회 수가 폭발하면서 결과적으로 ‘윈윈’이었다. 외교부는 P4G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피식대학은 이호창 본부장의 세계관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마케팅 담당자와 크리에이터의 의견 조율 과정이 ‘제로섬’이 아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컬래버를 위한 조율은 소구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공동의 목표 아래 최적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서로 양보를 하면 손해를 보는 제로섬으로 이해해 충돌한다면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3. ‘Promotion to Product’ 전략

과거에는 마케팅이 프로덕트(제품)를 출발점으로 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프로모션(홍보, 마케팅)에서 프로덕트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피식대학의 김갑생할머니김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람들이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실제 상품으로 탄생했다. 가상공간에서 인기를 얻으면 실제 상품으로 출시해도 인기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이 현상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업이 보통 기존 유튜브와의 컬래버를 프로모션 수단으로 기획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바로 프로덕트다. 유튜브 채널에 자사 제품 광고를 제안하는 것이 아닌 신제품 출시를 제안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트렌드 민감도가 높아야 한다. 김갑생할머니김의 경우 피식대학이 당시 소속사였던 샌드박스 MD 담당 부서를 통해 성경식품에 출시를 제안했다. 다시 말해 콘텐츠 트렌드를 명민하게 보고 있던 다른 기업이 먼저 피식대학에 이러한 제품 기획을 제안했다면 컬래버 기회를 선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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