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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세계관 형성

BU•SMCU… 팬덤 결집하는 아이돌 세계관
참여와 반응이 생태계 확대의 핵심

김동은,이규열 | 334호 (2021년 12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세계관의 역할은 견고한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다. 세계관은 팬들의 2차 창작을 독려한다. 세계관은 팬들이 SNS 홍보나 투표와 같은 사회적 행동을 이끌고, 이 같은 팬들의 참여를 통해 세계관이 확장되기도 한다. 또한 세계관은 IP 확장 시 각각의 스토리 간의 통일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선 먼저 핵심 메시지를 설정하고, 이와 연관된 키워드들을 도출해 세계관의 기본 재료가 되는 기믹(Gimmick, 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을 설정한다. 이러한 장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장르가 선택되면 구체적인 창작물을 만드는 건 아트디렉터들의 몫이다. 세계관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합의를 이뤄야 한다.



2021년 11월4일, BTS(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는 ‘오리지널 스토리에 기반한 네 편의 웹툰 작품을 내년 1월15일 네이버웹툰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전통 호랑이 설화를 재해석하고 BTS의 일곱 멤버가 등장하는 웹툰 ‘세븐 페이츠:차코(7 Fates: CHAKO)’가 그중 하나다. 같은 소속사의 보이그룹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장르의 웹툰도 함께 출시될 것으로 예고됐다. BTS라는 지적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이 확장되는 중심에는 ‘학교 3부작’ ‘화양연화’ ‘윙스(Wings)’ ‘러브 유어 셀프(Love Your Self)’ 등 각 앨범 콘셉트가 유기적으로 엮여 구성된 ‘BU(BTS Universe)’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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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엠엔터테인먼트(이하 SM) 역시 세계관에 진지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이그룹 EXO(엑소)는 2012년 ‘엑소 플래닛’이라는 미지의 행성을 배경으로 한 세계관을 갖고 데뷔했다. 멤버들은 순간 이동이나 물, 바람을 다스리는 등 초능력을 갖고 미지의 행성에서부터 온 새로운 스타들로 표현됐다. 엑소는 처음부터 한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엑소K’와 중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엑소M’이 함께 기획됐는데 이 둘을 평행 세계, 쌍둥이 관계로 설정해 세계관에 녹여냈다. 세계관에 대한 SM의 진심은 작년 4인조 걸그룹 ‘에스파(aespa)’가 데뷔하며 정점에 달했다. 데뷔곡인 ‘Black Mamba(블랙 맘바)’부터 이후 발매된 ‘Next Level(넥스트 레벨)’ ‘Savage(새비지)’까지 ‘광야’라는 세계관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최근에는 SMCU(SM Culture Universe)라는 이름의 세계관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며 SM 소속의 다른 가수들 역시 광야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통합하고 있다.

엑소가 데뷔하던 10여 년 전만 해도 세계관을 갖춘 아이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팬들에게도 굉장히 낯설었던 개념으로 그저 콘셉트 정도로만 치부되기도 했다. 판타지 중심의 설정이 오그라든다거나 속된 말로 ‘병맛’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 같은 세계관을 소화해야 하는 아티스트들을 보고 안쓰러워 하며 일종의 ‘공감성 수치’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팬들은 점점 의문투성이인 세계관에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가며 빠져들기 시작했다. 최근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살펴보면 오히려 세계관을 갖추지 않은 아이돌을 찾는 게 더 어려워졌다. 설정이 탄탄하지는 않더라도 저마다의 독특한 콘셉트를 갖추고 앨범뿐 아니라 영화,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로 뻗어 나가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요 근래 세계관에 목숨을 거는 건 엔터테인먼트 업계뿐만이 아니다. 여러 브랜드에서도 공들여 저마다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더이상 제품으로 차별화를 꾀하기 어렵거나 소비자들의 관여도가 낮은 유통업계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빙그레의 ‘빙그레우스’가 일으킨 세계관 센세이션이 역병처럼 업계 전반에 퍼진 것이다. 어느 정도 제품이 보장됐다면 재미와 신선함을 선사하는 것 자체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명분이 될 수 있고 세계관은 이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보인다.

그러나 너도나도 세계관을 만든다면 세계관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는 승부수를 띄우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뭐가 됐든 세계관을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통일감이 있고, 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는 구성을 갖추는 게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턱대고 세계관 시나리오를 써 내려가기보다 세계관이 비즈니스로 작동되는 원리를 먼저 살펴보는 게 좋다. 오래전부터 세계관에 대해 고민한 결과, 현재 해외 팬들에게도 큰 공감을 얻으면서 세계관 전성시대를 맞이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자.

팬덤 경제의 장작 세계관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세계관의 역할이자 목표는 당연히 견고한 팬덤을 구축하는 것이다. 브랜드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처럼 세계관을 구축하고자 하는 이유 역시 브랜드의 팬을 모으기 위해서일 것이다. 세계관이 충실한 팬덤을 쌓는 데 중요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팬덤 내의 2차 창작을 촉진할 수 있다. 둘째, 팬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마지막으로, 폭넓은 IP 확장을 도모할 수 있다.

2차 창작 콘텐츠 시장에서 2차 시장이란 보통 영화의 상영 이후 비디오, DVD, OTT(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또는 굿즈 등을 통해 부가적인 매출을 내는 시장을 뜻한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도 회사가 주도하는 2차 시장이 있다. 그러나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팬덤 사이에는 다른 양상의 2차 시장이 하나 더 존재한다. 바로 회사가 판매한 굿즈나 앨범을 팬들끼리 리세일(resale)하거나 팬들이 직접 아티스트나 캐릭터를 대상으로 굿즈를 제작해 판매하는 등 팬들이 주체가 되는 시장이다.

예컨대,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한 장 구매하면 멤버 한 명의 포토 카드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최애’ 멤버의 포토 카드를 얻기 위해서 팬들끼리 포토 카드를 교환하거나 또는 프리미엄을 지불하고 구입할 수도 있다. 인기가 많은 멤버의 포토 카드일수록 희소성이 생기고 프리미엄의 가치도 높다. 팬 한 명이 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기도 한다. 최애가 여럿일 수도 있고 ‘차애’의 굿즈를 모으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이다. 한 팬이 트위터에 특정 멤버의 굿즈를 디자인해 시안을 올리면 구입하고 싶은 팬들이 모여 돈을 걷고 공동구매를 추진하기도 한다. 굿즈를 디자인한 팬이 ‘총대’를 메고 굿즈의 디자인부터 제작, 배송 등 전 과정을 책임진다. 그림 실력이 좋은 팬은 다른 팬에게 일정 비용을 받고 요청에 따라 특정 멤버를 그려주는 ‘커미션(commission)’을 수행하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면 이처럼 팬들끼리 모종의 거래를 하는 것은 ‘상도덕’에 어긋날 수 있다. 특정 멤버의 굿즈에 프리미엄을 붙여 파는 것은 ‘암표’ 판매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직접 굿즈를 만들어 파는 행위 역시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돌 문화, 그리고 서브 컬처를 다루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는 이 같은 2차 시장과 창작물들을 암묵적으로 용인한다. 결국은 2차 시장의 매출이 회사로 흡수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비즈니스 모델은 구독 모델에 가깝다. 앨범이 나올 때마다 앨범을 비롯해 굿즈, 콘서트 등이 시즌에 맞춰 기획된다. 한 팬이 2차 시장을 통해 수익을 얻었다면 이는 곧 다음 구독(앨범) 시즌에 신상품을 구매할 예산이 되는 셈이다.

이들은 같은 굿즈를 공유하거나 서로 나름의 이득을 주고받는 등 2차 시장에서의 거래를 거치며 팬들은 연대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나름의 엄격한 규율과 자체적인 경제 원칙이 존재한다. 프리미엄이든, 굿즈 제작비든 팬덤 내부에 형성된 적정 가격선이 존재하며 이 금액을 넘어가는 순간 팬들 사이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한 그룹에서 특정 멤버만을 편애하는 ‘악개(악질 개인 팬)’를 지양하는 분위기 역시 멤버에 따른 프리미엄의 차이가 도를 넘는 일을 막는다. 상도덕에 어긋나 보이는 시장이 지속성을 갖출 수 있는 나름대로의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소속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2차 시장을 부추기면 어떻게 될까?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와 그를 통해 파생되는 다양한 창작물이 소비의 대상이 된다. 하나의 인격체인 아티스트가 돈벌이의 수단이라는 인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순간 소속사는 팬들의 질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미성년자인 멤버들이 지나친 스케줄로 힘들어하는 기색이 내비치면 팬들이 소속사에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의 정서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세계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아이돌 그룹이 세계관을 갖추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팬들의 2차 창작을 독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2차 창작의 대상 역시 넓어지게 된다. 과거에는 멤버들이 거의 유일한 2차 창작의 대상이었지만 현재는 세계관 내 모든 요소가 2차 창작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세계관의 요인들이 서로 연계돼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다른 시장보다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2차 창작물이 활발하게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다소 마이너하게 여겨지는 분야에서 같은 대상을 즐기는 팬들은 단단한 연대감을 갖게 된다. 또한 판타지부터 역사물까지 다양한 세계관을 갖춘 애니메이션은 애초에 2차 창작을 할 만한 소재가 풍성하다.

팬들의 참여 2차 시장도 팬들의 참여로 형성되는 시장이지만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 팬들의 참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는 소중한 자산이다. 2017년 5월21일, BTS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6년간 왕좌를 지킨 저스틴 비버를 제치고 ‘톱 소셜 아티스트’를 수상했고, 이후 올해까지 5년 연속 수상 행진을 이어나갔다. 상의 이름처럼 톱 소셜 아티스트는 소셜미디어(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에게 주는 상이며 올해에는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등 세계적인 스타들과 블랙핑크, 세븐틴 등 K팝 스타들이 후보에 올랐다. BTS에게 이 상이 돌아간 건 당연히 SNS에 화력을 집중한 팬덤, 아미(ARMY)의 공이 크다.

이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아티스트의 음악과 퍼포먼스는 기본이고 팬들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거의 모든 팬덤 활동이 온라인에서 전개되는 지금은 팬들이 SNS에서 아티스트를 언급하거나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투표하는 등 사회적 행위가 더욱 중요해졌다. ‘프로듀스 101’을 비롯해 국민들의 투표로 그룹의 멤버가 결정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팬들은 원하는 멤버의 데뷔를 위해 본인이 투표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주변인들까지 투표에 참여시키기 위해 온갖 선거 유세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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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최고의 인기를 끈 예능 프로그램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는 팬들의 참여를 적극 활용해 이슈 메이킹에 성공한 사례다. 스우파는 크루를 결성한 여성 댄서들이 미션에 따라 춤 배틀을 펼쳐 최종 우승 크루를 가리는 프로그램이다. 이때 거의 모든 미션의 승부에는 글로벌 대중 투표 점수가 반영되는데 본 방송이 방영되기 전부터 각 크루의 미션 영상이 유튜브에 먼저 공개된다는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어쩌면 방송에서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는 내용을 방송사 자체 채널이 아닌 전 세계 시청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를 통해 선공개하면서까지 팬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다. 팬들이 미션 영상을 보고 다음 방송까지 자신의 좋아하는 팀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면 ‘좋아요’ 수가 다음 주에 발표되는 최종 순위에 반영된다. 보통 각 영상의 조회 수는 500만 회 이상이다.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홀리뱅’ 크루의 안무 창작 미션 영상의 조회수는 영상 업로드 후 불과 한 달 만에 953만 회를 기록했다. 스우파 관련 영상 중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영상은 미션을 통해 제작된 힙합 아티스트 제시의 신곡 ‘Cold Blooded’의 뮤직비디오인데 조회 수가 총 3353만 회에 달했다.(2021년 11월 기준) 팬들은 SNS에 자신이 응원하는 크루의 영상이나 사진을 올리며 지인들에게 투표를 구한다. 미션 결과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시시각각 노출되는 조회 수는 팬들의 ‘좋아요 전도’에 기름을 붓고 팬들 사이의 동질감을 형성한다. 내가 응원하는 크루의 영상 조회 수가 많으면 안도감을 느끼고 스스로가 잘나가는 크루의 팬이라는 사실에 희열을 느낀다. 반면 조회 수가 적으면 더욱 절실한 마음으로 주변에 투표를 부탁하며 크루를 지지하는 데 몰입하게 된다. 미션 영상을 선공개함으로써 팬들은 투표를 위해 자신이 응원하는 크루뿐 아니라 모든 크루의 영상을 보게 된다. 즉, 팬들의 충성심을 고취할 뿐 아니라 본 방송의 하이라이트를 포기하는 것 이상의 바이럴 효과를 거둔 것이다.

그렇다면 팬들은 왜 스우파의 본방송을 챙겨볼까? 물론 투표 결과가 궁금해서다. 그러나 스우파에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다. 바로 멤버 사이 또는 크루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스우파 세계관’이다. 앞서 살펴본 팬들이 몰입과 참여를 통해 스우파의 각 크루에게도 아이돌 그룹과 같은 일종의 세계관을 형성했다. 예컨대 ‘코카N버터’는 ‘빡세게’ 태닝을 하고 수위 높은 춤을 추는 센 언니들의 크루다. 실제 상대 크루 멤버들을 향해 강한 비판을 하거나 강한 눈초리를 날리며 ‘진짜 무서운 언니들’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눈물도, 정도, 애교도 많은 멤버의 모습이 조명되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바쁜 일정 때문에 태닝을 하지 못해 점점 하얘지는 멤버들의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며 오히려 ‘킬링포인트’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코카N버터는 총 8개 크루 중 4위를 차지하는 데 그쳤지만 코카N버터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며 충성도 높은 팬덤을 형성했다. 비단 코카N버터뿐 아니라 참여한 모든 크루에게는 각각의 세계관이 존재하고 모두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8개 크루가 모두 다 좋은데 왜 이들끼리 경쟁을 붙여놨냐’며 가장 좋은 크루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팬들도 여럿 존재한다. 이는 과거 우승팀이나 상위권 멤버들이 상대적으로 큰 사랑을 받던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과의 차이점이다. 개인의 매력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크루 전체가 각기 다른 매력의 세계관을 형성하며 모두가 고루 큰 사랑을 받았다.

팬들의 참여와 반응은 제작자들이 각 콘텐츠나 인물을 설정하고 세계관을 채워가는 데 좋은 이정표가 된다. 스우파 역시 프로듀서가 먼저 각 크루에 대한 콘셉트를 잡고 촬영과 편집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방송이 나간 이후에는 팬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참고했을 가능성이 높다. 스우파의 멤버들, 특히 각 크루의 리더는 채널을 불문하고 현재 섭외 1순위인데 이들은 단독으로 출연하기보다는 보통 여럿이 함께 출연한다. 그리고 함께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면 살벌한 스우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우승자를 가리기보다는 서로 간의 화합과 우애가 돋보이는데 이는 시청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로 보인다. 스우파 방영 당시 팬들은 갈등과 긴장을 강조한 제작진의 편집을 불편해하며 제작진의 ‘악편(악마의 편집)’을 비판했다. 그리고 여성 댄서들 간의 우정을 보고 싶다는 본인들의 의견을 영상 댓글이나 SNS, 커뮤니티 등에 적극 피력했다. 실제 스우파에서 화제성이 높은 장면 중 하나는 과거 불화로 해체된 팀의 리더(허니제이)와 팀의 핵심 멤버(리헤이)가 춤 배틀을 벌이며 화해하는 장면이었다.

아이돌 세계에서도 팬들을 세계관에 초대해 팬들의 충성도를 강화하고 있다. BTS, 엑소 모두 마찬가지로 독특한 설정의 가상 세계가 배경이 되면 팬들은 수사관이 돼 세계관 곳곳에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뮤직비디오에 나온 소품의 의미는 무엇인지, 이번 타이틀 곡이 이전 곡과 어떤 관계인지, 멤버 중 누가 숨은 빌런인지 등 각자가 추리한 내용을 팬 커뮤니티에 공유한다. 자신의 추리가 많은 팬의 공감을 느끼면 희열을 느끼고, 과거에 추리했던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면 팬들이 해당 글을 다시 찾아가 댓글을 다는 ‘성지순례’ 행동을 보인다. 이 같은 참여 과정을 통해 팬들은 더욱 아이돌의 세계관에 빠져들고 팬덤에 대한 소속감과 아티스트에 대한 충성심이 깊어진다.

IP 확장 과거 H.O.T, 젝스키스 시절에도 멤버들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파생됐다. 지금의 BTS와의 가장 큰 차이는 ‘맥락’이다. 어제는 학교 선배였던 ‘우리 오빠’들이 오늘은 뜬금없이 반전을 부르짖는 평화의 수호자 또는 사이버 전사가 되는 식이었다. 즉 과거에는 큰 맥락 없이 새로운 콘셉트가 전개됐다. 현세대 아이돌인 BTS 역시 앨범뿐 아니라 웹툰, 게임(BTS 월드), 드라마(유스) 등 다양한 미디어 장르를 넘나드는 ‘트랜스미디어(Transmedia)’를 바탕으로 IP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 아이돌과의 차이점은 그 중심에 BU(BTS Universe)가 있다는 점이다.

한때 특정 산업군에 속한 회사가 다른 산업의 상품을 출시하는 것을 ‘영역 확장’으로 이해하며 때로는 시너지를 고려하지 않는 뜬금없는 의사결정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최근 콘텐츠 업계에서는 IP 개념이 정립되면서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부터 넥슨, 넷마블 등 게임 업계까지 ‘슈퍼 IP’ 사냥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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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에는 ‘웹소설-웹툰-영상(영화, 드라마, OTT 등)’으로 IP가 확장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네이버 시리즈에서 2018년 11월 웹소설로 시작한 ‘재혼 황후’는 연재 시작 5달 만에 누적 다운로드 조회 수 400만 회를 기록했고 인기에 힘입어 2019년 10월부터는 네이버웹툰에도 정식 연재를 시작했다. 또 드라마화도 예정됐다. 김현주, 유아인, 박정민 주연의 넷플릭스 인기 작 ‘지옥’ 역시 2019년 선보인 네이버웹툰 연재물이 원작이다. 확장된 IP가 인기를 얻으면 다시금 원작이 주목을 받기도 한다. 원작은 원작대로, 확장 콘텐츠는 확장 콘텐츠대로 막대한 수익을 끌어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네이버와 카카오는 더 강력한 IP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웹소설, 웹툰 플랫폼, 영상 제작 스튜디오를 인수합병하거나 기획사와 협력 관계를 맺는 등 전방위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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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IP가 확장되는 과정에도 세계관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IP는 비즈니스를 위해 구성된 거래 가능한 형태의 형상물을 부르는 명칭일 뿐 IP의 확장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게 바로 세계관이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아이돌이 세계관을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음악과 뮤직비디오만으로는 팬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IP를 확장해나갈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그룹에서 파생된 콘텐츠가 어떤 미디어에서 어떤 형식으로 선보이든 오리지널의 세계관이 확고하다면 정체성을 잃지 않는다.

실제 확장 IP가 벌어들이는 사업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아이돌의 팬들이 게임, 영화 등 다른 콘텐츠를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과거 아이돌들이 출연한 영화나 뮤지컬에 팬들이 몰린 것은 그저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출연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통해 아티스트의 새로운 면모를 육안으로 확인해볼 수 있다는 사실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여기에 세계관이 개입되면 팬들이 확장 IP를 적극적으로 향유할 타당한 이유가 하나 더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앨범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세계관의 핵심 스토리가 영화나 웹툰을 통해서 공개된다면 어떨까? 아무리 영화나 웹툰을 좋아하지 않아도 해당 내용이 궁금해서 혹은 이미 흥분 상태인 커뮤니티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영화표를 예매하거나 웹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을 것이다. 즉, 세계관은 IP 확장에 있어 통일성과 생명력을 동시에 부여하는 셈이다.

세계관 구축 방법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전래 동화의 대사이다. 여기 나오는 호랑이와 떡 파는 어머니를 여우와 짚신 장수로 바꾸어도 분위기가 크게 흐트러지진 않을 것이다. 이 짚신 장수는 장터에서 떡 파는 어머니 앞에 좌판을 펼쳤고, 여우는 호랑이가 떡을 먹는 모습을 보고 부러웠을 수 있다. 짚신 장수는 떡 파는 어머니가 넘는 고개의 옆 고갯길을 넘다가 여기서 여우를 만났을 수 있다.

이렇게 호랑이나 떡 파는 어머니 같은 인물, 고개 같은 장소, 맹수를 만나고 음식을 요구당하는 사건 등 기존 스토리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고 각 요인이 교체되면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확장된다. 주요 캐릭터인 호랑이, 떡 파는 어머니가 없어도 이야기가 확장되고 구성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이것을 ‘해와 달 오누이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계관하에서 여우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이 얼마든지 추가되거나 동물들의 왕국을 설정할 수 있다. 떡 파는 어머니와 짚신 장수 외에도 장터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을 추가할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은 이 콘텐츠를 즐기는 이들에 의해 선호되고, 복제되고, 강화되며 점점 탄탄한 세계관으로 거듭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같은 세계관의 요소들을 뽑아내며, 어떻게 이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엮어낼 수 있을까. 아래의 방법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하나의 가이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핵심 메시지 설정 기성세대가 말하는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그것’을 갖는 게 목적이라면 외부로부터 그럴싸해 보이는 IP를 구입해 사용하는 게 더 낫다. 그러나 팬들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이 문제라면 세계관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결국 이 세계관을 누구에게 소구할 것인지를 설정하는 게 키포인트인데 기존 마케팅에서 주로 차용하는 인구통계적 방법이 꼭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과연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 대구에 사는 30대 남성이라고 해서 그 집단 내에서 공유하는 가치가 동일할까? 물론 공통 가치를 도출할 수도 있겠지만 남녀노소보다 개성이 우선인 포스트모던 시대에 과연 이 같은 세분화 전략이 유일한 진리라는 생각은 내려놓자. 같은 보이그룹의 팬이라도 10대 남성 팬이 있고, 할머니 팬이 있다. 아이돌의 팬이라는 정체성은 이들의 ‘부캐’에 가깝다. ‘20대 여성 팬을 모으기 위해 어떤 세계관이 필요할까’라는 접근보다는 ‘우리의 팬들이 어떤 가치에 공감할까’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팬들의 부캐는 ‘고양이 집사’일 수도 있고 ‘워커 홀릭’일 수도 있다.

브랜드의 경우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좀 더 편하게 찾을 수 있다. 기업에서 CI (Corporate Identity)를 공들여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핵심 메시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그 메시지는 예컨대 ‘또 하나의 가족’ ‘사랑해요 ○○’ 등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에서 다양한 문구로 표현됐을 것이다.

키워드 도출 핵심 메시지와 연관된 키워드들을 모아 세계관의 재료들을 도출하는 과정으로 브레인스토밍과 유사하다. 이 과정을 통해 핵심 메시지를 명료화할 수도 있다. 말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가 추상적이거나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일 것이다. 예컨대, ‘부드럽게 위로를 준다’는 메시지를 구현하고 싶은 경우 연관된 인물, 사건, 사물, 배경을 뽑아 내보자. ‘티슈’ ‘두부’ ‘교회 오빠’ 등 다양한 단어가 떠오를 수 있다. 보통 3000∼4000개 정도의 단어를 떠올린다. 그리고 각 단어를 서로 연결해 보는 것이다. 이때 다른 단어들과 가장 연결고리가 많은 단어가 핵심 메시지가 될 수 있다. 단 이 같은 단어들을 직접 드러내는 건 ‘전쟁이 싫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육성으로 ‘전쟁이 싫다’고 외치는 격으로 다소 세련된 방식은 아닐 수 있다. 좀 더 고급스럽게 에둘러 표현하기 위해서는 2순위, 3순위 단어를 활용하는 것도 함께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이후 연결 관계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단어가 하나의 그룹으로 묶을 수 있다. 인물, 사건, 사물, 배경을 토대로 떠올린 단어들을 묶으면 각각 이미지가 연상된다. 예컨대 ‘은잔’ ‘키스’ ‘루비’라는 단어 조합을 보면 ‘뱀파이어’라는 개념이 연상된다. 마찬가지로 요즘 사람들은 핑크색, 초록색 트레이닝복이나 달고나를 보면 자연스럽게 ‘오징어게임’이 생각난다.

여기서 선택을 받은 단어들이 앞으로의 세계관에서 꾸준히 쓰일 기본 재료이자 ‘기믹(Gimmick•관심을 끌기 위한 장치)이’ 되며 이 장치들 덕분에 향후 다른 앨범을 내도 세계관은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 선택받지 못한 단어들 역시 이후를 위해 잠시 저장해 뒀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장르 선택 앞선 연상 과정을 통해 마련한 세계관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은 ‘장르’가 수행한다. 같은 기억에 로맨스를 입힐 수도 있고, SF를 입힐 수도 있다. 과거에는 장르 선택에 있어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최근에는 그 중심이 캐릭터로 옮겨왔다. 예컨대 빙그레우스라는 인물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중세 시대물이라는 장르를 결정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 주요 기믹과 장르가 정해졌다면 배경에서 인물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는 아트디렉터들의 몫이다. 첫 작업이 앨범 재킷이 될 수도 있고, 뮤직비디오가 될 수도 있다. 세계관을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것은 팬들의 몫만이 아니다. 앨범 재킷은 당연히 사진작가가, 뮤직비디오는 당연히 뮤직비디오 감독이 전문인 영역이다. 이들이야말로 어떤 흐름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어떤 장치를 활용할 수 있을지 가장 깊게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다. 깊은 고민을 거쳐 설정된 기믹이 존재하기에 이들을 믿고 맡겨도 창작물 간의 통일성이 깨지거나 서로 내용이 맞지 않는 패러독스(paradox)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세계관 활용을 위한 조언

고생 끝에 만든 세계관을 어떻게 활용할지 감이 오지 않거나 또는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자체가 서지 않을 수도 있다.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조언을 제안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값을 매길 수 없다. 종종 세계관을 만들고 싶어 하는 브랜드와 미팅을 가지면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 중 하나가 “세계관을 만들면 진짜 매출이 오르나요?”다. 기업이 투자를 진행하기 전에 확실한 결과가 따를지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세계관의 효과를 수치로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고 매출과 같은 재무적 지표를 통해 이해하고자 하면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세계관의 유용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객 충성도 등 세계관의 활용과 걸맞은 지표를 차용해야 할 것이다.

효율을 따지지 마라. 세계관 구축은 긴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키워드만 해도 3000∼4000개를 뽑아낸다. 그간의 고생을 치하하기 위해 모든 요소를 한 세계관에 다 쏟아붓고 싶어 하기도 한다. 효율을 따지며 빈틈없이 완벽한 세계관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4000개의 키워드가 모두 담긴 세계관이 탄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설정 간의 오류가 생기거나 세계관이 너무 방대하고 복잡해서 팬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어떻게든 논리적으로 모든 요소를 다 넣었다고 쳐도 그 세계관에서 팬들의 참여를 통해 채워 넣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사실 이런 고민을 하기 전에 이 같은 세계관을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세계관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완벽한 설정을 갖추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세계관도 바뀐다. 세계관이 절대 불변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될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새로운 세계관을 짜도 된다. 더이상 기존의 콘셉트가 먹히지 않는데 현재의 세계관 안에서는 콘셉트를 바꾸기 어렵거나, 혹은 멤버의 탈퇴 등과 같은 현실적인 이유로 세계관에 변화가 필요할 수도 있다.

엑소의 경우 중국인 멤버 2명이 중도 탈퇴하며 세계관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현재는 중국인 멤버 1명이 추가 탈퇴해 총 9명이다.) 엑소는 2015년 콘서트에서 영상을 통해 팬들에게 기존 10인 체제의 세계관이 리부트(reboot•재가동)됐다는 사실을 선포했다. 더 이상 엑소 멤버들은 외계인이 아니게 됐다. 대신 엑소 멤버들의 초능력을 9개의 미발견 물질을 연구하는 과정과 연결했다. 팬들의 적극적인 세계관 놀이 참여를 위해 트위터 계정을 오픈했고, 다음 발매될 앨범의 멤버별 티저 영상 속에는 다음 티저 영상의 주인공과 공개 시간에 대한 떡밥이 숨어 있었다. 팬들의 집단 지성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이들의 마지막 미션은 팬송의 형태로 발표됐는데 해당 영상을 통해 팬들 역시 미발견 물질에 대한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후에 SM은 이 이벤트를 두고 멤버 탈퇴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팬들을 위한 선물이라 밝혔다.

이처럼 세계관이 바뀔 수 있는 이유는 세계관이 팬들과의 ‘약속’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팬들 역시 세계관이 기획사에서 만든 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놀이에 참여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멤버들을 초능력자로 이해하는 것이다. 피치 못하게 세계관에 수정이 필요하다면 더욱 큰 공을 들여 팬들이 그 이유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팬들이 그 이유와 과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더 큰 공을 들여 팬들과 새로운 합의를 이뤄야 한다.

각자의 ‘덕질’을 보호하라. 때로는 의도하거나 바라는 대로 팬들이 세계관을 해석하지 않을 때도 있다. 또는 생각보다 몰입하지 않는 팬들이 있을 수 있다. 팬들이 한 아티스트를 좋아하는 형태가 모두 동일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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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한 채널에서 ‘펭수의 신원 확인’이라는 주제로 뉴스를 보도했다. 그쯤 펭수는 외교부 행사에 참석했는데 기자가 외교부 관계자에게 펭수의 신원을 묻자 ‘10살짜리 펭귄이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다수의 팬은 외교부 관계자의 우문현답을 칭찬했다. 펭수 세계관에 적극적으로 몰입한 이들은 펭수 안에 있는 사람을 궁금해하는 것 자체가 펭수라는 캐릭터를 즐기지 못하는 처사라고 생각할 것이며, 이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들을 배제하고 펭수를 중심으로 하는 의사소통에 끼워주지 않을 것이다. 반면 펭수를 연기자가 탈을 쓴 캐릭터로 인식하는 팬들도 있을 것이다.

아이돌도 마찬가지다. 팬들은 멤버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할 수도 있고, 멤버가 노래하는 모습을 좋아할 수도 있다. 아이돌 멤버가 드라마에 출연 소식을 전했을 때 환호하는 팬들도 있지만 걱정이 앞서는 팬들도 있다. 이처럼 팬들의 니즈와 취향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며 몰입의 수준도 전부 다르다. 팬들 사이의 멤버에 대한 특정 모습을 강요하거나 혹은 앨범 구매, 스트리밍, 뮤직비디오 시청들을 강요한다면 유치함이나 혐오감을 느끼거나 팬들 간 불화가 생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세계관이 팬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진화하지만 이를 원하는 방향대로 통제를 가하는 순간 세계관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팬들이 생겨날 것이다. 세계관에 대한 팬들의 몰입 정도와 감상은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건강한 팬덤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팬덤 내의 강요는 물론 기획자들의 강요 역시 존재해선 안 된다. 자발적 행태로 흥미를 느끼고 덕질에 임할 때 든든한 팬덤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90년대 하이텔과 천리안의 게임 동호회를 설립, 운영했던 경험이 있으며 NHN게임즈, KTH, 아프리카TV 등에서 게임 기획 및 제작 업무를 담당했다. 건국대와 성공회대에서 겸임교수 및 시간 강사로 ‘게임기획론’을 강의했다. 테이크원컴퍼니 재직 시절, 게임 ‘BTS월드’의 제작 총괄을 담당했으며 하이브에서 세계관라이브러리파트장을 맡았다. 현재는 ㈜메타버스제작사의 대표로 NFT, 메타버스 관련 창작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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