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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의료 AI 솔루션 스타트업 ‘루닛’

최첨단 딥러닝 기술과 최고의 메디컬팀이 만났다
엑스레이 데이터 분석 글로벌 최강자로 우뚝

조윤경 | 319호 (2021년 0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진단 및 치료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의료 AI 스타트업 루닛은 진입장벽이 높다고 알려진 의료계에 안착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이용했다.

1. 딥러닝 기술이 경쟁력에 핵심 역할을 하는 의료 분야로 피벗하고 병원, 국가, 문화권별 엑스레이 검진 환경의 차이를 파악해 데이터 분석의 정확도를 높여 나갔다.

2. 사업 초기에 무리한 사업 영역 확장이나 무분별한 국가 과제 참여 등은 지양하고 소프트웨어 기술 고도화에 집중했다.

3. 업계 최대 메디컬팀을 운영하고 전문가 자문위원을 영입해 전문성을 보완했다.

4. 글로벌 의료장비회사 등 기존 시장 참여자와 협업해 초기 판로를 확보하고, 개인 고객과 해외 시장으로까지 직접 마케팅을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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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레이(X-Ray)는 신체검사나 건강검진에서 기본으로 포함돼 있어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정도로 대중화된 진단 방법이다. 반면 이 같은 엑스레이가 언제나 높은 정확도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3차원인 몸의 구조를 2차원으로 나타내는 엑스레이의 특성상 하얗게 보이는 뼈 뒤쪽에 병변이 있다거나 병변이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는 등의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의료 관계자들에 따르면 폐암의 경우 엑스레이 검진 시 병변을 놓치는 경우가 약 30%에 달한다. 이러한 한계에도 엑스레이는 많은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어 의료 현장에서 흔히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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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문제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이 나타났다. 엑스레이 진단 보조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루닛 인사이트 CXR’가 그 주인공이다. 2017년에 발표된 루닛 인사이트 CXR는 폐 결절, 폐암 등 주요 폐 질환 9개를 발견할 수 있으며 흉부 엑스레이 진단의 정확도를 97% 가까이 높일 수 있다. 루닛 인사이트 CXR를 개발한 스타트업 ‘루닛’은 의료 영상을 통해 병의 진단과 치료를 돕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의료 AI 회사다. 루닛이 2018년 선보인 ‘루닛 인사이트 MMG’는 유방암 여부를 진단할 때 쓰인다. 루닛은 CXR와 MMG 두 제품에 대해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고 있다.

루닛의 높은 기술력은 국제 학술대회 및 콘퍼런스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가 발표하는 2017년 ‘세계 100대 AI 기업’에 국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루닛이 선정됐으며, 2019년과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유망한 디지털헬스 기업 목록 ‘디지털헬스150’에 2년 연속 포함됐다. 2020년 6월엔 다보스포럼(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테크놀로지 파이오니어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ImageNet, Camelyon, VisDa 등 국제 AI 대회에서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의 글로벌 기업과 하버드 의대팀을 제치고 최상위권에 오르며 기술력을 증명했다.

최근엔 진단을 넘어 치료 서비스까지 제공해 전문성을 더하는 중이다. 루닛이 2021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루닛 스코프(SCOPE)’는 항암 치료제에 대한 반응을 예측해준다. 암 환자에게 어떤 면역 항암제를 투여하면 잘 듣는지를 알 수 있게 한다.

루닛은 10년 미만의 스타트업으로선 드물게 초기 상업화에도 성공했단 평가를 받는다. 국내 10대 대학병원 중 7곳에서 루닛 제품을 사용 중이며, 전 세계 20여 개국으로 이미 수출도 진행하고 있다. 누적 투자 금액 역시 600억 원에 달한다. 창업 8년 차에 접어드는 스타트업 루닛이 진입장벽이 높다고 알려진 의료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는 분야로 ‘피벗’

루닛이 처음부터 의료 분야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루닛이 ‘의료 AI’ 업체로 출범한 것은 2014년이지만 창업 멤버들이 공식적으로 의기투합했던 건 그로부터 1년 전인 2013년이었다. 그 기간 동안 루닛 역시 다른 스타트업과 마찬가지로 사업 아이템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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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욱 현 루닛 의장을 포함한 창업 멤버 6명은 카이스트 학부의 힙합 동아리 선후배 사이로 처음 알게 됐다. 컴퓨터공학과 경영학을 전공하던 이들은 특히 마음이 잘 맞아 ‘나중에 꼭 같이 창업하자’고 다짐하곤 했다. 여섯 멤버는 창업 스터디를 꾸려가다 AI와 딥러닝 기술의 전망이 밝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멤버 중엔 관련 분야를 다루는 대학원에서 이미 연구를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카이스트 학내 벤처 출신도 있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관련 기술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AI 기술에 대한 확신만큼은 모두 같았다.

결국 이들이 의기투합해 2013년, 딥러닝을 활용한 국내 1호 스타트업 ‘클디(Cldi)’를 창업했다. AI란 용어가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지지 않은 시절이었다. AI를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구글의 ‘알파고’가 등장한 2016년보다 3년이나 앞선 때였다. 창업 직후인 2014년엔 ‘이미지넷 세계 AI 대회’에서 구글, 페이스북 같은 유명 IT 기업을 제치고 7위를 차지해 자신감도 생겼다.

멤버들이 패기 있게 도전한 첫 아이템은 패션이었다. 누구나 옷을 사 본 경험이 있는 만큼 쉽게 접근이 가능한 분야였다. 루닛은 사진 이미지 속 의류를 인식해서 비슷한 상품을 추천해주는 서비스를 고안해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이커머스 사이트에 상품 추천 서비스가 기본적으로 탑재되지만 당시로써는 흔치 않은 기능이었다.

큰 포부도 잠시. 외부에서 맞닥뜨린 반응은 예상과 달리 미지근했다. 베타버전 서비스 출시 후 소비자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멤버들은 쇼핑이란 높은 정확성을 요구하지 않는 분야란 사실을 알게 됐다. 쇼핑이란 친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직접 입어 보는 ‘경험’ 자체가 중요한 활동이다. 내 기호에 얼마나 일치하는 의류를 추천받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기성 패션 기업들이나 투자자들에게도 크게 매력적인 기술이 아니었다. 루닛의 강점인 ‘높은 정확도’를 살릴 수 있는 분야와도 거리가 멀었다.

피벗이 시급해 보였다. 멤버들은 피벗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의료 산업이 눈에 들어왔다. 병의 진단과 치료에는 다른 피벗 후보 분야(보안, 통신 등)보다 높은 정확도가 요구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료계는 각종 데이터가 방대하게 축적돼 있는 분야인 동시에 정확한 데이터 분석이 중요시되는 분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AI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멤버들 사이에서 밤낮으로 치열한 토론이 이어졌다. 당시 의료 분야에 AI를 접목한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다섯 곳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AI를 통해서 의학적 진단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크게 가치 있는 일일 것이란 생각에 멤버들 모두 동의했다. 결국 루닛은 2014년 의료 AI로 피벗을 결정했다.

일반적으로 의사는 엑스레이나 CT 등 의료 영상물을 보고 암이나 염증을 판독하고 진단한다. 수련의 시절부터 이 같은 판독 및 진단 경험이 쌓이며 전문성을 갖게 된다.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러한 전문성을 갖기 위해서는 대략 4∼6년 이상의 수련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AI는 사람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이 같은 데이터를 학습하게 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한 명의 전문의가 1년에 최대 약 1만 장의 엑스레이를 판독한다고 가정할 때, 15년 동안 판독하는 엑스레이는 최대 15만 장가량 된다. 반면 AI의 경우 며칠 만에 수백만 장의 데이터를 학습할 수 있다. AI는 사람의 경험과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기술임을 증명한 것이다. 현재 루닛이 AI 학습에 사용한 의료 영상 데이터는 약 500만 케이스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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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끝에 얻어낸 데이터 수집•학습 노하우

호기롭게 출발했지만 상품성이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사업 초기 엑스레이 이미지를 이용한 진단 알고리즘을 개발할 때였다. 루닛의 연구 주제에 관심을 보인 병원과 교수진의 협조로 데이터는 상대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발 제품이 실제 의료 현장에 투입되자 문제가 발생했다. 내부에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때는 높은 정확도를 나타내던 프로그램이 실제 의료 현장에 투입되자 병변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병원마다 다양한 제조사의 엑스레이 기계를 사용 중이라 생긴 문제였다. 엑스레이 업체마다 영상이 진하거나 부드러운 정도가 다르고, 또 영상의 세밀한 정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당시 루닛의 AI는 서울대병원 등 루닛과 협력하는 병원 및 의료기관으로부터 제공받은 데이터로만 학습한 상태였다. 이로 인해 서울대병원과 다른 의료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의료 현장에선 정상 엑스레이도 ‘병이 있다’고 진단해버렸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환자가 옷을 그대로 입고 엑스레이를 찍는 경우가 많아 목걸이나 옷의 단추들이 그대로 찍혀 나오는 일이 흔했다. 루닛의 AI는 목걸이와 같은 액세서리가 찍힌 엑스레이 영상을 정상인의 것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루닛 프로그램을 쓰고 있는 해외 일부 국가 고객사에서 컴플레인이 접수되자 임직원 모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급한 문제여서인지 한국과의 시간차를 고려하지 않고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프로그램을 수정해달라고 재촉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 직원이 전전긍긍하며 해결책을 강구했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난제였기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라 난감해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은 모든 임직원이 뛰어들어 며칠 밤을 새우며 에러 데이터를 정제했다. 문화권마다 촬영 방식에서 차이가 나고 병원마다 서로 다른 업체의 기기를 사용한 결과, AI가 학습하지 못한 데이터의 사각 지대가 발생했던 만큼 다시 문화권별, 기기별 데이터를 수주에 걸쳐 학습시켰다. 집중적으로 문제 해결에 매달린 결과 다행히 오류는 성공적으로 수정됐다.

애초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 것이 오산이었다. 사용자들의 사용 여건이나 지역별 규제가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데이터의 규모보다는 데이터 소스, 즉 병원의 다양성이나 인종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을 고려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샘플이 많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다양하게 많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런 경험들은 훗날 협력 병원으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할 때 이전보다 전략적으로 데이터를 요청하는 노하우를 축적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루닛은 이 같은 데이터 학습에 대한 노하우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는 암 진단 환자 유형에 따라 현재 시점에 촬영된 사진뿐 아니라 2년 전 촬영된 과거 사진까지 함께 요청하고 있다. 1차 검진에서 음성이라고 진단을 받았으나 2년 이후 실시한 재검사에서 암 진단을 받는 환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다양성에 대한 집착 덕분에 사용 기기, 병원의 특성, 문화적 다양성, 나아가 병변 발발 시기로 인한 오차를 줄이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 스타트업에는 독(毒)

엑스레이 영상을 이용한 진단 부문에서 성과가 나타나자 루닛 내부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업 확장을 고민하게 됐다. 소프트웨어의 정확도 문제가 점차 개선되고 이를 활용한 임상 실험 결과가 여러 의학 학술지에 게재되며 대학병원 등 여러 곳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제안을 바탕으로 루닛은 2017년부터 심혈관계 질환에도 AI 기술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당시 루닛은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오차 문제를 해결해가며 기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고도화하는 작업을 지속해야 하던 상황이었다. 이 밖에도 대학 연구팀과 루닛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임상 실험을 진행한 뒤,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관계기관의 인허가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제품의 영업과 판매까지 병행하고 있어 임직원 모두 이미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하지만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사업 확장의 기회를 날리는 것도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신사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서범석 대표는 ‘아, 이건 아니다, 이러다 다 죽는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새로 시작한 심혈관계 질환 사업은 모 대학과 함께 연구 개발을 하기로 이미 1년 전부터 얘기하던 프로젝트였다. 구체적인 협업을 위한 계약의 목전까지 가 있었지만 이미 과부하 상태인 회사 내부 상황을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사업을 안착시키기 위해 직원 모두 먹고 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일할 때였다. 경영진 사이에선 ‘사업이 통제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대로 가다간 하나라도 제대로 성공시키기 어려워 보였다.

이는 AI 알고리즘이란 기술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만들고 판매하면 끝나는 제조 상품과 달리 알고리즘 프로그램은 현장에 투입된 이후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고객의 피드백을 받아 업그레이드 작업이 반복된다. 잘 관리하고, 잘 운영하고, 기술을 더 고도화시키는 것까지가 루닛의 업무였다. 업계의 신임을 얻고 제품 정확도를 입증하기 위해 사업 초기부터 협력 관계에 있는 외부 대학 연구팀 등과 임상 실험을 진행하는 일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리뉴얼해야 했다.

결국, 서 대표는 심혈관계 질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해온 교수의 연구실에 찾아가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함께하기로 하고, 논의도 주고받던 파트너에게 찬물을 끼얹는 결정이라 미안한 마음에 입을 떼기도 쉽지 않았지만 그것만이 회사와 직원들을 살리는 길이었다. 이때부터 루닛의 임원진은 ‘빠르게 확장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같은 이유로 루닛은 국가 과제에도 철저히 회사 업무 영역과 일치하는 프로젝트에만 참여한다. 중소기업에 국가 과제는 달콤한 유혹이다. 선발만 되면 당장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무리해서 본업과 상관없는 과제까지 유치하곤 한다. 하지만 국가사업에 대한 의존도가 오히려 ‘독(毒)’이 되면서 회사를 어렵게 만든 사례도 적지 않다.

무리한 확장을 하지 않은 덕분에 부수적으로 얻게 된 효과도 있다. 신생 스타트업에 특히 중요한 첫인상, 즉 회사 정체성이 명확히 정리된 것이다. 창업 후 5년이 넘어가자 갈수록 직원이 늘어나고 사업이 확대되며 회사 브랜딩을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때까지 수많은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또 몇 가지는 실행에 착수하고 있었던 탓에 회사 전체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다. 서 대표는 “과감히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세부 적용 분야를) ‘암’으로 좁히니 회사의 비전이 뚜렷해져 내부적으로도 혼란을 덜 수 있었고, 외부에도 회사를 소개하기가 편해졌다”고 말했다.


DBR mini box I
치료 영역까지 확장된 의료 AI … ‘루닛 스코프’

면역항암제란 암세포가 인체의 면역 체계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환자 몸속 면역 체계를 활용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해 공격하도록 하는 약물이다. 모든 환자에게 반응하는 것은 아니라서 환자 개개인의 치료 반응을 예측해 치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루닛은 최근 자체 개발 중인 AI 기반 조직 분석 시스템 ‘루닛 스코프’를 통해 지금보다 면역 항암제 투여 가능 환자를 50%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선보였다. 루닛의 연구 내용은 2019년부터 AACR, ASCO 등 주요 학회에서 꾸준히 발표되고 있으며 AI ‘바이오 마커’i 의 개발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루닛은 국내외 제약 회사와의 파트너십도 추진 중이며 루닛 스코프의 첫 연구용 제품은 올해 하반기 정식 출시될 예정이다.

진단 영역의 경우 20년 동안 축적된 데이터가 있어 쉽게 취합할 수 있는 반면 면역항암제가 의료 현장에 사용된 것은 3년이 채 안 됐다. 이 때문에 환자 데이터를 대규모로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히 질병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치료 반응을 예측해야 하기 때문에 개발 단계에서 훨씬 고난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국내에서 진단과 치료 솔루션을 모두 개발하는 기업은 루닛이 유일하다.


업계 최대 의료 전문 인력 채용

루닛은 2021년 3월 기준, 영상의학과, 병리과, 혈액종양과 등 전문의 총 10명으로 구성된 메디컬팀을 운영하고 있다. 경쟁사들이 보통 전문의를 1명 정도 채용한 것과 비교하면 많은 숫자다. 루닛은 창업 초기부터 4명의 전문의를 고용해 사업을 고도화시켜 왔다. 경쟁사들의 경우 지난해인 2020년 처음으로 의사 자격증을 가진 직원을 고용한 곳도 있다.

전문의 영입은 인력 운용에 따른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초기 스타트업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러나 루닛은 앞으로도 메디컬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생각이다. 업계 최대 규모의 메디컬팀을 운영해 얻게 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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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는 데이터 수집 단계에서부터 드러난다. AI의 이미지 학습을 위해 병원으로부터 엑스레이 데이터를 받으면 어떤 부위에 병변이 있는지 제대로 표시가 돼 있지 않다. 루닛은 이 같은 데이터를 손수 정제해 사용한다. 병변 부위를 일일이 체크해 학습하게 해야 한단 뜻이다. 루닛은 데이터 작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영상의학 전문의 등 외부 인력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메디컬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이 같은 데이터 정제 작업을 총괄하는 것이다. 외부 인력을 교육하고, 주문하고, 검수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이는 의학적 지식이 없는 인력으론 대체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이 외에도 메디컬팀은 의료 데이터의 특징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전문가로서 어떠한 추가 데이터를 병원으로부터 수집해야 AI를 고도화시키는 데 쓸모가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루닛은 엑스레이 소프트웨어를 만들 때 엑스레이뿐 아니라 CT 데이터도 함께 수집한다. 엑스레이가 잘 걸러주지 못하는 미세한 병변을 잡기 위해 AI에 동일인의 CT 데이터까지 학습시키는 것이다. CT는 3차원의 영상이므로 2차원의 엑스레이 결과가 보여주지 못하는 병변을 구별해낼 수 있다. CT를 통해 병변을 발견해낸 사람의 엑스레이를 병변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면 AI는 더 높은 정확도를 갖게 된다.

전문 인력을 확보함으로써 얻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바로 신사업의 기획 단계에서 사용자(의사)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단 점이다. 사업 방향이 진단을 넘어 치료까지 확대되며 메디컬팀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일례로, 암 치료 중에서도 ‘면역항암제’를 루닛의 첫 아이템으로 정하게 된 데는 메디컬팀의 역할이 컸다. 면역항암제의 경우 환자의 치료 반응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 수많은 검사와 데이터가 활용된다. 이미지 인식을 핵심 역량으로 가진 루닛이 도전해볼 만한 분야인 셈이다. 이 외에도 사용자(의사) 입장에서 완성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의학 및 헬스케어 전문가 영입

백승욱 의장을 비롯한 공학도 출신의 창업 멤버 6인은 창업 초기부터 의료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외부 인력을 임원진으로 섭외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첫 시작은 서범석 대표였다. 서 대표는 루닛이 의료 분야로 피벗을 결정한 이후인 2016년 합류했다. 서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하다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병원에서 수련했다. 그는 백 의장이 루닛의 피벗을 고민할 때 자주 연락하고 자문을 구하던 카이스트 동기였다. 특히 암 치료 연구에 관심이 많았던 서 대표는 루닛 합류 이후 루닛의 기술을 암 진단에 적용하도록 방향을 잡고, 의료계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서 대표는 루닛 합류 직후엔 의학총괄이사(CMO, Chief Medical Officer)로 의료 파트를 담당해오다가 2018년 이사회 의결을 거쳐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2020년 12월엔 세계적인 의료기기 기업 중 하나인 GE헬스케어에서 글로벌 엑스레이 비즈니스를 총괄한 스콧 슈버트(Scott Schubert) 전(前) CEO를 자문위원으로 영입했다. 슈버트 전 CEO는 루닛의 흉부 엑스레이 AI 솔루션 ‘루닛 인사이트 CXR’를 탑재한 GE헬스케어의 ‘흉부 케어 스위트(Thoracic Care Suite)’를 포함해 40개 이상의 의료 영상 제품에 대한 개발 및 판매 단계에 참여했다. 루닛 측은 슈버트 전 CEO가 30여 년의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통해 루닛의 글로벌 시장 진출 확대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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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종양학 분야의 최고 전문가 토니 목(Tony Mok) 홍콩 중문대 교수도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루닛의 치료 영역인 ‘루닛 스코프’ 개발에 협력하고 있다. 목 교수는 세계적인 의학지인 NEJM, Science, The Lancet, Nature Medicine 등을 비롯한 유수 국제 저널에 240여 개 이상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폐암 치료법 정의에 큰 도움이 되는 국제 연구들을 주도해왔다. 현재 글로벌 제약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사외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 외에도 미국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초기 개발 및 선구자인 엘리엇 시걸(Eliot Siegel) 박사, 유방 영상학계 오피니언 리더인 린다 모이(Linda Moy) 뉴욕대 랭곤 메디컬센터 전문의, 칸 시디키(Khan Siddiqui) 존스홉킨스대 영상의학과 교수 등이 루닛의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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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참여자와 공생 전략으로 초기 시장 확보

루닛은 2021년 3월 기준, 국내 10대 대학병원 중 7곳에서 루닛을 사용할 정도로 초기 상업화에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전 세계 20여 개국 200여 곳이 넘는 의료기관에서 루닛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GE헬스케어, 필립스, 후지필름 등 의사와 병원을 상대로 의료기기를 제공하는 글로벌 영상장비 업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전 세계 엑스레이 시장의 약 50%에 해당하는 판로를 확보했다.

의료 업계를 떠올렸을 때 외부로 드러나는 고객은 환자나 의사 집단일 것이다. 그러나 제품 사용을 결정하는 병원 등 의료 조직이나 의료영상장비 업체 등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루닛은 이 같은 의료기기 전문 회사들과 협력해 이들 소프트웨어에 결합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의료기기 회사들이 이미 전 세계적인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루닛은 사업 초창기부터 상업화의 기틀을 닦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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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닛이 의료기기 파트너사들과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데는 높은 정확성이 주효했다. 세계 최대 영상 장비 회사인 GE헬스케어의 경우 전 세계 AI 제품을 검토한 결과, 성능과 안전이 가장 뛰어난 루닛과 유일하게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후지필름과 필립스 같은 굴지의 글로벌 의료기기 회사 역시 흉부 및 유방 촬영 분야에선 루닛과 유일한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협력업체 선정을 위한 데이터 정확도 테스트는 건강한 사람과 환자의 엑스레이 샘플을 각사에 제공한 뒤, 판독 정확도를 비교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루닛은 경쟁사 중 가장 높은 정확도를 기록해 최종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

파트너사와 협력하는 이 같은 방식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이미 국내외 대다수 병원에선 GE헬스케어 등 글로벌 대기업이 만든 엑스레이 판독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다. 루닛이 이 같은 파트너사와 협력하고 있기에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 중인 병원 관계자들을 고객으로 유치할 때 거부 반응을 줄일 수 있다. 이는 추후 루닛이 신규 개인 병원 등을 고객으로 유치할 때도 유리하게 작용하는 요인이 됐다.

루닛의 의료 연구 분야 임상 증거 역시 파트너사와 협력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됐다. 루닛은 세계 유수 대학의 연구팀과 함께 루닛 소프트웨어 제품을 활용한 AI 진단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을 JAMA Oncology, The Lancet Digital Health, Radiology 등의 권위 있는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게재하고 있다. 이 같은 임상 증거는 의료기기 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의료기기 회사들의 고객, 즉 현장에서 기기를 이용하는 병원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영상의학과 교수들이 제대로 된 제품이라고 인정한다면 협력사 역시 생각이 기울기 마련이다.

이는 추후 루닛이 개인 병원이나 제3국과 같이 대형 영상의료기기 회사들이 판로를 갖고 있지 않은 시장을 상대로 영업에 나섰을 때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됐다. 이전까지 루닛을 사용해보지 않은 의료진도 의료 AI의 정확성에 대해 다룬 임상시험 의학 논문을 통해 이미 루닛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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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가치 바탕으로 조직문화 확립

6명의 창업 멤버로 시작한 루닛은 이제 총임직원 수만 185명에 달한다. 직원 관리 측면에서 고민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분명 내가 면접을 본 직원인데 이름과 얼굴이 매칭이 안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전까진 ‘사람 대 사람’으로 직원을 대할 수 있었다. 전 직원의 성격이나 성향을 파악할 정도였고 업무 역량도 쉽게 체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원이 늘어나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서 대표는 “앞으로는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제가 생기면 직원들과 밥이나 한 끼 하면서 구체적인 가이드를 제시했던 캐주얼한 소통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전 직원이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기 위해 회사의 문화와 가치관을 일관성 있고 체계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회사 임원진은 ‘암은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암 치료의 성과를 올려서 생존율을 높인다’란 회사의 확실한 철학에 더해 조직문화를 확립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보고 TF를 꾸려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했다. 이에 3년 전, 회사의 6가지 코어 밸류, 즉 핵심 가치를 정립했고 이를 인재 채용 및 인사 평가에 활용하도록 했다.

• Motivate Yourself: 스스로 일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개인 성장의 목표를 알고 있는 사람

• Live to Learn: 배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

• Love One Another: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며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사람

• Be Original: 나와 동료 모두의 독특한 생각을 격려하고 존중하는 사람

• Push for Craftsmanship: 속도보다는 장인정신을 추구하는 사람

• Build with Evidence: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만큼 믿을 만한 근거로 입증하는 사람

루닛에 따르면 이 같은 방향 설정만으로도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판단하며 일을 수행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뤄가야 하는 것을 제시하고 세부적인 것은 직원들이 판단하도록 격려한다.

또한 직원들이 이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루닛에선 직원의 연구 초록이 승인된 국제 학술대회 및 콘퍼런스 현장에 참석하도록 하고 있으며, ‘루니버설(Luniversal)’로 불리는 사내 원어민 영어 수업을 운영하고, 도서 구입비 무한 지원, 외부 교육비 지원 등 직원들의 자기 계발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다.

개인 고객과 2차 병원, 글로벌 마켓까지

의료기기 회사에 루닛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분명 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파트너사에만 유통을 맡겨 놓으면 영업팀 운영을 자체적으로 할 때 기대할 수 있는 경험치가 부족해지는 것이 문제였다. 매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업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건, 달리 말하면 누군가에게 목숨을 맡기는 것과 같다. 고객과의 직접 접점을 만들고 이들로부터 직접 피드백을 ‘날것’ 그대로 받아야 서비스를 고도화시키기에 좋다. 이에 루닛은 직접 판매를 강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직접 판매를 강화해 얻게 되는 경험치는 파트너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터였다. 영업 경험을 통해 파트너사에 구체적인 제안을 하거나 영업을 직접 지원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파트너사 소속의 영업팀은 루닛으로부터 전반적인 설명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제품을 판매한다. 그런데 루닛 이외에 워낙 다양한 제품군이 있다 보니 루닛 제품에만 특별히 많은 시간을 쏟기엔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직접 나설 시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국내의 경우 서울의 대학병원에선 대형 의료기기 업체들이 공급하는 PACS(영상정보전달시스템) 같은 플랫폼이 잘 구축돼 있지만 지방의 검진센터나 2차 병원의 경우엔 그렇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 규모가 작은 개발도상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철학적인 판단도 한몫했다. 암을 정복한다는 애초의 목표를 위해서는 한국 시장만으로 사업을 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암은 조기에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암 치료의 성과를 올려서 생존율을 올린다’는 루닛의 가치관에 따르면 GE 등 의료기기 대기업이 수지타산 문제로 나서지 않는 작은 시장에도 직접 나가야 했다.

루닛은 현재 동국생명과학과 함께 국내 직접 유통을 진행하고 있다. 동국생명과학은 의료영상을 촬영할 때 결과를 보다 뚜렷하게 보기 위해 혈관에 주입하는 조영제가 주 판매 상품으로 국내 조영제 시장의 80%를 선점하고 있다. 그 덕분에 전국에 걸친 병원 네트워크를 활용한 판매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해외에서는 국가마다 현지 영업팀을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국가마다 의료계 상황이 다르다 보니 직접 대응을 하며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내린 판단의 결과였다. 루닛은 현재 유럽에 5명, 북미•남미 대륙에 3명의 마케팅•세일즈 인력을 두고 있다. 그 덕분에 현재 루닛의 전체 매출의 30%가 직접 판매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해 12월 호주에서는 아예 루닛의 웹사이트를 통해 개인 고객들에게 직접 AI 판독 결과물을 제공하는 B2C 베타 서비스를 오픈하기도 했다. 개인이 자신의 유방 엑스레이 사진을 업로드하면 루닛에서 병변 여부를 진단하고, 보조적인 2차 소견을 제공하는 식이다. 호주를 비롯해 미국 등지에선 이처럼 2차 소견에 대한 수요가 존재한다. 루닛은 미국 식약처의 인허가가 통과하면 미국으로도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앞으로의 숙제

루닛은 현재 국내 식약처 허가를 비롯해 유럽,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서 인허가를 받는 데 성공했다. 올해 미국과 일본에서의 식약처 허가도 앞두고 있어 글로벌 시장 확대는 더욱 가속화될 예정이다.

앞으로는 의료보험수가 1 를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의료보험수가를 받게 되면 병원 입장에선 루닛이 제공하는 것과 같은 기술을 활용하게 될 확률이 더 높아진다. 국가에서 인정을 받은 기술인 만큼 좀 더 자신감 있게 적용할 수 있고, 환자 입장에서도 비용이 크게 줄어드니 부담이 적어진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한 대규모 전향적 임상 연구가 필요한데 루닛은 세계적인 연구기관들과 이미 이를 위한 연구를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이 외에도 보험회사들과도 하나의 보험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한 계획을 진행 중이다. 진단 외에도 치료나 예방 단계에서 ‘암’이나 ‘데이터’ ‘AI’로 풀어낼 수 있는 영역이 있을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진단의학계 전부가 AI 엑스레이 판독기 도입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전문 영역을 침범한다고 여기거나 정확성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이유다. 따라서 AI가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하는 것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 역시 루닛이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 중 하나다. 심지어 루닛의 제품이 의사들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논문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다. 루닛은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곧 업계가 함께 진화하는 길이다’란 생각을 갖고 있다. AI로 인해 오히려 의료계에 새로운 시장이 생길 수도 있다. 서 대표는 “신뢰가 쌓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까지 임상 연구와 증거로 환자에게 이 기술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의료진에게 납득시켜 왔고 아직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 역시 데이터와 연구 결과로 지속적으로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DBR mini box III : 성공 요인과 시사점
데이터 딥러닝으로 정확한 진단… 의사-환자 신뢰 얻어

루닛은 수집이 어려운 의료 데이터를 확보하면서 폐쇄적인 의학계에 진입했다는 점을 먼저 높게 살 수 있다. 보통 의료기기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고 의사의 신뢰를 얻는 데 수년 이상이 걸린다. 인공지능(AI)과 같이 ‘VUCA’, 즉,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한꺼번에 반영되는 기술이 의료계에 도입되기 위해서는 뛰어넘어야 할 난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루닛은 딥러닝 기반의 범용 이미지 인식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의료 영상 진단 서비스를 개발해 흉부엑스선을 이용한 주요 폐 질환 및 유방암 조기 진단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폐 질환 판독에 활용되는 ‘루닛 인사이트’는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판독 정확도가 97% 수준으로 높아 의사들의 엑스선 판독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영상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면서 판독 정확도가 높아졌고 그로 인해 의사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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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AI를 활용하는 데 있어 데이터의 중요성은 너무나도 크다.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규모 있는 학습 데이터가 구조적으로 정리되고 준비돼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데이터를 통해 패턴을 학습하기에 데이터가 많이 확보될수록 성능이 향상되는데, 특히 딥러닝의 경우 모델의 복잡성만큼이나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 딥 러닝 과정에서 모델이 분류 작업을 비교적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데이터 레코드가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수백만 개가 필요하다.i

의료 비즈니스에서 방대한 데이터세트를 얻거나 생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데이터 활용이 어려운 주요한 원인은 우선 의료 데이터가 폐쇄적, 독점적으로 활용돼 왔으며, 데이터의 양은 많아도 쓸 만한 품질을 가진 데이터는 부족한 것에 기인한다. 게다가 의료 데이터를 활용할 경우 남용될 위험이 있거나 사업화에 성공하는 경우에도 제대로 된 보상이 이뤄질지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에 데이터가 공유되기 어렵다.

또한 어느 수준까지 누가 데이터의 소유권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구분을 짓기 어렵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 본인의 사진을 여러 장 올렸는데 AI가 그 사진을 분석한 결과, 다른 사람이 올린 사진에 본인의 얼굴이 자동 태깅(tagging)이 이뤄질 경우, 얼굴 인식 과정을 통해 생성된 데이터는 전적으로 페이스북의 소유일까? 기업이 얼굴, 지문, 홍채 등 개인 생체정보를 수집, 활용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사용 목적과 보관 기간 등을 고지해야 하고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실제로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생체정보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고, 얼굴 영상 등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문제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EU 지역에서도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따라서 의료 데이터는 철저한 비식별(익명화) 과정을 거쳐서 활용돼야 한다.

게다가 데이터의 품질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 X선 촬영 장비와 환경 조건, 촬영 방법이 다양하기에 입력되는 영상 데이터가 이질적이라면 AI 학습 과정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아무리 뛰어난 AI 알고리즘이라도 입력되는 데이터에 이상이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루닛은 현장 경험을 기초로 품질 좋은 데이터를 시계열적으로 축적하면서 상황적 요인 외에도 시간 변화에 따른 오차를 최소화하는 점이 유효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전문가의 기술 수용을 위한 사회•환경적 영향 요인 관리

촬영된 영상을 처리하고, 결과를 출력하는 비전 기술은 아직 완벽하지는 않다. ‘폴라니 역설(Polanyi's Paradox)’로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이 오랜 기간 축적한 암묵적이고 추상적 지식을 컴퓨터나 기계로 대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루닛은 최근 몇 년간 딥러닝 신경망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선보였고 단점을 빠르게 개선 중이다. [그림 1]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사람이 영상을 잘못 판독할 오차율은 5%에 달한다. 한편 비전 분야의 AI 비전 오차율은 최근 10년간 급격히 줄어들어 2015년을 기점으로 사람의 오차율 이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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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학습 시스템이 인간 수준 이상의 성능을 내는 시점, 이 임계값에 도달하면 비즈니스에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세돌 vs. 알파고 경기 이후 바둑계에서 AI를 받아들이는 속도는 매우 빨라졌다. AI 기반 시스템이 인간을 능가하면서 유명 바둑 타이틀 매치가 사라지고 프로 바둑 기사들의 상금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바둑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기원이나 사수에게서 바둑을 배우기보다는 AI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고, 프로 바둑 기사들은 유튜버로 변신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제 바둑을 이야기하는 데 AI를 배제하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달한 것이다.

이처럼 기계 학습은 직무 재설계, 업무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 등에서 변화를 이끌어낸다. 루닛이 만든 솔루션의 활용 역시 잠재적인 질병 요인을 식별하는 데 효율적으로 사용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방사선 전문의가 일반적인 분석시간을 절감해 정말 중요한 영상 분석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환자와 의사소통하면서 다른 의사들과 의견을 나눌 시간을 늘릴 수 있다. 이런 과정이 반복돼 안정성이 확보되면 업무 프로세스를 재설계해 일정 수준 이하 난도의 영상 해석은 자동화된 프로세스를 통해 훨씬 더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다.

기술수용이론의 대가인 비스와나스 벵카테시(Viswanath Venkatesh) 미국 버지니아공대 교수는 AI 기술 수용과 관련해 기존의 기술수용모델(TAM, Technology Acceptance Model)과 통합기술수용이론(UTAUT, Unified Theory of Acceptance and Use of Technology)을 활용해 새로운 AI 기술을 왜 사람들이 수용 또는 거부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Venkatesh, 2021).

전통적인 기술수용모델에서는 지각된 유용성(Perceived Usefulness)과 지각된 용이성(Perceived Ease of Use)을 개인이 정보 시스템을 이용하는 주요 요인으로 제시한 데 비해, 통합기술수용이론은 성과 기대(Performance Expectation), 노력 기대(Effort Expectation), 사회적 영향(Social Influence), 가능조건(Facilitating Conditions) 등을 핵심 구성 개념으로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벵카테시 교수는 AI 도입과 관련해선 개인, 기술, 환경 특성, 간섭(Intervention) 등을 사전적 영향 요소로 추가했는데, 이는 특히 의료 분야의 AI 도입에도 중요한 요소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의사들이 추가적으로 AI 기술을 도입하는 데는 기존 전문 지식 외에도 성과 및 노력 기대, 사회적 영향, 가능 조건과 더불어 개인•기술•환경적 성향 등이 우선적으로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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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 분석 영역으로 초기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

스마트폰이 출현한 지 10년이 조금 넘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AI의 활용은 조만간 일상이 되고 머신러닝이 보편화되면서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낼 것이다.

루닛은 의료 데이터 기반의 AI 기술 선도주자로서 의료 일선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앞으로 루닛은 축적된 데이터와 AI 기술을 활용해 AI 업무 자동화 및 정보제공 분야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그림 3]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의료계에서 AI 업무 자동화 및 정보 제공을 확장할 때의 (+), (-) 효과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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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학습의 결과는 대부분 ‘해석 가능성’이 낮다. 즉, AI 시스템이 어떻게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폴라니의 역설이 반대로 작동한다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AI 신경망에는 수억 개의 연결이 있고 각각의 연결은 최종 결론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AI 시스템을 예측하는 것은 명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AI 바둑대국의 수를 프로 바둑 선수조차도 그 의미를 해석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는데, 기계학습 시스템을 교육하는 중간에 제공된 데이터에서 파생된 숨겨진 편향이 존재할 수 있다. 성별, 나이, 경험, 자발성 외에도 수많은 조절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또한 AI 시스템 특성상 신경망 시스템이 실재적 진실이라기보다는 통계적 진실을 다룬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AI 시스템을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루닛이 초기 사업을 시작할 때 의료 데이터 중, 생사가 걸린 영역보다는 보조적인 정보 분석 영역에서 출발한 점은 이런 통계적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 하겠다.

앞으로 AI는 의료계 인력을 대체할 것인가? AI는 문제를 내기보다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기계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가나 혁신가들이 현재의 상황을 파악해 어떤 방향으로 혁신을 주도하고자 한다면 AI는 현재 상황 파악에는 매우 뛰어난 성과를 내겠지만 앞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는 사람을 능가하긴 어려울 것이다. 다시 말해, AI가 잘하는 영역이 있고 인간이 뚜렷한 경쟁 우위를 보이는 영역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루닛이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의료 전문가들과 팀을 이뤄 AI 기술을 확대, 전파해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 smjeon@gachon.ac.kr
필자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정보 박사 학위를 받았다. IBM과 삼성에서 다수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서울 및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에서 창업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벤처기업들의 실증 데이터 분석을 통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플랫폼 비즈니스, 전자상거래 분야의 사업 모델을 분석 중이다. 『페이스북 시대』 『FANG 시대의 경영정보학』을 번역했고 『경영학으로의 초대』를 공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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