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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1년 6개월

‘갑질’ ‘을질’ 막을 사내 규범 명확히 정해야

탁종연 | 315호 (2021년 0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2019년 1월 개정되고 그해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2014년 ‘땅콩 회항’ 사건, 2018년 대형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 등이 문제가 되며 법률로까지 규정됐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 지 1년 이상 지난 지금도 그 효과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부하 직원들은 개정법이 괴롭힘 예방 및 대응조치에만 그치고 있다는 입장이며, 임원 및 관리자들은 법을 방패 삼아 사내 분위기를 망치는 ‘을질’이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괴롭힘과 정당한 업무 지시의 경계가 모호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각 기업은 사내 금지 행위를 명확히 정의하고 상호 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근래 우리나라 기업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두 중 하나이다. 2014년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2016년 서울남부지검 검사에 대한 사내 폭언과 해당 검사의 자살, 2018년 서울 대형 병원 간호사들의 태움1 및 자살, 2018년 한 웹하드 업체 사장의 폭언과 폭행 등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경각심을 주었다. 결국 2019년 1월15일 근로기준법(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개정되고, 같은 해 7월16일 해당 개정법이 시행되면서 직장 내 괴롭힘은 공식적으로 법률에 규정되기에 이르렀다.

개정 근로기준법에 대한 사회적 기대도 높아졌다. 노조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법적인 조치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고, 회사 임원과 관리자들은 앞으로는 부하 직원이라고 말도 함부로 했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농담 섞인 각성을 했다. 인사 전문가들은 향후 기업 문화가 나아질 계기가 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게 흘렀지만 소위 ‘갑’과 ‘을’ 모두 불만이 적지 않다. 오히려 개정 법률 때문에 새로운 골치가 생겼다는 기업도 있다.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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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주로 법의 괴롭힘 감소 효과가 크지 않다고 비판한다.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법학회가 개최한 ‘직장 내 괴롭힘 금지제도 1주년 토론회’에서 이상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는 주요 산업 노동자 1000명 중 71.8%가 직 장내 괴롭힘의 변화가 ‘없다’고 응답했으며 ‘감소’ 또는 ‘매우 감소’라고 답한 사람은 각각 13.0%와 6.8%에 불과했다고 보고했다. 한 시민단체 역시 응답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서 ‘법 시행 후 갑질 경험이 오히려 늘어났다’는 응답이 45%에 달했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아직은 직장 내 괴롭힘 현상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상사에게 폭언과 주먹질을 당했다는 사례가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개정 근로기준법의 효과가 미미한 데는 괴롭힘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사실 개정 근로기준법은 과거에 비행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교묘한 괴롭힘 행위를 개념화해 처벌 범위를 넓히고, 기업주에게 취업 규칙 작성 등을 통해 괴롭힘 예방 및 대응 조치를 마련하게 하고,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하는 등의 보완 장치를 마련한 정도다. 법 시행 1년 후인 지난 7월 한 시민단체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 것을 알지 못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40%에 달했다고 하니, 어쩌면 큰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다.

반면 주로 갑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개정 근로기준법으로 인해 ‘을질’이 생겨나고 있다고 불평한다. 즉, ‘을’에 해당하는 하위직 직원들이 법을 지렛대로 삼아 정당한 업무 지시나 조언까지도 괴롭힘이라고 신고해 사내 분위기를 망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한 언론사의 어떤 중견 기자는 같은 부서 기자들에게 강압적인 말투로 지시하고, 빠른 업무 처리를 독촉했다는 이유 등으로 신고를 당해 정직 처분까지 받았다가 노동위원회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또 어떤 회사에서는 상사가 9시 정각에 출근하는 부하 직원에게 좀 일찍 나오라고 말했다고 시간 외 수당도 안 주면서 왜 괴롭히느냐는 식의 대꾸를 들었다고도 한다. 특히 요즘 90년대생 혹은 Z세대들로부터 이런 대응이 늘면서 이들에게 업무 지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간부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 기업에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갑과 을의 갈등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각 기업은 이런 의견 불일치를 어떻게 조화롭게 정리할 수 있을까?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근로기준법 제정 전이든 후든 폭력이나 성희롱 등은 갈등의 주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폭행과 상해, 협박, 모욕, 강요 등은 형법으로 처벌해왔으며,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 등 기존의 법률로도 처벌해왔다. 만일 아직도 업무를 위해 부하 직원에게 어느 정도의 폭행은 행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형사 처분 대상이다. ‘을’의 위치의 직원들이 이런 부분이 개선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면 당장 개선하도록 기업에서 나서야 한다. 기업 자체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과 정당한 업무 지시의 경계에 해당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갑과 을의 입장차가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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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이 정확히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근로기준법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나눠서 보면 ①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②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을 것 ③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등 세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한다. 첫째 요소와 셋째 요소는 비교적 판단이 쉽다.

하지만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은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고용노동부에서는 사회 통념에 비추어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거나, 필요성은 인정되더라도 행위 양태가 상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복적으로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집단 따돌림을 하는 것은 업무 필요성이 없어 괴롭힘이라는 것이다. 또 부하 직원에 대한 폭언•욕설•험담 등을 지속적으로 하여 인격권을 침해하거나, 공개적 장소에서 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등은 업무상 필요성도 적고 행위 방식이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고용노동부의 설명에도 여전히 모호한 부분이 남아 있다. 부하 직원이 9시1분에 출근해서 일찍 좀 다니라고 야단치거나, 중요한 업무를 그르쳤을 때 다른 직원들 보는 데서 어떻게 된 것인지를 질책한 경우 어떨까? 신입사원에게 복사 등을 주로 시키는 행위는 또 어떤가? 직원들에게 신입사원 환영 회식에 참여를 권한 것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실제로 일부 직원이 이런 이유로 괴롭힘을 당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고 한다. 반면 상사들은 업무상 필요한 범위 내에서 적정하게 한 일이지 이런 것들이 어떻게 괴롭힘이 될 수 있냐며 볼멘소리를 낸다. 사실 고용노동부에서도 업무상 필요성 여부는 관계 법령 외에도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을 참고해서 판단하라고 단서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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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기업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선, 사내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규범을 명확히 해야 한다. 모 병원의 취업규칙을 보면 직장 내 괴롭힘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금지 행위를 열거하고 있다. 이를 참고해볼 만하다.

1. 신체적으로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행위

2. 지속•반복적인 욕설이나 폭언

3. 다른 직원들 앞에서 또는 온라인상에서 모욕감을 주거나 개인사에 대한 소문을 퍼뜨리는 등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

4. 합리적 이유 없이 반복적으로 개인 심부름 등 사적인 용무를 지시하는 행위

5. 합리적 이유 없이 업무 능력이나 성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조롱하는 행위

6.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정당한 이유 없이 업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 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하거나 무시하는 행위

반대로 ‘을질’을 막기 위한 사내 규범도 명확히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많이 알려진 대로 ‘배달의민족’의 사내 규범에 “9시1분은 9시가 아니다”라는 조항이 있다. 작고 사소한 규율을 통해 직장인 스스로 원칙과 규칙을 세워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기업 내에 일과 사람에 대한 상호 존중의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상사는 업무와 관련된 정당한 지시를 하고, 부하 직원은 그런 지시를 수용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또한 상사는 업무상 지시와 질책을 하더라도 늘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잃어서는 안 된다.

예전에 학교에서 있었던 변화를 떠올려 보자. 과거 교사들의 체벌이 훈육으로 정당화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폭력적인 훈육을 ‘인권침해’로 새롭게 개념화하면서 변화가 시작됐고, 상당한 진통을 거쳐 비폭력적이고 인권 친화적인 지도 방식이 정착되고 있다. 체벌이 아니라 벌점 부여, 생활기록부 기재, 반성과 화해 등 과거에 없던 새로운 통제 수단이 사용되는 것이다. 우리 기업에 횡행했던 괴롭힘 행위들이 과거에는 미화되거나 정당화됐지만 이제 직장 내 괴롭힘으로 새로 정의됐다. 일정 기간 혼란이 지속되겠지만 기업에서 갑과 을의 불합리한 행동에 대한 계속 민주적인 통제 수단을 강구한다면 종국에는 더욱 전문적인 직장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탁종연 법무법인 민 기업탐정센터장, 범죄학박사 crim2@lawmin.net
탁종연은 경찰대를 졸업하고 미국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범죄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30여 년간 경찰, 범죄학자, 법무법인의 전문위원으로서 다양한 범죄 사건을 다뤘다. 최근에는 기업탐정센터에서 사기, 횡령, 배임, 영업 비밀 유출, 사내 폭력 등 여러 기업의 위기 요인을 발굴, 예방, 처리하는 방법을 컨설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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