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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RPA를 제대로 뿌리내리게 하려면

DBR mini box I : Interview 진호 롯데홈쇼핑 DT부문장

김윤진 | 304호 (2020년 9월 Issue 1)
“자동화 도입 후 업무 효율 4배나 높아져”

최근 롯데그룹은 전사적으로 RPA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렇게 그룹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자동화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롯데홈쇼핑의 선제적인 도입이 가시적인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고 코로나19 사태 같은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면서 그룹 내에서도 RPA 적용의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을 따름이다. 롯데홈쇼핑은 주로 은행, 보험사 등 금융권에서 진행되던 RPA를 홈쇼핑 업계 최초로 시도하며 유통업계 자동화 선두주자로서 길을 닦고 있다. 이 여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진호 롯데홈쇼핑 DT(Digital transformation)부문장으로부터 디지털 인력(Digital labor)이 어떻게 조직에 침투하고 있는지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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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업계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던 RPA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은?

홈쇼핑 업계는 최근 새로운 소비층인 MZ(밀레니얼+Z)세대의 ‘TV 시청 시간 감소’와 ‘채널 경쟁 심화’ 등의 요인으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DT를 세 가지 갈래로 추진 중이다. 1) 고객의 불편을 덜고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기술을 도입하는 전략, 2) 조직과 인력의 워크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전략, 3) 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해 성장을 이어 나가는 전략이 그 세 가지다. 우리라고 처음부터 RPA를 도입하려 했던 건 아니다. 두 번째 DT 전략, 즉 일하는 방식을 효율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현장에서 겪는 난제를 해결할 기술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RPA를 만났을 뿐이다. 당시 현업에서는 업무량에 비해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고, 단순 반복 업무로 집중력이 떨어져 오류가 자주 발생하는 부서들이 있었다. 이런 업무들에 RPA를 시범 도입해보기로 했다.

처음 RPA를 시범 도입한 업무는 무엇인가?

허위 과대광고 모니터링을 하는 부서에서는 단 3명의 직원이 3개 고위험 상품군에 속하는 제품들의 웹기술서(상세설명서)를 매일 인당 100건씩 점검하며 거의 쉬는 시간 없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허위 과대광고 문구를 걸러내는 게 이들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활성화로 웹에 등록되는 신상품 수가 갈수록 늘어나자 점검 인원이 너무 적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인터넷몰에 하루 등록되는 제품만 1만∼1만5000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데이터 관련 부서에서는 고객에게 맞는 상품 사이즈를 추천하기 위해 상품마다 치수 데이터를 등록해야 하는데, 인력 부족으로 2명의 담당자가 월평균 3만 개 신규 상품 중 600개만을 수기로 입력하는 상황이었다. 사이즈 데이터 등록 프로세스의 효율화가 절실했다. 이렇게 인력이 모자라는 두 업무에 RPA를 시범 도입했고, 결과적으로 오류 감소, 생산성 향상, 효율적 인사 배치 등의 효과를 거뒀다. 효과가 확인되자 회사가 전 영역을 대상으로 업무 자동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도입하는 과정에서 내부 구성원들 반응은 어땠나?

무관심에 가까웠다. RPA를 통해 어떤 업무를, 어디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이런 의심의 시선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전사에 RPA 사용 경험을 퍼뜨리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간에 빠르고 많은 업무를 자동화해 회사 모든 직원이 디지털 인력과 함께 일하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이에 따라 6개월 동안 50개 업무를 돕는 디지털 인력을 개발했고, 23여 개의 부서가 로봇과 일하게 됐다.

실제 경험이 쌓이니 사람들도 점점 우호적으로 변했다. 사람에 따라 RPA를 잘 활용하면 마치 개인용 비서가 생긴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온라인 홈쇼핑 MD들의 경우 행사를 수시 운영하려면 행사 상품을 대상으로 한 최저가를 검색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가격 비교를 할 수 있어 최저가가 아니면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본인 행사 상품을 기획할 때 여러 유통 채널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업무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제 MD들은 직접 검색하지 않고도 24시간 쉬지 않고 일해주는 로봇이 가격 비교해주는 결과를 받아 보기만 한다.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면서도 로봇의 도움을 받아 적게는 수백 건에서 많게는 수만 건에 달하는 잡무를 거뜬히 소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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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A 도입이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졌는가?

숫자로 성과를 알 수 있다. 현업의 업무 시간을 약 3만 시간 절감했다. 이를 인원으로 환산하면 직원 13명을 투입한 정도의 효과다. 즉, 13명의 동료를 얻은 셈이다. 앞서 말한 온라인 허위 과대광고 모니터링을 로봇이 수행하게 되자 기존 이 업무를 담당하던 3명 중 2명은 그동안 인력이 부족했던 방송 상품 검수 관련 주요 업무에 투입됐다. 그뿐만 아니라 원래는 이들 3명이 웹기술서를 매일 인당 100건씩 검토했는데 이제는 로봇 1대가 400건씩 처리하게 됐다. 자동화 도입 후 업무 효율이 4배나 증가한 것이다. 그리고 직원들은 이렇게 업무 자동화를 통해 확보된 시간을 매우 가치 있게 활용하고 있다. 더 중요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이게 가장 큰 비즈니스 성과인 것 같다. 유능한 로봇에 대해서는 특허도 출원하려고 한다. 웹기술서 검수 업무를 하는 일부 기술에 대해서도 이미 특허를 출원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꾸준히 도전할 계획이며, 아직 숨겨놓은 과제가 많다.

코로나19 사태 대응이나 위기관리에도 도움이 됐나?

코로나19 사태 때 RPA의 진면목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롯데홈쇼핑도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생방송 인력을 제외하고는 전 직원이 긴급 재택근무 체제에 돌입했다. 이렇게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는 동안 사람이 없는 자리는 로봇이 채웠다. 이 재택 기간에 평소보다 RPA 관리 감독에 더 신경을 곤두세웠고, 이들이 24시간 운영되면서 매일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업무에 오류가 나지 않는지 밀착 마크했다.

원래 올해부터 차세대 RPA를 추진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우리 부서도 염려가 컸다. 재택근무에 돌입한 현업 담당자들과 인터뷰가 잘 이뤄지지 않으면 현업의 니즈를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팀원들이 신규 개발과 현업 인터뷰가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공을 들였고, 메신저와 온라인 회의를 반복하면서 더 꼼꼼하게 자동화 과제들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재택근무 기간 동안 RPA와 AI를 결합한 RPAI 과제도 2건이나 안정적으로 오픈할 수 있었다. 온라인 쿠폰 관련 과제 하나만으로도 현업 업무를 대폭 줄여 노동 시간을 월 목표 대비 400% 이상 절감했다. 이러한 안정적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전사 RPA 과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지난달부터는 주 1회 재택근무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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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에 RPA를 확산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RPA 도입을 올해부터 적극 실행 중이다. 기업 업무의 80%가량이 비정형 업무임을 고려하면 비정형 업무로 RPA를 확대할 수 있는지 여부가 전사적인 RPA 확산의 성패를 가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 전체에 RPA를 적용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열쇠는 AI 접목에 있다. 현재까지 성과는 나쁘지 않다. 자연어 처리 기술을 활용해 온라인 상품평을 분석하거나 방송 중 금지어 표현을 검출하기도 한다. 쇼호스트가 하루 종일 방송을 하다 보면 실수가 발생하고 말하면 안 되는 금지어가 실수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다. 원래는 편집자가 나중에 방송을 다시 모니터링하면서 후처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AI와 로봇의 도움으로 실시간으로 처리한다. 자연어 처리 기반의 AI가 사전에 입력된 금지어가 사용될 때마다 로봇이 자동으로 띄워서 심의 담당자에게 알려줌으로써 바로 수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이 밖에도 광학문자인식 기술로 고객 민감 정보를 숨기는 업무 등이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하반기에는 RPA와 결합한 챗봇도 오픈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AI와 결합한 RPA를 롯데홈쇼핑 전사 업무에 자연스레 녹이는 것이 목표다.

현업 부서를 상대로 한 RPA 개발 교육도 필요하다. 로봇의 개입 범위가 늘어날수록 변화하는 업무에 맞게 수정, 보완해야 할 일도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RPA를 전사로 확산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개발자의 지속적인 대응도 필요하지만 본인 업무에 맞춘 간단한 설계와 수정 정도는 현업 담당자가 할 줄 알아야 한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현업 부서 내재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올해 초 우리 팀부터 전원이 개발 교육을 수료했다.

RPA를 도입하고자 하는 조직이 유념할 점은?

많은 기업이 코로나19라는 위기 상황을 겪으며 RPA 고도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 그러나 단지 다른 기업들이 하고 있다는 이유로 유행처럼 도입을 검토 중이라면 만류하고 싶다. RPA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인력 절감에만 몰두할 경우 내부 직원 모두가 힘들어질 수 있다. 물론 로봇이 사람의 일을 덜어주는 순기능도 있지만 필연적으로 기존 직원들에게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1 정도 수행하던 업무를 로봇이 10만큼 수행하고, 그동안 방치됐던 업무를 대신 맡아주면 직원의 신규 배치나 재배치에 따른 혼란도 불가피하다. RPA로 감당 가능한 업무 범위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직원 내부의 소통과 합의의 과정, 조직문화의 재정비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점점 RPA가 다른 IT와의 결합으로 진화하고 있고, 그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모든 디지털 신기술의 도입이 그렇겠지만 벤치마킹할 선례도 한정적이고, 정답도 없으며,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그러기에 RPA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 RPA를 활용해 도달하고 싶은 기업의 최종 모습을 먼저 그린 뒤 그에 맞는 수준에서 RPA를 검토했으면 한다.


진호 DT부문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쳤다. 1999년 롯데홈쇼핑에 입사해 2014년 옴니채널 팀장, 2017년 모바일 전략 팀장 등을 거쳤다. 2019년부터 회사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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