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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2. 리모트워크 시대, 어떻게 일해야 하나

뉴노멀이 된 비대면 스마트워크
유럽 기업서 배우는 협업의 질서

최두옥 | 302호 (2020년 8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코로나19의 대유행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불러왔다. 이제 비대면 중심의 스마트워크 업무 방식은 뉴노멀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뉴노멀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기업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마트워크를 우리보다 먼저 도입해 잘 운영하고 있는 유럽 기업들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을 물을 사람을 찾는 한국 기업과 달리 이들 유럽 기업은 시스템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 한다. 또한 한국 기업에서 ‘나의 일’의 범위가 ‘내가 맡은 업무’ 혹은 ‘우리 팀의 업무’로 한정되는 데 반해 유럽 기업에선 나의 일의 범위는 내가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포함한 조직 전체의 목적이다. 또한 한국 기업은 조직 내 경쟁을 유발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갖고 있는 반면 유럽 기업은 그보다는 협업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런 문화와 마인드세트의 차이가 결국 스마트워크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게 만드는 토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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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바이러스로 인한 수개월 간의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일하는 방식 측면에서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특히 인식 측면에서 그랬다. 우선 ‘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일’은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하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정된 시간에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 일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는 직장인들도 많았다. 그러나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할 수도 없고, 사무실 밖에서 일하는 직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도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일’의 의미가 변했다. 무언가를 하는 행위 자체보다는 결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사람을 바꾸는 것보다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다. 사무실로 매일 출근을 할 때는 그렇게 인사팀이 불필요한 미팅을 줄이고 사전에 자료를 공유하라고 캠페인을 해도 큰 변화가 없었는데 재택근무를 하면서 화상회의를 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미팅이 사라지고 미팅 자료가 캘린더에 미리 올라온다. 적지 않은 업무가 메신저를 통해 진행되다 보니 리더들은 좀 더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말을 줄였고, 실무자들은 업무 시작 전 진행 방향과 배경을 먼저 물어보기 시작했다. 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업무의 목표가 명확해지고 팀이 집중해야 할 업무가 구체적으로 바뀌었다. 일일이 뭘 하라고 지시하지 않아도 팀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스마트워크가 코로나 이후 특히 관심을 받고 대중화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마트워크의 정의 자체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는 시스템(환경)을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워크라는 말이 비즈니스 카테고리에 들어온 지 10년, 이제야 스마트워크가 말하는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조직의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방식이 바뀌어야 결과도 바뀐다

필자가 스마트워크를 처음 알게 된 건 2009년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네덜란드 지사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필자는 직접 이 회사를 방문했다. 방문 당시 가장 특이했던 점은 회사 내 직원들의 고정 좌석이 없고 출퇴근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에게 일하는 방식을 바꾼 이유를 묻자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일 잘하는 직원들이 경쟁사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면서 이들이 왜 회사를 그만두는지 궁금해서 비공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더 효율적이고 더 생산적으로 일하는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200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과 유럽의 스마트워크 사례, 그리고 201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 기업들의 스마트워크 사례를 기반으로 살펴보면 스마트워크의 효용은 크게 세 가지로 드러난다. 우선, 협업과 몰입의 극대화다. 복잡성의 시대에 필요한 횡적 측면의 협업과 종적 측면의 몰입은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인다. 둘째, 성과 중심의 문화가 정착된다. 성과를 강조하는 캠페인을 펼쳐서가 아니라 채용, 평가, 승진 등 조직 생활의 중요한 의사결정이 시장에서의 성과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성원들이 실질적인 성과에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채용 경쟁력이 높아진다. 역량과 태도를 갖춘 인재들이 원하는 것은 복지 이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이다. 스마트워크를 도입한 기업들은 성과를 내는 데 방해가 되는 물리적•심리적 장벽을 적극적으로 제거함으로써 내부 구성원의 성장을 도모하고 외부 인재를 유인한다.

이런 이점을 위해 활발하게 도입되고 있는 스마트워크. 하지만 섣부른 도입 시도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하다. 스마트워크 도입을 위해 리더와 조직원들이 가져야 하는 일에 대한 마인드세트를 한국과 유럽의 일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를 통해 살펴보자.

한국 기업 vs. 유럽 기업,
일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

스마트워크 분야에 있어 가장 앞선 나라는 네덜란드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미디어에서는 주로 미국 기업의 소식을 다루지만 일하는 방식의 변화나 본질적인 태도에 관해서는 유럽에서 벤치마킹할 요소가 많다. 네덜란드는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으로 결과를 평가하는 나라다. 필자의 네덜란드 파트너에 따르면 바다를 메워 생활의 터전을 만들어야 했던 네덜란드의 역사가 그런 태도에 영향을 끼쳤다.

네덜란드인들에게는 학문적 연구나 리서치를 통해 얻은 인사이트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이론 그 자체보다 훨씬 중요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철학적 담론보다는 그것을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후 그 상황에서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해마다 OECD에서 발표하는 시간당 업무 생산성 그래프에서 네덜란드가 항상 최상위를 유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인지 2010년 초, 스마트워크를 시작하려는 국내 기업들이 벤치마킹을 하려고 가장 많이 방문한 곳도 네덜란드였다. 필자도 네덜란드 출장 중에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를 처음 깨닫게 됐다.

필자는 2010년부터 정기적으로 네덜란드로 리모트워크 여행을 떠난다. 한국에 있을 때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유럽의 파트너들이 일하는 방식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지만 일상의 업무가 일어나는 유럽 내 업무 공간에서 부대끼며 일을 하다 보면 단순히 일하는 방식을 넘어 일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특히 일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의 우선순위에서는 한국과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물론 개인별 차이도 크기 때문에 단순히 한국과 유럽의 차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전반적인 인식의 무게중심은 분명 차이가 있고, 이를 인식해야 겉만 그럴듯한 스마트워크가 아니라 현장에서 작동하는 스마트워크를 이끌 수 있다.

1. 문제 해결 방법

일을 대하는 자세에 있어 한국 기업과 유럽 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문제 해결의 방법이다. 조직에 문제가 일어나면 한국은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문제가 발생한 지점의 담당자를 색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어느 팀의 문제인지, 심지어 그 팀의 누가 문제인지까지 철저하게 잘못을 추궁한다. 그렇게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 팀이나 사람에게는 처벌이 가해지고, 팀의 책임자나 팀원이 전격 교체되는 일도 흔하다. 그런 측면에서 유럽 기업들은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르다.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를 시스템으로 풀려고 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실제로 사람 자체가 원인이 돼 발생한 문제는 거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의도적인 사고이거나 채용의 실패이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을 처벌로 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을 처벌한다고 해도 구조적으로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면 같은 문제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가장 빠르면서도 쉬운 방법이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게다가 자칫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 처벌이 될 수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찾아내지 못한 리스크로 인한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우리가 방문한 유럽의 기업들이 이런 상황을 막고자 도입한 제도 중의 하나가 ‘실패부검(failure autopsy)’이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로 인해 특정 프로젝트가 실패로 끝난 경우, 해당 관계자들이 모여서 프로젝트의 전 과정을 복기한다. 각각의 프로세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그때 각 부서와 담당자는 어떤 대처를 했으며, 특정 조치를 했거나 하지 않은 경우에는 왜 그랬는지도 오픈해서 논의한다. 그렇게 통합적이고 투명한 논의 과정을 통해 표면적인 원인 너머에 있는 근본적인 실패 원인을 찾아내며, 이를 시스템적으로 개선하는 방법도 논의한다. 비난과 처벌에 대한 걱정 없이 각 영역의 실무자 들끼리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도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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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이 내포하는 범위의 차이

한국 기업과 유럽 기업은 ‘일’의 범위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조직의 차이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일하는 개인이 ‘일’을 인식하는 범위에서의 차이인데, 구성원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이들이 속한 조직의 인식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조직의 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한국인들에게 있어 ‘일’의 범위는 ‘내’가 책임을 맡은 영역으로 국한된다. 협업과 커뮤니케이션 수준이 높은 조직이거나 보상의 단위가 개인을 넘어서는 회사라면 팀이나 부서로도 일의 범위가 확장되긴 하지만 대부분은 개인에게 국한한다. 그렇다 보니 직원들의 관심사는 자연스레 자신의 일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지에 집중되고, 회사 전체로 보면 리소스가 낭비되는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라고 해도 나의 수고가 덜어지거나 우리 팀의 이익이 늘어난다면 이의를 제기하거나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업무의 용이성과 효율성을 위해서 조직 전체의 리소스 투입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상사에 따라서 중복으로 마련되는 보고서와 발표회다. 보고를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본인의 관심사에 맞게 보고서와 발표 자료를 최적화하는 것이 효율적이겠지만 이를 위해서 수십 명의 실무자는 상사의 ‘의중’을 헤아려가며 같은 내용을 다른 버전으로 준비해야 한다. 같은 내용을 보고받는 사람의 레벨에 따라서 세 번, 네 번씩 반복해서 준비하는 경우가 당연시된다. 회사 전체로 보면 매우 비효율적인 상황인데도 보고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효율엔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심지어 보고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회사 전체의 효율을 고민하는 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매년 ‘낭비’가 반복된다.

그러나 우리가 유럽에서 경험한 것은 달랐다. 그들에게 ‘일’의 범위는 자신이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포함한 조직 전체의 목적이다. 모든 일을 다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책임과 권한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일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책임 영역을 넘어서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의 효율이 중요한 만큼 조직 전체의 효율도 중요하다. 한 번은 독일의 스마트워크 컨설턴트이자 『언리더십』의 저자인 닐스 플래깅(Niels Pflaeging)과 한국에서 프로젝트를 같이한 적이 있었는데 출국 날 자가용으로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우리의 제의를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호텔에서 출발하는 버스 대신 자가용으로 공항을 갔을 때 줄어드는 시간이나 어려움에 비해서 자가용으로 자신을 데려다주기 위해서 투입되는 스태프들의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즉, 그는 프로젝트팀 전체의 ‘효율’에 마이너스가 되는 일을 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3. 경쟁 유발 vs. 협업 유발

그렇다면 왜 한국의 기업은 일의 범위를 자신의 책임 영역으로 한정하는 걸까? 여기에서 한국 기업과 유럽 기업의 세 번째 차이가 드러나는데 바로 조직을 어떤 구도로 조직화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MZ(밀레니얼과 Z)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젊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다수의 한국 기업은 조직을 경쟁 구도로 조직화한다. 기본적으로 사업은 유사한 비즈니스 영역에 있는 기업이 경쟁하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고가 조직 안으로도 스며들어서 사업부 간 혹은 부서 간에도 은근한 경쟁 구도가 펼쳐진다. 전혀 다른 사업부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면 조직도 내에서 같은 높이에 있는 다른 사업부는 업무의 성격이 확연히 다름에도 마음껏 축하를 해주지 못한다. 밖으로는 같은 회사의 성과이니 박수를 쳐주지만 알 수 없는 경계심에 은근히 초과 성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상황을 조종하는 경우도 있다. 조직 내의 요소를 경쟁 구조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부서 간 이런 인식은 팀원들의 태도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친다. 직원들은 서로를 잠재적인 경쟁자로 바라보고 무의식적인 차원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조직은 야생이고, 야생에서는 승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마치 조직 생활의 진리인 양 설교하는 상사들을 한 번쯤은 만나봤을 것이다.

유럽의 기업들도 경쟁이 필요하며 때로는 경쟁에서 이겨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조직을 경쟁 구도로 조직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협업을 통해 시장 전체의 크기를 확장하고, 그 안에서 공정한 분배가 실현되는 구조로 만드는 데 신경을 쓴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거대 조직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우리가 만난 대다수 기업은 기본적으로 협업 구조로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쉽게 말해, 경쟁 기업이나 파트너가 가져갈 이익을 줄여 이를 자신의 바구니로 담으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져갈 이익의 총합을 극대화해서 이를 공정하게 나누려는 생각으로 일을 조직화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업이 필수이고, 의미 있는 협업을 위해서는 각자의 강점과 약점을 공유해야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유럽 기업이 한국 기업과 일을 할 때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약점을 말하면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한국 기업들이 협업의 전제가 되는 역량 공유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향은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요청받은 정보만 찔끔찔끔 주거나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는 최대한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 교묘히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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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파트너들이 한국 회사와 일할 때 흔히 하는 말 중 하나가 ‘일의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때로는 한국인들이 손이 빠르다는 칭찬에 섞여 들려오기도 하고, 때로는 일정을 무리하게 잡는다는 컴플레인으로 들려오기도 한다. 왜 한국의 기업들은 무리한 일정을 일상처럼 생각하고, 유럽의 기업들은 무리한 일정이 리스크라고 생각할까. 단순한 문화 차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안을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일을 바라보는 태도와 가치관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사람을 통해서 속도가 해결되고, 우리가 맡은 일만 빨리 끝내면 되고,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은 무리한 일정 안에서도 어떻게든 일을 끝내려고 하고 이것이 능력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시스템이고, 우리가 일을 빨리 끝내도 완성도에 문제가 생기면 전체적으로 속도가 느려진다고 생각하고, 경쟁에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닌 기업이라면 당연히 무리한 일정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는 정답이 없기에 둘 중에 어떤 방식이 옳은지는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그러나 필자에게 어느 쪽이 새로운 시대에 더 적합하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후자’라고 답할 것이다. 스마트워크 시대에 생존을 보장하는 가장 현명한 전략은 지속가능성이고, 지금의 조직은 제로섬게임 속의 말이 아니라 풍부한 자원을 가진 자연 속의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로 떠나는 리모트워크 트립

매년 두 번씩 고객사 담당자들과 함께 유럽의 리모트워크 출장을 가고 있다. 스마트워크의 방식 중 리모트워크는 한 종류로 ‘사무실 출근’이라는 개념 없이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일하는 방식을 뜻한다. 2주에서 4주간의 출장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경험하기 위해 먼저 네덜란드의 현지 워크숍이나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이후 인근 독일이나 프랑스에 들러 스마트워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을 방문한다. 이렇게 체험형 출장을 가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스마트워크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면서 스마트워크가 성공하기 위한 핵심 메커니즘을 배울 수 있다. 특히 네덜란드의 경우 자기 회사가 무엇을 잘했는가를 프레젠테이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시행착오 과정도 공유하는데, 이 과정이 특히 큰 도움이 된다. 둘째, 스마트워크의 미래를 미리 경험하면서 현실적인 로드맵을 그린다. 2010∼2011년, 국내 기업들이 화상회의 기술과 태블릿을 중심으로 스마트워크를 이야기할 때 이미 유럽에서는 온라인 기술이 만능이 아님을 깨닫고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의 변화를 위한 연구가 한창이었다. 2014∼2016년, 국내에서 ‘스마트 오피스’라는 신조어가 각종 매체에 등장하기 시작할 때 이미 유럽에서는 일을 대하는 마인드세트와 태도에 관한 논의들이 주를 이뤘다. 그리고 국내 기업들도 리더의 마인드세트와 일을 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2020년, 지금 유럽에서는 조직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화두다. 과거의 경험으로 보아 향후 2, 3년 내에 국내에서도 조직 구성원의 다양성 확보가 큰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세 번째 이유는 리모트워크를 연습하기 위해서다. 온라인에서의 업무가 디폴트가 되는 리모트워크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되지는 않는다. 우리의 일하는 방식은 수십, 수백 년에 걸쳐 오프라인에 최적화돼 왔기 때문에 여전히 온라인 커뮤니케이션보다는 오프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편하다. 머리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리모트워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몸은 여전히 오프라인에 관성이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연습이다. 리모트워크가 옵션인 상황이 아니라 리모트워크가 아니면 달리 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지, 여러 명이 참석하는 미팅을 어떻게 조율할지, 또 예상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빠른 의사결정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연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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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연습을 하다가도 “안 되겠습니다. 내일 판교에서 만나서 부러트립시다”라고 할 수 있는데 해외에 있을 때는 어떻게든 온라인에서 해결해야 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창의성이 발현된 네덜란드인처럼, 온라인밖에는 답이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안에서 창의성이 발휘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체득하게 된다.

여담이지만 리모트워크의 숨은 난관은 온•오프라인이 아니라 시차다. 7시간의 시차가 나는 유럽에서 리모트워크를 하다 보면 시차의 극복을 넘어 이를 활용하는 방법까지 알게 된다. 5시간 이상의 시차가 나는 해외에서 리모트워크를 하는 경우, 시차를 활용하면 같은 프로젝트를 1.5∼2배의 속도로 끝내는 것도 가능하다. 원리는 간단하다. 한쪽이 업무를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동안 다른 한쪽이 업무를 이어받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실질적인 대기 시간이 드라마틱하게 짧아져서 한국의 직원이 퇴근하면서 요청한 업무의 결과를 다음 날 출근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리모트워크를 하는 동안 우리는 매일 저녁에 그날 방문한 회사의 사진과 인터뷰 녹취록을 한국으로 보냈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깔끔하게 정리된 분석 보고서를 메일로 받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정확하게 하루가 더 걸려야 끝나는 일이었다.

스마트 리더십(Smart Leadership)

한국에서도 코로나19 이후 스마트워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최근에는 특히 스마트워크 시 리더의 마인드세트와 직원들의 일에 임하는 자세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특히 스마트워크에 적합한 리더십 유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코로나19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재택근무의 맛을 본 기업들이 코로나 이후에도 이를 확대 적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애로사항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 많은 돈을 들여서 스마트워크 시스템을 도입해도 실패하는 회사들이 꽤 있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리더의 인식이 변하지 않아서다. 주 1∼2회의 리모트워크를 하면서도 시간마다 팀원들이 뭘 하고 있는지 보고받고, 자율좌석제를 시행하면서도 자기 자리를 중심으로 팀원들을 모여 앉으라고 지시한다. 리더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직원들을 관리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해줘야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그러려면 개별 직원의 업무가 리더 눈에 보여야 하고, 물리적으로도 가깝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실제로 직원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이유는 관리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일을 왜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명확한 배경이나 이유에 대한 설명 하나 없이 그저 ‘위에서 하라니까’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지금 꼭 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일의 목적과 배경만 제대로 알면 젊은 직원들은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뛰어나고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더 짧은 시간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리더는 실무자에게 그걸 일일이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낀다. 팀원들은 지시받은 일만 잘 처리하면 되는데 굳이 프로젝트의 목적과 배경을 일일이 설명하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니냐는 논리다.

이처럼 직원을 고정된 기능을 가진 큰 기계의 부품 혹은 체스판의 말로 바라보는 리더는 자신의 역할을 ‘지시’라고 생각한다. 개별 직원들은 제한된 각자의 기능을 수행할 뿐 전체 그림을 보거나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판 전체를 보고 있는 리더가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를 내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을 체스 마스터라고 생각하는 리더에게 좋은 직원이란 자신이 내린 지시를 신속하게 수행하는 팀원이다.

반면 직원을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리더는 자신의 역할을 ‘가이드’ 혹은 ‘서포터’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원사형 리더’는 개별 직원들이 흙에서 자라는 식물처럼 자신에게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스스로 성장해 나가는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팀원들에게 최대한의 선택권을 주려고 노력한다. 정원사형 리더에게는 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것보다 우리 팀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고, 왜 이 일을 하는지 이해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리더가 정답을 알고 있지도 않을 뿐 아니라 안다고 해도 일일이 지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가이드를 주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스마트워크에서는 기술과 제도, 시스템과 업무 공간 외에도 리더십에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리더가 변하지 않으면 스마트워크를 향한 제도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마트워크에서 말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하나다. 조직의 중심에 리더를 두지 말고 일의 목적과 의미를 두며, 리더는 그 목적과 의미를 수호하는 ‘역할’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하면 구성원들이 일의 목적과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보다 빠르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하고, 시스템적이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낭비를 제거하고, 구성원 간의 정보 교류와 커뮤니케이션을 막는 장애물을 없애는 것이 스마트워크 시대 리더의 역할이다.

조직 내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법

또한 본격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며 조직 내의 자율성을 높이는 것 역시 중요한 리더의 역할이다.복사기 실험1 이라는 심리학 실험이 있다. 복사기 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에게 양보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락하는가를 관찰한 실험인데, 결과가 흥미롭다. 단순하게 “제가 먼저 복사기를 써도 될까요?”라고 말한 경우에는 양보율이 약 60%이고 “너무 바빠서 그런데 제가 먼저 복사기를 써도 될까요?”라고 이유를 말한 경우에는 양보율이 94%로 급격하게 올라갔다. 가장 흥미로운 건 그다음인데 “제가 복사를 해야 해서 그런데 먼저 복사기를 써도 될까요?”라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말한 경우에도 양보율이 93%에 육박했다. 몇 년 후 진행된 유사한 실험에서도 결과는 비슷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두 가지다. 첫째, 간단하게라도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특정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둘째, 이유가 얼마나 합리적인가보다는 이유를 말했는지 여부가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법도 다르지 않다. 같은 업무라도 그 일이 시작된 배경이나 진행 이유를 알면 좀 더 적극적이고 자율적으로 일을 수행하게 된다. 이유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자세한지는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간단하더라도 업무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의 목표가 단순하고 명확한 것도 자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스스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해야 하는데, 지시된 업무의 범위가 넓거나 자의적인 해석의 여지가 많을 경우 구성원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행동을 망설이게 된다. ‘고객의 만족’이나 ‘탁월한 기술력’과 같이 명확한 기준점 없는 목표를 제시하거나 ‘만족’이나 ‘탁월함’처럼 개인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는 개념을 목표로 설정하면 아무리 적극적인 직원이라도 자율적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자율성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은 구성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즉, 마지막 결정을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이 직접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이란 단어가 중요하다. 직원에게 자율성을 주고자 하는 리더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마지막 결정권이 아니라 초반의 결정권을 준다는 사실이다. 진행하고 싶은 안을 자유롭게 제안하라고 말한 후 최종 선택은 리더인 자신이 한다. 이런 경우 결정권을 가지는 것은 팀원이 아니라 리더다. 만약 팀원에게 결정권을 주고 싶다면 반대가 돼야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해도 리스크가 없는 업무를 몇 가지 선별한 후, 그 안에서 팀원들이 자유롭게 고르도록 해야 실질적으로 선택권이 있다고 느끼고 이를 실행할 힘, 즉 자율성이 높아진다.

또한 자율성도 근육처럼 점점 단련되는 것이라 처음에는 두 가지 옵션 중 하나, 그다음에는 3∼4개 중 하나, 그다음에는 수십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으로 점차 강화돼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이번 프로젝트는 어떻게 할지 최 대리가 한번 결정해 봐”라고 말한다면 자율성이 아니라 불안감만 키울 수도 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한민국에 ‘스마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시작된 지도 벌써 십 년이다. 2010년 초창기의 스마트워크는 화상회의 기술의 도입과 스마트폰, 태블릿 같은 디바이스 구축에 방점이 있었고, 2016년부터는 업무 환경의 변화를 통해 조직 전반의 일하는 방식 변화를 도모한 스마트 오피스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가 반강제적으로 재택근무를 경험한 올해엔 리모트워크로 스마트워크의 범위가 확장됐다. 이제 기업들은 리모트워크가 일시적인 선택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메가 트렌드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리더십에서 채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변화를 요구하고 있음을 체감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은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우선,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수단으로 온라인을 바라보던 시각을 넘어 온라인을 기본으로 기존의 업무 방식을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단순하게 오프라인에서 제공하던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수준이 아니라 애초부터 온라인 서비스였다면 어떻게 기획했을지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중 가격 정책을 편 중국 소셜커머스 핀더더(Pindoudou)나 화상회의 툴인 줌을 활용해서 온라인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에어비앤비(Airbnb)가 좋은 사례다. 둘째, 인재를 소유하려는 시도를 넘어 글로벌 수준의 넓은 인재풀에 어떻게 접근할 것이며 그들과 어떤 구도로 협업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기술과 네트워크의 발전으로 역량 있는 인재들은 점차 특정 조직에 소속되지 않은 채 일하는 인디펜던트 워커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리모트워크의 빠른 확산이 더해지면 역량 있는 인재일수록 동시에 여러 기업과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할 기회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인재는 더 이상 ‘채용’의 대상이 아니라 ‘협업’의 대상이다. 이미 플렉스잡스(Flexjobs) 같은 사이트에서는 리모트워크로 일하는 전문가를 찾는 글로벌 기업이 많으며, 역량 있는 인디펜던트 워커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인•구직 플랫폼은 향후 몇 년 동안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복지와 워라밸의 차원을 넘어 개인의 자율성과 역량을 시스템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적극 논의돼야 한다. 흔히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새로운 제도를 ‘추가’하는데, 그보다는 관리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존 제도를 ‘제거’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넷플릭스처럼 업무 비용 증빙을 위한 영수증 제출을 없앨 수도 있고, 효용성이 낮은 정기 보고를 대폭 줄일 수도 있다.


최두옥 스마트워크 R&D그룹 ‘베타랩’ 대표 dooook@gmail.com
필자는 다음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본부와 공간 비즈니스 그룹 ‘토즈’를 거쳐 2009년부터 국내에서 스마트워크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현재 스마트워크 R&D 그룹 베타랩의 대표로 재직 중이며 다수의 기업과 스마트워크 관련 컨설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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