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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윌리엄 바넷 교수: 디지털 시대 리더의 역할

조직 미래 예측에 시간 쓰지 말고
일탈적 아이디어에서 위대함을 발견해야

이방실 | 288호 (2020년 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위대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일
1. 일탈적 아이디어(deviant ideas)를 허용하라.
2.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삼아 위대함으로 이끄는 요인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도록 하라.
3. 설령 조직의 현 상태를 위협한다 해도 잠재력 있는 일탈적 아이디어가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라.




내가 스탠퍼드대 교수로 부임한 건 1991년이다. 당시 나는 기업의 성장과 실패에 대해 좀 더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스탠퍼드대에 합류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와 내 동료들이 연구를 통해 배웠던 것을 요약하면 크게 두 가지다. 우리는 미래 예측을 정말 못 하지만 사후 합리화(retrospective rationalization)는 정말 잘한다는 사실이다.


미래 예측 vs. 사후 합리화

예를 들어보겠다. 구글이 처음 창업했을 때 구글이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검색 엔진이 돈이 되는 비즈니스가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그런 예측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비단 구글뿐이 아니다. 알리바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을 처음 만난 건 이베이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치넷(EachNet)을 인수했던 2003년 즈음이었다. 당시 나는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박사 과정 학생 두 명과 함께 중국에 가서 이베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그때 같이 간 학생 중 한 명이 자신의 아내가 항저우에 있는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일하는데 한번 방문해 보겠냐고 했다. 그 회사가 바로 알리바바였다. 정말이지 별 볼 일 없는 학교 선생님 출신이었던 마윈이 지금과 같은 거물이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심지어 나는 마윈에게 대놓고 “알리바바는 실패할 것”이라고까지 말했다. 모두들 이치넷을 인수한 이베이가 중국 온라인 상거래 시장을 접수할 것이라고 예측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베이는 알리바바(타오바오)와의 경쟁에서 참패해 몇 년 뒤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페이스북도 그렇다.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일하던 한 제자와 점심을 먹다가 페이스북에 대해 우연히 알게 됐다. 당시 나는 네트워크 연구를 한창 하고 있을 때여서 제자의 추천으로 페이스북에 대해 연구도 하고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를 특강 연사로 학교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때 학생들 반응이 어땠는지 아나? 내가 당시 진행한 수업 중 가장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캐주얼한 옷차림에 배낭을 메고 나타난 저커버그에 대해 학생들은 ‘들을 가치도 없음’ ‘어떻게 저런 사람이 기업가라는 거죠?’ ‘앞으로 페이스북 사례는 빼 주세요’ 등 혹평을 퍼부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만에 상황이 바뀌었다. 이젠 학생들 모두 그의 특강을 서로 듣겠다고 아우성을 친다. 처음엔 제대로 된 기업가 취급조차 안 하더니 말이다. 우리의 예측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반면,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면서 합리화하는 데에는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구글을 보면서 검색 엔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업이라고 칭송한다. 처음엔 ‘검색 엔진으로 무슨 돈을 벌겠냐’고 폄하했지만 지금은 ‘사용자가 검색창에 입력한 키워드를 기반으로 한 검색 광고 비즈니스 모델은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한다. 한국 기업 포스코 사례도 좋은 예다. 1960년대 포스코가 철강 사업을 시작할 당시 모두들 전후(戰後) 한국 상황을 고려할 때 값싼 노동력을 십분 활용해 저차원 기술 산업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고 봤다. 하지만 포스코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기술과 교육에 투자했고,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나섰다. 당시엔 이걸 보고 전 세계가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포스코는 보란 듯이 기술 혁신을 이뤄냈고 세계적인 철강회사 반열에 올랐다. 지금 포스코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세계 최고의 기술을 활용한 포스코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리더의 역할

이처럼 우리는 사후 합리화의 귀재다. 절대 냉소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이는 엄연한 사실로, 마치 이력서를 쓸 때 자신이 살면서 걸어왔던 길을 사후적으로 잘 포장하는 것과 같다. 실제론 그렇지 않은데도 마치 모든 것이 다 정교한 계획하에 일어난 일인 것처럼 말이다.

내 아들을 예로 들어보겠다.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의과대학에서 생물통계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내 아들은 스탠퍼드대에서 수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했고,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생물통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력서에 적힌 경력으로만 보면 내 아들은 교수가 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성공적으로 커리어를 관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던 내 아들이 나라 반대편인 보스턴(하버드)에서 박사 학위를 밟은 진짜 이유가 뭔지 아나? 바로 웰즐리대(보스턴 인근)를 다니던 한국인 여자 친구 때문이었다.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되기 위해 하버드대를 선택한 게 아니라 ‘사랑 때문에’ 보스턴으로 날아간 것이다. 심지어 내 아들은 여자 친구의 어머니와 대화하려고 한국어 수업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이력서에 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력서 작성에서 핵심은 지금까지 자신이 해 왔던 일들이 논리적으로 말이 되도록 잘 합리화해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력서를 작성할 때의 원칙은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흔히 비즈니스 리더는 다음에 무엇이 올지(what’s next)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간의 미래 예측 능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앞서 충분히 설명했다. 따라서 다음에 무엇이 올지를 예측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는 건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비즈니스 리더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은 마치 이력서를 작성할 때처럼 과거를 돌아보며 사후 합리화의 과정을 통해 위대함을 ‘발견(discover)’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알리바바와 애플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윈이 중국에서 이베이를 몰아내기 위해 처음 타오바오를 론칭했을 때, 그가 애초에 타오바오를 통해 성취하려 했던 주목적은 돈을 버는 게 아니었다. 알리바바 고객을 이베이에 빼앗기지 않기 위한 일종의 방어 전략으로 새로운 온라인 경매 플랫폼을 선보인 것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금융·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를 도입하면서 타오바오 사용자들이 급증했고, 실제 이를 통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걸 깨달으면서 알리바바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결정적 단서를 발견하게 됐다.

애플 역시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가 1990년대 후반 애플에 복귀했을 때만 해도 그는 위기에 처한 애플을 되살리기 위해 데스크톱 PC 판매를 늘리는 데 온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다 2001년 아이팟, 2003년 아이튠스 스토어를 선보이면서 콘텐츠를 다운로드하는 사용자들에게 주목하게 됐고, 거기서 ‘포스트 PC’ 시대를 여는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이 보이는가? 마윈이 타오바오와 알리페이를 론칭하고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과 아이튠스 스토어를 선보였을 때,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그 서비스가 향후 어마어마한 비즈니스로 성장할 것을 예측하고 계획적으로 선보인 게 아니었다. 그들 역시 처음엔 그 아이디어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몰랐다. 그러나 사후적으로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아이디어였는가를 발견했고, 그에 따라 전략을 수정해 지금의 알리바바와 애플을 키워낸 것이다. 결국 핵심은 미래 예측이나 사전 계획이 아닌 발견이라는 소리다.


합의의 역설

그렇다면 위대한 아이디어를 발견해 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먼저 위대한 혁신이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령, 여러분들 머릿속에 정말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치자. 그럴 때 여러분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아마도 누군가에게 그 아이디어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그 아이디어를 그다지 매력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치자. 그다음에 여러분들이 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아마 또 다른 사람에게 그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것이다. 만약 그 사람 역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아마 또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아마 좋은 아이디어라며 동조하는 의견을 들을 때까지 계속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다닐지도 모른다.

스스로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믿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계속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묻는 이유는 뭘까?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와 같은 의견, 즉 컨센서스(consensus)를 이끌어내기 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필요로 할까? 혁신적인 아이디어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성공 여부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 아이디어에 대해 100% 확신할 수 없다. 즉, 그 아이디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다른 이들의 동의를 구하는 데 목을 매는 것이다. 아무리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 해도 조직원들이 모두 반대하며 동조하지 않는 일을 혼자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다. 실패했을 때 그 부담감을 혼자 떠안지 않기 위해서라도 다른 이들의 의견을 구하게 된다. 이처럼 조직에서 우리는 기본적으로 컨센서스를 추구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아이디어가 확실하게 성공할지 여부를 미리 알 수 있다고 치자. 물론 실제 이런 일이 가능할 리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정해 보자. 그때도 여러분은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며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동의를 구하느라 시간을 보내겠는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남들이 뭐라 하든 간에 상관없이, 그냥 그 아이디어를 추진할 것이다. 왜 그렇게 하겠는가? 남들이 다 하지 않을 때 내가 해야만 위대한 혁신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위대함이란 의견 불일치의 결과(greatness results from being non-consensus)’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혁신은 모든 이가 합의를 이루고 동의를 구하는 일(컨센서스)에 집중하고 있을 때, 이를 거스르는 일탈(deviance)에서부터 출발한다는 말이다. 이게 바로 합의의 역설이다.



1990년대 중반,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기술 하나로 무명의 중소 벤처에서 IT 업계의 절대 강자로 급부상한 퀄컴과 한국의 이동통신 업계에 대해 생각해 보라. 처음 어윈 제이콥스(퀄컴 창업자)가 CDMA 기술의 장점을 인지하고 연구에 나섰을 때 모두들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고 폄하했다. 이미 이동통신 글로벌 시스템(GSM, 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이 통용되던 유럽에서는 음성 통화만 잘하면 됐지 누가 데이터에 신경을 쓰냐고 했다. 하지만 제이콥스는 CDMA 기술에 대한 확신을 갖고 끝까지 밀어붙였고, 결국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공이 컸다. 당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CDMA 기술이 한국 시장(SK텔레콤)에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됐고, 퀄컴은 이를 발판 삼아 세계 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퀄컴의 사례는 정해진 틀에서 벗어난 일탈적 아이디어, 통념을 거스르는 의사 결정이 어떻게 위대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물론 합의를 거스르는 일탈적 아이디어들 중에는 위대한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모든 아이디어가 좋기만을 바랄 수는 없다. 멍청하고 바보 같은 아이디도 자유롭게 내놓을 수 있을 때 기발하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도 나올 수 있는 법이다. 관건은 일탈적 아이디어 중에 어떤 것이 정말 천재적인 아이디어이고, 어떤 것이 바보 같은 아이디어인지를 구별해 내는 일이다.


일탈과 혁신

이를 위해선 일탈적 아이디어들을 계속해서 테스트하며 옥석을 가려낼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는 리더십 측면에서 엄청난 도전이다. 다시 말하지만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미래를 예측한다거나,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라,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위대한 기업들에선 한결같이 이 같은 시스템이 잘 작동하고 있다.

리더들은 부하직원들이 조직 안에서 합의되지 않은 아이디어 내기를 주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만약 합의되지 않은 아이디어를 추진해 성공하면 천재가 되겠지만 실패하면 바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입을 닫는 사람들이 조직 안에 존재한다면 리더로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리더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건 직원들이 합의되지 않은 아이디어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사람들은 바보 취급 받는 걸 두려워한다. 그래서 일탈적 아이디어를 입 밖으로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이들이 이런 걱정 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간혹 문화적 차이나 국가적 특성을 거론하며 실행하기 어렵다는 소리를 하는 이들이 있다. 구성원들이 합의하지 않은 내용, 일탈적 아이디어를 서슴없이 내놓는 것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권에선 어려운 소리라는 식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실리콘밸리에서도 다른 어떤 곳에서처럼 구성원들의 통념에 반하는 아이디어를 말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있고, 일탈적 아이디어를 내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조직이 존재한다. 이는 한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어느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다. 단연코 리더십의 문제다.

위대함으로 가는 여정은 기존 통념, 즉 모두가 일치하는 의견인 컨센서스를 거스르는 일탈적 아이디어(deviance)를 허용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엔 어떠한 아이디어가 위대한 것인지를 발견(discovery)해야 하고, 그 아이디어를 끈덕지게 지속적으로(persistence)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성공과 실패(failure)를 경험하며 성장(growth)해 나갈 것이고, 비로소 사후 합리화(retrospective rationalization)를 통해 무엇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었는지(what makes them great)를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파악된 성공 공식은 모두가 새롭게 일치하는 의견, 즉 새로운 컨센서스(new consensus)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림 1)

기업이 계속해서 성장하며 위대함을 지향해 나가려면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새롭게 자리 잡은 컨센서스를 거스르는 또 다른 일탈을 허용하고, 발견과 지속, 성장(실패)과 사후 합리화라는 단계별 프로세스(deviance → discovery → persistence → growth/failure → retrospective rationalization)를 거듭해 나가야만 계속해서 위대한 조직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역동적인 프로세스를 가능케 하는 동력이 바로 ‘붉은 여왕’의 역학(Red Queen dynamics)이다.



경쟁은 기업 성장의 동력

‘붉은 여왕’은 진화생물학자인 리 밴 베일런(Leigh Van Valen)이 1973년 주창한 개념적 가설이다. 붉은 여왕 가설에서 생물학적 진화는 역동적으로 이뤄진다. 즉, 한 종이 진화할 때 다른 종과 주변 환경 역시 진화하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나는 이 같은 가설이 조직에서는 어떻게 반영되는가에 대해 연구했다. 이와 관련해 책(원제: 『The Red Queen among Organizations: How Competitiveness Evolves, 2008)』도 썼고,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기본적으로 경쟁은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경쟁이 일어나면 기업들은 성과를 더 높이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할수록 회사의 상황은 바뀌게 되고, 이는 상대 회사에도 영향을 끼친다. 경쟁에서 밀린 기업은 이를 만회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를 학습하게 된다. 가령, 기존 컨센서스가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일탈적 아이디어가 조직 내 혁신의 씨앗으로 뿌리내리는 기회를 포착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경쟁력이 쌓이고, 이는 다시 경쟁 회사에 자극을 준다. 생물학적 진화처럼 기업 간 경쟁 역시 역동적으로 이뤄진다. 우리 조직의 상태가 나아지면 상대편엔 문제가 생기고, 상대 조직이 이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우리 조직에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경쟁은 더 심화되지만 오히려 각 회사는 이를 통해 한발 더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하게 된다.

혹자들은 경쟁이 없는 ‘블루오션’을 찾으려 애쓴다. 하지만 블루오션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 경쟁을 내 사업을 방해하는 위협 요인으로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 경쟁은 기피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는 자녀 양육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내 자식이 학교에서 계속 1등을 하게 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은 실력이 형편없는 학교에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부모가 과연 있을까?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경쟁에 노출시켜서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정말로 자식이 잘되기 바라는 부모라면 아이들을 좋은 학교, 명문 학교에 보내 또래들과 경쟁하면서 크도록 할 것이다. 만약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한다고 치자. 그럼 선생에게 숙제를 내지 말라고 할 건가? 아니다. 사랑한다면 그래선 안 된다. 아이들이 어려움에도 부딪혀 보면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방법도 배우면서 성장하기를 원할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경쟁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맞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자신이 속한 회사가 경쟁자도 없고, 대체재도 없고, 진입장벽도 높아서 누구도 건드리지 않는 무풍지대에 있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런 공간은 현실 세계에 존재하지도 않고, 설령 있다 해도 안전하지 않다. 단언컨대, 여러분은 회사가 경쟁 관계 속에 있을 때 훨씬 더 좋은 입장에 있을 것이다.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와 애플의 운영 체제는 서로가 있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위대한 조직을 만들려면

누차 이야기하지만 위대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 리더가 해야 할 일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크게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째, 일탈적인 아이디어를 허용하라. 이를 위해선 통념을 거스르는 아이디어와 합의되지 않은 이야기를 조직 안에서 안전하게 발언할 수 있고, 이를 진지하게 수용하며 검증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받아들여라. 실패에 대해 징벌한다면 회사가 조직원들에게 원하는 건 합의된 아이디어밖에는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합의된 아이디어만을 구하는 회사는 결코 훌륭한 회사가 되지 못한다. 실패를 허용하고 이를 학습의 기회로 삼을 때 비로소 발견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셋째, 이렇게 발견된 내용이 현 상태를 위협하고 뿌리를 뒤흔들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다 해도 성장할 수 있도록 하라. 잠재력 있는 일탈적 아이디어가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때, 기업은 위대함으로 향하는 여정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정리=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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