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Editor`s letter

요즘 리더십

김현진 | 286호 (2019년 12월 Issue 1)
“어이, 정 감독!”

만 스무 살인 1999년생 선수가 서른 살 더 많은 정정용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U-20 월드컵 16강 한일전을 앞둔 올해 6월2일 폴란드 푸와비 훈련장에서 회복훈련 도중 족구를 하다가 벌어진 풍경입니다.당연히 선수의 장난기가 발동돼 나온 말이었지만 훈계와 질책, 상명하복이 일상적인 스포츠 훈련장에서 이토록 허물없는 도발이라니. 그런데도 정 감독은 “그래도 감독인데 ‘리스펙트’ 좀 해줘라”라는 정도로 웃고 넘어가는 대인배적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이 대회에서 정 감독이 한국 축구대표팀을 준우승으로 이끈 데는 Z세대로 구성된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권위를 내려놓은 ‘삼촌 리더십’이 바탕이 됐습니다.

최근 리더십으로 ‘핫’한 또 다른 축구 감독으로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을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한동안 침체됐던 명문 구단을 2018-20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주역으로 꼽히는 그 역시 정 감독처럼 선수들과의 각별한 친밀도를 바탕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9년 UEFA 올해의 선수로 꼽힌 리버풀 소속 버질 반 다이크 선수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클롭 감독은 나를 ‘무시’하면서 키웠다. 그는 나를 추켜세우는 언론 기사도 조롱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나쁜 상사’ 느낌인데 그는 재빨리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종종, 윙크를 하면서!” 그만큼 유대관계가 끈끈하다는 의미입니다.

정정용 감독이 ‘삼촌’을 자처했다면 클롭 감독이 자기 팀 선수에게 장난삼아 ‘디스(disrespect)’를 날리며 윙크하는 모습은 ‘동네 형’ 같은 이미지를 줍니다. 서슬 퍼런 카리스마를 스스로 깨고 감성적 취약점(vulnerability)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지극히 ‘요즘 리더십’에 맞는 행동입니다. 젊은 조직원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기 위해선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리더의 모습이 더 권장되는 시대입니다.

살벌한 생존 경쟁이 펼쳐지는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인간적 교감을 쌓는 일은 가욋일이 아닌 리더의 ‘본업’이 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리더십 컨설팅 기업 ‘캔더’의 CEO 킴 스콧은 저서 『실리콘밸리의 팀장들(Radical Candor)』에서 “최고의 상사는 감정 노동의 달인이 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조직원들의 ‘보모’ 역할을 하느라 감정적으로 지치더라도 소소한 희로애락도 함께할 수 있어야 진정한 신뢰가 구축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해 직접적이고 신랄하게 피드백을 할 때조차도 인신공격으로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한 전초 작업이기도 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요즘 리더십’ 덕목들로는 민첩성, 연결성, 증폭성 등이 꼽힙니다. 이번 DBR 스페셜 리포트는 이와 더불어 밀레니얼, ‘Gen Z’ 등으로 불리는 신세대 동료들, 그리고 조직문화 혁신이란 과제를 만난 한국의 리더들이 주목해야 할 감성적 리더십 영역과 팀 리더십에 특히 돋보기를 들이댔습니다. 디지털 혁신 시대 키워드 중 하나는 융합이고 이를 위해서는 ‘협업형 리더’가 필요한데 여기에 ‘요즘 리더십’의 소양이 응축돼야 합니다. 협업에 필요한 의사소통 능력, 공감 능력은 사실 수양하더라도 쉽게 길러지는 덕목이 아닙니다.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협업을 통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키우려면 그래서 약간의 심호흡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정 감독은 선수들의 지나친 도발에 마음이 상할 때면 마음속으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세 번 되뇌었다는데요, 새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십에 발맞추려면 적절한 마인드컨트롤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리더십에서도 사회적 통념과 관행, 그리고 스스로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혁신’입니다. 이번 호 DBR을 통해 리더십의 ‘혁신’에 동참하는 기회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김현진 편집장
bright@donga.com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