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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하지 말고 경영하라

안병민 | 276호 (2019년 7월 Issue 1)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화재사고를 보고받은 책임자 A는 신속하게 화재 진압에 나섭니다. 후속 복구 작업도 꼼꼼하게 챙깁니다. 그렇게 원상 복구를 하고 나면 그걸로 끝입니다. 불이 났으니 불을 껐고, 원상태로 복구까지 마쳤으니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문제 발생에 따른 조치 수준입니다. 책임자 B는 다릅니다. 원상 복구가 다가 아닙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 나섭니다. 불이 난 게 문제가 아니라 화재가 발생하게 된 근원적인 이유, 이게 진짜 문제라는 겁니다. 전기배선상의 누전 문제인지, 담당자의 실수였는지, 명확하게 문제를 발견하고 문제를 정의합니다. 전기배선상의 누전이 문제였다면 전체 배선 시스템을 재점검해 재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합니다. 담당자의 실수였다면 그 배경을 분석해 작업 프로세스를 재구축하고, 그에 합당한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문제 조치’에 머물렀던 책임자 A는 ‘관리자’이고 ‘문제 해결’을 했던 책임자 B는 ‘경영자’입니다.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 ‘관리자’의 ‘문제 조치’가 ‘표피적 대응’이라면 ‘경영자’의 ‘문제해결’은 ‘근원적 처방’입니다. ‘관리’와 ‘경영’의 차이입니다.

경영 현장에서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관리’입니다. ‘중간관리자’라는 표현도 익숙하고 ‘사람 관리’라는 문구도 낯설지 않습니다. ‘주관할 관(管)’자에 ‘다스릴 리(理)’자를 써서 관리라고 하는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주관해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내 책임하에 내게 주어진 자원을 잘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다 보니 리더의 역할은 어느샌가 관리로 굳어졌습니다. 리더는 곧 관리자라는 등식이 만들어진 겁니다.

하지만 관리의 기본적 속성은 ‘유지(維持)’입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현재의 상황을 잘 유지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 관리를 잘한다는 것은 변수를 없앤다는 의미입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무한 재생해내는 것, 그게 관리인 겁니다. 그러니 관리와 혁신의 상관관계는 정확하게 반비례합니다. 관리를 잘할수록 혁신은 저만치 멀어져갑니다. 그래서 리더의 역할은 관리가 아니라 경영입니다.



그렇다면 경영은 무엇일까요? 경영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입니다. 변화를 통한 성장, 이게 경영의 목적이자 결과입니다. 어제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면서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대과(大過)가 없었다는 말은 그래서 리더에게 수치입니다. 큰 과오가 없었다는 얘기는 과거의 답습에만 머물렀다는 얘기입니다.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안 했고 또 못 했다는 얘기입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기하급수적 변화의 시대입니다. 분초를 다투며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함께 혁신하지 못하면 결과는 곧 나락이자 파국입니다. 리더가 관리가 아닌 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관리의 폐해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때도 나타납니다. 쉬운 예를 들어보지요. 누군가가 나를 관리한다? 다시 말해, 누군가가 나를 주관해 다스린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겁니다. 사람은 다른 누군가의 관리, 즉 다스림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자율적 판단과 결정으로 움직이는 주체적 존재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관리의 대상은 보통 ‘개념’이거나 ‘도구’입니다. ‘성과 관리’ 혹은 ‘자원 관리’ 같은 식입니다.

그럼에도 리더는 자꾸 직원을 관리하려 듭니다.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어요. 그래요, 당신은 늘 내게 친절했지요. 하지만 우리 집은 놀이를 하는 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난 당신의 인형 같은 아내였지요. 아빠 집에서 인형 같은 아이였듯이요.” 헨리크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의 대사입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누군가의 인형으로만 살아왔던 자신을 인식하고는, 나를 찾아 집을 떠나는 주체적 여성 노라 말입니다. 노라를 인형으로 만든 이가 그녀의 남편이었듯 직원들을 주체성 없는 인형으로 만드는 사람이 바로 ‘관리자’입니다. 직원을 ‘목적’이 아니라 ‘도구’로 보는 겁니다. 직원을 관리하고 통제하면 일견 열심히 일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시키니까 하는 노동입니다. 영혼 없는 순응입니다. 간은 집에 꺼내두고 왔다며 용왕을 속였던 토끼처럼 영혼은 집에다 놔두고 출근합니다. 이거 하라면 이거 하고, 저거 하라면 저거 하며 그저 퇴근 시간만 기다립니다. 혁신과 성장은 언감생심입니다. 리더의 관리가 사라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이라 했습니다. 보되 보지 못하고, 듣되 듣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리더가 봐야 할 것은 가지나 잎이 아니라 뿌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지만 나무의 생명은 뿌리에 달려 있습니다. 깊은 생각과 넓은 시각으로 그 뿌리를 보아내야 합니다. 그게 통찰입니다. 통찰은 그래서 관리자의 것일 수 없습니다. 경영자의 몫입니다. 답습이 아니라 혁신, 도구가 아니라 사람! 리더의 나침반이 가리켜야 할 목적지는 거기입니다.

필자소개 안병민 열린비즈랩 대표 (facebook.com/minoppa)
안병민 대표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헬싱키경제대에서 MBA를 마쳤다. 대홍기획 마케팅전략연구소, 다음커뮤니케이션과 다음다이렉트손해보험의 마케팅본부를 거쳐 휴넷의 마케팅이사(CMO)로 고객행복 관리에 열정을 쏟았다. 지금은 열린비즈랩 대표로 경영혁신·마케팅·리더십에 대한 연구·강의와 자문·집필 활동에 열심이다. 저서로 『마케팅 리스타트』 『경영일탈-정답은 많다』 『그래서 캐주얼』, 감수서로 『샤오미처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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