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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3. 삼성전자 벤처 프로그램 C랩의 혁신 전략

후보 선정 오디션부터 재미있는 축제
“대기업 틀 벗어나 마음껏 실패하게”

배미정 | 274호 (2019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삼성전자의 C랩은 창의적인 인재들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채널이자 혁신적인 벤처를 보육하는 요람으로 성장했다. C랩은 자율 출퇴근, 수평적인 의사결정, 보고 최소화 등을 통해 구성원의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도록 완전한 자율을 보장했다. 특히 C랩 파견 근무기간에는 평균 이상의 고과를, 스핀오프 기업에는 5년 내 재입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직원들에게 대기업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스핀오프를 통해 경쟁력 있는 스타트업을 배출하는 한편 외부 스타트업에까지 역할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벤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양성식(경희대 경제학과 4학년) 씨와 홍지선(경희대 호텔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세계 최초 360도 카메라 ‘핏360(Fitt360)’을 개발한 링크플로우의 김용국 대표는 창업 전까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15년간 소프트웨어 개발과 기획 업무를 담당했다. 재직 시절부터 넥밴드형 웨어러블 카메라의 가능성을 발견, 홀로 프로토타입까지 제작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던 그는 2014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1등을 거머쥐고 2015년 1년간의 Creative Lab(C랩) 활동을 거쳐 2016년 10월 스핀오프로 창업했다. 창업한 지 2년6개월이 지난 2019년 5월 현재, 김 대표는 기술 상용화에 성공해 본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보안용 핏360 수출에 성공한 데 이어 올 하반기에는 KT와 손잡고 5G용 고화질 360도 가상현실(VR) 촬영 앱도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 120억 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도 받았다. 링크플로우가 보유한 카메라 기술 관련 국내외 특허는 25개가 넘는다.



하지만 이런 성과를 내기까지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김 대표는 “스핀오프 이후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C랩에서의 인큐베이팅 지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아이디어는 당시 무선사업부 주최 공모전에서 1등을 했지만 정작 사업부에서는 개발할 계획이 없었다. 그 대신 김 대표는 C랩에 지원해 자기 팀을 꾸리고 1년간 제품 개발에 몰입했다. 또 5억 원의 시드머니를 투자받고 실제 창업까지 도전했다. 김용국 대표는 “C랩을 통해 현업에서 벗어나 오로지 기술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가장 소중했다. C랩과 스핀오프제도가 없었다면 지금의 링크플로우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2년 말 삼성전자가 도입한 사내 벤처 프로그램 C랩이 출범한 지 6년이 지났다. ‘기업 내의 소기업’인 사내 벤처는 대기업이 기존 조직 구조의 경직성을 극복하고 우수한 구성원의 기업가정신을 진작, 신기술을 빠르게 사업화하기 위한 목적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의 C랩은 도입 초기 파격적인 인사 혁신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았으며 2015년 스핀오프제도를 전격 도입해 현재 혁신적인 벤처를 육성하는 요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매년 전사 임직원들이 집단지성 플랫폼 모자이크(MOSAIC)를 통해 자발적으로 제출하는 아이디어가 1000개 이상에 달한다. 이 중 2019년 5월 기준 247개의 과제가 채택돼 C랩에서 인큐베이팅됐으며 링크플로우를 포함한 36개 과제가 스핀오프했다.



C랩 출신 스타트업들은 CES, MWC 와 같은 글로벌 전시회에서 주목받으면서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현재까지 약 1000여 명의 임직원이 C랩에 참여했다. 2018년 10월 외부 출신 스타트업을 보육하는 ‘C랩 아웃사이드’제도까지 출범하면서 삼성전자 내부뿐 아니라 외부까지 아우르는 C랩 벤처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C랩 출신 스타트업들이 본격적인 캐즘(Chasm) 1 의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C랩 이후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다. C랩 출신 아이디어를 사업부 내에서 전략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DBR이 C랩 초창기부터 운영을 총괄한 김현수 프로 등 삼성리서치 창의개발센터 담당자들과 링크플로우, 웰트, 솔티드벤처 등 C랩 출신 스핀오프 기업을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C랩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분석했다.


조직문화 혁신 실험으로 출발

C랩은 삼성전자가 현재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하기 위해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해야 한다는 경영진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2012년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11개 주력 제품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면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전자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구글, 애플 같은 신흥 IT 강자의 위협과 글로벌 강자 노키아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경각심이 커졌다. 특히 임직원의 80%를 차지하는 2030 밀레니얼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려면 상명하복과 근면 성실을 강조하는 기존 조직문화와 다른 근본적인 혁신, 특히 인사제도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삼성전자 기존 조직과 30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을 대상으로 이 같은 변화를 실험하기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삼성전자는 ‘창의개발센터’란 별도 전담 조직을 만들고 C랩을 통해 소규모 스타트업 조직을 도입하기로 한다. 김현수 창의개발센터 프로는 “기존 조직의 강점인 치밀한 계획과 일사불란한 실행력을 유지하면서 스타트업의 강점인 빠른 실행력과 실패를 장려하는 유연한 문화를 접목하자는 의미에서 출발한 하이브리드 형태의 실험을 했다”고 설명했다.

사내 혁신 아이템을 발굴하는 C랩 프로그램은 목표 자체가 아이템 발굴보다는 창의적인 조직문화의 이식이라는 점에서 기존 공모전과 근본적으로 달랐다. 과제 선정부터 운영 방식에 이르기까지 C랩의 전담 조직인 창의개발센터가 모든 과정을 총괄했다. 2012년 12월12일 4명으로 출발한 창의개발센터 조직은 2019년 5월 현재 30명으로 커졌다. 첫해 4개 과제가 선정됐을 때만 해도 별도 독립된 사무실이 없어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 서초사옥 등의 빈 사무실을 전전하며 활동했다. 김현수 프로는 “현업이 이뤄지는 사업장에서 최대한 떨어진, 독립적인 공간을 찾아서 이사 다녔다”고 말했다. 현재는 매년 상·하반기 2번에 걸쳐 40여 개의 C랩 과제가 선정되고 있는데 과제당 평균 5명의 구성원이 C랩에 파견돼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명이 넘는 인원이 독립된 장소인 삼성전자-서울대 공동 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C랩의 일하는 방식은 대기업에 ‘홀라크라시(Holacracy)’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었다. 홀라크라시의 핵심은 계층이 없는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다. 최종 C랩 과제에 선정되면 아이디어를 제안한 크리에이티브 리더(Creative Leader, CL)가 자율적으로 연령과 직급에 관계없이 구성원을 선발할 수 있다. 구성원은 1년 파견 형식으로 창의개발센터에 소속돼 독립적인 사무 공간에서 24시간 자율근무를 하게 된다. 출퇴근은 물론 업무 계획도 자유다. 프로토타입 개발에 필요한 예산도 충분히 지원된다. 평가도 현업과 독립적으로 C랩 과제의 성과에 따라 절대평가가 이뤄진다. 김현수 프로는 “삼성전자 임직원 30만 명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기존 인사 시스템을 고려하면 0.01%도 안 되는 구성원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파격적인 방식을 허용한 셈”이라고 강조했다. C랩의 성과는 이후 삼성전자가 직급 체계를 없애고 자율출퇴근제를 도입하는 등 전사적인 인사 혁신을 추진할 때 테스트베드 역할을 했다.

C랩 초창기에는 우수 인력이 빠져나가는 데 대한 사업부의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C랩만큼은 조직보다 개인의 열정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게 경영진의 분명한 철학이었다. 아이디어 제안자만큼은 C랩 과제로 선정되면 파견 발령을 의무화했다. 스마트벨트로 유명한 웰트의 강성지 대표는 의사 출신이자 보건복지부에서 근무한 경력을 인정받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의 헬스케어 부문에 입사했는데 입사한 지 불과 이틀 만에 C랩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그렇게 최종 과제에 선정돼 1년간 C랩에서 건강을 관리하는 스마트벨트 ‘웰트’를 개발하고 스핀오프했다. 강 대표는 “사실상 삼성전자에서 일한 경력은 무선사업부 1년, C랩 1년 등 총 2년에 불과했는데 이런 인사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삼성전자 CEO가 전담 조직을 만들 정도로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앞장서서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자는 의지가 강했다”고 말했다.



마음껏 실패할 수 있는 환경
1. 과제 선정부터 상향식(Bottom-Up) 의사결정

C랩의 최종 과제는 전체 임직원에게 생중계되는 공개 오디션으로 진행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C랩은 사내 집단지성 플랫폼 모자이크를 통해 임직원들이 상시적으로 자유롭게 제안한 아이디어 중 직원들이 직접 ‘코인’으로 가상 투자하는 방식 등으로 지지한 결과와 내부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고려해 오디션 후보 과제를 선정한다. TED 형식의 공개 오디션은 지원자 중 추첨으로 선발한 청중평가단 100명과 경영진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는데 아이디어 제안자의 PT와 투표,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현장에서 상향식(bottom-up)으로 결정되는 게 특징이다. 기존 조직의 하향식(Top-down) 의사결정 방식을 과제를 선정하는 단계에서부터 뒤집은 것이다. 김현수 프로는 “과거에는 공모전 결과를 취합해서 절차에 따라 보고를 올려서 결정을 받으면 다시 사람들을 모아 통보하는 방식이었는데 C랩은 아이디어 제안자, 청중, 발표자 모두 현장에서 평가하고 결과까지 직접 확인하는, 모두가 참여하는 흥미진진한 축제”라고 설명했다.

오디션 현장 평가는 특허연구소장, 기획팀장, 인사팀장 등 경영진 대표가 현장에서 심사한 결과 50%에다 현장에서 청중이 투표한 결과를 50% 반영한다. 현장 투표 후 최종 순위가 결정되면 경영진이 몇 등까지 최종 과제로 선정할지를 결정한다. 최종적으로 몇 개 과제가 선정될지도 그날 현장에서 결정되는 셈이다. 예컨대, 해당 오디션에 나온 아이디어의 수준이 높으면 오디션에서 발표한 아이디어 전부가 뽑힐 수도 있다. 김현수 프로는 “12개 후보 중 10위까지 뽑힌 적도 있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현상은 해를 거듭할수록 경영진의 심사 결과와 현장 구성원의 평가 결과가 비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김현수 프로는 “초창기만 해도 경영진이 평가한 순위와 현장에서 구성원이 평가한 순위가 정반대여서 굉장히 놀랐다. 그만큼 경영진과 구성원의 관점 차이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순위가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영진이 최근 트렌드에 익숙해지고 구성원들의 의견에 공감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기존 공모전에서 아이디어를 수집할 때는 제안자부터 상사의 눈치를 보고, 평가도 보수적인 관점에서 이뤄져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사장될 위험이 컸다. C랩은 공개적이고 투명한 아이디어 제안과 평가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열정적인 구성원들의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선순환을 작동시키고 있다.


2. 자율적 운영과 보고 최소화

C랩의 강점 중 하나는 아이디어를 제안한 CL이 인사, 예산을 자율적으로 쓸 권한을 갖는 것이다. C랩 최종 과제로 선정되면 아이디어를 제안한 CL은 본인이 원하는 팀원을 직접 심사해서 충원할 수 있다. 탤런트 오디션을 통해 사내에 구인 광고를 내서 원하는 재능을 가진 동료를 직접 인터뷰해 뽑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도 본사 인사부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게 특징이다. 기존 인사 시스템하에서는 인사부서가 절차를 총괄하고 인력을 사전 검증하는 식의 절차가 있었겠지만 C랩의 탤런트 오디션은 CL이 주도적으로 본인의 아이디어를 함께 발전시킬 팀원을 인터뷰하고 뽑을 권한을 갖는다. 이렇게 뽑힌 팀원 역시 현업에서 나와 C랩에서 독립적으로 일하게 된다. CL이 인사부서나 사업부 눈치를 보지 않고 마치 스타트업 CEO처럼 삼성전자 내에서 채용을 진행한다.

업무나 예산과 관련한 보고 절차도 최소화했다. 팀은 1년 동안 과제 착수보고, 중간보고, 결과보고 등 3차례의 보고만 하면 된다. ‘보고를 위한 보고’를 없애기 위해 주간 보고 같은 주기적이고 형식적인 보고를 최소화했다. 스타트업 같은 작은 조직은 대기업처럼 전체 업무를 보고 단위로 쪼개서 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또 예산 관련 결재도 컴플라이언스를 위해 필요한 수준으로 C랩 시스템 내에서 최소화했다. 김현수 프로는 “삼성전자 안에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절차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지만 최대한 외부의 스타트업처럼 운영될 수 있도록 형식적 절차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3. 실패에 따른 불이익은 없다

C랩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C랩 활동의 결과가 현업에 복귀한 후에도 평가나 승진, 보수에 절대 불이익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C랩 활동 기간이 아무리 자유로워도 끝났을 때 그 책임을 엄중히 따진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도전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C랩은 1년의 활동 기간 전 구성원에게 평균 이상의 평가를 보장한다. 구성원에게 현업에 신경 쓰지 말고 파견 기간만큼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한 것이다. 이런 파격적인 조건은 숨은 인재를 발굴하고 잠재된 창의력을 최대한 발현시키는 데 기여한다.

C랩 파견 기간은 기존 인사 평가 시스템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기존 사업부에서는 1년간 두 차례에 걸쳐 평가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년도 연봉 협상을 하게 되는데 C랩 기간에는 그런 절차가 중단, 연기된다. 예컨대, 승진 시기가 돌아온다고 해도 평가가 1년 후로 미뤄진다. C랩에서 1년간 활동한 결과물을 평가받고 현업에 복귀하게 되면 그 결과를 인사에 소급 반영하게 된다. 김현수 프로는 “평가 결과가 안 좋더라도 평균은 보장한다. 실패에 대한 어떤 페널티도 없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1년간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도전과 실패를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장려하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스핀오프, 벤처 인큐베이팅의 요람으로
“실패해도 5년 내 재입사 가능”

C랩은 출범 3년 만인 2015년 8월 스핀오프제도를 최초로 도입했다. 현재는 C랩 출신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지만 스핀오프제도를 도입할 때만 해도 찬반논쟁이 많았다고 한다. “왜 안에서 잘 키운 직원을 밖으로 내보내느냐”는 부정적인 시각도 많았다. “정리해고의 다른 방식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있었다. 하지만 C랩을 운영해보니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과제 중에 1년 만에 종결시키기엔 아쉬운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평가 결과 사업성이 확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로드맵의 연장선상에 없거나 시장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사업부서로 이관되기 힘든 과제들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사업부서는 수천억 원 이상의 사업에 집중하기 때문에 수억 혹은 수십억 원 수준의 벤처 과제에 자원을 투자할 여력이 없다. 또 1년 단위로 업무 계획을 세우고 평가하는 사업부에서 벤처 과제에 중장기적으로 투자할 유인도 떨어졌다. 중장기적으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고 과제원들의 의지와 열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부서로 이관되지 않아 종결될 수밖에 없는 과제들도 나타났다.

솔티드벤처도 그런 곳 중 한 곳이었다. 자세와 걸음걸이 패턴을 분석하는 스마트 깔창을 개발한 조형진 대표는 해외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통해 시장과 고객 검증을 받고 싶었는데 별도 법인이 없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스핀오프라는 제도가 생겨 지원하게 됐다. 회사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일단 도전해라. 5년 내라면 실패하더라도 돌아왔을 때 경력을 인정해 받아주겠다”는 조건이었다. 퇴사하는 직원에게 재입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것은 다른 기업에는 없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일부에서는 과도한 특혜가 아니냐, 창업에는 위험 감수가 중요한데 재입사라는 ‘황금 족쇄’를 차고 뭘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반대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마음껏 도전하고 실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경영진의 의지는 C랩뿐 아니라 스핀오프제도를 도입할 때도 확고했다. 예측할 수 없는 시장 환경, 업종의 경계를 넘나드는 융복합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울타리 내에서만 인재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분명했다. C랩 출신들이 시장에서 배운 경험치는 성패와 관계없이 사무실에서 배우는 것만큼이나 큰 가치를 가질 것이고, 그런 경험에 기꺼이 투자하겠다는 게 경영진의 취지였다. 조형진 대표는 “당시 경영진은 삼성전자 내의 기술과 인재를 벤처 생태계로 적극적으로 확산시키자는 큰 틀의 방향성을 이미 갖고 있었다. 장기적인 인사이트를 갖고 결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5년 내 재입사 보장 티켓은 안정적인 대기업을 떠나야 할지 고민하는 구성원들에게 도전할 용기를 심어줬다. 조형진 대표는 “왜 번듯한 직장을 때려치우냐고 걱정하는 가족들을 설득하고 안심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스핀오프제도가 시행된 지 만 4년째인 현재 아직 스핀오프 기업의 CEO 36명 중에 사업에 실패해 재입사한 케이스는 없다. 삼성전자는 이들이 복귀하더라도 사업부의 최전선에서 본인이 시장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기업은 C랩 같은 혁신적인 소규모 팀을 키울 때 이를 내부에서 운영할지, 별도의 새로운 회사로 독립시킬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많은 글로벌 대기업이 스핀오프를 택하는 이유는 소규모 조직이 내부 조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략적 투자를 통해 성장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다는 강점 때문이다. 우선 스핀오프는 대기업이 유치하기 어려운 기업가정신과 기술력을 갖춘 인재를 유치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기업은 기존 인사 시스템이 제공하지 않는 파격적인 업무 환경과 보상을 도구로 이들의 재능을 살 수 있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C랩과 스핀오프제도가 없었으면 나 같은 특이한 이력과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이 삼성전자에서 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스핀오프는 기업의 기존 전략적 사업을 리스크에 노출시키지 않는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스타트업의 강점 중 하나는 새로운 영역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실험하고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내부보다 훨씬 적은 자원을 투입해 실험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다. 김용국 링크플로우 대표는 “삼성전자 내에서 제작했다면 수백억 원이 들었을 과제를 수십억 원에 해결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잠재력이 충분한 아이디어의 경우 당장 회사의 전략적 사업 목표와 부합하지 않더라도 스핀오프를 통해 성장시킴으로써 중장기적으로 기존 비즈니스와의 시너지를 노릴 수 있다. 스핀오프 기업이 많아질수록 C랩이 동일한 자본 및 인력의 투자로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될 것이다.


C랩 벤처 생태계로 확장 가능성

C랩 출신 스핀오프 기업은 매년 열리는 세계적인 전시회와 스타트업 대회에서 주목받으며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부 스핀오프 기업은 삼성벤처투자 시드 투자 외에 추가 투자를 유치하면서 시장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있다. C랩 출신 스타트업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C랩은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의 요람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조형진 대표는 “시장에 나와서 다른 스타트업들과 비교해보니 C랩을 통해 한 라운드 정도는 더 빨리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삼성전자에서 충원한 인력과 시드머니를 기반으로 출발했기에 시작점이 앞서 있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 10월 구성원뿐 아니라 외부 스타트업들에도 C랩의 노하우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향후 5년간 외부 스타트업 300개, 삼성전자 임직원 대상 과제 200개 등 총 500개 스타트업 과제를 지원할 계획이다. 외부 스타트업들은 삼성전자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C랩 공간과 개발 지원금, 사내 전문가 멘토링, 글로벌 전시회 참가 기회 등을 제공받는다. 앞으로 C랩 출신 스타트업의 숫자와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C랩이 실리콘밸리와 같은 벤처 생태계로 발전할 것이란 기대감도 커진다. C랩 출신 기업들은 1년에 2회 정기적으로 네트워킹하면서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스핀오프 최대 4년 차에 접어드는 C랩 출신 스타트업들은 이제 제품의 상용화를 앞두고 본격적인 시장 검증을 받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또 C랩 출신으로 시장 검증을 받은 과제들이 향후 삼성전자의 미래 신사업과 전략적으로 연계될 수 있을지도 지켜볼 과제다. C랩과 스핀오프는 인사 혁신과 인재 육성 차원에서 시작된 제도로 사업 연계성은 애초에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내 벤처는 기존 사업과 별도로 사내 구성원이 신사업을 준비하도록 지원하는 전략으로도 의미를 지닐 수 있다. C랩 출신 스핀오프 기업들도 삼성전자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잠재적 사업 파트너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기업들은 스핀오프 이후 삼성전자와의 관계 단절을 가장 아쉬워했다. 한편 링크플로우는 스핀오프 이후 롯데액셀러레이터를 통해 투자금뿐 아니라 롯데 관계사와의 네트워크, 유통채널 등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용국 링크플로우 대표는 “C랩 출신으로 홍보는 많이 되고 있지만 스핀오프 후에도 삼성과 협력해 시너지를 내는 모델을 만들고 싶다”며 “C랩도 ‘퍼스트 펭귄’ 형태의 시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유니콘 같은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조형진 솔티드벤처 대표도 “삼성전자 내에도 개발이 완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이나 시장 규모가 맞지 않아 사장되는 아이템들이 많다. C랩이 삼성전자와 스타트업 간 협력 채널로 성장하면 서로 윈윈할 기회가 많아질 것이고 국내 벤처 생태계 성장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고 제안했다.

해외에서는 사내 벤처가 독립 분사한 후 유망 스타트업으로 발전하고, 이런 스타트업이 기존 기업과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일으키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고 있다. 예컨대, 스핀오프 기업을 키운 다음에 다시 흡수하는 ‘스핀 인(spin-in)’도 활성화될 수 있다. 강성지 웰트 대표는 “스핀오프 기업은 삼성전자가 뿌린 씨앗이자 위성 기업들이다. 이들이 서로 시너지를 내면서 발전해야 C랩에 지속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유입돼 기존 조직에서 혁신이 침체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프로는 “현재는 사업부 이관과 스핀오프 트랙밖에 없지만 회사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제3의 트랙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핵심 부서의 더 많은 인재가 C랩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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