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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애널리틱스 사례

제갈공명의 역량도 데이터 분석의 힘
간단한 분석이 현장에선 큰 돌파구

김성준 | 271호 (2019년 4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글로벌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떤 인물에게 이를 맡기면 좋을까. 위기 상황에는 누가 대처를 잘할까. HR 애널리틱스는 이 같은 고민에 실마리를 제공한다.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할 때만 활용되는 것이 아니다. 경영자를 육성하거나 조직 환경을 개선할 때도 힘을 발휘한다.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간단한 분석도 현업에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다만 HR 애널리틱스는 긴 호흡을 필요로 하며 직관과의 조화도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국내 기업은 HR 애널리틱스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을까. HR 애널리틱스 활용 방안에 대해서는 해외만큼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나 국내 기업의 사례는 미디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공개 석상에서 발표하는 사례는 대부분 해외 기업의 결과물뿐이다. 구글의 훌륭한 리더 특성 찾기, 다우케미칼의 인력 구조 분석, 네슬레의 해외 주재원 제도 개선, 제록스의 고성과자 DNA 분석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사례는 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기업들이 공개를 주저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HR 애널리틱스는 조직에 실존하는 문제들을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간다. 개인-팀-조직 단위의 각종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한다. 이를 토대로 타당한 해결안을 도출하고 실행한다. 이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경영진의 전략적 고민이 외부에 드러날 수 있다. 회사의 사람-문화-제도상의 문제점이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외부 매체를 통해 해당 내용을 접한 회사 구성원들의 반응도 부담이 될 수 있다. 2010년부터 ‘빅데이터’가 주목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개인정보 보호’에 매우 민감해졌다. 사회 일각에서는 빅데이터로 인해 영국 소설가 조지 오웰이 말한 ‘빅브라더’의 출현을 걱정한다. 빅데이터가 긍정적으로 활용될 때는 사회를 보호하는 보호자 역할을 할 것이나 부정적으로는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사회의 축소판인 조직에서도 그와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인사 부서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다양한 데이터로 HR 애널리틱스를 수행했는데 구성원들은 부정적 의미의 ‘빅브라더’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동안 여러 회사에서 사람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왔다. 각 회사에서 수행했던 HR 애널리틱스 프로젝트 중에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제갈공명 되기 프로젝트
2010년 초, A 회사 경영자의 의사결정을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심했다. 경영진의 가려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줄 수 있으면 HR 애널리틱스의 효과를 제대로 피력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먼저 삼국지 고사를 떠올렸다. 적벽대전에서 100만 명이나 되던 조조 군은 유비-손권 연합군에 크게 패한다. 제갈공명은 화용도(華容道)로 빠져나간 조조를 잡기 위해 장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내리는데 유독 관우에게만 군령을 내리지 않는다. 제갈공명은 관우가 과거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고, 관우의 성격상 조조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군령을 받지 못하자 자존심이 상한 관우는 “조조를 살려 보내면 제 목을 바치겠다”고 다짐하고 출병한다. 하지만 결국 관우는 제갈공명 앞에 죽음을 각오하고 선다. 조조를 놓아줬던 것이다. 제갈공명의 사람을 예측하는 능력, 다시 말해 특정 상황에서 그 사람이 어떤 행동 패턴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대로 정확히 들어맞은 것이다.

제갈공명이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는 미래를 내다보고 전략을 세우는 역량과 그 전략에 따라 적재적소에 장수를 배치하는 능력 때문이다. 전자는 차치하고, 장수를 적절하게 배치하는 일을 제언할 수 있으면 인사 부서가 전략적 파트너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제갈공명 되기’라는 이름이 붙었다.

몇 가지 굵직한 비즈니스 상황을 상정해 두고 그에 적합한 리더가 누구인지를 추천하는 시스템을 만들기로 했다. 우선 연도별로 담당한 직무와 인사 고과 데이터를 취합했다. 또한 리더마다 성격을 검사한 데이터를 모두 끌어모았다.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취합하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데 몇 주가 소요됐다.

당시에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 간에 선형적인 상관관계를 모델링하는 기법인 회귀분석(regression analysis)이 주를 이뤘다. 이 기법을 활용해 각 비즈니스 상황에서 높은 성과를 예측하는 변수를 도출했다. 그리고 리더마다 다음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지수로 제시했다.


● 글로벌 사업에 얼마나 적합한가?
● 조직 변화 추진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가?
● 신규 사업 발굴/추진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가?
● 대외 활동 / 영업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가?
● 조직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사람을 키우는 상황에 얼마나 적합한가?


몇 개월 동안 예측 모델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고, 초기 버전을 조직 내부에 공유했다. 이 모델이 타당한지를 어떻게 판단해볼 수 있을까? 예측 모델에 따라 리더들을 실제로 배치해보고, 몇 년 후에 그들이 과연 높은 성과를 달성했는지 추적해 검증하면 가장 좋을 것이다. 초기에 예측 모델의 타당성을 판단할 때는 우리가 가진 직감과 얼마나 유사한가를 따져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A사 인사부는 리더마다 직관적으로 어떤 비즈니스 상황에 더 적합한지를 하나하나 살펴봤다. 그 결과 예측 모델 수치와 그들 직관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 예측 모델을 실제로 적용하지는 못했다. 리더마다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예측 모델은 ‘보편성’의 세상이다. ‘특수성’은 희생될 수밖에 없다. 특정한 비즈니스 맥락에서 성과를 잘 내는 리더일 수 있지만 모델링이 부적합하다고 예측했다는 이유로 외면받을 수 있다. 개인의 인생과 성장 잠재력을 제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실무진도 예측 모델에 확신이 없었다. 과연 이 방식이 최선일까, 예측 모델에 따라 배치를 했는데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비판적인 반응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확신을 갖지 못하니 이를 실제로 적용하자고 경영진에게 강하게 피력하기 어려웠다. 돌이켜보면 기술적으로 상당히 부족한 모델이었다. 전통적인 방식인 회귀분석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공지능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고 공개용 소프트웨어 패키지를 활용해 더 뛰어난 분석 도구들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당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예측 모델에 보다 더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몇 년 후 구글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구글 사람운영팀(people operation) 소속의 프라사드 세티(Prasad Setty)는 승진 예측 모형을 만들었다가 폐기한 사례를 발표했다. 그는 구글이 승진 심사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일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구글은 일 년에 두 번 승진 심사를 한다. 전 세계 수백 명의 수석 엔지니어들을 산타클라라 메리어트호텔에 모이게 한다. 구글 본사에는 수백 명이 모일 장소가 없어서 호텔을 빌린다고 한다. 4∼5명의 수석 엔지니어를 하나의 소위원회로 구성한다. 그렇게 수많은 위원회를 만들어 검토해야 할 승진 후보자들을 배정한다. 오로지 서류에 의존해서 승진시켜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심사하게 한다. 이를 3∼5일 정도 진행한다고 하니 승진 심사에 엄청난 시간과 자원을 투입하고 있었던 셈이다. 프라사드 세티는 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고자 승진 예측 모델을 만들었다. 그가 공개한 공식은 다음과 같다.



세티는 “지극히 단순한 공식이지만 예측률은 상당히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잠시 공식을 들여다보자. 승진을 결정하는 변수는 매우 단순하다. ‘확률’ 공식에 있는 ‘e’는 자연 상수로 원주율 파이(π) 3.14195…와 같이 2.71828… 값을 갖는 수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성과가 어떠했는지, 상사가 그의 승진을 추천했는지, 후보자도 승진하고 싶은 의사를 내비쳤는지 등의 세 가지 변수를 가지고 예측한다.

예측 모델이 90% 수준의 정확도를 보이자 세티와 동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수많은 직원의 시간과 노력을 경감할 수 있는 모형을 제대로 만들어 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최소 30% 수준의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의기양양하게 경영진에게 승진 예측 모델을 공개했다.

경영진 반응은 어떠했을까? 구글은 데이터, 통계, 머신러닝, 인공지능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회사다. 신기술에 익숙하고 선호하는 경영진이었지만 의외로 그 예측 모델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사람들에 대한 의사결정은 사람이 해야 한다(people should make people decisions)’라는 이유에서였다. 승진 결정은 사람의 인생과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결정이다. 사람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주체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을 내부적으로 분명히 천명한 것이다.

또한 예측 모델이 갖는 근본적 한계가 있다. 예측 모델은 과거 추세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앞날을 예측한다. 그런데 경영 환경은 수시로 변한다. 기민한 촉으로 변화를 읽어 그에 적절하게 결정해야 한다. 특히 고위급 리더를 배치하는 일이나 승진시키는 의사결정은 과거 기록보다는 현재 외부 환경, 경쟁 상황을 더 많이 고려해야만 한다. 이들 외부 환경 변화를 예측 모델에 실시간으로 반영해 예측하는 일은 아직은 요원하다.

A사와 구글 사례는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HR 애널리틱스의 수행 주체가 분석 결과나 예측 모델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경영진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다. 둘째, 데이터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데이터만 있으면 무엇이든 분석하고 예측할 수 있을 거라 믿기 쉽다. 하지만 우리는 경영 환경이 수시로 바뀌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 데이터로 예측 가능한 분야와 그렇지 못한 영역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셋째, 인공지능이 기능할 영역, 사람이 판단할 영역을 구분해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도 지속해서 제기될 문제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리더의 특성을 찾아서
2008년에 구글은 ‘산소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탁월한 관리자들은 어떤 특성이 있는지를 밝히는 프로젝트였다. 이를 통해 총 8가지의 바람직한 행동을 도출하고 그 기준을 토대로 리더를 평가하고 피드백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은 리더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떤 리더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수 있다. ‘8가지나 되는 바람직한 특성을 어느 세월에 익히고 개발하느냐, 지금 당장 성과를 내기에도 바쁜데’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이들에게는 ‘리더라면 최소한 이 행동만큼은 하지 마십시오’라는 지침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B 회사도 어떻게 하면 ‘최악’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고자 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안리특(안타까운 리더의 특성을 찾아서)’이라고 명명했다.

360도 피드백 평가 점수와 주관식 데이터를 활용하기로 했다. 구성원들이 ‘나의 상사는 조직의 방향을 전략적으로 제시한다’ ‘나의 상사는 언행이 윤리적이다’ 등의 문항에 5점 척도로 평가한 점수, 그리고 상사의 강점과 약점을 기술한 주관식 데이터를 사용했다. 세계적인 리더십 사상가인 잭 젠거(Jack Zenger)는 구성원이 5점 척도로 평가한 점수에서 하위 20%를 최악의 리더(worst leaders)로 규정한다. 그 하위 집단에 주목했다. 이들은 왜 최하위의 리더로 점수가 낮게 깔리는 것일까? 그 원인을 파악하려면 다른 집단과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느 집단과 비교하면 좋을까. 탁월한 리더 집단과 비교하는 일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바로 직전 집단, 즉 하위 60∼80% 집단과 차이를 보는 게 타당했다. 최악이라고 평가를 받는 일을 면하게 만드는 특성을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성 분석(sentiment analytics)을 한 결과 최하위 집단에서 급격하게 증가하는 부정적인 표현을 추렸다. 이 분석은 특정 키워드가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쓰였는지, 그 키워드가 리더십 평균 점수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를 살피는 방법이다. 영화 ‘명량’의 네이버 평가는 총 6만여 건 등록돼 있다. 어떤 이는 10점 만점을 주고 ‘모든 장면이 감동’이라고 썼다. 이 문장에서 ‘모든’은 관형사이고 ‘장면’과 ‘감동’은 명사다. ‘모든’과 ‘장면’은 중립적인 표현에 가깝지만 ‘감동’은 긍정적으로 사용된 단어다. 반면 어떤 이는 1점을 주고 ‘노잼’이라고 썼다. 노잼은 심하게 재미없음을 의미한다. 6만여 데이터를 가지고 ‘감동’ ‘노잼’과 평점에 미치는 평균적인 영향력을 도출할 수 있다. 대략 ‘사람들이 감동 또는 노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영화 평점을 10점 만점에 몇 점으로 주는 추세가 있더라’는 식의 분석이다.

이를 안리특 프로젝트로 생각해보면 구성원들이 어떤 키워드를 사용하면 리더십 평가 점수가 어찌 되는지, 어떤 키워드가 최악의 리더로(하위 20%) 평가되게 만드는 핵심 단어인지를 밝힐 수 있다. 감성 분석을 실시한 결과, 최악의 리더로 평가받게 만드는 특성은 다섯 가지가 나왔다. 그 부정적인 특성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최악의 리더로 전락하게 만드는 가장 부정적인 행동이다. 책임 의식이 전혀 없거나 잘못을 부하에게 전가하는 사람은 구성원들이 리더로 인정하지 않았다.

2. 개인 이익을 조직 이익보다 앞서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 영달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행동이다. 자기 이익 때문에 불합리한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개인의 명성을 드높이려 오히려 회사 일은 뒷전으로 제쳐 두는 리더들이다.

3. 언사를 조심하고 말과 행동이 따로 놀지 않아야 한다.
두 가지 부류가 존재했다. 하나는 독단적이고 고압적인 언사를 보이는 리더들이었다. 다른 하나는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리더 집단이었다. 앞에서 하는 말과 뒤에서 하는 말이 다르고, 어제 했던 말과 오늘 하는 행동이 달랐다.

4. 감정적으로 업무에 임하지 않아야 한다.
감정 기복을 심하게 드러내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를 심각하게 해쳤다. 또 감정적으로 의사결정하는 행동도 상당히 부정적인 결과를 냈다.

5. 개인 친분이나 선호에 눈이 가리지 않아야 한다.
학연과 지연에 따라 인사 평가나 업무 배분이 달라지는 행동이다. 개인 친분과 선호로 특정 구성원을 편애하는 일도 부정적이었다.


안리특 프로젝트 결과는 현재 B사의 핵심 리더를 육성하는 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교훈을 줬다. 첫째, 예측 모델처럼 거창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간단한 분석이라도 현업에 상당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둘째, HR 애널리틱스는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보느냐가 상당히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360도 다면평가를 습관처럼 진행해왔다. 다면평가가 쓸모없다고 폐지한 기업도 있었다. 하지만 안리특 프로젝트에서 보듯 어떤 아이디어로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하는지에 따라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경영자를 육성하는 경험 퀘스트(quest)
몇 년 전부터 ‘일을 통한 육성’이라는 표현이 자주 들린다. 보통은 ‘일’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귀찮고 힘들지만 해야 하는 수단 정도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일 자체가 사람을 제대로 성장시키는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일을 통한 육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주변에 물어보니 그냥 전에 안 해봤던 업무를 시키면 경험도 되고 육성도 되지 않냐는 반응이 나왔다.

또 다른 이들은 조직 내 존재하는 기능별로 로테이션을 돌리면 된다고 했다. 전략, 생산, 영업, 구매, 재무, 마케팅, 인사, 연구개발에 따라 개인의 경력을 관리하게 하면 육성이 제대로 될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어느 개인도 전략, 생산 등 모든 기능을 다 경험하기 어렵다. 또한 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추기도 전에 메뚜기처럼 옮겨 다녀 수박 겉핥는 경력을 양산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전략, 생산, 영업과 같은 구분은 회사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기능들을 분업과 효율성 측면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리더를 만들기 위한 경험의 단위가 아니다.



C 회사 경영진은 리더가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패할 각오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그 과정에서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언급해왔다. 부하가 어떤 경험을 해왔는지 상사가 직접 챙기고 새로운 경험을 부여해 부하의 성장을 유도하도록 요구했다. 이와 같은 경영층의 요구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까?

C사는 모든 리더가 연말에 인사 시스템에 본인의 주요 경력을 기술하도록 해왔다. 시스템을 들여다보니 7800건의 텍스트가 입력돼 있었다. 그 데이터 형태는 표와 같다. 신입이든, 경력이든 생애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로 고위 리더로 성장하기까지 개인이 겪었던 굵직한 경험들이 담겨 있었다.

이들 데이터를 단어로 분해하고 어떤 품사들인지 구분했다. 그리고 텍스트 군집 분석을 했다. 자연계에서도 서로 비슷한 종들은 군락을 이룬다. 이를 ‘군집’ ‘집단’이라 부른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도 군집으로 묶어 낼 수 있다. 자신의 경력과 경험을 묘사할 때 서로 긴밀하게 활용하는 단어들의 집합을 살펴보는 일이다. [그림 3]은 여러 군집 중의 한 예다.



이 그래프는 덴드로그램(dendrogram)으로 선 높이가 낮을수록 빈번하게 함께 출현하는 단어들이다. 이 군집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전사 경영 전략을 수립하고,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검토한 경험’으로 기술할 수 있다. 이 방식으로 조직에서 리더가 겪을 수 있는 경험을 일차적으로 도출했다.

또 토픽모델링(topic modeling)을 사용해 재검토해봤다. 이 기법은 방대한 텍스트에서 핵심 주제들을 찾아내는 알고리즘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 문서의 주 내용은 무엇인가? 핵심 주제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원할 때 활용하는 분석 기법이다.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조직 내에서 리더들이 공통으로 겪을 수 있는 경험이 33개로 도출됐다. 그리고 33개는 다시 9개의 큰 범주로 묶어낼 수 있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심리측정학자들이 제안하는 방법을 거쳐서 경험 측정 도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리더들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축적 및 관리해오고 있다.



[그림 4]는 리더 경험을 측정한 예시다. 본인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많고 적은지를 알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이 응답한 결과와 비교한 값으로 제시했다. 이 리더의 경험 패턴을 보면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거나 전사 또는 부문 단위의 전략을 수립해보는 등의 ‘전략적 변화 경험’, 조직 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이슈를 해결하는 ‘어려운 문제 해결 경험’, 전략에 적합한 조직을 설계하고 그에 필요한 인력을 선발 배치하는 ‘조직 구조, 구성원 변화 경험’을 상대적으로 많이 축적한 유형이다.

이와 같은 도구는 실무적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활용될 수 있다. 먼저 리더를 배치할 때 참고할 수 있다. 경영진이 어느 자리에 어떤 사람을 임명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특히 당장 시급하게 일을 추진해야 하는 자리를 고민하는 상황에서 경영진은 아마도 “인수합병해본 사람이 누구야?” “정부 기관하고 같이 일해본 사람은 누구지?”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 일과 관련해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이 있는 사람을 찾을 것이다. 그럴 때 이 자료들이 ‘과학적 인사 결정’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인재 육성에도 활용할 수 있다. 어느 임원급 리더가 그 휘하의 팀장 또는 부장급의 경험 프로파일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부하 리더와 면담하는 과정에서 그의 경력 비전을 고려해 더 심화해야 할 경험, 새롭게 추구해야 할 경험에 대해 함께 합의할 수 있다. 현재 소속 조직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겪을 수 있는 일이나 프로젝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리고 일정 기간이 지나서 성과 피드백 면담 등을 통해 그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함께 성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조직 내부에 공유하자 이런 의문이 제기됐다. 기존 리더들이 겪은 경험만으로도 충분한지, 글로벌 경영자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핵심 경험들이 누락 없이 구성돼 있는지 말이다. 오로지 내부 데이터만을 활용해 분석한 한계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시 필자가 취한 방법이 있다. 포천(Fortune)이 선정한 글로벌 최고 기업 200개를 추렸다. 애플, 아마존, JP모건, 마이크로소프트, IBM, 존슨앤드존슨, 엑손모빌 등. 그리고 CEO 프로파일을 하나하나 입수해 데이터로 만들었다. 블룸버그 등에서 제공하는 인물 검색 활용 서비스를 활용하거나 각 회사 홈페이지의 CEO 소개를 참고했다. 200개 기업 중에서 데이터 입수 가능한 CEO는 173명이었다. 2017년 기준으로 평균 56세였고, 이들이 CEO로 최초 승진했던 평균 나이는 44세였다. CEO로서 재임한 기간은 총 12년 차였다. CEO 출신 국가를 보니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으로 55%였다. 2위는 약 10%로 인도였다. 마이크로소프트 CEO인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 하이데라바드 출신, 구글 CEO인 선다 피차이는 인도 마두라이 출신이다.



글로벌 기업 CEO들에게서 상대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험들을 깡그리 추출한 것이다. 그러자 내부 데이터에서는 빈도가 낮아 출현하지 않았던 경험들이 발견됐다. 몇 가지만 언급해보면 기업 이미지나 브랜드를 새롭게 정립한 경험, 금융 위기와 같은 체계적인 리스크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경험 등이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 CEO 경험을 보완해 총 2개의 Growth 영역, 11개 범주, 39개 경험으로 재정의했다. (그림 6)

앞서 도출한 주요 경험들이 성과나 성장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 타당성을 검증해봤다. 분석 결과 ‘사업 성장(Business Growth)’ 경험은 당해 연도 및 차년도 KPI 점수와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련이 있었다. ‘조직 성장(Organization Growth)’ 경험은 상위 역할 수행과 관계가 두드러졌다.

현재 C사는 이 결과를 리더를 육성하는 데 참고 자료로 활용 중이다. 또한 개인별 개발 계획 수립 시, 육성을 위한 경험(developmental experiences)을 체계적으로 부여하는 일을 가이드하고 있다.

5년에 걸쳐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궁즉통(窮則通)이다. 초기에는 경영자 경험을 어떻게 유형화할 수 있는지, 어떤 프레임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오래 고심하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둘째는 HR 애널리틱스 중에 어떤 과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구글의 ‘산소 프로젝트’는 조직 차원으로 2년6개월이나 걸린 과제다. 빅데이터, 그리고 사람 데이터는 버튼만 누르면 시사점이 뚝딱하고 튀어나오는 일이 아니다. HR 애널리틱스를 적용해 보고자 한다면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 주자와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필자소개 김성준 SK아카데미 리더십개발센터 매니저 sungjun@sk.com
필자는 고려대 경영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SK아카데미 리더십개발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인재경영, 데이터사이언스를 만나다』 『빅데이터 인재를 말하다』를 출간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을 위해 『조직문화 일구기 가이드북』을 무료로 배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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