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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6. 리더의 심리와 소통

리더의 방, 밖에서 잘 보이게 해보세요
수평적 소통은 쉬운 것부터 한 발씩

이용석 | 265호 (2019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다양한 분야나 직군의 사람들이 서로 연결하고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창출하는 시대다. 그만큼 직급이나 위계에 상관없이 서로 의견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필수적이다. 말은 쉽지만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조직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 새로움 맞닥뜨렸을 때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조직에서도 고스란히 느끼기 때문이다. 전쟁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아군과 적군을 더 확실하게 구분하고, 불안한 마음에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수평적 조직문화 달성은 이러한 조직의 속성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서 출발한다.


클라우드, 인공지능,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4차 산업혁명 등의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는 시대다. 새로운 기술로 인한 변화는 이미 주변에서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은행 창구에 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린 기억은 가물가물하고 거의 매일 스마트폰 앱을 들여다보며 계좌 확인과 송금을 하고 있다. 뉴스에는 카카오 카풀 앱이 제2의 우버 아니냐며 반대하는 택시 기사들의 시위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미래에 곧 없어질 직업들이 열거돼 많은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런 변화의 시대를 맞아 사람들이 기존 수직적 상명하복 방식이 아닌 수평적 열린 의사소통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이전 시대에는 분업화된 자신의 직무를 전문적으로 발전시켜서 성실히 수행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즉, 소수의 리더가 내리는 결정을 각 부서가 일사불란하게 오차 없이 실행하면 되는 구조였다. 이런 구조하에서는 수직적 소통이 적합했다. 그러나 현재, 그리고 미래는 경계를 넘어서는 통합이 요구된다. 각기 다른 여러 분야를 연결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 간에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필수적이다.

의료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어떤 환자가 혈당이 높을 때 병원에서 의사는 당뇨약을 처방한다. 병원이나 집에서 하루 한두 번 특정 시점에 혈당을 재고 이에 근거해 의사는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간호사는 혈압을 재고, 의사는 그에 따라 진찰 및 처방을 하며, 원무과는 수납을 하고, 약국은 조제를 하는 간단한 구조다. 의사 중심의 수직적인 병원 구조 시스템만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병원 프로세스에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스마트워치 같은 웨어러블 기계를 통한 24시간 혈당 모니터링 시스템이 상용화되면서 병원 서비스도 디지털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빅데이터가 축적되자 보험, 헬스케어 등 여러 산업에서 혁신적인 사업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의료 서비스도 병원의 담장을 넘어서 전자장비, 통계, 보험 등 여러 산업의 참가자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서비스를 혁신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런 네트워킹을 위해서는 폐쇄적이고 수직적 소통이 아닌 여러 직제 간 수평적 소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수평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조직문화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위기 상황에서 긴장감이 커질수록 수직적 상명하복 소통이 더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수에 의한 빠른 의사결정과 이견이 용납되지 않는 일사불란한 대처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생존을 한 경험을 가진 조직이 적지 않다. 새로운 환경 적응에 실패한 유명 기업의 사례를 통해 변화에 대한 저항의 심리를 살펴본다.

불안과 이에 대한 방어 기제
전환기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해 쇠퇴한 기업은 수없이 많다. 세계 최고의 필름 회사였던 이스트먼코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신하지 못해 쇠락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아날로그 시대의 번영을 상징하는 기업이었다. 코닥은 1950년부터 40년 동안 매달 뉴욕의 그랜드센트럴역에 폭 18m, 높이 5.5m의 ‘세계에서 가장 큰 사진’을 게시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광활한 자연부터 가정의 일상이나 여가 생활까지 ‘코닥의 순간들’이라고 명명된 이 거대한 아날로그 사진은 미국의 자신감을 보여준 상징 같은 존재였다. 이 사진이 막을 내렸던 1990년에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해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이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이후 디지털카메라의 대중화로 인해 필름 판매가 줄어들었다. 결국 2012년 코닥은 파산 보호 신청을 했다. 코닥은 1888년 이래 ‘당신은 카메라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할게요.(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라는 모토하에 연필만큼 사용하기 편한 카메라를 만들기 위해 혁신을 거듭해온 기업이었다. 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흐름인 디지털화 앞에서 그 존재감이 빛바랜 사진처럼 사라져갔다. 아날로그 필름에 집착한 나머지 디지털카메라 시대로의 변화를 읽지 못한 코닥은 디지털 전환을 하지 못해 쇠퇴한 기업의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필자는 코닥의 실패에 가장 주요한 요인이 조직 내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고 본다. 과거 코닥 내부에선 혁신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존재했고 변화를 감지하고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코닥 경영진은 기존 질서와 경영 방식을 고수해 혁신의 기회를 잃었다.

이처럼 폐쇄적 상명하복 소통 방식에서 열린 토론을 기반으로 하는 수평적 의사소통으로의 변화가 어려운 이유는 뭘까. 좀 더 심층적으로 살펴보면 조직 내 ‘불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지금까지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공을 해왔는데 굳이 이를 포기하고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수평적 소통을 선택해 불안감을 증폭시킬 이유가 많지 않다는 얘기다. 즉, 수직적 위계는 불안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해준다. 반면 열린 수평적 소통은 그동안 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은 조직의 불안으로 확산된다.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개인에게 불안은 위험이 다가오는 것을 알리는 신호 역할을 한다. 이 느낌은 자아가 방어기제를 작동하도록 유도한다. 특히 사느냐, 죽느냐 하는 원초적인 위협 상황에서 자아는 생존을 위해 ‘분열(splitting)’이라는 방어기제를 작동시키게 된다. 분열은 경험이나 대상을 ‘전적으로 좋은 것(all good)’과 ‘전적으로 나쁜 것(all bad)’으로 나누는 것이다. 이는 전투 상황에서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분열은 편집증 환자처럼 사고하는 것이기에 정신분석학자 클라인(Klein, 1946)은 편집 분열의 방어기제라고 했다.

이런 불안은 사람들이 모인 조직 안에서 더욱더 증폭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집단에서도 위협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불안감이 커지고 분열의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즉, 개인과 마찬가지로 집단에서도 불안감이 커지면 전적으로 좋은 것과 전적으로 나쁜 것으로 분리하는 심리적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이에 따라 어느 정도 좋은 것은 완전히 좋은 것으로, 어느 정도 나쁜 것은 완전히 나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둘 사이에 벽이 생기면서 소통이 이뤄지지 않게 된다.

코닥의 사례에서 집단의 편집적 방어기제인 분열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사실 코닥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에 혁신을 주도했다. 이미지센서인 전하결합소자(CCD, Charge Coupled Device)를 장착한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개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후엔 모토로라 출신의 스타 CEO 조지 피셔를 영입해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하지만 1999년 뉴욕타임스와 진행한 피셔의 인터뷰를 보면 코닥이 기존 필름 사업과 새로운 디지털 사업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그동안 코닥이 디지털 사진을 적(enemy) 또는 악의 화신(evil juggernaut)으로 간주했고 수십 년간 코닥의 판매와 이익의 원천인 화학 기반 필름과 인화지 사업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인식했다고 토로했다. 다시 말하면, 회사는 기존 성공적인 사업인 아날로그 필름 사업을 ‘전적으로 좋은 것(all good)’이라고 바라본 반면 새로이 등장하는 디지털 사진은 기존 필름 사업을 파괴시키는 ‘전적으로 나쁜 것(all bad)’이라고 봤다. 커다란 시대의 변화 앞에서 느끼는 코닥의 불안이 집단적인 방어기제인 ‘분열’로 연결된 셈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피셔는 성과를 내기 어려웠다. 결국 그는 1999년 물러났다.

새로운 것에 대한 적개심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에 대한 이분법적 분열 이면에는 또 다른 정신분석적 함의가 있다. 사람들은 기존 환경에서 새로운 환경으로 변화하는 이행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많은 사람은 새로운 것이 나와서 희망을 가져다주기를 막연히 기대한다. 하지만 이는 사람 심리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막상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하면 기존 질서에 위해가 된다고 생각하고 위협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새로운 것이 탄생하기를 고대하지만 정작 현실화하면 적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는 의미다. 새로운 것이 불확실성을 높여 기존 질서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으로 인해 앞서 언급한 방어기제가 작동한다.

다시 코닥의 예를 보자. 사실 디지털카메라는 코닥이 최초로 발명했다. 1975년 코닥의 엔지니어 스티븐 사순이 그 주인공이다. 그렇지만 회사로부터 “그것참 귀엽네요. 하지만 누구한테도 이것을 말하지 마세요”라는 말과 함께 이 혁신적인 발명품은 사장된다. 그 당시 경영진에게 이 새로운 물건은 극도의 불확실성을 유발하는 너무나 위험한 것이었다. 세계 일등 기업 코닥은 100년 동안 최고의 수익을 가져다준 ‘전적으로 좋은(all good)’ 필름 사업을 죽이는 ‘전적으로 나쁜(all bad)’ 디지털을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20여 년 후 디지털카메라의 과실은 캐논, 니콘, 소니 등이 가져갔다.

이런 불안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조되지 못하는 환경을 조장하기도 한다. 일례로 한 연구소는 표면적으로 언제나 혁신을 외친다. 리더는 연구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도록 격려했다. 그러나 리더는 연구원들이 단기간에 정해진 타임 테이블에 따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고안하도록 압박했다. 기간 안에 어떤 식으로든 성과를 내야 하는 연구원들은 기존 아이디어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안전한 방식을 선택했다. 리더도 혁신적인 새로움에 대해서는 저항이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태어나지 못하도록 연구원들과 공모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는 한 연구소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곳에서 혁신을 강조하지만 막상 새로움에 대한 불안으로 과거 관행을 답습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리더와 부하직원의 이분법
불안과 분열은 기존 폐쇄적/수직적 의사소통 구조를 더욱 악화시킨다. 대부분의 회사는 필연적으로 수직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최고경영자부터 가장 아래의 평직원에 이르기까지 계층적으로 이뤄진다. 이와 같은 구조에서는 쉽게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지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지만 아래에서 위로 의견이 올라가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일방향 흐름 속에서 조직은 명령을 내리는 리더와 이를 따르는 부하, 이렇게 이분법적 구조로 쉽게 나뉜다. 이 구조는 특히 위기 상황에서 잘 나타난다. 집단의 방어기제인 분열의 형태가 더 쉽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언제나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는 반면에 자신의 부하는 늘 ‘틀리다’고 생각한다. 설혹 리더가 주도한 의사결정이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도 자신은 늘 옳기 때문에 일이 틀어진 것을 부하의 잘못으로 돌린다. 분열과 짝이 되는 또 다른 방어기제 ‘투사(projection)’가 작동한 것이다.

회사의 수직적 구조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더 경직된 형태로 드러난다. 회사 안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리더들은 특히나 이런 수직적 문화에 익숙하다. 이들은 과거 윗사람이 지시를 내렸을 때 자신을 억누르고 따랐던 세대에 속한다. 다른 언어와 달리 높임말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사회 속에 나를 커뮤니케이션하는 첫 단추인 언어를 배우면서 수직적 구조를 체화한다. 이후 학교에서도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더욱 강하게 경험했다. 자유로운 질문과 토론 대신 선생님의 판서를 학생은 그대로 적고 외우는 형태로 수업을 진행했다. 더욱이 나중에 경험하는 군대에서의 절대적인 상명하복 분위기는 위계질서의 엄중함을 극적으로 강화한다.

반면 회사 실무진의 주축으로 부상한 1980∼1990년대 태어난 밀레니얼세대는 이러한 리더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다. 즉, 회사에 고착화된 수직적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밀레니얼세대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강하며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소통을 요구한다. 직장 상사의 이야기가 맞지 않는다면 반론을 제기하고 싶고, 지나치게 많은 회식이나 회의 등 불필요한 절차나 제도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진다. 즉, 리더는 직원들이 조직보다 개인을 챙기는 이기적인 세대라고 느끼는 반면, 젊은 직원들은 리더들이 과거의 향수에 젖어 변화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두 집단 간의 분열과 투사 속에서 열린 소통은 더디고 어려운 문제로 남게 된다.

소통을 위한 제언
리더는 수평적 소통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숙고해 봐야 한다.

열린 소통을 위해서 먼저 리더는 자신의 조직이 리더와 부하라는 분열적인 구조를 갖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리더-부하의 경직된 구조는 ‘분열’과 ‘투사’의 편집적 방어기제를 작동시켜서 열린 소통이 아닌 폐쇄적 단절로 치달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리더가 직원들과의 일상적인 활동을 함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리더는 기사가 열어주는 차에서 내리면 도열해 있는 경비들로부터 인사를 받고,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는 직원들을 데리고 전용 엘리베이터를 탄 후 자신만의 독립된 방으로 들어간다. 이와 같은 리더의 출근길은 수직적 권위의 아우라는 느껴질지언정 어디에서도 수평적 소통의 요소를 찾기 어렵다. 즉, 경직된 수직적 구조만 있을 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리더는 먼저 직원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늘림으로써 상호작용을 늘려야 한다. 예를 들어, 전용 엘리베이터가 아닌 공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자신의 방에서 비서가 가져온 커피를 혼자 마시는 대신 직원들이 이용하는 휴게실에서 커피를 직접 따라 마시는 행동 등을 해보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후한 나무 벽과 육중한 문으로 둘러싸인 폐쇄된 리더의 방보다는 유리로 벽과 문을 단 공간을 이용하는 것도 검토해볼 만하다. 이런 활동 자체가 소통을 양과 질을 곧바로 향상시켜주지는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통해서 수직적이고 분열적 구조를 누그러뜨리려는 리더의 비언어적 함의가 직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리더는 독백(monologue)이 아닌 대화(dialogue)를 지향해야 한다. 어떤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리더가 독백처럼 자신의 의견만을 말하는 것은 사실 통제의 수단일 뿐이다. 직원들은 결국 침묵할 수밖에 없다. 흔히 보는 회의실 풍경을 상상해보자. 공들여 만든 파워포인트 파일로 직원이 발표를 한다. 몇몇 사람이 이에 대해서 코멘트를 한다. 하지만 곧 리더가 말을 시작하면서 그들의 말은 흩어진다. 리더의 말은 ‘말씀’이 돼 모든 것을 덮어 버린다. 이 회의실은 대화가 일어나는 공간이 아니고 리더의 독백이 펼쳐지는 모노드라마의 장이다. 독백적 의사소통이 계속된다는 의미는 문제 해결에 실패했다는 신호이고 이런 소통 방식 안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어날 수 없다 (Seikkula, 2006).

회의에서 리더의 독백이 반복되면 직원들은 입을 다물거나 아첨하는 말만 할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의 말에 눌려 직원들은 어떻게 하면 깨지지 않을까가 주 관심사가 돼 각종 수치와 데이터, 그래프로 무장한, 그러나 통찰력이 결여된 발표만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독백이 아닌 진정한 대화가 회의실에서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리더는 입을 여는 대신 귀를 열어야 한다. 리더의 들으려는 몸짓은 리더의 어떤 교훈적인 말보다 더 직원들이 창조적인 의견을 내게끔 격려할 것이다. 그래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때, 비로소 그곳에서 무엇인가가 창조된다.

마지막으로, 리더는 불확실함을 견뎌야 한다. 전환기 앞에 미래에 대한 모호함은 불안을 야기한다. 그리고 개인의 불안은 집단 안에서 계속 증폭된다. 불안에 대항하는 편집적인 방어기제인 분열과 투사는 여러 사람 안에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된다. 이는 다시 소통의 불능으로 이어진다.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지 확실하지도 않고 손에 잡히는 것도 없는 이 상태를 견디어 내는 것이다. 이런 리더의 역할을 ‘담아내기(containment)’라고 한다. 원래 이 개념은 정신분석학자 비온(Bion, 1959 & 1962)이 제시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는 불안이나 불쾌의 감정을 울음으로 엄마한테 전달한다. 엄마는 아기의 울음을 통해 이 감정을 느끼면 이를 자신 안에 담아서 누그러뜨린 후 아기에게 되돌려준다. 울고 징징거리는 아기를 엄마는 안고 토닥거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인다. 만약 이런 엄마를 지속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아기는 자기 안의 불안 같은 감정을 스스로 다루지 못하고 이에 압도된다. 아기는 이후 과도하게 의존적으로 매달리거나 또는 회피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비온은 아기의 불안을 담아주는 엄마 역할이 바로 치료자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리더도 집단 안에서 담아내기를 해야 한다. 코닥에서 엔지니어 스티븐 사순이 최초로 디지털카메라를 발명했을 때, 이 새로운 물건은 기존 필름 산업 전체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디지털카메라가 불러올 미래 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불안이 돼 집단 안에서 증폭된 결과다. 당시 코닥의 리더는 이런 불안을 담아내지 못했다. 디지털카메라라는 혁신을 받아들인 이후 벌어질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세계 최고였던 기존 필름 산업, 인화 산업, 인화지 제조 산업들을 디지털카메라가 먹어 치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현재의 모호함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견디고 담아내지 못한 대가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코닥의 사례가 증명하고 있다.

맺음말
전환의 시대에 집단 안에서 증폭된 불안은 분열과 투사를 초래해서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소통에 머무르게 한다. 리더는 스스로가 직원들과 함께하는 시간과 공간을 늘려서 분열을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리더는 대화를 지향하고 불확실함을 견뎌냄으로써 집단의 불안을 담아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 집단은 열린 수평적 소통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이용석 이머징인터벤션즈리더십 파트너 yslee@emerging.co.kr
이용석 이머징인터벤션즈리더십 파트너는 조직병리 분석 및 임상 치료 전문가다. 그는 아주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 타비스톡센터 정신분석학적 연구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용인시 정신보건센터 센터장과 건국대 및 차의과대 미술치료학과 겸임 교수를 거쳤다. 현재 대한분석치료학회의 학술이사와 학회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이용석 | - 이머징 파트너/ 정신과 전문의
    - 조직병리 분석 및 임상 치료 전문가
    - 대한분석치료학회 정회원 및 학술이사, 학회지 편집위원
    - 前 건국대 및 차의과학대학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 前 용인시 정신보건센터 센터장, 前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자문위원
    -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대한분석치료연구소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수료
    - 런던 타비스톡센터 정신분석학적 연구 석사 (Master of Arts in Psychoanalytic studies at the Tavistock & Portman NHS Foundation Trust in London, UK)
    yslee@emerg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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