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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의 애자일 확산 사례

아래서부터 혁신+경영진 전폭 신뢰
대기업 애자일 프로세스의 교본으로

장재웅 | 259호 (2018년 10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삼성SDS의 ‘애자일 전환’은 여러 측면에서 애자일 전환을 시도하려는 기업들에 시사점을 준다. 먼저, 아래서부터 혁신이 시작됐다.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개발자들의 요구에서 시작해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경영진의 니즈가 맞물리면서 전환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무조건적인 전환이 아니라 ‘애자일 전환 팀’을 만들고 애자일이 어울리는 분야와 어울리지 않는 분야를 나눠 단계적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또 혁신의 필요성을 공감한 회사 경영진이 끈기를 갖고 꾸준히 혁신을 지원해주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 연구원 홍석영(연세대 불어불문학·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애자일의 인기가 뜨겁다. 2000년대 초반 소프트웨어 개발 업계에서 시작된 애자일이 최근에는 IT 업계를 넘어 금융이나 제조업 분야에도 확대 적용되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SAP를 비롯해 IBM, 세일즈포스(Salesforce), ING 등 글로벌 대기업들도 속속 애자일 혁신을 통해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면서 국내 대기업 사이에서도 애자일 도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아직 국내 기업 중 애자일을 제대로 받아들였다고 할 만한 회사는 손에 꼽는다. 이 중 태생적으로 애자일한 스타트업들을 제외하면 대기업 중 애자일하게 일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내 기업 경영진은 애자일을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경영 기법으로 보고 접근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해외 유명 기업이 활용한 애자일 기법을 자사에 이식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애자일은 방법론이나 전략보다 문화 혹은 철학에 가깝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오랜 시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바꿀 수 있다. 같은 업종에 비슷한 규모의 회사가 애자일 전환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 방법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그 회사에서 애자일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코치를 영입하는 단순한 방식으로는 애자일 전환에 성공하기 어렵다. 결국 애자일의 도입 및 확장은 ‘지속적이고 끈질긴 개선 의지’를 바탕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꿔나가 그것이 회사의 문화로 완전히 자리매김해야 가능하다.

그렇다고 국내 대기업들이 애자일 도입에 모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기업은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지속적으로 애자일 문화를 회사에 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예가 삼성SDS다.

삼성SDS와 애자일은 얼핏 생각하면 잘 어울리지 않는다. 삼성SDS는 소프트웨어 기업이긴 하지만 SI(System integration) 비즈니스가 메인이다. SI 사업은 최종 고객이 정해져 있고, 고객이 원하는 수준의 품질이 있으며, 납기와 제품의 유지 및 보수가 중요하다. 지속적인 혁신보다는 고객의 요구를 적기에 잘 맞추는 것과 정해진 예산 안에서 비용 절감을 하는 것이 중요한 산업이다. 그래서 일반 소프트웨어 개발보다 애자일이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 삼성은 전통적으로 ‘관리의 삼성’이라고 불릴 만큼 효율적이고 타이트한 조직 관리로 유명한 회사다. 이는 애자일이 추구하는 방향성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대기업 중 애자일을 느리지만 꾸준히 확대 적용하고 있는 회사가 삼성SDS다. 이 회사에는 전사 애자일 확산을 이끌고 있는 ACT(Agile Core Team)라는 조직이 있다. 개발실 산하에 위치한 이 그룹은 애자일 방식 프로세스를 전사에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애자일 도입을 시도하는 회사들이 많이 활용하는 ‘애자일 전환 팀’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 조직이 흥미로운 점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한 개발자들의 요구와 경영진의 혁신 의지가 맞아떨어져 실행됐다는 점이다. 톱다운(Top-down) 방식을 통한 일 처리가 자연스러운 국내 대기업에서 아래로부터 혁신이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또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 않음에도 애자일 개발 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한 김종필 개발실장(상무)을 비롯한 개발실 리더들의 지원하에 꾸준히 초기의 목표를 유지하며 점진적인 애자일 확장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보수적이고 상명하복식 문화가 만연해 있는 국내 대기업의 조직문화 틈바구니에서 느리지만 꾸준하게 조직의 애자일 전환을 책임지고 있는 ACT그룹의 일하는 방식을 DBR이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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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에 애자일 씨앗을 심다
삼성SDS 애자일 전환의 시작은 변화를 갈망하는 개발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그리고 이러한 니즈를 파악하고 실행에 옮긴 주인공이 바로 현재 삼성SDS ACT그룹을 이끌고 있는 신황규 그룹장이다. 그는 개발자로 삼성SDS에 입사해 수년간 일하면서 우연히 애자일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을 접했다. 처음에는 그저 애자일 툴을 활용해 개인의 업무를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해보겠다는 정도의 생각만 가지고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애자일을 자신의 업무에 적용해 효과를 보면서 다른 개발자들과도 이 방식을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자일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XP, 스크럼(Scrum) 등 애자일 기법들을 알게 됐고 운이 좋게 2007년 이탈리아 북부 코모(Como)에서 진행된 ‘XP2007 콘퍼런스’에 참가했다. 이때 페라리 F1 소프트웨어 리딩 개발팀을 만나면서 신 그룹장은 애자일에 확신을 갖는다.

“당시 페라리 개발자 중 한 명이 콘퍼런스에서 기조 강연을 했는데 그 강연을 들으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강연자는 자신은 애자일이 뭔지도 모르고 그렇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고 했지만 그가 지난 30년 동안 팀원들과 함께 일한 방식이 바로 애자일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애자일의 핵심은 ‘더 나아지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주변으로부터 자율성을 부여받아서 현재 상태보다 나아지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애자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쉽게 ‘Agility(기민함)’를 떠올린다. 이는 대다수의 기업 경영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애자일은 단순히 기민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애자일은 일하는 방식이자 문화고 무엇이든 빨리하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나아지겠다는 ‘성장 마인드(Growth mindset)’가 그 핵심이다. 페라리 F1 소프트웨어 개발팀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지난 30년간 일하면서 30명 정도의 팀원이 3주 단위로 모여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3주간 잘한 점, 부족한 점을 대화를 통해 찾고 잘한 것은 더욱 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잘못한 것은 없애거나 개선할 방법을 찾았다. 애자일이라는 용어가 2001년 탄생했지만 페라리는 그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페라리처럼 이런 방식으로 30년을 일하면 그 시간 속에서 그 조직만의 일하는 노하우가 생기고 애자일이 자연스럽게 조직에 자리 잡게 된다.

삼성SDS도 2007년쯤부터 이런 시도를 했다. 처음에는 작은 한두 개의 프로젝트에 애자일 프로세스를 적용해 성과를 냈다. 당시 신 그룹장은 35명 단위 팀의 PL(Project leader)을 맡아 이 팀의 일하는 방법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는 당시 PM(Project manager)이었던 회사 임원이 새로운 시도를 독려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때 신 그룹장이 진행한 프로젝트는 교육부의 ‘신NEIS 시스템 구축 사업’이었다. 신 그룹장은 PM의 전폭적 지지하에 삼성SDS에서 처음으로 ‘스크럼(Scrum) 프로세스’를 프로젝트에 적용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당시 이 성과가 경영진의 눈에 띄면서 당시 삼성SDS CEO에게 BP(Best Project)로 보고가 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삼성SDS에 애자일 씨앗을 심는 사건이었다.

후일담이지만 신 그룹장은 당시 PM을 맡았던 선배에게 왜 기존 방식이 아닌 새로운 시도(애자일 방식 소프트웨어 개발)를 쉽게 승인해줬는지 물었다고 한다.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네가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만들어낼 리스크 정도는 내가 감당할 만한 경험과 능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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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일 트랜스포메이션(Agile transformation)
신 그룹장이 진행했던 공공사업이 조직에 애자일 베스트 프로젝트로 보고된 이후 조직 내부에서 애자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 여파로 2009년에 삼성SDS는 I사의 힘을 빌려서 애자일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또 2012년에 미국의 T사와 협업을 통해 애자일 프로세스를 적용한 실제 제품을 개발해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전체 회사 차원에서 보면 작은 프로젝트들에 애자일의 가능성을 시험해 본 정도였다.

그러다 2015년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조직 내 개발자들 사이에서 작지만 애자일을 활용한 개발 성공 사례들이 나오면서 경영진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 그룹장을 비롯한 삼성SDS 내 혁신가들은 경영진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미국 소프트웨어 컨설팅기업 P사와의 협업을 통해 애자일 문화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경영진 또한 변화에 대한 절실함이 있었다. 그 결과, 신 그룹장은 미국에서 P사 팀원들과 4개월에 걸쳐 실제 솔루션을 함께 개발할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애자일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후 경영진에서부터 혁신을 위한 ‘애자일팀’조직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됐다. 신 그룹장은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삼성SDS 내 자신이 생각하기에 애자일과 마인드셋이 잘 맞을 것 같은 개발자들을 추린 명단을 만들어 상부에 보고한다. 이들 중 일부만 확보해도 한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당시 삼성SDS 인큐베이션센터 센터장이었던 윤심 전무가 신 그룹장이 요청한 이들을 대부분을 보내주기로 결정한다. 이를 계기로 삼성SDS의 변화를 이끌 20여 명의 인력이 모였고 지금의 ACT(Agile Core Team)가 탄생했다. 이후 ACT그룹은 홍충주 SW 엔지니어링팀장의 지원 속에 조직 내 자리를 잡는다. 그후 이런 새로운 시도에 공감하는 조직 내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모여 현재 ACT그룹은 총 75명(애자일 코치 6명, 기획자 15명, 디자이너 5명, 개발자 49명)의 조직으로 성장했다. ACT그룹은 지난 2015년부터 통합된 삼성SDS의 개발실 아래에 소속돼 애자일 방식과 프로세스를 전파하는 코칭 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신 그룹장은 “10년 동안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그래도 회사 경영진의 꾸준한 지원 아래 애자일 방식에 동의하는 작은 조직을 만들 수 있었고 개발 속도와 품질 면에서 성과를 내면서 점차 ACT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ACT그룹, 그들이 일하는 방식
ACT그룹은 애자일 코칭 조직이다. 통상 애자일 전환을 시도하는 회사들이 설립하는 ‘애자일 전환 팀’ 혹은 ‘애자일 오피스’ 같은 역할을 한다. 개발자 및 디자이너 등을 75명이나 거느리고 재무적 성과보다는 프로세스 혁신에 집중하는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가 궁금해 지난 9월 서울 송파구 삼성SDS 본사에 자리 잡은 ACT 사무실을 방문했다. 일단 사무실은 여느 스타트업 사무실보다 더 자유로운 분위기로 꾸며져 있었다. ACT 사무실은 기본적으로 페어 프로그래밍(Pair programming) 1

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어 지정된 개인 자리도 없고, 책상 사이 칸막이도 없었다. 개발자들은 두 명이 짝을 이뤄 일을 하고 있었다. 널찍한 사무실 한편에는 직원들을 위한 휴게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이 휴게 공간 곳곳에는 아무 곳에나 깔고 쉴 수 있는 빈백(Bean Bag)이 놓여 있었다. 직원들은 업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편한 자세로 일하고 있었다. 또 한쪽 구석에 위치한 탁구대에서는 남자 직원 두 명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대기업의 업무 스타일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마치 기자가 취재를 오니 자유로운 장면을 연출하라는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사실 삼성SDS 사옥 내 다른 사무실들은 이런 식으로 꾸며져 있지 않다. 보통 상상하는 전형적인 사무실 모습에 가깝다.

신 그룹장은 “자율적인 공간이 주는 의미는 회사가 직원들을 믿고 하나하나를 성숙한 프로페셔널로 대우한다는 것”이라며 “애자일은 직원들을 통제하기보다는 성장 마인드가 있는 사람을 모아 자유롭게 일하게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또 사무실 벽면에는 이 조직 구성원들의 사진과 하는 일, ACT의 사명, 지난 10년간 애자일 전환을 위해 걸어온 발자취, 일하는 방식 등을 설명하는 다양한 사진과 그래픽 등이 붙어 있었다. 직원들이 수시로 스스로 하는 일을 돌아보고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게 하려는 취지로 보였다.



1. JTBD(Jobs to be done)
ACT그룹은 현재 삼성SDS 개발실에 소속돼 있으면서 삼성SDS의 개발 프로젝트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해 애자일 문화를 전파하는 코칭 그룹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ACT그룹의 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ACT그룹 소속 개발자가 End to End 제품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파견돼 1대1 페어링(Pairing)을 통해 제품 개발의 전체 단계에 애자일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현재 ACT그룹엔 End to End 제품을 만들 수 있는 10명 단위의 팀이 여러 개 존재한다. 애자일 방식을 도입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자 하는 팀은 ACT 개발자와 페어(Pair)가 돼 같이 일을 하면서 애자일 방식을 배운다. ACT 팀에서는 페어링하는 팀들과 함께 ACT 팀에서 일하는 개발 방식, 디자인 방식, 기획 방식을 적용해 3∼4개월 만에 빠르게 제품을 만들고 시장 검증을 거친다. 그 내용을 기반으로 점차 제품을 발전시켜 나가는 방식으로 개발을 하고 있다. 이를 도식화한 것이 [그림 1]이다.

JTBD의 첫 관문은 프로젝트의 핵심 이해관계자(key stakeholder)와 핵심 사용자(key user)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 사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고충점(pain point)을 담고 있는 시나리오를 식별해낸다. 그리고 나면 바로 화면 디자인에 돌입한다. 이 단계에서 단순한 스케치 형태의 디자인이 보통 5∼6개 정도 만들어진다. 어느 정도 디자인이 완료되면 적절한 툴(Tool)에 집어넣어서 간단한 형식으로라도 고객에게 직접 사용해보게 한다(validate). 이때 사용 과정을 보면서 잘된 점과 잘되지 않은 점을 학습한다(learn). 이렇게 학습한 것을 디자인에 반영하거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해관계자나 사용자에게 물어본다. 이해관계자는 비즈니스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사용자는 사용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두 집단 모두에게 물어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매장 솔루션의 경우 이해관계자는 매출을 중시하고, 사용자는 고객 경험을 중시하는 식이다. 어느 정도 입증(validate) 과정이 마무리됐다고 판단되면 바로 코딩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코딩된 것을 가지고 다시 고객에게 사용해보게 한다. 어느 정도 검증이 되면 그 시나리오를 개선하거나 다음 시나리오로 넘어간다.

실제 ACT와 페어링한 JTBD 방식으로 삼성SDS 내 다양한 솔루션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20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다양한 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신 그룹장은 “JTBD 방식 적용 전에는 사용자에게 검증을 거치지 않고 기능 위주로 제품을 만들다 보니 결제 프로세스상에 화면만 20개가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며 “이를 애자일 방식으로 바꾸면서 구성 화면을 6개로 줄여 생산성을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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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mini box I: 페어 프로그래밍(Pair programming)의 장단점
페어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페어링은 하드코어 애자일 방식 중 하나다. 페어란 8시간 동안 같이 모니터 보면서 일하는 방식이다. 쉬는 시간이 없다. 자연히 일의 강도가 높아진다. 6명끼리 페어를 하는 경우에는 매일 파트너가 바뀌기도 한다. 페어링의 장점은 모두가 동일한 품질의 코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모두가 수준이 높은 코드를 만들게 되고, 이는 곧 유지 보수가 잘 되고, 빠르게 피드백을 받아서 쉽게 고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에 대한 오너십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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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페어링이 항상 좋은 성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개발자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업무 능력이 있어야 한다. 애자일의 모든 프로세스는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높음을 전제로 한다.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뛰어나고 일이 쉬울 때, 직원들의 업무 능력이 낮고 일의 난도가 높을 때 페어는 낭비이다. 하지만 그 외에는 페어링이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빠른 시간 내에 많은 기능을 만들어 내는 과업보다 오래 기간 유지 보수가 필요한 프로젝트에 페어링이 적합하다. 기본적으로 직원들의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2. 애자일 퍼즐
삼성SDS의 모든 분야에 ACT그룹이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전사적으로 애자일 방식을 추구하지만 회사 내 업무 중에는 애자일이 적합하지 않은 일도 있다. 삼성SDS는 크게 SI 구축 사업, 솔루션 개발, 운영 유지 보수, 데이터 센터 등의 사업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이들은 특성이 다 다르다. 혁신이 필요한 사업도 있지만 유지 및 보수가 핵심인 사업도 있다. ACT그룹은 ‘애자일 퍼즐’이라고 부르는 방식에 따라 해당 사업의 성격이나 함께 일하는 파트너(삼성SDS 내 다른 조직)의 요구에 따라 유동적으로 일을 한다.

ACT그룹의 일하는 방식은 이른바 MVP (Minimum Viable Product)를 만드는 데 최적화돼 있다. 다시 말해 제품의 시장 검증을 먼저 받는 방식에 강하다. 제작 기한이 없고, 제품의 가치를 증명하면 되는 프로젝트에 ACT의 일하는 방식이 최적이다. 페어 프로그래밍을 통해 ACT 소속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면 높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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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같은 내부 솔루션 개발도 고객이 정해져 있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고객이 있으면 그들이 요구하는 기한과 기능상 요구사항이 생긴다. 특히 삼성SDS의 비즈니스 중 하나인 SI 사업은 품질의 유지와 납기가 중요하다. 또 SI 사업은 외부 협력회사와 일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에는 무조건 애자일 방식을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이때는 ACT그룹 내 애자일 코치가 해당 프로젝트에 파견돼 해당 프로젝트에 적합한 애자일 방식을 컨설팅한다. 해당 애자일 코치는 협력 회사들이 많은 SI 구축 사업이나 컴플라이언스(compliance) 등 규제가 엮인 프로젝트에서 현재 상태에서 어떤 방법을 쓰면 이 팀이 나아질지 애자일 기법을 활용할 수 있게 가르쳐주고 조직이 스스로 애자일을 실천할 수 있을 때까지 돕는다. 이를 ACT FAST라고 한다.

신 그룹장은 “솔루션 개발, SI 구축형 사업, 시스템 운영 및 유지·보수 등 일하는 타입에 따라 유연하게 상황에 맞춰 가장 적합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삼성SDS가 추구하는 애자일 방식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ACT 팀은 또 애자일 코치 양성과 애자일 교육도 담당하고 있다. 교육이 애자일을 조직 내부에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이상 4가지가 ACT그룹의 주요 업무라면 그 기반에는 프로세스 이노베이션(Process Innovation)이 있다. 이 프로세스는 회사 전체의 전략과 애자일 팀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역할을 한다. HR, 재무·회계, 커뮤니케이션 팀 등 회사의 지원 부서 소속 직원들이 이 프로세스에 참여한다. 각자 소속팀으로부터 일정 부분 권한을 위임받아서 애자일 조직과 기존 조직이 함께 일하면서 발생하는 병목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GE의 enablement team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

3. 커뮤니케이션
애자일 조직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애자일 프로세스 자체가 지속적인 개선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조직 내·외부와의 상시 커뮤니케이션은 필수다. 특히 애자일은 각기 다른 백그라운드를 가진 기획자(PM, Project Manager), 디자인(CX, Customer Experience), 개발자(Dev, Developer)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같이 일하는 것이 특징이다. 각자 전문 분야가 다르고, 이해관계가 다르다 보니 이견이 생길 수도 있는 구조다. 하지만 ACT는 이를 ‘전문성’과 ‘신뢰’로 풀어내고 있다.

애자일 조직은 조직원 개개인이 모두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애자일의 핵심은 ‘역할 중심의 권한 이양(empowerment)’이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비즈니스 지식이나 도메인 지식에 전문가여야 하고 개발자는 실제 개발을 실행하는 분야에서는 최고여야 한다. 또 디자이너는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최고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권한 이양이 가능해진다.

ACT그룹이 개발을 할때는 타 부서에서 온 인력들과 원 팀(one team)이 돼서 공통의 목표로 함께 일한다. 기획팀, 개발팀, CX팀 등의 구분 없이 ‘가상의 팀(virtual team)’을 구성해 일하는 방식이다.

ACT는 일하는 방식, 즉 어떤 툴을 쓸 것인지, 어떤 프로세스로 일을 할지 등 기술적인 부분과 개발 과정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팀원들에게 위임한다. 팀원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다고 가정하고 이들이 그만큼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게 최대한 지원하는 것이 ACT의 목표다.

직원들은 “각 분야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면 지시를 받아 일할 때보다 더 나은 퍼포먼스를 낸다”고 확신한다. ACT그룹의 리더들도 소속 개발자나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일하는가를 관리하지 않는다. 그들의 전문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코디네이터가 돼 애자일 프로세스 적용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병목이나 저항을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신뢰다. ACT 내 조직원들은 3년여간 애자일 방식으로 함께 일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각 분야에서 서로의 전문성을 신뢰하고 이들이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한다’는 애자일의 목표를 공유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애자일 프로세스상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가 각자 생각이 달라 이견이 생기고 날카로운 피드백을 주고받는 일이 생겨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최고의 결과물을 만드는 과정으로 불가피한 절차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ACT그룹에서는 종종 개발자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기능을 담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도 디자이너(CX)가 소비자 관점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기능은 빠진다. 아무리 좋은 기능도 고객이 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철학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홍식 ACT그룹 개발자는 “개발자가 스토리를 보면서 개발하다 보면 쓸데없는 기능에 지나치게 집중해 불필요하게 많은 기능을 넣기도 한다”며 “이럴 때 디자이너가 적정선에서 기능을 제한하는데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상호 신뢰도 생기고 도움을 많이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4. 성과 평가 및 피드백 모델
ACT그룹은 개발실에 소속돼 있지만 일하는 방식이 기존 SDS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다 보니 성과 평가, 보상, 승진, 예산 승인 등 여러 부분에서 기존 조직의 프로세스와 어긋나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는 삼성SDS뿐만 아니라 애자일을 점진적으로 도입하려는 모든 기업이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어야 할 문제다.

삼성SDS 내 다른 부문의 성과 평가 방식은 일반 기업들과 유사하다. 상·하반기 평가를 통해 직원들의 성과를 상대 평가해 수치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상을 하고 승진을 시키는 방식이다. 인센티브 역시 전체 예산을 정해놓고 고과의 배분율에 맞춰 나눠 갖는다.

ACT그룹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큰 틀에서는 회사의 방식에 맞추면서도 애자일 조직만의 특성을 살려 지속적으로 평가 방식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상대평가와 숫자 중심의 성과 평가가 애자일 조직의 특성에 잘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ACT그룹 성과 평가의 핵심은 ‘지속적인 피드백(continuous feedback)’이다. ACT그룹은 매년 초 조직 내부에서 역량 있는 매니저를 5∼7명 선발한다. 이 매니저 중 20%는 여성이어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 이렇게 뽑힌 매니저들은 평가 기준을 만들어 팀에 공유하고 이에 대한 팀원 개인의 피드백을 받아 개인별 연간 목표와 달성 계획이 담긴 문서를 만든다. 매니저들은 이 문서를 토대로 매달 15명 정도의 팀원과 30분 정도씩 개별 면담을 진행한다.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리고 회사 전체의 평가 시즌이 되면 개인 면담은 진행하지 않고 대신 이 매니저들끼리 모여서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맡고 있는 인력들에게 더 좋은 고과를 줄 수 있는지 토론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한번 개개인과 면담을 해 고과 결과를 설명한다. 매니저와 팀원이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면서 상황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ACT식 성과 평가 문화의 특징이다.

신 그룹장은 “지속적인 피드백의 핵심은 직원들이 더 나아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며 “ACT가 조직 전체를 선도하는 혁신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애자일 전환을 원하는 기업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상대평가의 효율성’ 여부다. 상대평가는 역할 중심으로 수시로 팀을 만들었다 해체하는 애자일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 때문에 애자일 조직은 통상 절대평가와 다면 평가를 기본으로 한다. ACT는 삼성SDS 개발실 소속으로 여전히 회사의 평가 제도에 따라 상대평가를 하고 있다. ‘협력’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애자일 문화와 핏(fit)이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상시 피드백 문화가 국내 기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서로가 서로를 적나라하게 평가하는 문화가 한국인 정서에 맞지 않고 상시 피드백이 평가자의 업무를 가중시키기 때문에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 ACT도 초기에 비슷한 일을 겪었다. ACT의 경우 피어 평가(Peer review)와 매니저 평가(Continuous feedback)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대50이다. 초기에는 동료가 동료에게 점수를 매기고 그 이유를 작성하는 식으로 평가를 진행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팀원을 평가하는 걸 어려워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서로 좋은 말만 써주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아예 평가 방식에서 숫자를 제거하고 글로만 서로를 평가하게 했다. 특히 동료 평가의 목적이 같이 일하는 동료의 발전을 위한 행위임을 지속적으로 팀원들에게 상기시키며 성의를 다해 자세하게 평가해 줄 것을 요청했다. 현재는 3년째 접어들면서 어느 정도 서로를 평가하는 것에 직원들이 익숙해진 상태다.

5. 예산 승인 및 배분
성과평가 외에도 애자일 방식과 잘 맞지 않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예산이다. SI 업체는 전통적으로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하는 것에 익숙하다. 이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총예산, 납기, 투입 인원 등이 정해진다. 예를 들어, 6개월짜리 프로젝트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지금까지는 일단 예산을 많이 받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기능을 넣어서 기획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착수하는 시점에서는 이 기능들 중 어떤 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사용자의 검증을 거쳐야 알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예산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고민은 무시되곤 했다.

애자일 팀은 기존 조직과 다르게 ‘가치 중심(Value Driven)’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니 진행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들이 발생한다. 짧은 주기로 제품을 만들고 이 제품이 진짜 가치가 있는지 입증을 하다 보니 초기 예측은 항상 빗나가기 마련이다. 결국 프로젝트 시작 전 예측이 빗나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예산을 미리 확정해 놓고 그 예산 안에서 일하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이로 인해 삼성SDS 내부에서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2015년 삼성SDS가 부문별로 분리돼 있던 개발조직을 개발실로 통합하면서 기존 예산 책정 방식에 대한 개선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 그룹장은 “현재는 개발실 승인을 받고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25% 정도고 나머지는 프로젝트 베이스 예산을 따라간다”며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있지만 경영진을 중심으로 혁신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지속적인 개선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애자일 전환을 위한 조건
2015년 탄생한 ACT는 삼성SDS 내 애자일 코칭 그룹으로 자리매김해 삼성SDS의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애자일이 성공하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리더십이다. 조직을 애자일하게 전환하려는 많은 리더가 하는 실수가 바로 ‘성급하게 성공한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다. 특히 외국 기업의 애자일 성공 사례를 보고 그 모델을 그대로 도입해서는 성공하기 어렵다. 한국 기업만의 독특한 조직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애자일 전환에 성공한 사례가 대부분 해외 사례인 이유는 자율성을 중시하는 그들의 조직문화 덕분이다. 자율성을 중시한다는 말은 권한을 팀에 위임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팀원들에게 업무에 대한 오너십이 생긴다. 하지만 한국 기업은 여전히 대부분 수직적이고 권위적이다. 모든 지시와 계획이 위에서 정해져서 내려온다. 이런 관행을 버리지 못하면 애자일 전환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애자일은 대표적인 보텀업 방식의 업무 처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삼성SDS는 애자일의 효율성을 경험한 개발자들이 이를 지속적으로 조직의 경영진에 어필했고 이에 공감한 경영진이 애자일 전환 조직을 회사에 신설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사례다. 특히 성급하게 애자일 전환을 시도하기보다는 ACT라는 조직을 만들고 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조직 내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경영진이 시간을 갖고 지원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조직 내부의 저항을 관리하는 역량도 중요하다. 어느 조직이나 혁신에는 저항이 따른다. 삼성SDS는 ACT가 생기기 전에도 업계 1위 업체였고 삼성SDS 사업 성격과 애자일 프로세스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조직 내부에 있다. 특히 회사 내 개발자 중에는 애자일 프로세스를 경험해 봤지만 그 결과가 좋지 않아서 애자일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자일 전환 시 발생할 수 있는 이런 현상에 대해 애자일 전문가 마이클 사호타(Michael Sahota)는 ‘컬쳐 버블(Culture Bubble)’이라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혁신을 실행하는 조직의 주위에는 이를 동경하는 시선이 있고 중립적인 시선도 있지만 적대적인 시선(Enemy) 역시 존재한다. 이것이 혁신이 일어날 때 항상 나타나는 패턴이다. 그래서 혁신은 항상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삼성SDS는 애자일 전환 조직을 만들었지만 무리하게 이를 전사에 적용하기보다는 시간을 갖고 점진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애자일이 어울리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를 나누고 ACT 내 애자일 코칭 및 교육 역할을 부여해 갑작스런 변화로 인한 혼란을 최소화하고 있는 것이다.

애자일 전환을 담당하는 팀과 애자일 코치들의 역량 역시 중요하다. 특히 애자일 조직이 커지고 숫자가 늘어날 때 애자일 전환을 책임지는 리더의 역할에 따라 애자일 전환의 성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애자일 코치나 프로젝트 매니저는 관리자가 아니라 코디네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조직 내부의 불만을 경청해서 해결하고, 애자일 조직과 비애자일 조직 간 업무 병목 현상을 뚫어주고, 애자일 팀 내 애로사항이나 이견을 듣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역할을 애자일 코치가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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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DS는 ACT 내 여러 명의 경험 많은 애자일 코치를 영입하거나 육성해 이들로 하여금 애자일 프로세스를 전파하게 하고 있다. 특히 무조건적인 애자일 전환이 아닌 사업 부문별 혹은 프로젝트별로 맞춤형 코칭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프로세스 혁신 기능을 만들어 경영지원 조직과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돋보인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조직 구성원들의 뛰어난 실력과 책임감이다. 다시 말하면, 조직의 애자일 역량 유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애자일은 기본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각 분야의 전문가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들이 각자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최고의 피드백을 지속적으로 주고받으면서 결과물이 개선을 이어가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실제 애자일을 도입하면서 과거 경쟁력이 없는 부문이나 직원을 해고하고 아예 새로 뽑는 ‘빅뱅식 도입 방법’을 쓰는 회사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 상황에서는 애자일 조직을 만들 때 역량 있는 직원들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삼성SDS는 초기 ACT를 구성할 때 애자일 경험이 있는 직원들을 모아줘 이 새로운 시도에 힘을 실어줬다. 이런 파격적 결정은 사실 삼성SDS 같은 대기업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같은 결정이 뛰어난 실력을 가진 개발자들에게 책임감을 불러일으켰고 이것이 애자일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애자일은 ‘문화’,
지속적인 성장 의지가 성패 가를 것
애자일은 ‘성장 의지를 가진 프로페셔널한 개인들이 모여 자율성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업무 방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문장의 핵심은 ‘성장 의지’와 ‘자율성’이다. 프로페셔널한 개인은 조직이 채용 프로세스를 개선하면 어느 정도 모을 수 있다. 끊임없는 성장은 모든 기업의 목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직원들에게 성장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권한을 위임해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은 조직문화와 관련된 영역이다. 그래서 애자일 전환을 원하는 기업은 장기적 관점을 갖고 조직 문화를 바꾸려는 생각으로 끈기와 의지를 갖고 임해야 한다. 애자일은 방법론이 아닌 문화이자 철학이다.

결국 변화를 이끄는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 리더 혼자 문화를 만들 수는 없지만 변화를 가로막기는 매우 쉬운 일이다. 애자일 문화가 확산하려면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리더들이 어느 정도까지 권한 위임을 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애자일 전환이 가속화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리더 그룹이 모든 것을 결정해서 지시를 아래로 내려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끈기와 인내를 갖고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애자일 문화를 이식하려는 기업은 애자일 전환의 결과를 단기적인 재무적 성과로 측정하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문화를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리듯 애자일 전환이 재무적인 성과를 내는 데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빠른 혁신이 항상 능사는 아니다. 혁신에서 속도만큼 중요한 것이 방향성이다.

그렇다면 애자일 전환의 성과는 어떤 지표로 측정해야 할까. 최근 애자일 전환 팀을 운영하는 기업들은 재무적 성과보다는 리드타임과 임직원 만족도 등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 지표로 활용한다.

리드타임은 고객의 특정 요구가 실제 제품에 반영되는 시간이다. 애자일 전환 조직은 그 특징상 리드타임이 짧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삼성SDS도 애자일 프로세스 도입 전에는 고객 피드백이 실제 제품에 반영되는 데 오랜 시간이 결렸다. 개발 조직과 디자이너 조직이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피드백을 주고받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업무 진행 속도가 더뎠기 때문이다. 삼성SDS의 경우 애자일 프로세스가 적용된 프로젝트의 리드타임이 10일 이하로 떨어졌다.

또 하나는 임직원 만족도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개발자 구인난이 심각하다. 특히 능력 있는 개발자는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다. 이런 여건에서 개발자들이 회사와 자신의 업무에 만족하는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경쟁 우위의 원천이다. 몸값 비싼 개발자는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면 언제든 회사를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발자들의 업무 만족도와 그들이 회사에서 무엇을 배우는지가 회사 성공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애자일의 장점 중 하나는 바로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자신이 하는 일이 어떤 경로로 최종 제품에 반영되는지를 스스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연구들을 보면 금전적인 보상보다 개인의 업무 만족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성장한다는 느낌’이다. 애자일은 성장 마인드를 중시하고 성장 마인드가 있는 직원의 성장을 돕는다. 최근 HR에서 애자일을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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