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2. 승진제도 설계
Article at a Glance
승진은 거의 모든 직장인의 관심사다. ‘조직의 필요’에 의해 이뤄지는 인사제도지만 직원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기에 기업 리더들에게도 큰 관심사이자 고민거리다. 기업들이 현재 실행하고 있는 승진 제도 관행은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바로 연공형, 경쟁형, 포지션, 인증형, 핵심 인재 중심 승진제도다. 이 다섯 가지는 각각 장단점이 명확하기에 기업마다 업의 특성과 조직문화, 인원 구성을 고려해 적절히 선택하고 때로는 혼합해 활용해야 한다. 효과적인 승진제도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조직 여건을 감안해야 하며 엄격한 직책 승진이 필요하다. 또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며 지속적인 인재 리뷰 프로세스를 도입해야 한다.
3. 포지션 승진제도
상위 포지션에 공석(결원 또는 신규)이 발생하면 적임자를 지정해 승진시키는 방식이다. (그림 4) 승진은 필요할 때 비정기적으로 이뤄지며 ‘승진율’ 또는 ‘탈락’의 개념이 없다. 예산 및 인력에 대해 절대적 권한을 갖는 부서장(라인매니저)들이 승진자를 결정하며 HR은 부서장에 대한 조언/지원 및 회사 전체 인력구조를 모니터링하는 역할에 한정된다. 인원이 많지 않은 글로벌 기업의 해외 지사에서 흔한 시스템으로 승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서의 실적 및 부서장 역량이다. 예산에 따라 포지션을 만들거나 없앨 수 있기 때문에 조직관리 프로세스가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부서 실적이 나쁘면 승진 기회가 줄고 해고 위험도 높다. 승진이 잘될 것 같은 조직에 사람이 모이고 그렇지 않은 조직은 기피하며 부서 간 사일로(silo) 현상이 생기기 쉽다. 심플한 반면 투명성은 가장 부족하다. 왜 승진이 되고,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이 없고 승진이 지연되는 직원은 퇴사하거나 ‘될 대로 돼라’식으로 동기가 매우 저하된 상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4. 인증형 승진제도
상위 직무 능력을 인증한 후 승진시키는 방식이다. 직무 등급별 요구 능력 및 평가 방식이 미리 정의돼 있는 절대평가 방식이다. 인증은 해당 직무의 전문가 집단에 의해 이뤄진다.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분야에 적합하다. 기술, 연구, 전문직 분야에는 잘 맞지만 일반 사무관리직에는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기업들은 보통 연공형, 경쟁형, 포지션 승진 체계를 운영하면서 특정 직군에 대해 추가적으로 직능 자격을 관리하며, 경력 관리 측면에서도 전문가 트랙과 관리자 트랙을 따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런 방식은 어느 정도 규모와 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기업에서는 적용이 어렵다. 따라서 인증형 승진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는 곳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회사 안에 두 가지 승진 시스템이 있으면 직원들은 어떤 것이 진짜 승진인지 궁금해 하는데 직능방식의 승진으로 인해 급여, 처우, 역할 등에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없으면 유명무실해지기 쉽다. 직능자격에 대한 평가에 HR이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 경우 인사부서가 주도적으로 제도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5. 핵심 인재 중심 승진제도
회사의 인재를 일반 인재와 핵심 인재로 나누고, 핵심 인재에 대해서는 별도로 승진을 관리하는 방식이다. 핵심 인재들은 선발부터 별도의 채널로 입사해 고속 육성 코스를 밟는다. 이들은 궁극적으로 조직 내 상위 5∼10% 정도의 핵심 인재 풀(pool)에 들어가는데, 그 과정에서는 승진 비율을 적용하지 않으며 ‘승진 또는 퇴출(Up or Out)’ 원칙을 적용한다. 제도의 전 과정에서 HR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며, 임원 레벨에서 직접 관심을 갖고 챙긴다. 핵심 인재들의 육성, 성과, 승진, 이직은 회사 차원의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연차는 큰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역량, 학습 능력, 리더십 자질 등이 중시된다. 유능한 리더를 많이 필요로 하는 대규모 조직에 적합하다. 핵심 인재와 일반 인재(‘B플레이어’) 간의 위화감, 일반 인재들의 상대적 박탈감 및 동기 저하가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제도를 가진 회사에서는 일반 인재에 대해서는 별도의 승진 기준을 운영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상 다섯 가지의 전형적인 승진 유형과 제도를 살펴봤다. 일선 기업에서는 실제로는 한 가지 유형의 승진 체계를 기본으로 하되 다른 유형의 특성을 일부 가미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원래 연공형 승진 제도를 운영하던 회사가 성과주의 강화를 위해 승진 포인트 방식의 경쟁형 승진 제도를 도입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때에는 너무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승진 후보자 풀(pool) 선정 시 연차에 대한 가중치를 다소 높게 가져가는 방법을 쓸 수 있다.
아예 복수의 승진 체계를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직원들에 대해서는 경쟁형 승진 제도를 운영하면서 직책자에 대해서는 포지션 승진 방식을 운영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제조 현장의 기술인력은 연공형 승진을 유지하면서 본사의 사무직원들은 능력주의 승진 제도를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것은 인력 특성별 세분화(segmentation)에 기반한 인사관리 접근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승진 제도는 어떤 유형이 제일 좋다고 할 수는 없고, 조직의 필요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다.
승진제도의 대표적 실패 사례
승진은 직장인들에게 있어 매우 민감한 이슈인 동시에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하기도 어려워 운영이 쉽지 않은 제도다. 승진 관리가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승진 제도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를 짚어보자:
1. 대책 없는 고직급화
성장기에 승진 자격이나 승진율 관리를 방치하고 연차만 차면 모두 승진을 시켜주다가 사업 성장세가 둔화되면 신규 인력 채용을 억제하는 조직은 머지않아 대책 없는 고직급화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이 회사의 급여, 복리 수준이 높고 고학력자들이 많은 회사일 경우 있는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퇴직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일을 안 하는 분위기 속에 서서히 망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결국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피하기 어렵다.
2. 동기부여를 하지 못하는 승진
승진은 금전적 인센티브보다 더 강한 동기 유발 요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하지만 승진을 시켜놓고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바로 승진과 보상을 별개로 하는 경우다. 승진을 해서 책임과 권한은 커졌는데 급여는 예전과 같다면 오히려 동기를 깎아 먹는 효과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승진을 기피하는 경향도 생긴다. 승진 때문에 지나치게 보상을 높여주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안 높여주는 것도 승진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3. 승진 탈락자의 이직
어차피 승진은 경쟁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승진은 다른 사람의 탈락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승진의 형평성이 낮을 경우 탈락한 직원은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문제가 되는 것은 떠나는 직원이 실제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인 경우다. 승진에 ‘물 먹고’ 그만두는 사람은 ‘내가 다른 곳에 가면 승진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그 정도의 인재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잃어버린 인재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서는 또 외부에서 충원을 해야 한다.
4. 승진자 선발의 오류
선발 오류는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가지는 선발 결과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는 경우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승진했지?’ 하는 반응 말이다. 대개 선발 절차나 기준 자체가 매우 잘못돼 있거나 승진 과정에 정치적 고려요인이 작용했을 때 이런 반응이 나온다. 두 번째 오류는 일 잘하고 촉망받던 사람을 승진시켰는데 기대 이하의 결과를 내거나 뜻밖의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회사의 승진자 선발 체계가 너무 과거 성과에 치우치고 미래 행동에 대한 예측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5. 관리자들의 남용
승진 결정권을 관리자에게 일임하는 사례를 제외하면 승진은 회사 차원의 일관된 기준에 따라 공평하게 이뤄져야 한다. 관리자는 부하직원에 대한 객관적인 업적, 역량에 대한 평가를 통해 승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에서는 이 당연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일부 관리자들은 평가권을 넘어 승진까지 자신의 의사대로 쥐락펴락하려고 한다. 가장 흔한 것이 승진자 몰아주기다. 우수한 평가를 받은 직원이 승진하는 게 아니라 승진을 시키기 위해 평가를 높여주는 주는 것으로,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격이다. 자신이 승진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직원을 정해놓고 ‘내가 올해 승진시켜줄 테니 열심히 해라’는 식이다. 다른 직원들은 승진뿐 아니라 평가에 있어서도 상대적 불이익을 당하게 돼 불만이 커진다.
효과적인 승진제도를 위한 제언
1. 조직 여건에 맞는 제도 적용
승진에 대한 구성원의 수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람에 의한 승진’이 아니라 ‘제도에 의한 승진’이 이뤄져야 한다. 사람이 승진을 좌우하면 직원들은 조직의 이익보다는 그 사람에게 충성하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제도가 있으면 그런 문제가 완화된다. 모든 상황에서 최선인 제도는 없다. 따라서 몸에 맞는 제도를 선택해야 한다. 직원 10명의 스타트업 회사라면 창업주의 결정이 최선의 의사결정일 수 있다. 한 해 50만 명 이상의 여행객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여행 전문기업 ‘여행박사’는 팀장이나 회사의 대표 자리까지 직원들이 1년에 한 번, 투표를 통해 선정한다고 한다. 제조업의 승진과 금융업의 승진이 같을 수 없고, 학교나 공기업의 승진 제도 역시 다를 수 있다. 다만, 한 번 만든 승진 제도를 너무 자주 바꾸는 것은 좋지 않다. 다양한 승진 방식의 장단점을 가려서 가장 적절한 방식을 선정하고 단점은 보완하면 된다.
2. 엄격한 직책 승진
일반(팀원) 승진과는 달리 팀장, 임원 등의 직책 승진은 더욱 엄격하고 공정해야 한다. 직책자는 팀, 본부, 그룹 전체의 성과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리더, 부서원들의 성과를 가로채는 리더, 윤리의식에 문제가 있는 리더들이 승진하면 함께 일하는 부서원들이 고생할 뿐 아니라 조직 분위기가 나빠진다. 따라서 직책 포지션 승진은 과거 성과만 보고하면 안 된다. 리더십 스타일, 팀 관리 능력 등도 중요하다. 일례로 한 글로벌 소비재 기업의 경우 인수합병 후 직원 이직이 잦아지자 원인을 분석했다. 합병으로 단기간에 책임자 포지션이 늘어났는데 준비되지 않은 후보자를 보임하면서 조직 내 갈등이 커졌던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 해 이직자의 83%가 관리자 보임 1∼2년 차의 신참 관리자 밑에서 발생했다. 또 디레일러(derailer)라고 부르는 경력 이탈 요인은 새로운 역할에서 결정적인 실패를 부르는 요인을 심리학적으로 검증한 것인데 이런 부분도 확인하면 좋다. 지나친 완벽주의(perfectionism), 거만함(arrogance), 가면 쓴 얼굴(passive-agressiveness)8
, 습관적 불신(habitual distrust) 등이 그런 사례다. 이런 것은 전문기관을 활용한 설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3. 평가 공정성 확보
승진 제도는 평가제도라는 기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승진 결정 요인에서 고과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기반이 약하면 집이 무너지기 쉽듯이 평가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잘 짜인 승진 제도라도 무용지물이다. 효과적인 목표 수립 및 과정 관리뿐 아니라 직원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경우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 수용성을 결정하는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절차 공정성’이기 때문이다.9
평가 공정성 달성을 위해서는 제도와 함께 관리자(평가자) 마인드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2015년 노동연구원이 501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가자 교육을 하지 않는 기업이 48%에 이른다.10
한편 평가의 공정성을 높인답시고 성과와 무관한 요소를 비교해 승진자를 선발하는 것도 지양해야 한다. 관리자 승진 대상자에게 지식을 측정하는 필기시험을 보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모든 대상자들이 동일한 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공정’하다고는 할 수 있으나 승진에 대한 ‘타당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4. 인재를 키우는 승진
승진 제도는 기본적으로 ‘형평성’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직원들은 저마다 강점과 약점이 다르고 배우는 속도에도 차이가 있다. 높은 잠재력을 지닌 인재들을 너무 오래 한 자리에 놔두면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고 궁극적으로는 조직 역량이 손상된다. 따라서 잠재력이 큰 인재의 성장 속도에 맞는 승진이 필요하다. 발탁 승진이 한 가지 방법이고, 위에서 언급한 핵심 인재 중심의 승진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이런 승진의 경우는 일반 인재들보다 훨씬 엄격한 평가의 잣대를 적용해야 조직원들이 수용할 수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글로벌 소비재 기업은 대졸 신입 인재를 뽑아서 2년간 3개의 프로젝트에 투입한 후 높은 성과를 내면 관리자로 발탁을 한다. 2000년대 이후 국내 대기업 임원의 평균 연령이 꾸준히 낮아지는 것도 발탁 승진 효과와 관련이 있다.
5. 정년 60세 시대에 맞는 승진 기준
일반 인재들이 승진과 관련해 느끼는 가장 큰 문제는 승진 적체다. 유입되는 젊은 피는 적고, 연공서열식으로 승진을 시켜서 조직 전반이 고직급화돼 있으며 조직을 키울 수는 없는 상태에서 직책 포지션 바로 전까지 승진해 있는 후보자들이 너무 많은 현상은 조직원 전체를 답답하게 만든다. 그런 후보자들이 모두 유능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이런 상황은 조직에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년 60세 시대에는 승진 연한에 대한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포지션 중심의 승진 제도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 글로벌 기업의 경우는 40대 초반의 인사 담당 임원 밑에 50대 후반 보상(C&B) 담당 관리자가 일을 했지만 임원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함께 일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연공형 또는 경쟁형 승진 방식에서는 이것이 문제가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승진 후보자 선정 시 연차가 갖는 가중치를 더 낮추거나 극단적으로는 아예 없애야 할 수도 있다. 연봉, 성과급 체계, 조직문화 등을 대신해 상위 직급에서 요구되는 특정 역량이나 자격 요건을 의무화하는 것도 방안이다.
6. 주기적인 인재 리뷰 실시
제도에 의한 승진은 너무 정량적으로 흐를 수가 있다. 그러나 직원들의 역량과 잠재력은 몇 가지 기준에 따라 점수로 줄 세우는 것만으로 충분히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정량적 접근의 한계를 보완할 방안이 필요하다. 좋은 방법이 인재 리뷰(영어로 talent review 또는 people session 등으로 부름)라고 할 수 있다. 반년 또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경영진이 모여 중간관리자 이상의 인재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는 직원들의 업적, 역량 측면의 평가 결과 외에도 직원들의 강약점, 스타일, 육성 필요 영역, 향후 맡을 수 있는 포지션, 이직 위험성 등 인재 운영 전략의 전반적인 관점에서 토론이 이뤄진다. 과거 GE에서는 ‘세션C(Session C)’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인재 리뷰를 실시했고 이것이 널리 퍼졌다. 이러한 리뷰 프로그램은 현재 글로벌 기업들에서는 상당히 보편화돼 있다. 인재 리뷰가 승진을 바로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나중에 승진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김성남 인사조직전문 칼럼니스트 hotdog.kevin@gmail.com
DBR mini box 승진의 비밀 승진은 ‘누군가를 뽑아야 하는’ 기업 리더들뿐 아니라 ‘뽑히는 대상’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승진 시즌마다 술렁이는 직원들과 온갖 정보들은 그 관심도의 방증이다. 이번 호 DBR 스페셜 리포트에서는 ‘누구를 승진시킬 것인가’ ‘어떤 인재를 기용할 것인가’를 주제로 다루고 있지만 필자는 여러 회사의 임원과 CEO를 지내본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사람이 승진할 수 있는가’, 즉 ‘How to Be Picked’를 다뤄보고자 한다. 당신은 현재의 보직에 꼭 필요한 인재인가? 당신이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있다면 우선은 축하받을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 조직의 ‘전략적 인사 관리 대상’이 아니라면 당신의 다음 승진 확률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조직의 일반적인 속성 중 하나는 ‘보직을 자주 바꾸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모든 시스템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돌아가기를 바란다. 유고나 사고 또는 고객이나 내부의 불만이 심각한 수준으로 발생하지 않으면 경영진 입장에서 잘 돌아가는 기존 시스템을 굳이 바꾸려 하지 않는다. 필자가 기업을 이끌 때도 그랬다. 당신이 조직에서 꼭 필요한 인재이고 몇 단계 승진의 야심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으로 ‘후임자를 양성’해야 한다. 본인의 후임자를 육성한다는 개념은 좋은 성과를 내는 만큼이나 중요한 과정이다. 조직은 현재의 직위를 유력한 후보자에게 맡겼을 때 별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으로 판단될 경우 특정 대상자의 부서 이동이나 승진 등을 적극 검토할 것이다. 특히 중간관리자급에서 이런 의식적인 노력은 중요하다. 후임자를 육성해야 승진이나 다른 부서로의 이동이 가능해진다. 후임자를 양성하는 사람은 그만큼 본인의 경력 관리를 의식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조직은 그런 사람을 눈여겨본다. 하지만 후임자 육성에 관심을 두는 직장인들은 실제 많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최고경영자들은 본인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좋은 실적을 올렸는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고 그 성공스토리를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의외로 그런 최고경영자 중에 얼마나 유능한 임직원이나 후임자를 육성했는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심지어 조직 내 유능한 부하 직원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내보내 더 오랫동안 본인의 자리를 유지하고 장수한 결과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중역들도 있다. 이게 지금까지는 일부 통하는 성공공식이자 승진 공식이었는지 몰라도 4차 산업혁명 시기 급변하는 환경, 유연한 인재들이 모여 유연하게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전혀 맞지 않는 공식이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후임자가 없는 경우 보직 이동을 통한 승진 기회가 박탈될 수 있다. 또 후임자가 없음에도 조직이나 상사에게 보직 이동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런 생각이 경영진의 머릿속에 강하게 입력되게 되면 승진은 더욱 힘들어 진다. 유능한 후임자가 있다면 당신은 현재 보직에 꼭 필요한 인재라는 조직의 인식이 바뀌게 되고 결국 자신의 경력 발전과 성장에 도움이 될 부서로의 이동이나 승진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후임자 육성은 당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이동이나 승진을 위해 필요한 경력 플랫폼이 될 수 있다. 필자는 2000년 당시 커민스 중국 사장이 본사 부사장으로 승진해 자리 이동 기회가 생겼다. 다행히 나에게는 후임자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임원들이 두 명이나 있었다. 내가 책임지던 조직을 이원화해 그들이 책임자가 됐다. 그리고 나는 중국 사장으로 부임했다. 후임자들이 없었다면 본사의 중역들은 나의 중국 사장 부임을 망설이거나 다른 대안을 모색했을 것이다. 당신은 자기 전공 분야의 전문가인가, 여러 부서와 기능을 이해하는 통합 매니저인가? 인시아드경영대학원의 이바라 교수는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싶은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어떻게 하면 좀 더 잘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i 이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질문은 ‘나는 어떤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게 이바라 교수의 얘기다. 이를 바꿔 말하면 전공에 기반을 둔 전문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대해 전문가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재다. 다시 승진을 바라는 임직원의 입장으로 돌아와보자. 어느 조직이나 항상 ‘다양한 경험과 통합적 능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인재를 대하지는 않는다. CEO가 누구냐에 따라 그 방향은 달라진다. 하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수년, 때론 10여 년 이상 일을 하다 보면 반드시 ‘다양한 역량’을 키워주고자 하는 리더는 등장하게 마련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조직은 앞으로 어떤 타입의 리더가 이끌든지 간에, 이런 통합형 인재들을 원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조직에서 원하는 복잡한 문제에 대한 솔루션은 ‘통합적인 접근’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필자가 아는 많은 글로벌 기업의 한국 책임자들은 이런 과정을 거쳐 리더가 됐다. 대학에서의 전공이 무엇인지, 회사 경력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 조직에서 여러 부서와 지역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통합적이고 다양한 역량을 가진 인재가 돼야 한다. 당신에게는 내부와 외부의 비즈니스 멘토가 있는가? 조직에서는 탁월한 실적을 내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종종 능력이 있을 것 같거나 ‘일을 잘할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승진을 한다. 조직원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든데다 최고경영진의 주관에 의해 인사가 이뤄지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인하고 싶더라도 이건 분명한 현실이다. 따라서 실제 성과보다 더 큰 역량을 갖고 있다는 인식을 동료나 상급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면 승진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필자도 본사의 고위 중역들이 멘토 역할을 해줬기 때문에 최고경영자에 오르고 18년 동안 한 회사에서 지역 사업 책임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중 처음 몇 년간은 운 좋게 아주 좋은 성과를 올렸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됐다. 중역이나 최고경영자로 승진하려면 좋은 성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고위직으로의 승진에는 성과 외에 다른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본사의 여러 중역들에게 ‘내가 잘한 프로젝트’를 직접 설명할 기회를 제공해주기도 하고, 또 나의 긍정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입소문을 내준 본사의 고위임원이 없었다면 필자의 경력도 달라졌을 것이다. 조직에서 장기적으로 재임해 영향력이 크고 존경받는 고위 중역 중 한두 명이 당신을 자신의 멘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고위직으로 승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게 바로 누구나 잘 알지만 밖으로는 얘기하지 않는 조직 생태계의 비밀이다. 물론 고위 중역들이 특정 부하직원을 지지하고 지원해주는 이유는 아마도 한때 당신이 탁월한 성과를 냈거나, 상사의 고민거리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형성된 신뢰를 갖고 있기에 당신의 팬이 됐고 내부 세일즈맨이 된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들이 외부 멘토다. 이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지원을 하며 당신의 성공을 지원한다.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이 아닌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유대 관계가 강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멘토와 멘티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거래 관계가 아닌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 사람 중에 당신의 진로나 커리어에 대해 조언해줄 수 있는 경륜과 지혜을 가진 멘토가 있다면 당신은 이미 성공가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내부 멘토가 당신의 승진을 돕고 커리어를 이끌어 주는 Pull 역할을 한다면 외부 멘토는 당신이 분별력 있고 현실감을 가지고 행동하도록 하는 Push 역할을 한다. 외부 멘토는 내부 멘토와 달리 현실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이 중요하다. 내부 멘토는 같은 조직에 속해 있기 때문에 성과와 평가 등의 인사 관리 시스템이나 기업 문화에서 크게 벗어나기 힘들다. 외부 멘토는 이런 관계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좀 더 객관적이고 넓은 시야로 조언이나 코칭을 해줄 수 있다. 성공한 직장인이 되려면 두 명 이상의 지속적인 멘토가 있어야 한다. 이런 관계를 유지하려면 멘토와 멘티 모두 상당한 물리적 정신적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에필로그: How I did It 넒은 직장에서 좁은 전공에 집착하다 보면 안목을 키울 수 없다. 당연히 승진도 힘들어 진다. 필자의 경우 공학박사라는 전공을 연구소 생활 3년여 만에 자발적으로 버렸다. 경영이라는 분야로 방향을 정했기 때문이다. 방향을 현실화하기 위해 연구소에서 제품기획 부서로, 다음엔 해외마케팅 부서로 이동했다. 쉽지 않았지만 필요한 경력 진화의 과정이었다. 매니저에서 디렉터라는 직급으로의 승진은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됐다. 디렉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필자에게 다가온 기회, 즉 내 상사의 잘못된 의견에 논리적으로 반박하면서 오히려 그 회의에 참석했던 상급자(수석 부사장)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회의와 각종 보고회 등에서 우리는 이 같은 결정적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 수는 없지만 평소에 많은 공부를 하고 확신을 갖는다면 기회는 반드시 한 번 이상 오게 돼 있다. 이렇게 경영진이 나를 눈여겨볼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잡아야 한다. 나를 눈여겨본 수석 부사장은 그 사건 이후로 나의 내부 멘토의 역할을 해줬다.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좋은 성과도 내고 조직의 다른 책임자들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면서 경영진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은 당신의 몫이고 능력이다. 이런 능력에 긍정적인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팀원들을 잘 육성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정말 뛰어난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김종식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jongkim2000@gmail.com 김종식 교수는 1986년 <포천> 500대 기업 중 하나인 미국계 글로벌기업 커민스(Cummins)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입사해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커민스의 한국 투자법인인 커민스코리아 대표이사 사장과 커민스 중국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인도계 글로벌기업 타타그룹(Tata Group)의 한국 투자법인 타타대우상용차의 대표이사 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미국 일리노이 공대와 퍼듀대에서 기계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