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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1. 최동욱 열린경영연구소 대표 인터뷰

승진은 메세지다! 실적보다 바람직한 행동에 보상하라

고승연 | 234호 (2017년 10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과거 ‘승진’은 조직에 대한 충성과 헌신, 성실한 근속에 대한 대가로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사람들은 ‘출세’라는 말로 승진을 표현해왔다. 이제 상황이 변했다. 젊은 직원들에게 “자네도 열심히 해서 승진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이고 그것에 맞춰 직원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자기계발을 하면 좋을지, 어떤 미션을 갖고 일했으면 좋을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실적과 성과를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기적인 수치로만 평가하면 조직의 장기적 성과가 무너진다. ‘표준화’된 시스템과 운영방식에 집착하기보다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필요하면 ‘깜짝 영입’과 ‘파격 발탁’도 해봐야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현승준(가톨릭대 경영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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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소개


최동욱 열린경영연구소 대표는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하고 미국 카네기 멜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컨설턴트, 대기업 임원과 CEO, 공공기관 사장 등을 지냈다. 현재는 중소기업과 벤처, 특히 예비 창업자들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경영의 여러 분야 중 가장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가장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철학과 방법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 바로 인사 분야다. 어떤 인재를 뽑아야 하나,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직을 막는 방법은 무엇인가를 놓고 모든 사람이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그런데 ‘누구를 승진시켜야 하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입을 다문다. 실제 승진 인사를 해보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고민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이던 사람을 승진시켰다가 낭패를 보기도 하고, 인격이 훌륭하고 소통이 잘되기로 자타가 공인하던 사람을 승진시켰더니 폭군이 돼 많은 이들이 이직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경영이란 게 정답이 없는 것이지만 인사, 특히 승진 문제만큼 답을 찾기 어려운 것도 없다. 기업마다 다른 상황에 처해 있기에, 기업이 속한 산업군마다 승진 인사의 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조직문화에 따라 원하는 리더상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고민은 더 깊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답’을 피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사, 특히 승진은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오답노트’를 가진 경험자로부터 얘기를 들어야 한다. DBR이 최동욱 열린경영연구소 대표를 만난 이유다. 최 대표는 글로벌 전략 컨설팅사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일하다 대기업 교육 서비스 분야 이사, 첨단 정보통신 대기업 상무, 콘텐츠 기업 사장, 식품 대기업 사장, 공공기관 사장 등을 지낸, 말 그대로 ‘직업이 임원이자 CEO’였던 인물이다. 젊은 시절 컨설턴트로 일할 때부터 기업 의사결정의 중심부에 있었고, 이후 본인이 직접 기업경영의 중심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승진 인사를 단행하고 실패와 성공을 맛봤다. 다음은 최 대표의 일문일답.

 

1. 승진제도,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기업의 인사에서 승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어떻게 변하고 있나?

우선 과거와 달라진 부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1990년대 후반, 즉 흔히 IMF 위기라고 말하는 경제위기를 겪기 전까지 한국인들에게는 직장이 주는 의미, 직장에 대한 개념 자체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 거의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입사를 했고 일을 했다. 인사 운영 역시 그런 문화에 맞춰져 있었다. 단기간의 성과보다도 ‘오래 있을 직원’이라는 점에 방점을 찍고 다양한 경험을 시키고 그렇게 조직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면서 경험하고 충성하다 보면 승진이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시다시피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

오랜 시간 여러 단계의 승진을 거쳐 리더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모두에게 가능하지 않고, 직원들은 그게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다. 젊은 사람들일수록 그렇다. 그런 그들에게 “열심히 해서 승진해야지”라고 말하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오히려 기업이 완전히 발상을 바꿔야 한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이고 그것에 맞춰 직원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자기계발을 하면 좋을지, 어떤 미션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는지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 “일단 묵묵히 열심히 해라. 내가 나중에 판단하겠다”라는 식으로 말하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기업도 직원들이 언제든 쉽게 떠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승진을 어떤 미끼처럼 놓는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승진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제도로 존재해야지 출세의 상징으로 제시하는 건 의미가 없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승진제도라는 말이 흥미롭다.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것도 좋겠다. 내가 예전에 임원으로 근무하던 정보통신회사는 후발주자였고 고객접점이 선발주자들에 비해 적었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 은행과 협력해 이벤트를 만들었다. 수천 명의 아르바이트생을 뽑아서 그 은행의 지점마다 배치해서 가입 유도 행사를 벌였다. 그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약간의 재미나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지점별 가입현황을 공유했다. 물론 정규직 직원도 아니고 실적을 못 채웠다고 해고될 위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게 묘한 경쟁을 유발했고 상당히 많은 수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엄청난 열정을 보이면서 자기들끼리 기준 실적을 만들어놓고 미친 듯이 고객을 유치하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는 정말 ‘판매의 달인’ ‘설득의 달인’들처럼 보였다. 상상도 못한 실적을 내는 친구들이 있었다.

회사에서 승진을 위해 할당한 실적이 아닌데 자기들 스스로 경쟁의 재미를 느끼고 열정을 뿜어낸 상황이었다.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눈에 띈 몇몇 ‘달인급 알바생’들을 그냥 정규직원으로 채용해버렸다.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채용이자 승진이었다. 그들에게 처음부터 ‘이런 실적을 채워야 한다’고 강요했으면 그런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재미와 경쟁의 요소를 만들어줬고, 자신의 기량을 맘껏 뽐낼 기회라고 생각한 젊은이들이 일종의 자아실현을 한 셈이다.

예전에 근무했던 맥킨지도 좋은 사례다. 그런 시스템이 아주 잘 갖춰져 있었다. 파트너가 되는 것, 즉 맥킨지에서 승진을 거듭해 리더가 되는 건 ‘출세’가 아니라 ‘자아실현의 한 방법’이었다는 얘기다.

 

승진이 ‘자아실현의 제도’가 되려면 기업들이 지금보다 더 명확하고 투명한 원칙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맞다. 엄밀하게 말하면 ‘승진의 기준’이라기보다는 ‘평가의 기준’이 투명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도 말했듯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상, 회사가 기대하는 역할과 행동, 이런 것이 잘 정립돼 있어야 한다. 조직 입장에서 승진이란 원칙적으로는 그 조직이 사람에 대해 어떤 철학과 관점을 갖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사이자 제도다.

예를 들어 보자. 신사업을 시작했을 때 어떤 사람을 승진시켜놓고 짧은 기간 내에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바로 페널티를 주거나 임원 승진자의 경우 바로 다음에 퇴임시켜버리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이런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 그럼 당사자도 충격을 받지만 조직도 망가진다. 이런 승진과 페널티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섣불리 저렇게 시도했다가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집에 가야 하는 구나’라는 메시지다. 이러면 그 누구도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의욕을 갖지 않고 조용히 살다 조용히 승진해서 조용히 오래 있는 게 최선이 되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그래서 ‘실적’과 ‘성과’를 구분해서 사고하고 이걸 중심으로 승진제도를 운영하는 게 좋다.

 

성과와 실적을 구분해야 한다는 말이 신선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실적은 말 그대로 수치로 나오는 결과다. 매출액을 얼마나 올렸느냐, 시장점유율을 얼마나 높였느냐, 이익은 얼마나 냈느냐 등을 말한다. 기업들이 보통 승진의 기초가 되는 여러 평가 기준을 여기에 많이 맞춰 놓는다. 물론 ‘똑 떨어지는’ 숫자로 나오기에 매우 객관적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승진을 위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성과’라는 개념으로 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성과란 ‘회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행동과 의사결정을 얼마나 했는가’로 평가하는 것이다. 성과를 제대로 내고 있더라도, 혹은 ‘성과를 위한 행위’를 하고 있더라도 실적으로 연결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경우도 있다. 성과가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의하는 이 ‘성과’가 수치로 나타나는 ‘실적’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 성과를 더 높이 평가해서 승진에 반영해야 한다. 주어진 역할에 맞춰 열심히 실적만 맞추는 게 아니라 바람직한 행동을 했는지, 회사의 철학과 맞는 행동을 했는지, 제대로 동료와 후배들을 가르치고 도왔는지를 다 봐야 한다. 실적 위주로 승진이나 인사제도를 운영하다 보면 유통업계에서는 ‘밀어내기’가 나타나고 제조업에서는 ‘협력사에 대한 갑질’이 나타나게 된다. 또 실적 위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은 승진해서도 아랫사람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자기 실적의 도구로 삼아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기업은 망가진다. 단기적으로 실적은 올라가지만 장기적으로 성과는 나빠진다. 아까 ‘승진은 메시지다’라고 했는데 직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줘야 할까.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아닌가.

 

말씀하신 대로 성과와 실적을 구분해 승진에 반영해본 적이 있나?

식품 대기업에서 CEO로 재직할 때 바로 그 방식으로 승진 제도를 운영했다. 그 회사는 꽤 큰 식품기업이었고 전국 영업을 하는 곳이었기에 전국에 지점들이 있었다. 보통 지점장을 ‘야전사령관’이라고 하는데 그 지점 내에서는 ‘대장’이다. 본사 직급으로 치면 부장, 좀 작은 지점의 경우 고참 차장 정도가 역할을 맡는다. 지점 아래에 여러 영업조직을 거느린다. 대부분 본사 파견이라 혼자 거처를 마련해 근무한다. ‘야전사령관’이라는 별칭에서도 드러나듯 이런 지점들은 전통적으로 거의 군대문화를 갖고 있었고, 퇴근할 집도 없는 이 지점장들은 거의 저녁 먹고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영업직군에서 최소 10년 이상 최대 20년까지 있던 사람들이라 나름의 노하우는 다 가지고 있었다. 그럼 내가 CEO로서 이들에게 기대한 건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런 노하우를 다른 직원들에게 전수해주고 그 노하우가 조직의 역량이 되는 것이었다. 그 역량이 현장에서 다시 접목돼 성과로 나타나는 선순환을 원했다. 그런데 지점장들 상당수는 영업 노하우를 ‘나만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자기가 쥐고 있었다. 예를 들면 한 10개쯤의 노하우를 알고 있다면 하나씩 하나씩 가끔 끄집어내서 가르치는 거다. 한꺼번에 다 내놓으면 자기의 존재감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한 거다. 물론 영업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라 당장의 실적은 계속 좋았다. 그런데 장기적인 조직의 역량 강화와 성과를 생각한다면 이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대적인 물갈이를 했다. 자신의 노하우를 조직원들과 공유하고, 자신과 다른 접근을 하는 사람, 혹은 다른 방법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사람의 노하우를 적극 배우려는 사람들을 찾아내 지점장으로 승진시켰다. 다른 업종의 모범 사례를 적용해보려는 노력파들도 등용했다. 자신의 것은 내어주고 자신은 새로운 것으로 채우는 사람들이 승진하자 영업조직, 지점들, 그리고 본사마저 분위기가 바뀌었다. ‘승진은 조직이 조직원에게 주는 최고의 메시지’라고 하는 게 바로 이런 거다.

 

회사의 철학에 맞춰 생각하는 인재, 장기성과에 도움 되는 인재는 어떻게 찾아내 승진시켰나?

사실 내가 정의하는 이런 ‘성과’를 중심으로 한 승진방식을 도입하려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평가지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협력대상인 대리점들에게 ‘갑질’하지 않고 어떻게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냈고, 얼마나 지식을 공유했는지, 얼마나 학습을 해서 다른 지점장, 다른 업종의 사례로부터 새로운 지식을 가져왔는지를 하나하나 수치로 따져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 CEO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봐야 한다. 현장에, 영업조직과 지점에, 그리고 대리점에 직접 가서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예전에 일하던 맥킨지는 신입 컨설턴트 한 명 뽑을 때에도 그렇게 사람을 직접 찾아 나서고 만나서 이야기한다. 그런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중책 중의 중책인 지점장 인사와 승진을 할 때 책상에 앉아 숫자만 들여다보고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이렇게 승진을 시키고 새로운 문화를 정착하도록 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기도 한다. 새로운 방식을 학습하고 전수하는 과정에서 실수와 문제도 발생한다. 그건 경영자가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러라고 존재하는 게 CEO다.

생산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생산 현장에는 매우 엄격한 규범이 존재한다. 라인 책임자가 있고, 팀장이 있고, 공장장이 있으며, 그 위에 임원들이 존재한다. 분명 하위직급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좋은 아이디어, 혁신 아이디어나 개선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한두 번 자기 의견을 말하다가 막히면 그 다음부터는 입을 다문다. 시키는 일만 하게 된다. 현장에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현장을 제일 잘 아는데 그들의 얘기는 위로 올라오지 않게 된다. 그런데 공장이라는 게 특유의 보수성으로 인해 잘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예 외부에서 충격을 줬다. 컨설팅 회사 하나와 계약해서 직원들과 현장에서 개선안을 함께 고민해 만들도록 했다. TF팀을 만드는데 공장에서 지원자/추천자를 받도록 했다. 정말 엉뚱하지만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추천을 받았고, 발탁됐다. 일종의 승진과 같은 효과를 발휘했고 그들이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컨설팅이 끝날 때에는 아주 좋은 개선안과 혁신안이 많이 나왔다.

 




2. 발탁과 외부 영입, 어떻게 할 것인가?


기업들이 간혹 ‘파격적 인사’ ‘깜짝 발탁’을 해서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조직에 긴장을 준다는 장점도 있지만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다는 측면에서 단점도 있는데….

발탁 인사에는 그런 단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필요하다면 ‘파격적인 발탁’은 기업 입장에서 ‘신의 한 수’와 같은 승진 인사가 될 수 있다. 예전 한 정보통신 대기업 임원으로 일할 때 있었던 일이다. 앞서도 얘기했듯 내가 임원으로 재직하던 회사는 업계 후발주자였다. 선발 주자는 당시에 시장을 세분화해서 타기팅을 하고 개별 세분시장을 위한 브랜드를 따로 만들어내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후발주자인 우리 회사도 뭔가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CEO는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과장을 부장으로 승진시키면서 별도의 팀을 하나 만들어 팀장을 맡겼다. 정말 파격적인 인사였다. 수군거리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목소리도 들렸고, 나름 합리적인 문제 제기도 있었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팀을 위해서 아예 본사와 멀리 떨어진 강남에 따로 사무실을 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정말로 좋은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만 워낙 파격적인 승진이자 발탁이고 엄청난 지원을 해주다 보니 계속 이런저런 말이 내부에서 나왔고 다소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꽤 많았다. 선발주자에 비해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종종 어려움에 부딪혔고 이때마다 사람들은 “거 봐라. 안 될 줄 알았다”고 떠들어댔다. CEO는 그래도 끝까지 지원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팀은 해체됐다. 여기에서 나는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기업이 정말 필요하다면 ‘깜짝 발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둘째, 파격적 승진을 했으면 지원을 아끼지 말고 끝까지 믿어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 과감한 선택이 빛을 볼 수 있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격 인사를 진행할 때에는 내부 설득에 더 공을 기울여야 한다.

 

 

고위직의 외부 영입과 관련해서 겪은 성공 혹은 실패 사례는 없는지.

앞서 정보통신회사에서 겪은 ‘파격 발탁’ 사례를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는데 외부 영입에서도 그런 절반의 성공이 있었다. 큰 출판사의 임원으로 일할 때였다. 그 회사는 한때 정말 잘나가던 출판사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다른 출판사, 경쟁사들이 세련된 새 기획서적과 참고서 등을 내놓으면서 내가 있던 출판사가 크게 밀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부에서 큰 사람이 아니었기에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우리 회사 책의 경쟁력이 떨어진 게 분명했다. 문제는 내부에서 열심히 편집하고 기획하는 사람들이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감각이 시대에 떨어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기획서적과 참고서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고, 외부에서 편집과 디자인, 기획능력을 갖춘 팀장급 3명을 영입했다. 그중 2명은 안정적으로 정착해 내부 혁신을 일으켰고, 1명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완전히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름 성공한 케이스라 볼 수 있다.

누가 봐도 최고의 전문가를 데려왔지만 성공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한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시절, 콜드체인의 업계 톱 인재를 임원으로 영입했다. 그 회사의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완전히 개혁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런데 그 회사가 오너 기업이다 보니 가족 간에 비즈니스가 엮여 있고 곳곳에서 혁신에 발목을 잡았다. 즉 이미 일감을 몰아주고 가족 기업끼리 거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자신의 원대한 계획대로 혁신을 진행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워낙 책임감과 전문성이 강한 분이라 나보다 몇 년 더 그 회사에서 일하며 ‘부분최적화’를 이루고 나왔다.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내가 있던 회사지만 그 회사는 ‘소탐대실’한 것으로 느껴진다. 가족끼리 비즈니스 연결하면 단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 좀 답답했다.

 

오너 기업에서는 종종 친족관계에 의한 최악의 영입인사도 존재할 것 같다.

그렇다. 이건 예민한 문제라 어느 기업에 있었을 때인지를 밝히기 어렵지만 그냥 내가 있던 곳 중 한 기업의 얘기다. 이 기업은 하필 그 시기에 홍보와 언론 대응이 필요한 이슈가 계속 터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홍보실 임원의 역할이 정말 중요했다. 경쟁사들은 홍보 전문성을 살려 언론사에 상황을 설명하고 기사가 과장돼 나가는 걸 사력을 다해 막았다. 그리고 꽤나 성공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있던 곳에서는 홍보 기능이 사실상 마비돼 있었다. 분명 홍보 임원도 있는데 제대로 대응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였다. 답답해서 몇 번이나 문제 제기를 했지만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홍보 임원은 오너의 친구였다. 답답했다. 홍보 임원은 엄청난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데 딱히 전문성도, 의욕도 강하지 않은 사람을 친분관계에 의해 영입해 놓으니 당연히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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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의 승진제도와 문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한국 기업들의 승진제도와 문화에 대해 조언해주고 싶은 게 있는지.

공공기관 사장을 할 때 나름 합리적으로 설계된 인사와 승진 시스템이 관료주의의 폐해 속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지 절감했다. 예를 들어 보통 1년, 길어야 1년 반 정도 임기로 본부장, 국장들이 순환보직으로 움직이고 계속 연공서열에 따라 자리를 만들어주고 채우는 식으로 승진과 인사가 이뤄지는 문제가 있다. 전문성이나 책임감 같은 기본 덕목이 설 자리가 없다.

과연 국내 대기업은 다를까? 아니라고 본다. 정도야 덜 할 수 있지만 특유의 관료주의 문화가 존재한다. 일단 많은 대기업들이 ‘표준화’된 프로세스에 집착한다. 그런데 사업포트폴리오, 각 계열사와 그 회사들이 속한 산업의 특성 등에 따라 너무 많은 게 달라지는데 표준화된 프로세스에 집착하면 ‘발탁’ ‘외부 영입’ ‘유연한 내부 승진과 운용’이 다 어려워진다. 당장에는 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별로 효율적이지도 않다.

이런 조직에서 재미있는 패턴이 하나 나타나는데 바로 일괄적이고 표준적인 기준에 맞춰 ‘평점 몰아주기’를 하는 거다. 연공서열을 제도적으로 많이 없애도, 자체적으로 팀별로 ‘올해는 A 씨가 승진해야 하니 평점을 몰아주자’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번엔 양보하면 다음에 또 이렇게 해줄 거다’라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변형된 연공서열제가 운영된다. 팀장들이, 관리자들이 이런 걸 좋아하는 이유도 있다. 그러면 아랫사람들이 자신에게 쩔쩔맨다. 혹시나 눈 밖에 나서 점수를 몰아서 받아야 할 타이밍에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 전체, 회사 전체의 승진제도를 표준화하면 이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사람들이 악용할 소지가 높고 관료주의가 발생한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고 그렇게 승진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것인가.

그건 각 회사가 처한 상황과 문화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필요한 부분에서는 과감해질 필요는 있다. 다만 지금 우리나라의 많은 회사들이 하는 것처럼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혹은 현장에서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뭔가에 꽂힌 CEO나 임원이 일괄적으로 추진하면 아무 효과도 없고 부작용만 커진다. 예전에 내가 있던 대기업에서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등으로 세분화돼 있던 임원 직급을 세 단계로 축소했다. 그랬더니 고참 상무와 신참 상무 간에 서로 불편해하는 게 느껴졌다. 한국의 조직문화, 해당 기업의 오랜 관행을 너무 무시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직급을 늘리는 조치를 취했다. 많은 기업들이 호칭을 통일했다거나 직급을 없앴다는 점 등을 자랑하고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는데 대부분은 큰 효과가 없다. 오히려 유연한 승진제도를 운영하는 게 조직원들에게 더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영환경에 어떤 변화가 생겨서 갑자기 새로 팀을 만들거나 TF팀을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예전 방식대로라면 임원 중 한 명을 팀장으로 앉히고 그 밑에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사람을 배치해 관성적으로 팀을 운영한다. 당연히 아무 성과가 안 나온다. 이제는 발상을 바꿔서 ‘우리 조직 내에서 이 문제를 가장 잘 풀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그 사람을 찾아내서 한시적으로라도 ‘팀장’으로 승진시켜 일을 추진해야 한다. 정서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파격적 실험과 혁신을 한다면 그런 부분에서 해야 한다. 그게 인사와 승진을 통해 주는 메시지이고 변화의 단초다.

 

국내 기업들은 ‘승진 인재풀(pool)’ 관리에서도 미숙함을 드러내곤 한다.

그렇다. 한국 기업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승진 인재풀 관리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CEO 인재풀 관리가 부실하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이 몇 년 재직했나? 회장으로 재직한 지 15년이 훌쩍 넘었다. 어느 CEO나 그렇듯 공과가 있지만 그래도 대체로 잘 이끌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왜 이런 게 가능했을까? 훌륭한 인재풀을 갖고 있었고, 그중에서 엄청 꼼꼼하고 어렵게 검증하고 경쟁을 시켜서 선택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부분도 있다. 한국 기업들은 새 CEO가 오면, 혹은 임원이 오면 전임자가 한 것을 일단 부정하고 걷어내려 한다. 이멜트는 그러지 않았다. 계승할 건 하고, 수정 보완할 건 하는 것, 그게 경영의 연속성이다.

다시 승진 인재풀 얘기로 돌아오면 단순히 ‘싹이 보이는’ 인재를 선발해서 따로 교육시키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그보다는 그 조직이 갖고 있는 핵심 가치를 철저하게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높은 자리에 가더라도 그들이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가치 안에서 전임자를 ‘습관적’으로 부정하지 않고 경영의 연속성을 가져갈 수 있다. 또 전임자의 공과를 잘 평가해 전임자의 공 위에 자신의 업적을 ‘빌드업’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 철학과 고민 없이 ‘핵심 인재’를 모아서 집체교육만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여러 경험을 통해 봤을 때 어떤 인재가 CEO 입장에서 ‘승진시키고 싶은’ 인재였나?

조직에는 언제나 룰과 틀이 있다. 그걸 너무 많이 벗어나는 것도 문제다. 이걸 기본 전제로 하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을 승진시켜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을 승진시켰다. 조직이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인재’를 원하는 건 사실 아닌가. 물론 어떤 새로움이 필요하고 어떻게 도전해야 하는지 몰라서 문제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름의 열정과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은 CEO나 임원의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 답답해 보이는 공무원 조직, 관료조직만 해도 잘나가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떨어지는 지시’만 묵묵히 이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이제는 확실히 좀 변하고 있다. 제약조건을 이해하되 그래서 안주하는 게 아니라 그 제약조건을 극복하고 자신의 역할과 영역을 넓히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가치를 창출한다. 이건 단순한 실적 문제가 아니다. 예전에는 충성하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설 자리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젠 아니다. 당장 지금 물어보자. 새로 신입 기자를 뽑는다고 치자. 아니면, 기자에도 승진제도가 있어서 누군가를 승진시켜야 한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누구를 뽑겠는가? 그렇게 생각해보면 답이 생각보다 쉽게 나올 수 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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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to pick CEOs

한국과 일본의 산업과 기업문화는 여러 면에서 흥미로운 비교대상이다. 두 나라 모두 ‘수출주도형 산업화’를 했고, 첨단 기술을 가진 글로벌 대기업이 존재하며, 계열사 시스템도 상당 부분 유사하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한국의 대기업은 ‘오너’의 영향력이 매우 강한 ‘재벌’의 형태이고 원래 재벌의 어원, 즉 ‘자이바츠’를 형성했던 일본의 대기업 집단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맥아더 장군에 의해 해체된 후 ‘게이레츠(계열사 체계 대기업집단)’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특유의 ‘기업복지’ 시스템으로 종신고용을 보장하며 직원들은 똘똘 뭉쳐 ‘헌신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존재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승진’ 등 인사 관리 역시 일본의 기업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미국이나 유럽 기업의 사례에서보다 더 큰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한국이나 일본 기업 중 상당수가 급변하는 경영환경, 인공지능 발달과 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를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부 육성을 통한 승진이든, 외부의 전문가 영입이든 ‘새로운 유형’의 CEO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어떤 사람을 CEO로 임명해야 할지 답을 얻기는 쉽지 않다.

지난 30여 년간 고급 임원 서치와 리더십 컨설팅을 해온 토루 후쿠이 시그니엄 일본 대표로부터 그 해법을 들었다. 시그니엄 인터내셔널은 CEO를 비롯한 고위 임원을 찾아 기업에 소개해주고 리더십 컨설팅과 코칭을 하는 독일계 컨설팅 회사로, 최근 서울에도 지사가 설립됐다. 다음은 토루 후쿠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CEO를 내부에서 육성하는 것과 외부에서 영입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 사람들 의견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어떤가?

어느 것이 더 낫다고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 말 그대로 사안별로, 산업별로, 기업이 처한 상황별로 다르다. 사실 그동안 일본 기업들이 외부에서 CEO를 영입하는 사례는 많지 않았다. 2013년도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한 통계를 보면 일본 기업이 외부에서 CEO를 영입한 비율은 3%에 불과했다. 미국의 23%, 유럽의 25%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중국만 해도 CEO 중 외부 영입 비율이 16%에 이른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비율 자체는 낮아도 성공률은 높은 편이다. 산업의 특성과 회사의 목적에 따라 깊은 고민 끝에 CEO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먼저 주류회사 산토리 사례부터 보자. 산토리는 2014년 짐빔을 인수하고 본격적인 비즈니스 글로벌화에 나섰다. 일본 주류산업에서는 강자였지만 세계 시장으로 나서는 건 완전히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때 미쓰비시의 여러 사업부에서 글로벌 진출을 기획하고 성공했던 니나미 다케시를 CEO로 영입했다. 식품회사 가루비는 2세 경영자가 40대 초반이어서 바로 경영을 이어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가루비는 유통 소비재의 최고 전문가로 2세 경영자를 교육할 수 있는 존슨앤드존슨 출신 마쓰모토 아키라를 CEO로 영입해 성공했다.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는 백화점 중심의 오프라인 전략에서 온라인과 드럭스토어를 활용한 새로운 판매채널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기 위해 코카콜라 출신의 마케팅 전문가 마나히코 요오타니를 영입해 큰 성공을 거둔다.

지금까지 살펴본 성공사례들을 보면 뭔가 보이는 게 있지 않나? 외부에서 그냥 잘나가는 사람을 데려오는 건 의미가 없다. 방금 말한 사례들에서처럼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필요한 인물을 찾아내서 데리고 와야 한다.

일본인 CEO가 아니라 아예 외국인 CEO를 영입해서 성공한 경우도 있다. 제약회사 다케다는 M&A를 통한 빠른 성장을 원했고 이를 위해 글로벌 제약회사 GSK 출신 크리스 웨버를 영입했다. 인수 후 통합과 관련해 글로벌 경험이 가장 많은 사람을 데려왔다. 중요한 건 외부 영입이냐, 외국인 영입이냐가 아니다. 어떤 이유로든 CEO로 ‘외부 인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 때문인지 명확해야 하며, 영입된 CEO의 롤이 확실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나라 사람이든, 외국인이든 그에 맞는 사람을 찾으면 된다.

앞서 말했듯 예전에는 일본에서도 외부 CEO를 영입하는 사례가 거의 없기도 했지만 만약 있었다 하더라도 그저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사람을 뽑아왔다. 그러니 지금은 과거 업적보다는 기존 업적과 평판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 기업에 필요한 역량을 갖췄는가’를 중심으로 보고 있다. 이는 큰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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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처럼 한국도 CEO 외부 영입 사례가 많지는 않다. 그렇다고 내부 육성을 체계적으로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내부 육성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선 ‘교육’의 관점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떤 학위가 있는지보다는 ‘배우고자 하는 의지’와 ‘배울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그런 사람들을 찾아내 제대로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CEO로서 갖고 있는 DNA, 즉 본성적으로 리더가 될 수 있는지, 그런 본질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세 번째로 고민해야 할 것은 소통 능력이다. 이는 이슈를 파악하고 분석해 자신의 아이디어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굳이 여기에 하나 추가하자면 인간으로서, 리더로서의 매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런 조건을 완전히 갖추지 않았더라도 잠재적으로 이런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아내 육성하고 궁극적으로 리더로 만들어야 한다.

주의할 점도 있다. 내부 승진을 시킬 때 기업들이 간혹 후보자의 능력보다 사내 정치에 따른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온다. 외부 영입 시에는 앞서도 얘기했지만 후보자의 성과에 따른 경쟁력만을 평가하려 들거나 화려한 이력서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낳는다. 이에 따른 비용 부담도 엄청나다. 외부 영입이든 내부육성이든, 오류를 방지하려면 이사회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이사회 중심으로 의사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발전과 4차 산업혁명으로 여러 산업에서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CEO의 역할은 무엇인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무엇보다도 ‘결정의 속도’가 중요하다. 디지털 시대란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이기에 결정 지연의 리스크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따라서 때론 의사결정 자체가 옳으냐, 그르냐보다 속도 자체가 중요하다. 그래서 CEO의 ‘시장에 대한 직관력과 통찰력’이 매우 중시된다. 간혹 인공지능이 발달하기 때문에 CEO의 역할은 덜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그렇지 않다. CEO의 능력에 따라 회사의 미래는 바뀐다. 최근 5년간 일본에서 외부 영입 CEO가 늘어난 건 바로 일본 기업들이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CEO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일본의 유명했던 기업들, 샤프, 도시바 등의 글로벌 기업들이 경쟁력을 상실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리더의 내부 육성 방식은 성공하지 못했다. 인구구조 변화에도 적응하지 못했다. 완전히 다른 방식의 유연한 사고, 빠른 의사결정을 하는 CEO가 그래서 필요했다. 한국의 기업들도 일본의 사례를 보면서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곧 비슷한 상황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오너기업이 많다. 이런 오너기업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할 때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오너 기업은 나름의 장점이 많다. 사내정치가 복잡한 아시아 기업에서는 직원들 입장에서 누가 CEO가 될 것인지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즉 ‘줄서기’ 등 나쁜 사내정치가 오히려 억제되는 효과가 있다. 전문경영인은 필요에 따라 영입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는데, 어떤 특정 상황에서 확실하고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게 특히 도움이 된다. 앞서 아직 경험이 부족한 2세에게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가루비 사례는 오너기업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특히 오너기업이 많은 한국은 오너 일가에서 CEO를 승계할 때 능력부터 검증해야 한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 그렇다. 반드시 배워야 할 점이다.

 

CEO 육성 혹은 영입을 고민하는 한국 기업들에 조언을 하자면?

육성을 하고 있는 기업이라면 우선 CEO 후보자가 다양한 필드에서 경험을 하도록 해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권위를 부여하고, 기회를 주며, 동시에 책임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경험의 제공이 꼭 내부 육성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경험 많은 외부 사람을 영입하는 경우에는 영입 이후 3개월 내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성공적인 외부 영입 CEO들은 3개월 내에 실제 현장을 방문해 회사의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일하자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영입해야 한다. 이는 CEO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조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내부에서 육성해 승진시키는 CEO라면 사전에 이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라는 말이고, 외부 영입인사의 경우에는 초반에 이를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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