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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목고 잡는 공주 한일고

남자만 뽑는 허허벌판 기숙학교, 핏맞는 학생들, 스스로 강한 리더가 되다

조진서,연은모 | 164호 (2014년 11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특목고 잡는 자율고한일고의 성공 비결

1)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기숙학교

2) 스파르타식 아닌 자율주도형 면학 분위기 형성

3) 단체생활, 자율학습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해 1년에 걸친 철저한 필터링

 

 

충청도는 사람도, 산과 들도 둥글둥글하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천안논산간고속도로를 타고 30분 정도 가다가 정안IC를 빠져나가면 충청남도 특유의 올록볼록한 구릉 지형이 펼쳐진다. 그 안에 논밭과 마을이 알알이 박혀 있다. 자율형 일반고인 한일고등학교는 인구 약 5000명의 정안면 마을에서 다시 1㎞ 정도 간선도로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간 곳에 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지역의 학교들과 구분하기 위해 흔히공주 한일고라 불리지만 실제 위치는 공주시내에서 20㎞ 떨어진 시골이다.

 

 

산과 냇물, 논밭에 둘러싸인 시골학교지만 명성은 전국적이다. 전국 일반고 중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오랫동안 이름을 알려왔다. 최근 한일고는특목고와 자사고도 이기는 일반고로 또 한번 언론에 보도됐다.

 

한 국회의원이 교육부로부터 2014학년도 대입 수학능력시험 성적자료를 입수해 학교별 성적을 발표했다.1 전국 1722개 교의 2013년 수능 성적을 비교한 이 자료에서 국어와 수학, 2개 영역의 성적이 상위 2개 등급 안에 드는 학생의 비율을 뽑아봤다. 예상대로 상위 50개 중 외국어고, 과학고, 국제고 등 특목고가 29, 자사고가 10개였다. 그런데 한일고는 일반고인데도 불구하고 쟁쟁한 특목고와 자사고를 제치고 용인외고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 1)

 

신현보 교장

 

 

사실 한일고는 글자 그대로의일반고는 아니다. 특목고나 자사고처럼 다른 학교들이 학생을 선발하기 전에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골라서 뽑을 수 있는 이른바자율형 일반고(자율고)’. 똑똑한 학생들만을 받아 입학시키니 대학 진학 성적이 어느 정도 좋은 건 당연하다.

 

그런데 자율고 중에서도 한일고는 독보적이다. 자율고도 다른 일반고처럼 교육부가 정해주는 일반 교과과정을 따라야 하고 예산과 등록금 역시 교육부의 가이드라인을 지켜야 한다. 자사고처럼 학교 마음대로 등록금을 많이 걷을 수 없다. 따라서 자율고 학부모의 부담은 상위권에 있는 특목고, 자사고 학부모에 비해 월등히 적다. 한일고의 경우 2014년 학생 1인당 비용은 수업료, 기숙사비, 식비, 방과 후 수업료 등을 포함해 월 90만 원선이다. 방학을 고려하면 연간 1000만 원 미만이 들어간다. 이에 비해 기숙형 학교의 대명사인 강원도 횡성의 민족사관고는 연간 학생 1인당 비용이 2200만 원이다.2 기숙형이 아닌 통학형 특목교의 경우는 이보다 적게 들지만 사교육비와 식비 등을 생각하면 한일고만큼의 비용 대비 성적을 내는 학교는 대한민국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골에 있는 자율형 고등학교가 특목고와 자사고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며 수능 1, 2등급 비율 전국 2위라는 우월한 성적을 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비결을 듣기 위해 DBR이 한일고를 찾았다. 전교생이 500명도 안 되는 작은 학교지만 작은 대학교 캠퍼스만큼이나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고, 교정에서는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 너머로 맑은 시냇물과 아늑한 앞산이 바라다 보였다.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생들은 대부분 자습 중이었다.

 

‘한국의 이튼스쿨을 꿈꿨던 설립자

한일고는 한의사였던 현제 한조해 선생이 세운 학교다. 함경남도 출신인 그는 월남해 서울 남산 아래 있는 후암동에한일한의원을 차렸다. 이 학교 신현보 교장에 따르면 창립자는 독학으로 한의학을 공부했으며 자격증을 따기 위해 10번 이상 시험을 쳤을 정도로 우직한 사람이었다. 교육에 뜻이 있었던 그는 한의원으로 모은 200억 원을 들여 1985년 한일학원을 세우고 1987년 한일고를 개교했다. 학년당 5학급의 작은 학교였다.

 

1997년 작고한 설립자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충남 정안면 일대를 선택한 이유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모습을 하고 있는 풍수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 교장은 이 지역이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이며 동네 이름은 아홉 정승이 나온다는 뜻의 구작골이라고 설명한다.

 

 

설립자는 한일고가 책임감 강한 리더를 배출하는 명문 남자 기숙학교가 되길 원했다. 영국의 명문고인 이튼스쿨이 모델이었다. 인문계 학교로 전교생을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한 것은 한일고가 처음이다. 건학 이념은사인여천(事人如天), 실천궁행(實踐躬行)’, 즉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고 온 힘을 다해 실천하라는 말이다. 그는 또 8도의 인재들을 모아 어울리게 한다는 생각에 8인실 기숙사를 만들어 학생들을 출신별로 다양하게 섞이도록 배정했다. 지금도 이런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 꼭 한 방에 8도를 다 섞지는 못하지만 전국에서 온 학생들이 고루 섞인다. 2014년 신입생의 경우 서울 출신은 15명으로 10%도 되지 않았다.

 

한일고가 개교 초반부터 큰 두각을 보인 건 아니다. 당시 학생 선발권이 충남 지역으로만 제한됐는데 충남에는 이미 전통의 명문교인 공주사대부고가 있어 성적이 우수한 학생 선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도약의 기회는 2002년에 찾아왔다. 전국 단위 학생 선발권을 갖는농어촌 자율학교로 지정된 것이다. 전국 각지에서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대학 입시 성적도 크게 올랐다. 이후 한일고는 승승장구했다. 서울대, 연고대, KAIST 등 명문대 진학률이 전국 최고 수준으로 올라갔다. 언론으로부터특목고 잡는 일반교’ ‘사교육 청정지대등의 찬사도 받았다.

 

남학생들만 모아서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학생들은 공부뿐 아니라 운동에도 열심이다. 전교생이 축구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틈만 나면 공을 차고 뛰어다닌다. 교사들도 대부분 남성이다. 이들은 대부분 장기 근속하며 책임감 있는 지도로 학생들을 이끈다. 35명의 교사 중 30명이 1999년 이전부터 학교를 지킨한일고맨이다. 20년 이상 근속한 사람만도 22명이다. 평균 연령이 50세를 넘는다. 시골에 있지만 명문교라는 자부심 때문에 교사들은 학교를 잘 떠나지 않는다.

 

신 교장은한일고의 성공은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그 반대로 아주 보수적이다라고 말한다. 한 해가 멀다 하고 대학입시 제도, 고등학교 교육 제도가 바뀌지만 한일고는 전원이 기숙 생활을 하며 지덕체를 갖춘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데 중점을 맞추고 있다. 남성적이고 원칙과 보수성을 강조하는 문화 때문인지 한일고에선 유독 경찰대 합격자가 많다. 2014년과 2010학년도 경찰대 수석 합격자가 나왔고 보통 한 해에 경찰대 합격자가 15명에서 20명 정도 나온다. 이 중 절반 정도는 복수 합격한 후 다른 대학에 진학하지만 절반은 그대로 경찰의 길을 걷는다. 경찰대는 한 학년 정원이 120명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이 경찰 고위급까지 진급한다. 이러다 보니 경찰대에서 만난 관계자가나중에 경찰 고위직에 한일고 파벌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학교 측에 전하기도 했다는 게 신 교장의 말이다. 한편 2014년도에는 서울대 합격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일반고가 되기도 했다.

 

반면 해외 대학으로 진학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민족사관고나 용인외고 등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학교들 중 상당수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의 수를 주요 지표로 삼고 이에 맞는 미국식 지도를 하고 있지만 한일고는 교육부가 정한 교과과정에 맞게 지도하고 있다. 교육비 측면에서도 정해진 등록금만 받아야 하는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해외 대학 준비 교육을 따로 시키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고는 공부 잘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가장 열망하는 학교 중 하나다. 뛰어난 성적,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 기숙학교의 안정된 환경 때문이다. 신인수 교감은학부모들 중에는 자녀를 한일고에 보내고 부부 사이가 좋아져 동생을 보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일년 내내 열리는 설명회에는 연인원 1500명 이상의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들이 찾는다. 학부모들이 자주 가는 인터넷 카페에도 어떻게 해야 한일고를 보낼 수 있냐는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자율학습 중인 교실

 

 

일과

한일고 학생의 하루엔 쉴 틈이 없어 보인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뤄지기 때문에 길에서 버려지는 시간이 없고 또 일반적인 사춘기 청소년들처럼 게임이나 TV 시청에 쓰는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오히려 다른 학교에 비해 느긋한 기분을 갖는다. 공부하는 짬짬이 함께 운동하고 뛰어놀 시간도 많다.

 

평일에는 630분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8시까지 등교한다. 예전에는 8시부터 0교시 수업이 있었지만 이른 아침 수업을 막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요즘은 교실 청소부터 시작한다. 840분부터 오전 수업이 시작해 1230분까지 이어진다. 140분에 시작되는 오후 수업은 530분에 끝난다.

 

다시 느긋한 저녁시간을 가진 후, 7시부터 자정까지 도서관이나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한다. 도중에 9시부터 920분까지 간식시간이 한 번 있다. 자정 이후에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따로 공부방을 마련해두고 있다.

 

자율학습은 교사가 따로 감독하지 않는다. 학년당 1명씩 교사가 남아 밤 1030분까지 근무를 서지만 교실을 돌아다니면서 지켜보지는 않는다. 그 시간은 학생들과 11 면담을 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한일고 교실은 주말에도 불을 밝힌다. 토요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다시 오후 3시부터 자정까지 자율학습이다. 일요일은 오전에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오후 3시부터 학습이다. 다만 주말 스케줄은 평일보다 유연하다. 학부모들이 학교를 찾아와 학생들을 데리고 외출하기도 하고, 종교 활동이나 주말학교 활동,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방학에도 집에 가는 학생들이 별로 없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학교가 좋아서, 친구들이 좋아서 학교에 남아 있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신인수 교감은한일고에선 45일 정도면 긴 방학이다라고 말한다. 방학 중에도 방과 후 수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기에 지루할 틈이 없다.

 

 

한일고의 특징

1) 딴 짓을 하려 해도 할 것이 없는 환경

한일고엔 ‘3’, 세 가지 없는 것이 있다. 우선 교문이 없다. 울타리를 쳐서 학생들을 가둬놓을 필요도, 또 학생들을 보호해야 할 필요도 없다. 주변은 논밭과 들판이다. 정안면 마을까지 1㎞는 내려가야 가게 같은 가게가 나온다. 학교 앞엔 노선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정안면 자체도 조용한 농촌이다. 얼마 전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세종시가 들어서면서 정안 톨게이트의 통행량이 늘긴 했지만 마을은 여전히 한적하기만 하다. 사춘기 고등학생이 일탈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식당도, 매점도 모두 캠퍼스 내에 있다. 수업에 필요한 교재는 공주의 서점에서 배달해주거나 인터넷으로 구매해 택배로 받는다.

 

한일고는 교복도 없다. 학교에서 보는 사람은 학생 아니면 교사가 전부다. 누구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도 없고 교복을 입혀 감시해야 할 필요도 없다. 기숙사는 교실 건물에서 1∼2분 거리다.

 

 

특별히 금지된 품목은 있다. 휴대폰이다. 노트북 컴퓨터나 TV처럼 학생들의 주위를 산만하게 할 수 있는 기기도 금지다. TV는 오후 9시부터 20분 동안 간식을 먹으면서 뉴스만 볼 수 있다. 전화통화는 공중전화를 써야 한다. 다만 PC실이 있고 학교 곳곳에 PC가 놓여 있어 인터넷을 쓸 수 있다. 이렇게 교문, 교복, 공해가 없다는 뜻에서 ‘3라는 말이 나왔다.

 

 

2) 자율 문화

기숙학교라 해서 스타르타식 재수학원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한일고는 스스로 공부하는 자율주도형 학습을 중요시한다. 자율학습 시간에 교사가 따로 감독하지 않는다. 공부하는 방식도 자유자재다.

 

실제로 기자가 학교를 찾았던 중간고사 기간에는 학생들이 학교 내 사방에 흩어져 공부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책을 보고 있기도 하고, 아예 책상과 의자를 가져 나와 복도와 층계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학생도 많았다. 교실 안에서도 헤드폰을 끼고 있는 학생, 뒤에 나가 일어서서 책을 보고 있는 학생 등 각양각색이었다. 한국의 고등학생이 아니라 해외 명문대 대학생들처럼 자유로운 복장과 태도로 공부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교실 안팎에서 교사는 한 명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기자가 교장, 교감 선생님과 함께 교실과 복도를 둘러봐도 학생들은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학업에 대한 목표의식이 강한 학생들이 많기 때문에 저절로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공부뿐 아니라 방과 후 활동도 학생들이 주도가 돼 운영한다. 이 학교는 학생회를학생자치정부라 부른다. 스포츠, 음악 등 다양한 클럽 활동도 학생들이 주도한다. 2013 10, 동아일보에공주 한일고의 비결은 축구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다. 전교생이 하루에 한 번은 축구를 할 정도로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축구로 풀고 있으며 축구 실력이 좋은 학생이 공부도 잘하는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기사는 교사가 아니라 두 명의 한일고 재학생이 기삿거리가 되겠다고 판단해 직접 기자에게 연락해 취재가 이뤄졌다. 학교 홍보 활동마저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 동아리 역시 학교의 도움 없이 문재인 의원, 정운찬 전 총리,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거물급 정치인들을 섭외, 인터뷰해서 교사들을 놀라게 했다.

 

3) 학교 문화에 맞는 학생을 선발

시골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3년 동안 살기 위해서는 학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학생과 학교의 핏(fit)이 맞아야 한다. 중학교 때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누구나 이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휴대폰도 못 쓰고, 게임도 못 하고, TV도 볼 수 없다. 매일 아침과 저녁, 군대처럼 점호도 한다. 8명이 한 방에서 2층 침대 생활을 해야 한다. 엄마가 해주는 밥도 먹을 수 없고, 힘들다고 어리광을 피울 사람도 없다.

 

또 사교육에 익숙한 학생들에게도 한일고는 어려울 수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스스로 목표를 정해서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을 다니거나 과외수업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이런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일고를 이탈하는 학생의 수는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학교 측에 따르면 2014년 입학한 신입생 중 단 한 명이 전학을 갔다. 그 비결은 상담과 면접이다. 한일고는 우선 모든 지원자들과 그들의 학부모들이 적어도 한 번은 학교를 직접 찾아오고 눈으로 보도록 한다. 연중 17∼18회의 입학 설명회가 열리고 매 회 100명가량의 지원자들이 참석한다. 신 교감은사진에서 보는 학교와 직접 와서 보는 학교는 다르다.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 단점도 있으니까 그런 걸 와서 충분히 보시라고 말한다고 설명한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데리고 학교를 꼼꼼히 둘러보고 재학생들을 만나 얘기도 나눈다. 설명회가 끝나면 사전 예약에 의해 개인 혹은 집단 상담을 진행한다. 학교에 찾아올 정도면 한일고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주고 또 학생을 직접 살펴보기 위해서다. 상담을 해보고 한일고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원서를 쓰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9월 이후는 2차 상담 기간이다. 1차 상담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지원자들이 대상이다.

 

학교 측에서는 한 학년 160명을 뽑기 위해 약 170∼180장의 원서를 받는 것을 목표로 2차례의 상담을 진행한다. 즉 상담은 지원자를 필터링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지원하지 말라고 권유해도 막무가내로 원서를 내는 지원자와 학부모들이 있어 실제로는 정원의 1.5배 정도의 원서를 받는다. 원서를 받으면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친다. 이때 성적뿐 아니라 인성과 특기, 목표의식을 보고 뽑는다. 한일고는 커뮤니티 성격의 학교이니만큼 예체능 등 다양한 측면에 특기를 가지고 있는 학생을 좋아하고, 특히 단체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은 지원자는 제외한다.

 

 

“우리는 학생들을 뽑을 때 단순히 성적만을 보지 않는다. 성적이 물론 기본이긴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인성을 본다. 우리가 제일 강조하는 교육 지표 중 하나가 상대에 대한 배려다. 인성 측면에서 어느 정도 갖춰진 인재들을 뽑고 있다.” 신 교장의 말이다.

 

한일고 입학 절차는 길고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이 학교의 안내 책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한일고는 긴 시간 한일고만 지원하기 위해 준비한 학생들을 좋아한다.” 이 역시 한일에 꼭 맞는 지원자들만이 남게 만드는 일종의 심리적 장벽 역할을 한다.

 

성공요인 분석

학부모들과 교사들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아마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우리 학생의 학습을 도울 수 있을까일 것이다. 로체스터대의 사회심리과 에드워드 L. 데시 교수는 저서 <마음의 작동법(Why we do What we do)>에서 인간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에게는 수행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고 만족감을 갖는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와 수행을 통해 얻게 되는 외적인 것들에 관심을 두는 외재적 동기(extrinsic motivation)가 있다. 가령 내재적 학습동기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워서 공부를 하지만 외재적 학습동기를 가지고 있는 학생들은 공부함으로써 듣게 되는 칭찬이나 높은 성적에 관심을 두고 공부한다. 내재적 동기를 가진 학생의 경우 활동에 흥미를 느끼고 몰입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되므로 쉽게 동기가 사라지지 않는 반면, 외재적 동기를 가진 학습자의 경우 그 효과가 대부분 한시적일 가능성이 높다.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욕구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하게 한다는 데시 교수의 관점에서 공주 한일고의 성공 요인은 아래와 같이 정리해볼 수 있다.

 

1)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힘

김연아 선수의 맨발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이스링크에서 보여주는 우아한 점프와 아름다운 미소 뒤에 가려진 수많은 상처와 굳은살은 20대 초반 여성의 발이라고는 짐작할 수 없는 모습으로 그녀가 링크에서 단 몇 분의 연기를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시간의 훈련과 고통을 견뎌왔음을 짐작케 한다. 한창 예쁘게 꾸미고 싶을 나이에 자신의 발을 숱한 상처와 굳은살로 도배시킬 정도의 모진 훈련을 김연아 선수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이 하고 싶어 선택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취를 이루기 위해 반복적인 연습은 필수지만 이는 양날의 검같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행하는 경우라면 고통스러움도 목표를 위한 즐거움으로 변할 수 있다. 공주 한일고는 원서 지원에서부터 자율학습에 이르기까지 학생이 스스로 선택하게 함을 원칙으로 한다. 15회 이상의 입시설명회를 통해 공주 한일고에 지원하고 싶어 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찾아오지만 원서를 실제로 접수하기까지 이뤄지는 학교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수차례의 상담 과정은 자신이 정말로 공주 한일고에 입학하기를 원하는지 고심해볼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한다. 신현보 교장은 충분한 상담을 통해 자신에게 맞는 학교인지를 스스로 판단하고 원서를 내도록 하는 학교의 방침은 입학 후 학교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이야기한다.주말과 방학에도 시행되는 수업도 스스로 필요에 의해 원하는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참여율이 높다는 것이 학교의 설명이다. 강요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가 선택하도록 이끄는 노력은 공주 한일고가 추구하는 자기주도적 인재를 양성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2) 건학 이념이 품은 다양함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가장 흔히 접하는 서버주소 www World Wide Web의 약자로 인터넷을 통해 세계 어디라도 거미줄처럼 얽혀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세상의 곳곳이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된다. 한가운데 자리한 바퀴통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나가는 거미줄은 얼핏 보기에는 중앙 부분이 중요한 것 같지만 사실은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가려내기 어렵다. 먹이를 잡기 위해 만든 거미줄이니만큼 한가운데든, 가장자리든 간에 먹이가 걸리는 쪽이 중요한 부분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한일고가 공부만 잘하는 우등생이 아니라 지덕체를 모두 갖춘 책임감 있는 리더를 양성하는 한국의 이튼스쿨을 표방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신 교장은 다가올 세상은 기성세대가 살아온 1등과 꼴지가 분명한 세상이 아니라 아직 모두가 살아보지 못한 꿈꾸는 미래라고 말한다. 따라서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구분 지으며 기존의 틀 속에 가두기보다 다양함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기존의 학교수업에만 치중하지 않고 수십 개의 다양한 교내 및 교외 동아리 활동을 장려하는 공주 한일고의 모습은 다양함을 품은 각계 방면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는 기반을 갖췄다.

 

TED의 인기 강연학교가 창의력을 죽인다(School kill Creativity)’의 켄 로빈슨(Ken Robinson) 역시 뇌의 다양한 부분을 자극시켜줄 때 창의력이 더 잘 발휘된다고 한다.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 지적 능력의 성장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우리 교육의 획일화된 수업들이 아이들의 잠재력을 깨워주지 못하고 다양함에 도전하기 두려워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기존의 학교수업에 더해 방과 후에 이뤄지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한 경험은 공주 한일고 학생들을 창의성을 신장시켜 졸업 후 각계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모교를 빛내는 인재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준다.

 

3) 일상적인 교사의 상담

인간은 자신이 유능하고 자유롭다는 느낌만으로는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채워질 때 비로소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학기 중 수시로 이뤄지는 교사와의 개별 상담은 학생들의 심리적인 문제뿐 아니라 진로에 대해 세심하게 지도하면서 공주 한일고 학생들의 심리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고 있다. 한일고 교사는 지식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사람이 아니라 상담을 통해 학습과 생활을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제언

자신의 제자가 학교생활을 즐겁게 마치고 훌륭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실히 제 몫을 해나가는 인재로 성장하는 것은 모든 선생님들의 바람일 것이다. 공주 한일고는 모든 교사의 바람을 담아 학생이 즐겁게 생활하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학생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학생의 다양한 적성을 신장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나가고 있다. “왜 전교생의 기숙생활을 고집하느냐라는 질문에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고 싶어서라는 신 교장의 답에는 단순히 성적이 우수한 인재만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성과 지성을 두루 갖춘,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 인재를 양성하고자 하는 공주 한일고의 철학이 묻어 있다.

 

학생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돕고 다양성을 추구하며 생각의 틀을 고정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원하는 공주 한일고의 모습에서 미래의 인재들이 바라는 기업의 내일을 꿈꿔본다. 무엇이든 강요하고 지시하기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기업. 일률적인 성과만을 바라고 재촉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존중하는 기업.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제안한 업무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진심어린 격려를 아끼지 않는 기업.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즐겁게 주도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아름다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한일고의 경우 선발 대상을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우수자들만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학년당 160명으로 그 수도 많지 않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는 것만큼이나 겉보기에 평범한 사람의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을 계발해주는 것도 교육의 몫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실무에서는 여러 제약조건 때문에 항상 최고의 인재만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방대한 조직의 대기업에선 특히 대부분의 조직원이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일 수밖에 없다. 낙오자를 줄이고 학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공주 한일고의 우수한 교육환경이 더 많은 학생들에게 혜택처럼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듯, 기업에서도 소수의 엘리트만이 아닌 대다수의 일반 직원들에게도 자발적인 자기 계발과 발전의 기회가 주어지고 동기부여가 돼야 할 것이다.

 

조진서기자 cjs@donga.com 연은모 서울대 학습창의센터 연구원 ain4515@gmail.com

연은모 서울대 학습창의센터 연구원은 버지니아주립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고려대에서 문학 석사 학위를, 서울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습 상황에서 실수에 대한 인식, 학교생활 만족도가 주 관심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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