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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배우는 경영

‘혹성탈출’의 시저, 힘세면서도 포용하는 리더

서광원 | 160호 (2014년 9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HR

영화혹성탈출을 통해 본 리더가 갖춰야 할 역량

1) 리더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만 대처하는 게 아니라 상황 속을 꿰뚫고 그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2) 리더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3) 리더는 무엇보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로 공동체가 위험에 처하게 되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 맨 앞에 서야 한다.

4) 리더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5) 리더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인류가 달에 도착하기 1년 전인 1968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이 선보인 영화혹성 탈출(원제는유인원 행성’, The Planet of the Apes)’은 넘치는 상상력에 충격적인 결말까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우주 어딘가에 살고 있던 미래의 인간이 우연하게 불시착한 유인원들의 행성이 사실은 인류의 고향인 지구였다! 인류가 왜 고향 지구를 떠나야 했고, 지구는 어떻게 유인원들의 행성이 됐을까? 왜 링컨의 동상이 있어야 하는 곳에 유인원들이 존경하는 침팬지 얼굴 동상이 있었던 걸까? 샤프너 감독은 궁금증을 던지기만 한 채 속편을 내놓지 않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혹성 탈출: 반격의 서막은 바로 이 부분을 설명하기 시작한서막이다. (영어 제목도유인원 행성의 서막이다. planet의 원래 의미는 행성이다.) 인간과 맞서기 시작한 이유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는 이번 영화의 큰 줄기는 유인원 무리의 리더인 시저(앤디 서키스)가 위기를 극복하고 더 큰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이제위대한 리더가 될 시저와 인간들의 리더인 말콤(제이슨 클락)을 통해 자연의 생태계에서부터 인간 세상(영화로 보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유인원 세상)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역사가 축적해온 가장 기본적인 리더십을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인다. 카리스마 넘치는 권위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위기를 타개하면서 공동체를 미래로 이끄는 리더의 조건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잘 만든 리더십 참고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들이 흔히 마주하는 문제와 해법을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살펴보자.

 

문제와 해법 1

치매 약을 만들던 중 생겨난 치명적인 바이러스시미안 플루가 인류를 공격한 지 10, 지구를 가득 채웠던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졌지만 덕분에 뛰어난 뇌를 획득한 유인원들은 리더인 시저를 중심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 산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날 곧 동이 날 전기를 구하기 위해 작동이 중단된 댐을 찾아온 인간과의 우연찮은 만남은 총격 사건으로 이어지고 서로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두 집단은 곧장 전쟁으로 치닫는 행보를 시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부분의 인간들은 시미안 플루가 유인원들 때문에 퍼졌다고 생각하고 있고, 유인원들은 과거 인간들이 자신들을 가혹하게 대했던 기억 때문에 적개심을 간직하고 있었다. 시저는 불행을 막아보려 하지만 전쟁을 향한 불씨들이 이곳저곳에서 피어 오르고 상황은 쏜살같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많은 리더들이 부지불식간에 맞이하게 되는 흔하지만 어려운 문제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권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여기서 영향력 있는 권위란 어떤 지시를 해도 조직이 수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리더는 자신의 생각과 결정을 조직의 힘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다. 하지만 위기는 밖에서만 오는 게 아니다. 밖의 위기는 잠자던 내부 분란을 촉발시키고 권위는 도전받는다. 이 상황을 해결해가는 것이 리더의 일인데 상황은 처음부터 갈등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는 쪽으로 빠르게 치닫는다.

 

댐을 찾아온 인간 중 한 명이 숲에서 만난 유인원에게 총을 쏘면서 시작된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 이때 인간 리더인 말콤이총을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수많은 유인원들에게 둘러싸인, 자칫하면 몰살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무기인 총을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일원이 항의하자 그가 한마디한다. “(쟤네들이) 보통 유인원처럼 보여?” 총을 내려놓은 말콤은 자신들이 여기에 왜 왔는지 설명하고 상황을 파악한 유인원 리더 시저가 고함을 지른다. “가라!(go!)”

 

왜 시저는 유인원에게 총을 쏜 인간들을 보내줄까? 가슴속에 확 치고 오르는 분풀이를 하는 건 쉽다. 하지만 쉬운 결정은 가혹한 부메랑으로 돌아올 때가 많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겨도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시저는 불만에 찬 유인원들에게인간은 절박해라고 말한다. 절박한 상황을 외면하면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걸 아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으로 쫓긴 생쥐가 평소 절절 매던 고양이에게 대드는 것처럼 말이다. “전쟁을 하면 우리가 일군 모든 걸 잃을 수 있다.” 시저는 작은 피해를 감수하고 큰 피해(전쟁)를 막는 힘든 결정을 내린다.

 

이것이 바로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자질인 안목이다. 자연에서나, 인간에게서나 무리와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 가장 요구되는, 다른 말로 하면 리더들이 가져야 할 가장 우선적인 능력이기도 하다. 리더는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만 대처하는 게 아니라 상황 속을 꿰뚫고 그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발등에 떨어진 불이 아니라 더 크고 높은 차원에서 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초 루 거스너가 무너져가는 IBM의 수장으로 부임했을 때 대세는 거대한 코끼리 같은 조직을 분할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스너는 반대로 긴밀한 통합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만 결과는 거스너가 옳았고 덕분에 IBM은 춤을 출 수 있는 거대한 코끼리가 됐다. 안목이란 이런 것이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것이다.

 

문제와 해법 2

하지만 인간의 총격을 봐주고 댐 수리까지 허용하는 시저의 결정은 반발을 불러온다. 특히 2인자인 코바는 인간이 전기를 가지면 더 위험해지니 무조건 공격하자며 시저에게 대든다. 지난 시절 인간들로부터 실험이라는 미명하에 고문을 당했던 경험이 증오로 변했다. 알아듣게 설득을 하는데도 코바는 계속 거칠게 대든다. 이 역시 갈등 상황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이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시저는 표정을 확 바꾸며 무섭게 노려본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쏘아보는 응시는 생명의 세계에서 곧 공격을 할 것이라는 신호다. 사자들이나 늑대, 야생의 침팬지 세계에서 이런 응시를 받은 상대는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도망을 치거나, 허리를 굽혀 복종을 표시하거나, 맞붙어 싸우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도 마찬가지다!) 뚫어질 것 같은 응시를 받은 코바는 즉시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땅에 댄 다음 손을 내민다. 용서 요청이다. 이때 내민 손을 우두머리가 거절하면 상대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시저가 손을 내밀어 터치를 하자 그제서야 코바가 물러난다.

 

이 또한 리더가 가져야 할 조건이다. 자연의 생태계에서 무리를 이끄는 리더는 상대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지능이 높은 생명체일수록 힘으로만 다스릴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특히 침팬지들은 인간처럼 약자를 지원하는 경향이 있는데다 지능이 발달해 동맹과 제휴가 쉽게 이뤄지기 때문에 힘만으로 지배자의 위치에 오를 수 없다. 아무리 힘센 개체도 동맹자가 늘어난다면 중과부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이 <침팬지 폴리틱스>에서 알려준 것도 우리가 말하는 정치가 인간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침팬지들에게도 일상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지능과 함께 오는 것이 정치다. 물론 그렇다고 힘의 중요성이 덜해지는 건 아니다. 동맹이나 연합을 통해 지위를 획득한 존재는 자신의 지위가 서로를 연결하는 줄 위에 위태롭게 얹혀져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고 이 줄 또한 끊어지기 쉽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한다. 함부로 쓰지 않을지라도 칼을 갖고 있어야 지위와 권한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힘이 무엇을 뜻하는지 시저는 잘 알고 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고 하다가 배신한 코바의 꾐에 빠진 시저의 아들이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알고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면 다들 아버지를 따를 것이라고 하자 시저가 말한다. “내가 약하면 그러지 않을 것이다. 유인원은 강한 자만 따르니까.” 시저는 잘 알고 있다. 힘의 논리보다 더 강한 건 힘의 논리라는 것을…. (등장인물 이름도 상징성 있게 선택한 듯하다. 주인공 시저는 로마의 카이사르의 영어 이름. 로마의 시저는 공화정을 황제 체제로 만들어 로마를 다시 한번 흥성하게 한 위대한 인물이다. 반면에 반란을 일으킨 코바는 옛 소련의 잔인하고 가혹한 통치자 스탈린이 평생 자신의 애칭으로 불러달라고 했던 이름이다. 원래 코바는 19세기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한 조지아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카즈베기의 소설에 나오는 의적이고, 말콤은 백인에 비해 소수였던 흑인 인권운동가의 이름이다. 영화에서 인간은 유인원에 비해 소수다.)

 

리더는 필요할 경우 힘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가능하면 조직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만 일 년에 두세 번은 내가 하라고 하는 것을 무조건 하라고 한다고 한 적이 있다.

 

문제와 해법 3

물론 이런 힘의 행사가 내부용으로만 사용되면 독재가 된다. 외부의 힘, 특히 공동체를 위협하는 사안과 관련한 일에 행사돼야 제대로 된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로 공동체가 위험에 처하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 리더는 맨 앞에 서야 한다. 시저와 인간 리더 말콤이 보여주는 리더의 또 다른 조건이다.

 

불필요한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인간 거주지로 찾아갈 때 시저는 맨 앞에 선다. 총이 어떤 무기인지 잘 알고 있지만 맨 앞에 서서 전쟁을 피하려면 서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전달한다. “유인원은 전쟁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싸워야 한다면 싸울 것이다.” “여기는 인간의 땅, 저기는 유인원의 땅, 다시 오지 말라.” 인간 리더인 말콤도 전기가 필요하자 자신이 앞장 서 댐을 찾으러 가고 경계선을 넘어오지 말라는 시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유인원들의 거주지를 찾아간다.

 

리더는 왜 맨 앞에 서야 할까? 무리 사회에서 최고 서열은 무리 중에서 가장 능력이 뛰어난 존재라는 말과 같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단순히 힘이 세서 다른 존재들을 이길 수 있다는 그 이상의 의미, 그러니까 더 나은 생존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뜻한다. 살아 있기 위해 태어난 생명체들이 더 나은 살아 있음을 지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그렇다면 자신보다 더 나은 생존능력을 갖고 있는 존재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더 나아가 그 존재를 따르는 것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더 잘 살아 있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리더 또한 혼자 사는 것보다 무리를 이루면 여러 장점이 생기니 리더가 되려는 존재는 당연히 무리가 원하는 자격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무리는 앞장 서는 리더를 리더로 인정하는 성향을 갖게 됐고 리더 또한 앞장 서서 모두가 인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리더와 조직 사이에는 이런 과정을 통해 당연한 듯 여겨지는 성향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냥을 하던 시저는 거대한 곰과 혼자서 대치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맞는다. 도망가는 건 이미 늦었다. 이때 시저는 곰에 위압당하기는커녕 더 크게 소리를 지르고 손과 발을 휘저으며 거칠게 맞대응한다. 곰을 이길 수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나도 너만큼 힘이 세. 그러니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큰 코 다칠 거야라는 것을 알리는 과시 행위다. 과시 행위는 실제 대결에서보다 대결을 예방하는 데 많이 쓰인다. 싸우지 않고 누가 이길지 알 수 있다면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되니 말이다. 인간 세상에서 과시 행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위 표시 장치로 일상화돼 있다. 왕이나 장군들이 걸치는 망토, 왕관이나 투구, 어느 나라 군복이건 공통적인 어깨의 견장(계급을 중시하는 곳일수록 견장이 크고 높아지거나 화려함이 강하다), 화가 났을 때 허리에 손을 올리는 행동이 바로 이 몸을 크게 하는 과시 행위에 기원을 두고 있다.

 

문제와 해법 4

유인원 리더인 시저와 인간 리더인 말콤이 각각 보여주는 중요한 리더의 조건이 또 있다. 리더는, 아니 리더로 인정을 받으려면우리라는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맨 앞에 설 수도 있어야 하지만 다름 또한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시저는 자신의 권위를 해치는 코바를 죽이지 않고여기는 인간의 땅, 저기는 유인원의 땅이라면서 인간들까지 적절한 선에서 받아들인다. 무조건 전쟁을 하기보다는 대화로 풀 수 있다는 말콤 또한 같은 생각의 소유자다. 다른 존재를 품을 수 있다.

 

반면에 배신의 아이콘 코바는 포용력이 부족하다. 그는 인간들을 포로로 잡아너희들도 당해보라고 한다. 영향력 또한 증오를 통해 얻는다.인간들이 시저를 죽였다, 되갚아 주자. 시저를 위해!” 더 나은 희망, 비전이 아니라 증오를 활용한다. 당연히 다들 무서워서 따를 수밖에 없다. 인간들의 리더인 드레이퍼스 또한 능력 있는 리더이지만 유인원이라는 낯선 존재, 외부 존재에 대해서는 무조건 배척한다. 그리고 끝내 유인원들을 몰살시키기 위해 폭발물을 터트리며 한마디를 남긴다. “난 인류를 구하는 거야!”

 

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가? 여기서 믿음과 신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믿음과 신뢰는 공동체를 더욱 공고하게, 그리고 장기적인 평화를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접착제이며 더 커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영화에서 믿음과 신뢰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손을 잡는 것으로 나타난다. 코바가 시저에게 대들다 무서운 응시를 받았을 때, 대들다가 제압 당했을 때 손을 내밀고 이걸 터치해주는 것이 복종과 용서를 통한 관계 회복(신뢰)이라면 아들이 아버지 시저에게 눈물을 흘리며 손을 내미는 것은 부자 간 신뢰의 회복이다. (원래 눈물은 웃음과 함께 인간만이 가진 특징이다. 하지만 영화 속 진화한 유인원은 눈물을 흘린다. 눈물과 웃음은 인류가 더 나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만들어낸 진화적 장치다.) 각각 상대방을 대표하는 시저와 말콤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것 또한 신뢰의 표시다. 물론 영화는 무조건적 관용이 화를 불러온다는 경고 또한 잊지 않는다. 코바의 배신으로 인한 공동체의 손실이 그것인데 숲이 제대로 우거지려면 간벌이 필요하듯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들어가는데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는 뜻이다.

 

문제와 해법 5

시저가 코바를 제거하면서 상황을 안정시키자 인간 말콤이 유인원 시저에게 구조요청을 받은 군대가 곧 들이닥칠 것이니 빨리 떠나라고 한다. 그런데 시저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전쟁은) 벌써 벌어졌다. 유인원이 시작했다. 인간들은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떠나야 된다. 미안하다. 나의 친구.”

 

시저는 왜 인간들이 떠나야 한다고 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상황은 이미 벌어졌고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렇다. 모든 건 과거가 아니라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그러니까 새로운 상황은 새로운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이 또한 리더가 갖춰야 할 필수조건이다. 유인원들이 살았던 곳은 코바 무리에 의해 불타버렸고 어쨌거나 전쟁은 시작됐다.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 시저는 상황에 합당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전 시리즈인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의 끝부분에서도 시저는 같은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자신을 키워준 인간 주인공이 숲으로 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자 시저는 아쉬운 듯, 그러나 결연하게 포옹을 한 후 나직하게 속삭인다. “여기가 내 집이야.” 발을 딛고 있는 현재를 원점으로 생각할 줄 아는 사고력이다.

 

생명의 역사에서 수많은 시간 동안 생명체들이 터득해온 적응력의 제1조건은 하나다. 항상 변하는 상황을 기준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거만으로 미래를 살려고 하는 생명체는 덧없이 사라진다. 환경 적응력이 없어지는 까닭이다. 이번에도 역시 시저는 냉정하지만 현명한 판단을 했다. 말콤과 아쉬운 이별 인사를 한 시저의 눈이 먼 곳을 바라본다. 어디일까? 그는 또 어떤 안목과 통찰력으로 이 지구를 유인원의 행성으로 만들까? 카리스마 넘치는 다음 편이 기대된다.

 

서광원 생존경영연구소장 araseo11@naver.com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 서광원 |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필자는 경향신문, 이코노미스트 등에서 경영 전문 기자로 활동했으며 대표 저서로는 대한민국 리더의 고민과 애환을 그려낸 『사장으로 산다는 것』을 비롯해 『사장의 자격』 『시작하라 그들처럼』 『사자도 굶어 죽는다』 『살아 있는 것들은 전략이 있다』 등이 있다.
    araseo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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