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브래드 버드 감독에게 듣는 ‘픽사의 비밀’

승리의 안도감을 두려워하라

로버트 서튼(Robert Sutton) | 11호 (2008년 6월 Issue 2)
하야그리바 라오, 로버트 서튼 스탠퍼드대 교수
알렌P. 웹 맥킨지쿼털리 편집국 이사

성공한 혁신가(innovator)들이 수년간 입증한 사실이 있다면,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늘 예기치 않은 데서 나온다는 점이다. 자전거 수리공이 비행기를 개발하고, 미국 국방성에서 인터넷과 같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플랫폼이 생겨나리라고 누가 예측했겠는가?
 
기업의 혁신 진작 방안을 고민하는 고위 경영자들도 예기치 못한 의외의 영역에서 혁신의 실마리와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애니메이션 영화로 두 차례 오스카상을 거머쥔 픽사(Pixar)의 브래드 버드(Brad Bird) 감독과 인터뷰를 가졌다. 버드 감독은 조직 구성원의 창의성을 촉진하는 자신만의 실제적 접근법을 갖고 있었다. 이는 팀과 조직의 혁신 증진 방안을 모색하는 경영진들에게 매우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브래드 버드 감독은 2000년 픽사에 입사했다. 당시 픽사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후 ‘벅스라이프’와 ‘토이스토리2’가 잇달아 인기를 끌면서 흥행불패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픽사의 경영진인 스티브 잡스와 에드 카트멀, 존 라세터는 성공에 대한 안주를 경계하고 ‘아이언 자이언트’와 ‘심슨스’로 주목받던 브래드 버드 감독을 영입해 혁신의 진두지휘를 요구했다. 월트 디즈니와 워너 브라더스, 폭스를 거쳐 픽사로 옮긴 버드 감독은 이후 ‘인크레더블’과 ‘라따뚜이’라는 두 편의 획기적인 영화를 선보이며 아카데미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두 차례나 수상하는 쾌거를 거둔다.
 
라따뚜이로 오스카상을 수상하기 10일 전, 브래드 버드 감독을 만났다. 버드 감독은 조직이 지난날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타성에 젖지 않도록 팀원들을 자극하고, 당당히 다른 목소리를 내도록 격려하며,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강조했다. 또 기존 관습과 통념을 깨고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이단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애니메이터가 창의성을 강화하는 과정은 경영진이 신제품 아이디어나 신기술의 돌파구를 찾는 과정과 달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버드 감독의 일화는 혁신을 추구하는 모든 산업의 모든 경영진들에게 창의력을 던져준다.

픽사로 옮기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픽사는 다른 회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큰 차이점을 갖고 있다. 바로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거나 타성에 갇히지 않고자 하는 경계심이다. 내가 입사했을 때 픽사는 이미 토이스토리, 벅스라이프, 토이스토리2 등 3편의 애니메이션 영화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언 자이언트’로 보기 좋게 상업적 참패를 한 직후였고. 그 때 스티브 잡스, 에드 카트멀, 존 라세터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게 단 하나 있다. 바로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이뤄낸 것처럼 자기만족감과 안도에 빠지는 것이다. 당신이 우리 회사로 와서 대신 쇄신을 해 달라. 당신이 일하는 방식이 말이 안 된다고 판단할 때는 우리는 당신과 토론할 것이다. 당신이 새로운 방법에 대해 우리를 설득시킨다면 우리는 그 새로운 방법을 택할 것이다.’
 
흥행불패의 신화를 이룬 회사가 흥행 참패의 감독을 영입하면서 ‘자, 이제 우리와 함께 모든 걸 바꿔보자’라고 말했다. 이런 일이 언제 또 찾아오겠는가?”
 

그렇다면 픽사에서 첫 프로젝트였던 ‘인크레더블’은 어떤 혁신을 이뤘나?
컴퓨터 애니메이션에서 그간 다루기 어려웠던 모든 것을 인크레더블에서 시도했다. 사람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머리카락이며 물이며 불 등을 표현했고, 세트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동원했다.
 
기술진들은 처음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구현하고자 스토리 틀을 정확하게 보여주자 모두 새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이걸 다하려면 10년에 5억 달러는 족히 들텐데 어떻게 한다는 건가?’라며 모두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순응하지 않고 튀는 이단아(black sheep)들과 일하게 해달라. 기존 방법에 대해 불만이 많은 아티스트들, 아무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는 전혀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은 똑같은 일을 하는 데 있어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을 알고 있지만 이를 시도해볼 기회가 없어서 불평분자가 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내가 한 일은 이렇게 튀는 이단아 친구들에게 그들의 이론을 증명해보일 기회를 준 것이다. 그 결과 많은 관행이 바뀌었다. 이전 영화 ‘니모를 찾아서’와 비교해보면 분(分)당 비용이 훨씬 줄었든 데도 불구하고 3배나 더 많은 세트를 동원하는 등 이전까지 모두 어렵다고 간주된 일들을 모두 해냈다. 이는 황당한 아이디어들을 시도해 볼 기회를 준 픽사의 경영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시 시도한 혁신적인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컴퓨터 그래픽 분야의 전문가들인 순수주의자 중에는 매우 똑똑하지만 예산이나 일정에 대한 압박감은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책임을 맡은 영화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예산과 일정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나는 이런 순수주의자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했다. 컴퓨터 작업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면 컴퓨터 스크린에 뭔가를 장치하는 교묘한 ‘트릭’을 써서라도 절충안을 찾을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그들을 압박했다.
 
물 효과를 내기 위해서 꼭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업에 적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찾기 힘들다면 수영장에서 첨벙거리는 물을 찍어서 합성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렇게 말했더니 모두들 기가 막혀 했다. 그래서 나는 한술 더 떴다. ‘비행접시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그냥 파이 접시를 스크린에 확 날려보자. 파이 접시가 등장하는 시간이 아주 짧고, 각도만 제대로 맞춰서 던진다면 관객들은 충분히 비행접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수영장의 첨벙거리는 물이나 날아가는 파이접시를 실제로 찍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를 통해 사람들은 우리가 항상 모든 방면에서 완벽하게 작업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점차 이해하게 됐다. 모든 장면에서 동일한 수준의 완성도가 요구되는 건 아니다. ‘완벽’하게 찍어야 하는 장면이 있는 반면 훌륭한 수준에서 찍어야 되는 장면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환상을 깨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만 찍어도 되는 장면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또한 극도로 정교한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카메라의 움직임조차 매우 자세하게 스토리보드에 명시했다. 모든 사람이 ‘우리는 여기서 딱 저기까지만 찍으면 된다’는 걸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자세히 말이다. 카메라 앵글에 대한 확신이 생긴 이후에는 제작 방법을 아주 상세하게 구체화시킬 수 있었다. 어떤 장면은 한 각도에서 촬영하면 매우 아름답게 보이지만 오른쪽으로 몇 피트만 더 가서 찍어도 그 이미지가 완전히 흐트러진다. 따라서 나는 각 세트 내에서 카메라 동선에 대한 유연성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규모와 범위를 확보했다.”
 
앞서 말한 소위 ‘불만분자’들이 결국 혁신을 촉진시킨 것인가? 그렇다면 혁신적이면서 또한 만족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나?
깊이 관여하고 참여한 사람들(involv-ed people)이 혁신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할 수 있다. 열정적으로 참여하면 때로는 행복할 수도, 때로는 불행할 수도 있다. 핵심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은 조용할 수도 있고, 시끄러울 수도 있고, 그 중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공통점은 지치지 않고 계속 탐구하는 자세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의 핵심까지 가보고 말겠다,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거기 있을 것이다’와 같은 자세를 갖는다는 말이다. 지속적으로 열기가 나오는 식지 않는 보온 컵과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혁신과 창의성에서 팀의 역동성 (team dynamics)은 얼마나 중요한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는 서로 다른 많은 부서들이 함께 일을 한다. 우리는 각 개인과 팀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또 서로 협업할 수 있도록 가장 조화로운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별 악기 소리는 아름답지만 함께 어울렸을 때 불협화음을 내는 오케스트라가 되고 만다.”
 

 
그렇다면 언급한 대로 협업할 수 있는 팀을 구축하고 지휘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
픽사에 오기 전에 만든 ‘아이언 자이언트’는 직전 영화에서 끔찍한 참패를 맛보고 사기가 밑바닥까지 무너져 있는 팀을 그대로 인수 받아 작업에 착수한 경우였다. 애니메이터들이 내게 작품을 보여줄 때가 되자, 나는 모두를 한방에 불러들였다. 이것이 나와 전임자의 작업 방식이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전임자는 작품을 개별적으로 리뷰한 뒤 해당 작업자에게만 필요한 사항을 전달했다.
 
하지만 나는 비디오 프로젝터를 동원해 각 애니메이터의 장면을 화이트보드에 비춰가며 다함께 리뷰 했다. 도중에 장면들을 멈추고 각자 생각이 다른 부분들은 일일이 표시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우리는 젊은 팀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장점과 약점들을 각각 갖고 있다. 여기서 각자의 장점만 서로 엮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애니메이터 그룹이 될 것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적나라하게 서로에게 치부를 드러내자. 모두가 함께 부끄러움을 당하고 또 함께 격려 받는 것이다. 솔루션이 있다면 모두가 함께 듣고 각자의 툴킷에 반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선에서 더 나은 장면들을 제안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들이 다르게 생각한다면 거리낌 없이 다른 의견을 달라. 나라고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먼저 시작했다. ‘여기서는 팔꿈치가 좀더 높아야지 액션의 생동감이 살 것 같아. 또 여기서는 캐릭터에 대한 사고 프로세스가 잘 읽혀지지가 않는 걸. 다른 생각 가진 사람은 없나? 주저 말고 얘기해보게.’ 하지만 방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전임자 밑에서 용기 내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가 잘리는 사람들을 이미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음 두 달을 각자의 작업을 모두 함께 리뷰하고 분석하며 보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코멘트를 마치자 한 사람이 한숨을 쉬었다. 내가 바로 ‘방금 그게 무슨 뜻인가’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니다. 괜찮다’라고만 대답했다. 난 계속 다그쳤다. ‘방금 자네의 한숨 소리를 들었다. 분명히 뭔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 아니겠느냐. 자네 생각을 얘기해 달라.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고, 당신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그제야 그는 일어났고, 나는 그에게 펜을 건네줬다. 그는 나의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 리뷰 분석을 지우고, 전혀 다른 방안을 제안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듣고 ‘훌륭하다. 내가 제안한 것보다 훨씬 낫다’며 칭찬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제시해도 결코 잘리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때부터 팀의 학습 능력은 수직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필름 제작 후반부에는 처음 시작할 때보다 훨씬 막강한 팀으로 거듭나 있는 것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서로의 장점을 통해 서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의 의견을 편안하고 솔직하게 내놓기까지 두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전 팀과 픽사의 크리에이티브 팀 경험을 비교해서 말해 달라
픽사에서 내게 라따뚜이 감독을 제안했을 때, 이 프로젝트는 이미 5년 동안 준비 과정을 거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 영화로 제작될 만큼 구체화된 단계는 아니었다. 내가 참여한지 얼마 안 돼 관련자 30여명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다.
 
당시 영화에 등장할 쥐들의 동작이나 근육 등 시각적 표현들이 캐릭터에 맞게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그런데 모든 쥐들이 두 발로 걸어 다니게끔 디자인돼 있더라. 나는 이게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단계에서 쥐 캐릭터를 다시 디자인하면 비용이 아주 많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네 발로 걷는 쥐로 다시 바꿔야 한다. 주인공 레미는 네 발뿐만 아니라 두 발로도 걸을 수 있도록 표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기겁했다. 직립 보행하는 쥐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해 그들은 거의 1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한 사람들이다. 그 중 한 명이 ‘왜 그렇게 하는지 알고 싶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당시에 나는 전적으로 자의에 의해 라따뚜이를 맡은 게 아니었다. 인크레더블 후속작품으로 하려고 했던 영화는 사실 라따뚜이가 아니었다. 나는 ‘당연히 내가 감독이니 그것만으로 이유는 충분하지 않느냐’고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봤다. 그들은 수년 동안 막다른 골목에 가서야 전혀 다른 내용의 무리한 작업을 지시 받았던 경험이 너무 많았다. 그들은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내가 변덕스럽게 업무 지시를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또 막대한 분량의 작업을 추가로 지시할 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인간 세계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쥐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그 캐릭터를 살려주기 위해 비주얼한 차원에서도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쥐들이 다 두 발로 걸어 다닌다면 주인공과 다른 쥐가 무슨 차이가 있겠나. 주인공이 스스로 두 발로 걷기를 선택하고, 이를 이뤄가는 과정에서 감정 상태에 따라 다시 쥐 본연의 네 발 걷기로 가끔씩은 돌아가기도 하는 모습을 비주얼로 표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캐릭터가 관객들 마음에 제대로 박힐 것이다.’
 
나는 6분여에 걸쳐 구구절절 이렇게 설명했다. 반론을 제기한 이는 처음에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다가 점차 표정을 풀어갔고, 내가 설명을 다 마쳤을 때는 모두가 좋다고 동의했다.”
 
팀의 사기 진작에 대해 상당히 많이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경험에 따르면 영화 예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면서도 막상 예산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게 있는데 바로 팀원들의 사기, 의욕이다. 팀의 사기가 매우 저조한 상황이라면 투입하는 1달러에서 약 25 센트의 가치밖에 뽑아낼 수가 없다. 하지만 사기가 매우 높을 때는 1달러를 투입해도 3달러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들은 직원들의 사기 진작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직접 영화를 제작할 기회를 갖기 전에 나는 엉망으로 운영되고 있는 회사에서 일하면서 영화를 만들 때 반드시 피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감독들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제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노력을 무시하는 사례가 많았다. 그 결과 작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진정성도 서서히 사라지더라. 생산성은 당연히 떨어지고, 이는 초과 근무 증가로 이어졌다. 결국 밑 빠진 독처럼 한없이 비용만 증가하더라.”
 
참여와 사기, 이 외에 혁신적 사고를 진작하기 위한 결정적 요소는 무엇인가?
불가능한 일을 해내기 위한 첫 단계는 불가능한 일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인크레더블 제작 기간 동안 1년에 두 차례 전체 회사 회의가 있었다. 여기서는 누구나 자신의 우려사항을 제기할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인크레더블에 대한 야심이 너무 크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픽사야말로 지나치게 야심이 큰 작품을 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스튜디오다. 흥행불패의 성공 가도만을 달려오지 않았나. 그 성공 기록으로 무얼 하겠나. 픽사는 지금까지 뻔하고 안전한 방식만을 고수해왔다. 두렵지만 역량의 한계에 부딪쳐 실패할 수도 있는 것들을 시도해야 한다. 이게 바로 우리를 아침에 벌떡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대부분 기업에게 혁신 방법을 물으면 흔히들 ‘고객을 먼저 파악하라. 고객이 당신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당신은 혁신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목표는 다르다. 고객인 ‘그들’ 만을 위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곧 불안정한 바닥에 서 있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어떤 그룹을 위해 영화를 만들 때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을 수 있다.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꿈을 제작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스토리텔링 매체를 다루고 있다면 그 꿈에 대해서 스스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꿈은 진정성이 담기지 않은 내용이 돼버린다.
 
따라서 나의 목표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나의 진정성을 충분히 담아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유리되지 않도록 접근한다면, 다른 이들도 역시 충분히 공감하면서 영화에서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픽사는 창의적인 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하나?
애니메이션 작업 공간의 아래층을 가보면 무척 정신없어 보일 것이다. 자신의 사무실 전면을 각자가 원하는 대로 꾸밀 수 있도록 했다. 사무실 전면을 웨스턴 타운처럼 만든 사람도 있고, 하와이처럼 꾸민 사람도 있다.
 
스티브 잡스는 처음에 이 아이디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존 라세터가 ‘애니메이터의 작업 공간은 좀더 파격적이고 자유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존은 딱딱하지 않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창의성을 진작시킨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 건물을 봐라. 스티브 잡스가 기본적으로 디자인한 건물인데, 중앙에 얼핏 보면 거의 공터처럼 보이는 거대한 아트리움이 있다. 각자 자신만의 분야에 틀어박혀, 흩어져서 작업하는 사람들-이쪽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코드 작업자들, 저쪽에서 작업하는 애니메이터들, 또 다른 쪽에 있는 디자이너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화하기 위해 이런 공간을 만들었다.
 
스티브는 우편함, 회의실, 카페테리아 등을 중앙에 배치했다. 뿐만 아니라 화장실도 중앙 공간에 배치했는데 이는 가장 발칙하면서도 탁월한 아이디어였다. 우연하게라도 서로 한번씩 모두 만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모두들 이 아이디어에 극구 반대했다. 하지만 스티브는 사람들이 서로 더 눈을 많이 맞추고, 접촉 기회가 많아질수록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직원들이 도저히 마주치지 않을 수 없게끔 공간을 설계했다.”

 
그 외에 창의성을 진작시키는 요소로 강조하는 게 있다면?
픽사가 현재 1940년대의 디즈니사를 모방하고 있는 것은 직원들에게 본인의 전문영역 외에 다른 모든 분야를 교육하는 시스템이다. 이를 Pixar University, PU라고 한다. 예를 들어 현재 조명 담당 관련 일을 있지만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있다면 애니메이션 관련 수업을 수강할 수 있다. 스토리 구조, 포토샵은 물론 심지어 이스라엘의 국방시스템인 크라브 마가에 대한 수업도 연다. 픽사는 기본적으로 모든 직원들이 자신의 전문영역 이외의 분야에 대해 배우도록 장려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스스로를 보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 그 결과 직원들이 전문 분야를 바꿔 옮기기도 한다.
 
당신은 한편으로는 리더의 역할을,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체제를 뒤엎는 전복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역할이 가능한가?
최고의 리더는 기존 체제를 전복하는 요소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물을 보는 남다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혼자서 팀을 지휘하지 않는다. 프로듀서인 존 워커와 나는 공개적으로 잘 싸우기로 소문이 나있다. 존의 입장에서는 일을 일단 해내는 것이 우선이고, 나는 일이 끝나기 전에 제대로 확인하고 재차 검토하는 일을 담당한다.
 
인크레더블의 디렉터스컷(director’s cut) DVD를 보면 우리 두 사람이 맹렬히 싸우는 장면이 나온다. 존은 거기서 ‘나는 단지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라고 말하고, 나는 ‘애당초 처음부터 일을 제대로 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하다. 하지만 나는 존이 무조건 내말을 따라주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존이 ‘당신이 X를 선택하면, Y는 할 수가 없어진다’는 식으로 말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싸우지만 결국 선택을 한다. 그리고 나는 존과 함께 일하는 게 무척 즐겁다. 존이라면 내 면전에서라도 나쁜 소식을 가감 없이 전해준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혁신을 촉진시키는 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제 거꾸로 혁신을 저해하는 요소에 대해 말해 달라.
수동적이면서 공격적인 사람들, 즉 그룹 안에서는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뒤에 가서 불평을 늘어놓는 사람들이야말로 독(毒)이다. 나는 이제 꽤 일찍 이런 종류의 사람들을 찾아내 조기에 근절할 수 있는 내공이 쌓였다.
 
그렇다면 혁신을 저해하는 리더는 어떤 유형인가?
처음 디즈니에서 일을 시작할 당시 노장의 마스터 애니메이터들이 하나둘씩 디즈니를 떠나고 있었다. 그때 막 햇병아리 감독이 된 40대 애니메이터가 있었다. 그는 차기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부문을 맡도록 경영진이 키우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가 감독직을 맡은 직후 나를 포함한 팀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당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여기 있다. 나는 내 방식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나는 디즈니의 노장 마스터들과 일해 본 경험이 있었고, 그들이 그의 방식에 전혀 만족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그런 말을 던진 그는 나를 놓친 꼴이 됐다.

나의 첫 번째 공식적인 애니메이션 선생님은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터였다. 나는 11살에 처음 영화를 접했고, 당시 아는 분이 디즈니 영화 작가와 친해서 스튜디오 견학을 갈 수 있었다. 그때 당대 최고의 노장 애니메이션 감독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이 만든 최악의 애니메이션이라도 방금 얘기한 디즈니의 40대 감독이 만든 최고의 애니메이션보다 100배는 더 나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만났던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들은 영화를 다 만들고 난 뒤 ‘이제야 캐릭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작업하고 싶은 심정이다. 다음번에는 꼭 제대로 해낼 것이다’라고 항상 말했다.
 
그들은 진정한 장인(匠人)들이었지만 늘 배우는 학생의 자세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앞서 말한 그 감독은 좋은 애니메이션 몇 개를 했을 뿐인데도 완전히 자신의 작업에 도취돼 자기만족에 푹 빠져있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그 어떤 영감도 기대할 수 없는 최악의 리더다.
 
현재 픽사에서 당신의 커리어와 초기 디즈니에서의 커리어를 비교한다면?
디즈니에 입사했을 당시, 디즈니는 쏟아지는 빗속에 버려진 클래식 캐딜락 페이튼 같았다. 즉 너무도 아름답고 뛰어나지만 오래된데다 갈수록 낡아져 가는 명차(明車)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로서는 세계 최고의 시스템, 최고의 인재를 보유하고 있었다. 영화 역시 감동 면에서는 다소 떨어져도 여전히 훌륭하게 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디즈니는 제작 편수를 조금씩 줄여가고 있었다. 전성기 때 1년이나 1년 반에 한편씩 만들던 영화를 그때는 3년에 하나씩 만들었다. 월트 디즈니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도 더 된 상황이었고, 왕년의 노장들은 하나둘씩 디즈니를 떠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회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이 훌륭한 시스템들을 활용해 탁월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 로켓선이라면 화성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와 같은 도전 정신이나 태도가 전혀 없었다. 회사는 ‘월트 디즈니를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그가 했던 작업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애꿎게 망치지 말고 이 로켓선이나 잘 보관하자. 여기서 새로운 다른 것을 시도하다가는 갖고 있는 것마저 손상시킬 것이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월트 디즈니의 신조는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영화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돈을 번다’였다. 그의 철학은 전성기 때의 디즈니와 과거 명성과 영광을 모두 잃어버린 디즈니 간의 차이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는 픽사를 비롯한 다른 기업에 그대로 적용된다. 얼핏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수익성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내가 만든 영화들이 상업적으로도 성공하길 바란다. 하지만 돈은 단지 로켓의 연료일 뿐이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이 로켓을 타고 어딘가로 가는 것이다. 따라서 더 많은 연료를 모으는 것 자체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