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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독과 몰입

한국을 이해하는 키워드 ‘워커홀릭’ 몰입과 다른 중독임을 이해하자

김성남 | 142호 (2013년 12월 Issue 1)

 

 

지난 1018일 만화 사이트도그하우스 다이어리가 키워드 하나로 지구촌 각 나라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 화제가 됐다. 예를 들어 미국은 세계에서노벨상 수상자잔디 깎기 기계로 인한 사망자 수에서 세계 최고다. 일본은로봇’, 러시아는라즈베리핵탄두’, 인도는영화’, 북한은검열이라는 키워드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여기서 한국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바로일중독(workaholics)’이었다.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세계에 알려지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일중독은 초고속 경제 성장의 부산물이다. 한국전쟁 직후 국민 1인당 69달러에 불과했던 GDP 2010 2만 달러까지 끌어올렸고, 나라를 휘청거리게 했던 금융위기도 단기간에 극복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제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다. 부자 클럽으로 불리는 OECD 회원국이 된 지도 17년이 지났고 세계적으로 이름값을 인정받는 브랜드와 상품들도 적지 않게 갖게 됐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한류(韓流)는 지구촌 반대편의 이방인들까지 열광시키고 있다. 이런 많은 것들을 이뤄내기 위해 일중독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을까?

 

경제의 외연이 커지고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만큼 보통 사람의 행복도 커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꼭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자신이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해마다 줄어든다. 1인 가구 수가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고 있고(1990 102만 명 → 2011 436만 명), 이혼과 자살, 노령인구 역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한정된 정규직 일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스마트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는 인간 관계가 상당 부분 소셜미디어로 치환되고 있다.

 

과로, 스트레스, 일중독의 포로가 된 우리나라 직장인의 30.4%가 소화기 장애, 29.9%가 스트레스, 11.2%가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다.1  그리고 34 OECD 회원국 중 한국은 최고의 자살률(2010 33.5)과 낮은 행복도(27)를 보이고 있다.

 

어느 나라라도 일중독에 빠진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일중독 판단 기준 자체가 여느 나라보다 높다. 2011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2  일중독을 근로 시간만으로 판정하지는 않지만 이방인들의 눈에 한국 직장인들은 대부분 일중독자로 비춰진다. 더 큰 문제는 장시간 노동과 낮은 몰입이 공존하는 현실이다. 타워스왓슨이 2012년 전 세계 28개 국가에서 실시한 업무 몰입도 조사에서 한국은 응답자 18%만이 지속성 있게 몰입하는 것으로 나타나 일본과 함께 최하위를 기록했다. 일중독은 만연해 있지만 긍정적으로 업무에 몰입하는 근로자는 많지 않은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중독의 메커니즘

 

중독(addiction)은 어떤 물질이나 행동에 대한 갈망이나 탐닉이 의존성(dependence)을 갖는 수준에 도달한 것을 말한다. 의존성이 생긴다는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통제가 어렵고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다는 의미다. 중독의 대상은 마약, 알코올, 니코틴 등과 같이 물질적인 것도 있고, 도박, 인터넷, 쇼핑 등의 경우처럼 행동적인 것도 있다.

 

1954년 캐나다 맥길대의 제임스 올즈(James Olds)와 피터 밀너(Peter Milner)가 실시한 유명한 실험에서 중독의 생리적 메커니즘이 알려졌다. 올즈와 밀너는 먼저 뇌의 변연계(limbic system) 주변 MFB(Median Forebrain Bundle) 영역에 전극을 연결한 실험용 쥐를 우리에 가두고 전극과 연결된 버튼을 제공했다. 그러자 쥐가 미친 듯이 그 버튼을 누르는 것이 확인됐다. 다음에는 같은 조건에 먹을 것이 나오게 하는 버튼을 추가한 후 굶긴 쥐를 가뒀더니 쥐는 먹을 것이 나오는 버튼은 누르지 않고 가벼운 전기 자극이 주어지는 버튼만 계속 눌러대다가 굶어 죽었다. 뒤이은 실험에서는 강한 전류가 흐르는 바닥을 지나야만 전기자극 버튼을 누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쥐들은 발바닥에 가해지는 강한 전기 쇼크를 감수하면서까지 바닥을 건너가서 버튼을 눌러댔다. 어떤 어미 쥐들은 새끼를 돌보는 일조차 팽개치고 버튼 누르기에 매달리기도 했다.

 

이런 결과로부터 올즈와 밀너는 MFB 영역이 특정 자극에 반응해 쾌감을 느끼는 부위라고 추론, 이 영역을 쾌감중추(pleasure center)라고 명명했다. 실제로 이 부위는 도파민(dopamine)이라고 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방출되는 부위인데 같은 포유류인 인간에게도 동일하다. MFB에서의 도파민 방출에 의한 집중, 쾌감, 각성 등 효과는 성관계나 마약 복용 시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이러한 효과가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지기(면역성) 때문에 한동안 자극이 없어지면 불안해 지고(금단 현상), 때문에 끊임없이 쾌락중추를 자극하려고 시도(의존성)한다.

 

찰스 두히그(Charles Duhigg)의 베스트셀러 <습관의 힘(The Power of Habit)>에서는 습관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그림1>과 같이 3단계로 설명한다. , 습관이 이미 형성된 사람에게 어떤 신호(Cue)가 주어지면 자동적으로 준비된 행동(Routine)을 하게 된다. 그것이 성공했을 때 기대했던 보상(Reward)이 주어지면 사람은 만족하게 되고, 이런 사이클은 더욱 강화된다는 것. 이 메커니즘은 워낙 강력해 신호가 주어졌을 때 정해진 행동을 그냥 억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행동을 바꾸는 전략을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저자는 조언한다.3  이 모델은 중독을 설명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의존성이 생긴 중독자에게 공허감, 불안감, 스트레스와 같은 신호(Cue)가 주어지면 자신이 빠져 있는 중독 물질이나 행위에 탐닉하게 되고 그에 따른 쾌감, 편안함, 극치감을 느끼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중독과 몰입의 구분

 

일중독 문제를 직시하려면 먼저 일중독과 몰입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 둘은 어느 정도 연장선상에 있다는 연구 결과도 많아 이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일에 빠져들면 다른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나깨나 그것에만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는 두 가지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몰입은 집중력(attention)의 고조와 대상과 목적에 대한 동일시(identification)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설명된다. 전자에 대해 몰입 이론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몰입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는 상태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때의 몰입은 정신적 각성과 집중이라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다. 후자의 경우는 사명이나 목표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려고 하는 정서나 의지가 행동으로 표출된 상태다. 흔히조직 몰입이라고 할 때는 이런 의미에서 쓰는 말이다. 쥴리 게바우어 등이 쓴 직원 몰입을 다룬 책에서는 몰입된 직원들은조직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고, 정서적으로 조직 및 리더들과 강한 일체감을 느끼며, 자신 및 조직의 성과 제고를 위해 지식과 감정을 쏟아부을 수 있도록 동기가 부여된사람들이라고 설명한다.

 

한편 일중독에 대한 정의는 생리학적, 사회·심리학적, 정치·경제학적등 여러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강조점이 다를 수 있지만4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잃은 채 강박적(compulsive)으로 일에 매달리는 현상으로 이해한다. 일중독은 부분적으로는 몰입과 유사하지만 몇 가지 본질적인 측면에서 다르다:

 

① 목적과 동기의 차이:몰입은 목표나 사명에 대한 동일시에서 출발해 과업에 전념하게 되지만 일중독은 그런 내재적 동기요인보다는 경쟁에서 승리, 외재적 보상/승진, 자기 능력 과시, 해고 또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 등 외재적 요인에 의해 강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② 자기 조절 능력 상실:독일 신경정신과 의사 피터 베르거(Peter Berger)는 일중독자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들을 구분하는 기준은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룰 수있는지로 봤다. 일중독에 빠지면 자기 의지로 일을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어려워진다.

 

③ 삶의 균형 파괴:일중독은 일과 및 개인 생활의 다른 영역과의 균형을 파괴한다. 일 외의 다른 정상적인 생활이 사라지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악화 내지 소원해지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

 

④ 지속가능성 부족:유기체로서의 인간은 본래 균형 속에서 살아갈 때 지속성 있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산다. 그러나 일중독은 건강한 삶의 균형을 깨뜨리기 때문에 지속성이 없다.

 

일중독의 증상과 진단

 

일중독자의 이미지를 잘 그린 영화로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 주연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꼽을 수 있다. 실제 유명 인사를 모델로 한 이 영화에서 패션잡지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분)패션계의 마녀’ ‘미친 사디스트등의 별명으로 불린다. 직원들은 그녀의 완벽주의에 겁 먹고, 그녀가 출근하면 직원들은 업무 상태를 점검하느라 온갖 소동을 겪는다. 한밤중에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일을 지시하는가 하면 남편한테 이혼 통보를 받고도 흔들림 없이 출장 스케줄을 소화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상대를 짓밟음으로써 자기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스타일. 대인 관계 역시 철저하게 자신의 업무에 긍정적인지 여부로만 판단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안드레아(앤 해서웨이 분)는 인턴으로 이 유명 회사에 입사, 미란다의 조수로 일하며 숨막히는 경쟁에서 살아남지만 결국은 자신의 가치와 맞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미련 없이 떠난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일중독자의 모습을 잘 그려냈지만 모든 일중독자가 이런 모습을 띠는 건 아니다. 일중독의 근본 원인은 개인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방식 역시 다양하다. 어떤 이는 두통, 소화불량, 불면증 등 신체적 증상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는 신경정신과까지 가서 일중독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 다른 경우는 남편이 일에 빠져 가정을 소홀히 하는 사이 부인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녀 문제, 이혼 등 가정파탄을 겪은 후에야 뒤늦게 일중독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조직 현실에서는 종종 성과는 뛰어나지만 과도한 야심과 부하 직원들에 대한 가혹한 관리로 임원 후보에서 번번이 탈락하는 관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다른 중독과 비교했을 때 일중독은 본인 또는 타인이 알아채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알코올, 마약, 도박과 같은 다른 중독은 본인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일은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지간히 자세히 관찰을 하지 않으면 타인이 판단하기 쉽지 않다. 본인의 경우는 일로 인한 여러 부작용을 느끼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중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가 쉽지 않다.

 

일중독 진단 방법은 여럿 있지만 무난하게 자가 진단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미국 일중독자 협회(Workaholics Anonymous)에서 사용하는 진단지를 소개한다. (‘미국 일중독자 협회의 20가지 증상 진단참조.)

 



 

1.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들뜬다.

2.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가도 일만 시작하면 에너지가 샘솟는 것 같다.

3. 취침 전, 주말, 휴가 때까지 일거리를 가지고 간다.

4.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일이고, 대화도 주로 업무에 관련한 것이다.

5. 실시간 기준으로 주 40시간 이상 일한다.

6. 취미활동도 돈 되는 일로 만들려고 한다.

7. 업무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지려 한다.

8. 일로 인해 약속 시간을 많이 어겨 가족이나 친구가 포기했을 정도다.

9. 내가 직접 안 하면 문제가 생길까 봐 몇 번이고 추가로 확인한다.

10 . 과업을 완료하느라 마지막에 서두른다.

11. 하고 있는 일이 마음에 들면 장시간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12. 일이 아닌 다른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사람들을 보면 견디지 못하겠다.

13.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실직/실패할까 봐 불안하다.

14. 일이 잘 풀릴 때조차도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된다.

15. 노는 것도 이기기 위해 열정적으로 한다.

16. 업무 중 누군가 다른 일을 부탁하면 짜증이 난다.

17. 장시간 근무로 인해 가족이나 지인 등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다.

18. 운전할 때, 잠자리에 들 때, 남의 얘기를 들을 때 등 시도 때도 없이 일에 대해 생각한다.

19. 밥 먹으면서 뭔가를 읽거나 일 처리를 한다.

20. 돈만 많이 벌면 인생의 문제 대부분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해당하는 항목이 3개 이상이면 일중독일 가능성이 높음

 

일중독의 원인 및 유형

 

일중독의 원인은 개인적 요인과 사회/환경적 요인으로 구분하고 개인적 요인은 다시 성장 과정과 성격 측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성장 과정 측면을 보면 어려서부터 실패를 모르고 칭찬만 받고 자란 사람 중에 성공 중독 또는 강박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성장기의 실패, 좌절, 불우한 가정 현실로 인한 굴욕감, 열등감, 좌절감의 탈출구를 일에서 찾는 경우도 있다. 성격적 측면에서 일중독이 되기 쉬운 요인은 소심함, 완벽주의, 지나친 승부욕, 자기확신 부족 또는 과다 등이 있다. 그리고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는회복탄력성(resilience)’도 중요한 개인적 요인이다. 중독은 보통 뇌의 도파민 시스템이 스트레스에 반응할 때 강화된다. 스트레스는 이상과 현실의 격차, 좌절이나 실패의 경험, 복잡하고 어려운 대인관계, 금전적인 어려움 등 다양한 곳에서 올 수 있는데 긍정심리학의5  주장은 스트레스에 대한 사람의 태도와 대응방법 차이가 지적 능력, 사회적 성공, 재산/소득 등보다 주관적 행복감에 훨씬 크게 좌우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 내성(耐性)이 높은, 즉 회복력(reslience)이 강한 사람들은 같은 스트레스 유발 상황에서도 이를 일중독이 아닌 다른 건전한 방식으로 극복할 수 있다.6

 

사회/환경적 요인은 개인의 노력으로 바꾸기 어렵고 일중독에 미치는 영향이 직접적이라기보다 맥락적이라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최소한 어떤 요인이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하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경쟁불안이다. 경기 불황, 고용 불안, 중산층 와해, 은퇴 후 걱정은 우리들로부터 가족의 사랑, 자기 성취의 즐거움, 인간미, 소통 등의 가치를 앗아갔다. 일자리는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인식된다.7  그 자리를 공허함이 채우고 고통스런 상황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리는 일중독에 빠져든다.

 

부모를 대신해 성공을 향한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아이들은 하루 15시간씩 학교와 학원을 전전(輾轉)한다. 이렇게 하루 15시간씩 입시 공부를 하는 것이 정상으로 인식되는 환경은 일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는(desensitize) 효과가 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스스로 사교육/입시 컨설턴트로 거듭나고,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은 평균 1년 이상 인턴과취준생생활 끝에 겨우 직장을 구한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는 성과주의와 차등화에 기반해 끊임없는 경쟁을 강요 받는다. 평균수명은 빠르게 늘어나고 은퇴 준비는 마땅치 않은데 후배들은 치고 올라오고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는 중년들은 책상 다리라도 붙들고 다만 몇 년이라도 더 버티고 싶은 심정이다.8  이러한 성공과 생존의 구도는 일중독이 자라나는 토양이다.

 

앞선 내용에서 일중독의 증상에 개인차가 있다고 했지만 이런 차이는 어느 정도 유형화가 가능하다. 대표적으로 <워커홀리즘: 책상에 묶인 마음(Chained to the Desk)>을 저술한 브라이언 로빈슨(Bryan E. Robinson ) 박사는 일중독의 네 가지 유형을 제시했다. ( 1)

 

 

일중독의 폐해

 

일중독의 폐해는 다양하다. 신체적 측면에서 보면 무리한 업무로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 고혈압,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병이 생길 수 있다. 일 핑계로 식사를 거르는 일이 잦아 소화기 계통 질병도 생기고 위염 발생률도 높다. 대부분 시간을 앉은 채 보내다 보니 운동 부족과 대사증후군 위험도 문제다. 2006년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연구에 따르면 일중독자들의 절반이 운동 부족, 3분의 2가 수면부족이고 적게 먹고도 살은 더 찌는 것으로 나타났다. 50시간 이상 일하면 고혈압에 걸릴 위험이 29%로 심장병이나 뇌졸중 고위험군이 된다. 60시간 이상 일하면 40시간 일하는 사람들 대비 심장마비 위험이 두 배가 된다는 것이 2002년 일본에서의 연구 결과다.

 

가장 극단적인 결과는 과로사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의하면 2006년부터 5년간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 과로사 사망자가 1572명으로9  한 해 평균 314명꼴이다. 이는 산재 신청자 중 근로복지공단이 승인한 것만 포함하므로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자살 또한 일중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2011년 한 해 우리나라의 자살 사망자는 15905(하루 평균 43.6)이며 지난 10년간 약 120% 증가한 수치다. 10만 명당 연간 자살자는 하루 평균 33.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OECD 평균 12.9). 모든 가치를 일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성향상, 일이 줄거나 없어질 때 급격한 우울증에 빠지고 이것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

 

탈진도 문제다. 탈진(burnout)은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허버트 프루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 1974년 처음 사용한 용어로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 정서적으로 소모돼 정상적인 생활이나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탈진의 증상은 피로 호소, 무기력증, 질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 외에도 자기 혐오, 이인성(離人性) 장애(depersonalization disorder), 비관주의 등이다. 탈진된 직원은 몰입도와 생산성이 떨어지고 비윤리적 행동을 하기 쉬우며 자신이 감내하는 고통을 금전적으로라도 보상받기를 바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업무량 외에도 낮은 업무 가치, 권한/자율성 부족, 불공정한 처우, 개인 희생 강요 등도 탈진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다.10

 

지식노동자에게는 창의성 저하도 문제다. 일중독은 신체와 뇌를 혹사시켜 집중의 질을 떨어뜨리고, 일 외의 신선한 자극이나 여유가 없어 터널비전(turnel vision)을 형성, 의외의 발상이 필요한 문제 해결이 어려워진다. 이와 관련, 1945년 심리학자 칼 던커(Karl Duncker)가 고안한촛불 문제(candle problem)’를 보자.11  실험 과제는 성냥, 압정 한 상자, 양초를 주고 촛농이 바닥에 떨어지지 않도록 벽에 고정시키는 법을 빨리 찾는 것. 압정을 덜어낸 상자를 이용해 초를 세운다는 생각만 하면 어렵지 않게 풀 수 있는 과제다.(아래 그림 참조) 하지만 상당한 금전적 보상(외재적 동기요인)을 제시 받은 그룹은 대조군보다 훨씬 문제 해결 확률이 낮고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외재적 동기요인에 빠져 있는 일중독 직원들은 창의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런데도 남들보다 낳은 결과를 내려고 시지프스의 저주와도 같은 고된 노동을 자처한다.

 

일중독의 또 다른 해악은 알코올, 음란물, 인터넷, 게임 등 다른 종류의 중독으로 확산(spillover)이다. 중독 상태에서 느끼는 쾌감은 중독 대상이 달라져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 외에 별다른 취미가 없고 타인과의 친분이 적기 때문에 주로 혼자 할 수 있는오타쿠활동에 빠져들 수 있다. 또 중년 이후의 남성에서는 경력상의 좌절이나 실직 등으로 더 이상 일을 통한 위안을 받지 못할 경우 일중독을 통해 느꼈던 만족을 다른 대상으로부터 벌충하기 위해 매우 심한 중독에 빠져든다.12

 

중독의 행동적 특성상 악영향은 개인에 그치지 않고 직장 내 다른 구성원들에까지 미친다.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 우월감이13  강하고 동료를 무시하며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것도 정당화해 팀워크를 해친다. 리더의 역할은 팀이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돕고 동기 부여하는 것이지만 일중독 상사는 세세한 것까지 직접 챙길 뿐 아니라 부서원을 희생시켜 자기 성과를 달성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 잣대로 부하의 성과를 평가절하해 부하들을 탈진시킨다. 자의식(ego)이 지나치고 공감능력(empathy)은 부족한 이런 사람들에게 친구가 남아 있을 리도 없다. 그럴수록 이들은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일에 빠져들고 인간 관계는 더욱 나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일중독은 흔히 가족들의 마음까지 멍들게 한다. 남편이 일에만 매달려 있으면 아내는 애정결핍과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허전한 마음을 쇼핑이나 자식공부 등에 매달린다. 아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남편의 빈자리를 다른 남자로부터 찾아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이 지경이니 자식들이 온전할 리 없다. 인터넷, 게임, , 담배로 시작해서 비행 청소년의 길로 접어들기 십상이다. 이렇듯 심한 케이스의 일중독은 가장이 무너지고, 아내가 무너지고, 그 다음은 자식이 무너지고, 마침내 가정 전체가 공중 분해돼 버리는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고몰입과 고성과의 상관관계

 

일중독의 경우와는 달리 건전한 몰입은 개인 및 조직 성과를 올려준다. 일반적으로 직무 또는 조직에 몰입돼 있는 직원들은 몇 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1) 회사의 목표와 자기 목표를 동일시하고 회사의 성공을 진심으로 원한다 (2) 자기가 하는 일과 동료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3) 외부에 자기 회사에 대해 좋게 얘기하고 친한 사람에게도 입사를 권유한다 (4) 회사를 떠날 생각이 없다 (5)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좋아서 열심히 일한다 (6) 현재 하는 일에서 자기 기량을 십분 발휘하고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 등이다.

 

구성원 몰입이 조직 성과 향상의 주요 동인이라는 점은 많은 연구를 통해 검증됐다. 타워스왓슨의 2006년 연구에 따르면 조직 몰입도가 높은 기업들(고몰입군)의 재무성과가 저몰입군의 평균을 월등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12개월 영업이익 증감 비율이 고몰입군은 19.2% 증가할 때 저몰입군은 32.7% 하락했다. 2013년 타워스왓슨의글로벌 고성과기업군리스트에 포함된 26개 기업은 높은 몰입도 수준을 보이면서 재무적으로도 산업 평균을 의미 있게 상회한다. 예를 들어 산업 평균보다 자기자본수익률(Return on Equity)이 산업 평균 대비 20%, 매출총이익(Gross Profit Margin) 15.5%, 3년 매출 성장률이 2.3% 더 높다. <그림 2>는 같은 1000달러를 2002년 이들글로벌 고성과기업군에 투자했을 경우 S&P 및 다우존스 평균과 비교해 2배 이상의 수익을 얻을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조직 몰입 개념의 변천과 지속적 몰입(Sustainable Engagement)

 

조직 몰입의 개념은 사실 꾸준히 진화, 발전해 왔다. (그림 3) 최초에는 단순히 근무여건에 대한 만족도를 측정했다. 주로 급여/복리 등 위생요인, 기본적인 근무 환경 관련 만족도가 관심사였다. 그러다가 평생직장의 신화가 깨지고 인적 자원의 전략적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구성원들이 쉽게 이직하지 않고 계속 근무하고 싶은 일터를 만든다는 개념이 대두된다. 다음에는 그 개념이 좀 더 구체화되면서 조직 목적, 가치에 대한 일체감 및 자발적 공헌의지 및 실천 여부가 중시된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조직몰입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글로벌 선진 기업에서는 몰입에지속성의 개념을 더해서 보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과거의 업무 몰입(engagement) 개념이 조직을 위해 구성원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이제는 구성원들이 일터에서 누릴 수 있는 부분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여기에는 구성원들의 신체적, 정신적 측면의 건강과 웰빙, 좋은 근무 여건 및 효과적인 업무 지원 시스템 등이 모두 포함된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이 제대로 갖춰진 기업들에서 조직 성과가 의미 있는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즉 전통적 개념의 몰입(Engagement) 결과가 높은 기업과 여기에 에너지(Engery), 업무 지원 시스템(Enablement) 측면까지 잘 갖춰진 기업 간에도 뚜렷한 재무 성과 차이가 검증됐다. (그림 4)

 

대한민국 일터의 우려할 만한 몰입 수준

 

문제는 한국이다. 타워스왓슨은 격년으로 <글로벌 인적자원 연구(Global Workforce Study)>를 실시한다. 2012년 조사에는 28개 국가가 포함됐는데 한국 직장인 1000명도 설문에 참여했다. 응답자들은 설문 답변 결과에 따라 4가지 몰입유형 가운데 한 가지로 분류됐다. 그 결과, 한국 직장인의 16%만이 지속적 몰입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84%는 긍정적으로 몰입하고 있지 못하다. (그림 5) 이는 글로벌 평균보다 훨씬 떨어지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일본과 비슷한, 최하위권 수준이다.

 

- 우리 조직의 공유가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61% (글로벌 평균 대비 -16%p)

 

- 우리 팀(단위 조직)은 효과적으로 운영된다. 43% (글로벌 평균 대비 -17%p)

 

- 업무 수행에 곤란할 정도의 장애요인은 없다. 34% (글로벌 평균 대비 -20%p)

 

- 나는 건강상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 22% (글로벌 평균의 3배 이상)

 

- 건강상의 이유로 직장에서의 생산성 저하를 경험했다. 33% (글로벌 평균 대비 +23%p)

 

- 우리 회사는 직원 건강과 웰빙을 위한 제도를 운영한다. 29% (글로벌 평균 -12%p)

 

- 직장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주 힘들다. 51% (글로벌 평균 +13%p)

 

- 회사가 나에게 기대하는 업무량은 적절하다. 38% (글로벌 평균 -16%p)

 

- 우리 회사의 근무제도는 나의 개인적 필요를 충족할 만큼 유연하다. 32% (글로벌 평균 -19%p)

 

이상의 내용을 종합한다면 몇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 대한민국 직장인들의 업무시간은 세계 최장이지만 몰입의 질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2) 이는 조직 관점에서는 생산성을 낮추고 개인 관점에서는 행복 수준을 낮춘다. (3) 따라서 업무 시간은 줄이면서 몰입의 질은 높이는 혁신이 필요하다. (4) 이런 과정은 개인 차원에서는 일중독을 없애고, 삶의 질을 높이며, 행복한 가정을 가져다주고 (5) 조직 차원에서는 생산성, 창의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로 나타날 것이다.

 

 

일중독 탈출, 인식 전환에서 시작

 

필자는 일중독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사회적 맥락과 거대한 자본주의 시스템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책임의 원인을 자기 안에서 찾을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고 믿는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에 빠진 이유는 열 가지도 더 되겠지만 남 탓만 하면서 어떻게 어려운 중독을 극복하겠는가? 일중독 문제도 다르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가 일중독이라는 사실을 잘 모른다. 습관은 오랜 세월을 통해 형성되므로 왜 애초에 그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일중독은 아직까지 공식적인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으며 마땅한 치료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모든 중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중독의 극복도 우선 일중독이 치료가 필요한 의존증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스스로 일중독에 대한 인식 및 극복 의지가 확고하다는 전제하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적용할 수 있다.

 

우선 업무 패턴을 조절해야 한다. 일중독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긴 업무 시간보다 더 문제는 시간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무작정 줄이려 하기보다는 점차 시간조절 능력을 키워야 한다. 첫걸음은 일을 집에까지 싸가지고 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 저녁과 주말에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것이 정착된 다음에는 업무량 및 소요 시간을 미리 정하고 그 시간 안에 집중해서 끝내는 습관을 들이고, 그 다음으로 퇴근 시간 및 주당 근무 시간을 점차 줄인다.

 

, 근무 시간 중에 신체적/정신적 에너지 레벨을 회복,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체의 호르몬, 포도당, 혈압 수준은 약 90분 주기로 떨어진다고 한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리프레시를 해주지 않으면 에너지 수준과 집중력, 나아가 생산성이 떨어진다. 잠깐 일어나서 기지개를 켠다든지, 차 한 잔, 가벼운 스낵, 대화를 통한 기분 전환 등이 모두 도움이 된다. 그리고 e메일에 수시로 대응하기보다는 하루 2∼3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만 처리하고, 업무 시간을 1∼2시간 정도의 덩어리로 분할해 집중해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휴가도 미리 계획해 쓸 필요가 있다.

 

취미와 여가 활동 갖기도 필요하다. 일중독인 사람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공백이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은 공허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공허감을 건전한 방법으로 해소할 수 있는 취미, 여가가 필요하다. 주의할 것은 심지어 취미생활도 일처럼 하는 경우다. 취미로외국어 학습’ ‘컴퓨터 학원 다니기등 업무와 연장선상의 것을 선택한다든지, 아니면 게임이나 도박과 같이 그 자체로 중독성이 있는 다른 활동, 경쟁심리를 충족하기 위한 지나치게 자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취미는 일과는 관련이 없고 즐기면서 릴랙스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정신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운동이나 음악, 신체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그림이나 영화를 즐기는 것이 좋은 예다. 유명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은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에서내가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여행을 하거나 예술작품을 통해 세상을 여행할 것을 권하기도 했다.

 

충분한 수면과 세로토닌을 활성화하는 생활 습관도 중요하다. 세로토닌은 다른 신경체계를 조절하며 전체적인 의식 수준, 기분, 식욕, 수면 등 건강상태를 조절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충동적 행동(주로 남성) 또는 우울증(주로 여성)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중독 완화를 위해서도 적정 수준의 세로토닌 레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균형 잡힌 식사(아침 식사 필수), 음식을 천천히 잘 씹어 먹기14 , 가벼운 운동(특히 30분 정도의 걷기), 일광욕, 기분 좋게 큰 소리로 웃기, 명상이나 기도하기 등을 실천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수면은 재충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낭비되는 시간이 아니라 낮 동안의 경험, 정보를 기억 속에서 통합, 강화하는 데 꼭 필요한 시간이다. 잠의 총량은 줄일 수 없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지나친 과로와 야근은 결국은 잠 폭탄으로 이어지며 이에 대한 죄책감으로 또다시 일중독이 심해지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자기 성찰 및 주변 도움을 통한 스트레스 원인 해결도 필요하다. <일중독 벗어나기>의 저자 강수돌 교수는 일중독을우리 삶의 내면이 공허할 때 허기를 일(성과)로 채우려는질병의 일종이라고 얘기한다. 모든 중독은 어떤 근원적 원인 때문에 시작된다. 구체적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공통점은 모두 스트레스 유발 요인이라는 점이다. 만약 그런 요인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태라면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중독 증상이 재발될 수 있다. 주로 일중독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로는 경제력에 대해 강박관념,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는 성향, 배우자나 삶의 다른 측면의 스트레스 등이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해 잘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일중독은 본인의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우며 다른 사람의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는 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이 필요한데 난관에 부딪칠 때 격려와 응원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으면 이런 믿음이 강화되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는 사람들이 그룹 프로그램을 통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경우 성공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은 증명된 사실이다.15

 

조직 차원의 여건 조성

 

일중독에서 벗어날 책임은 일차적으로 개인에게 있지만 직장에서도 일중독은 경계하면서 건전하고 지속성 있는 몰입은 높일 수 있는 여건 조성 노력 및 지원이 필요하다.

 

 

1. 리더들의 모범

 

임원, 팀장들은 조직 분위기를 세팅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이 먼저 모범을 보이지 않는다면 변화가 어렵다. 문제는 리더들 스스로부터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혹독한 과정을 거쳤고 그 결과 일중독적 성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원 및 중간관리자들 중에 일중독자가 없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자신이 젊었을 때 얼마나 일을 많이 했는지를 강조하며 은연중에 일중독을 미화한다면 직원들도 자연스레 이를 따라 할 수 있다.

 

직원들의 몰입을 높이면서 건강 및 일과 삶의 균형까지 챙기려면 리더들은 어떤 모범을 보여야 할까?

 

(1) 직원들보다 먼저 퇴근 - 그래야 직원들도 눈치 안 보고 편히 퇴근한다. 젊은 직장인들은 눈치 안 보고 퇴근하는 경우도 많지만 30대 중반 넘은 직원들 중 상사가 남아 있는데 먼저 퇴근하는 간 큰 직원은 별로 없다.

 

(2) 업무 자율권 부여 - 너무 디테일하게 챙기면 중요하지 않은 일도 완벽하게 처리하려고 두 배, 세 배 시간을 낭비하며 야근을 하게 된다.

 

(3) 솔선하여 휴가 다녀오기 -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휴가를 다녀오는 것은 재충전에 큰 도움이 된다. 임원, 팀장이 먼저 2주씩 ‘big break’를 다녀오면 직원들도 따라 하게 된다.

 

(4) 직원에 대한 관심과 배려 - 업무, 생활, 건강상 어려움은 없는지 종종 확인한다. 저녁이나 주말 시간에 업무로 연락하는 일은 없도록 한다. 잘한 일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칭찬한다.

 

(5) 충분한 역량 개발 기회 제공 - 업무 관련 교육, 역량이 뛰어난 선배사원을 통한 OJT, 동기부여 차원의 코칭 등을 제공한다.

 

리더들이 이런 역할을 잘하려면 몰입 리더십 육성이 우선 필요하다. 실제로 2006 GE는 직원몰입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 강화하기 위해 전체 매니저를 대상으로 2년간 교육을 한 바 있어 국내 기업들에 좋은 참고가 된다. 이 프로그램은 크게 5개 모듈로 구성된다. 직원 알기(Know) - 직원과 관계 형성(Connect) - 코칭하기(Coach) - 권한 위임(Empower) - 직원에게 감사 표하기(Appreciate) 등이다. 5가지 모듈 모두가 부하직원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것에 주목하자.

 

한편 구글에서는 ‘Project Oxygen’이라는 매니저 효과성 진단을 통해 우수한 매니저의 8가지 핵심 스킬들을 도출했다. 여기서도 대부분은 부하직원과의 관계에 관련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우수한 매니저들은 부하의 삶과 경력에 대해 진정 어린 관심을 갖는다. 또 사소한 일까지 미세관리(micro-management)하지 않는다. 부서 목표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모든 부하직원과 11 미팅을 자주한다.

 



2. 스마트워크 환경 조성

 

일을 스마트하게 하는 것도 일중독 위험을 줄이면서 몰입을 높이는 방법이다. 2010년 전후로 우리 사회에도 스마트워크의 바람이 불었다. 자율출퇴근제, 유연시간근무제, 모바일 데스크, 스마트워크 센터, 모바일 워크플레이스, 현장근무제 등 다양한 제도가 도입됐다. 일하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풀어서 언제, 어디서나 일하게 하는 것이 주된 초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시간, 장소 측면에만 너무 집중하면 출퇴근 시간은 줄겠지만 전체적인 근무시간을 늘려 일중독을 강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오히려 일과 관련한 투입(input)과 산출(output)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2)

 

일을 스마트하게 한다는 것은 적은 투입(input)으로 더 좋은 산출(output)을 얻어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핵심이 아니고 산출물에 기여하지 않는 낭비성 업무는 줄여야 한다. 그래야 스마트워크도 살고 몰입도 높이고 일중독도 낮출 수 있다. 이를 위한 네 가지 키워드들을 살펴보자.

 

(1) Perspective: 일의 목적과 맥락에 대한 정확한 관점이 필요하다 -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급하고 중요한 일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리더들은 시킨 일의 진도 체크보다는 관점에 대한 대화를 부하들과 많이 해야 한다.

 

(2) Mastery: 탁월한 업무 처리를 위한 스킬을 연마해야 한다 - 직원들이 눈앞의 일 처리에 모든 시간을 쓰지 말고 학습과 스킬 배양에도 5∼10% 정도의 시간을 쓰도록 해야 한다.

 

(3) Focus: 집중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하버드대와 MIT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들의 인지능력에 가장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업무 중간의 각종 방해요인(distractions and interruptions)들이라고 한다. 집중해서 처리해야 할 과제가 있을 때는 방해 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집중근무 시간대, 집중근무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맞춤형 모바일 잡지 앱을 개발한 플립보드사는 직원이 헤드폰을 끼면 아무도 말을 걸면 안 되는 룰이 있다. 또 무분별한 전체 e메일 발송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4) 협업(collaboration)과 네트워킹(networking)을 장려해야 한다 - 혼자서 모든 일을 A에서 Z까지 챙기는 식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진다. 동료와 공유하고, 정보/아이디어를 얻고, 분담/조율하는 것이 필수. 회사 안팎으로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영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고성과 기업 직원들이 보통 기업들보다 14% 더 많은 시간을 협업하는 데 쓰고 있고, 협업을 잘하는 것이 업무 성공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2배나 높다고 한다.

 

3. 주기적인 구성원 목소리(VOE) 파악

 

조직 문화가 건강하면 일중독이 자라나기 어렵고 자연스럽게 몰입환경이 조성된다. 하지만 겉으로 봐서는 조직 문화 상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서 측정과 진단이 필요하다. 필자가 접해 본 호주, 싱가포르, 미국 등의 많은 글로벌 기업과 공공기관들은 10, 20년 이상 꾸준히 직원 설문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내에서도 포스코와 아모레퍼시픽이 2003년부터 직원설문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삼성은 SCI라고 하는 자체 모델을 만들어 관계사를 진단 및 지원해 오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도 5가지 핵심가치 내재화 수준 및 몰입도를 진단하는 설문을 본사, 계열사, 해외법인까지 포함해 수년째 진행해 오고 있다.

 

직원 설문을 통해 조직진단을 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유의사항이 있다.

 

(1) 익명성에 기반한 객관적 설문 - 구성원의 진실한 목소리는 아프다. 그래서 종종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무조건 긍정응답을 하도록 유도하는 중간관리자들이 있다. 이래서는 정확한 이슈를 알 수 없다. 특히, 설문 결과로 부서별 줄 세우기를 하는 경우에 이럴 위험성이 높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익명성 보장, 신중한 결과 공유가 필수다.

 

(2) 조직 특성에 맞는 몰입 동인 파악 - 몰입을 높이는 동인은 회사마다 다르다. 인구통계학적 요인, 업의 특성, 현재 사업 상황 등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회사 안의 부서나 계층 간에도 몰입 동인이 다를 수 있다. 이런 것을 따지지 않고 무작정 동종사나 선진 유수 기업이 하는 것을 따라 하면 실패의 위험이 있다. 적절한 통계 분석을 통해 특히 더 중요한 몰입 동인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3) 몰입과 웰빙의 균형 - 경영을 잘해서 몰입 수준이 높아지면 몇 년이 지나도 잘 바뀌지 않는다. 성과가 좋고 성숙한 기업들에서는 몰입도가 연간 1∼3% 정도에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만약 큰 폭으로 몰입도가 바뀔 때는 지속성을 의심해 봐야 한다. 그런 이유에서 몰입과 함께 웰빙 측면도 함께 진단하는 것이 좋다. 웰빙은 몰입에 지속성을 더하기 때문이다.

 

(4) 현업 리더 책임하의 몰입도 제고 - 몰입을 높이는 것은 CEO의 과제이며 모든 현업 리더들의 책임이다. 몰입은 HR 부서가 해 주는 것이 아니다. HR은 몰입에 필요한 제도적 측면을 관리하고 경우에 따라 설문을 관리/운영할 책임은 있지만 그 다음은 현업의 리더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4. 눈먼 성과주의 지양

 

1990년대 이후성과주의는 국내 HR 분야에서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쓰여왔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글로벌 경쟁과 고용불안 속에서 국내 거의 모든 대기업 HR전략 방향에는 성과주의가 필수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것도 지나치면 독이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성과에 기반한 조건부 보상이 일에 대한 내적인 동기를 깎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리고성과를 내면 돈을 더 주겠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일중독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하는 제도적 장치라는 측면도 강하다.

 

눈먼 성과주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누는 데 집중한다. 조직 전체의 성과를 높이려면 당연히 조직 내, 조직 간 팀워크가 필요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줄 세우기 일변도의 평가와 인사를 통해 내부 경쟁을 심화시킨다. 둘째, 과정을 무시하고 오직 결과만을 중시한다. 업무 수행 여건이나 회사의 지원 등은 고려하지 않고 오직 결과만 따지는 냉혹한 성과주의는열심히 해 봤자 소용 없다는 식의 냉소주의와 회사의 시스템을 교묘하게 피해나가려는 꼼수(지능적으로 목표 줄여 잡기 등)를 키운다. 셋째, 육성 없는 평가와 근거 없는 상대서열화의 신봉이다. 많은 기업이 직원 평가 시 10:20:60:10의 비율을 강제 배분하는 시스템을 사용한다. 모든 인간이 10명 이상 모이면 자동으로 DNA가 바뀌어 그 비율대로 성과가 나뉜다는 말인가? 어차피 많은 기업들은 최고의 인재만 가려 뽑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상대서열화에 목을 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가 결과의 상대서열화와 관련해 지난 1112일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인사담당 수석 부사장이 전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Stack Ranking’이라고 불리는 성과등급 강제배분 제도를 없애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 배경 중 하나가 2012 8월 미국의 <배니티페어지>에 실린 장편의 글이다.16  이 글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지난 10년간 애플, 페이스북, 구글 등 IT 업계의 다른 회사들에 밀려 기업 가치가 반토막이 났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성과등급 시스템을 그 원인 중 하나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 기업생산성연구소(The Institute of Corporate Productivity) 조사에 따르면 실제 미국에서는 성과등급 강제배분 제도가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 특히 고성과 기업군에서는 이 제도를 운영하는 기업이 2년 전 대비 20%나 줄어 2011년에 불과 5% 정도에서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학자들의 경험적 연구도 개인성과는 정규표준분포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멱함수분포 특성에 가깝다는 내용들이 많다.

 

5. 직원 니즈 중심의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

 

구성원 개개인이 스스로 일중독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 프로그램도 도움이 된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카운슬링 도입 및 활성화다. 직속상사가 평소 관찰을 통해 징후를 포착한다면 면담, 스트레스 관리 지원 등 적절한 개입을 할 필요가 있다. 직속 상사와의 대화가 불편할 경우를 감안, 전문 카운슬러를 사내에 상주시키거나 외부로 연결해 익명으로 일중독, 탈진 등 이슈와 관련해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도 다수 기업에서 시도되고 있다.

 

또 주로 역량 및 경력 개발 차원에서 이뤄지는 업무 조정(work adjustment)도 일중독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나친 업무나 프로젝트가 한 사람에게 부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포스코는비쥬얼 플래닝을 활용해 업무 목표, 현황, 진척도 등이 일목요연하게 공유 및 비교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특정 개인에게 많은 업무가 쏠리는 것이 방지될 수 있다.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는 매달 인사위원회를 통해 직무순환 대상자를 선정하고 있으며 직원의 약 30% 정도는 타 직무를 경험한다. 익숙한 자기 분야에서 벗어나 다양한 영역으로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일중독을 완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직원들이 당장 눈앞의 업무에만 매몰되지 않고 새롭고 의미 있는 일에 시간을 쓰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M, 구글 등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업무 시간의 일정 비율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고 있다. 정서가 메마르기 쉬운 일터에서 인문학 특강을 여는 것도 국내에서 최근 많이 시도되고 있다. SK그룹 관계사들처럼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을 팀 단위로 실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핵심인재들은 일중독 위험 1순위다. 이들은 대체로 모범생 스타일이라 불만을 잘 표현하지 않고, 회사가 자신에게 거는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며, 반복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둬 스스로도 높은 기대수준을 갖고 있다. 하지만 타워스왓슨 2012년 조사에 따르면 핵심인재의 15%가능하면 현재 조직에 머무르기를 위하지만 2년 이내에 이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54%나는 직장에서의 과도한 스트레스로 자주 힘들다고 응답했다.17  한국에서는 스트레스가 이직의 2번째 요인인 점을 고려할 때 리더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18  따라서 리더들이 핵심인재들에게 업무를 맡길 때는 이미 한계 상황을 넘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핵심인재들은 겉으로는 모든 일과 상황을 잘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한다.

 

 

김성남 타워스왓슨 이사 hotdog.kevin@gmail.com

김성남 이사는 한국외대통번역대학원,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듀폰코리아, 휴잇컨설팅, 머서컨설팅, SK C&C 인력팀 등에서 근무했으며 현재는 타워스왓슨 인사/조직 컨설팅 부문 이사로 재직 중이다.

  • 김성남 김성남 | 칼럼니스트

    필자는 듀폰코리아, SK C&C 등에서 근무했고 머서, 타워스왓슨 등 글로벌 인사/조직 컨설팅사의 컨설턴트로 일했다.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과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미래조직 4.0』을 출간했다.
    hotdog.kev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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