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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도나 켈리 뱁슨대 교수

“군수업체 아이로봇, 청소기 회사로 도약… 획기적 전환 원하면 장기적 안목부터 가져야”

이방실 | 141호 (2013년 11월 Issue 2)

 

 

“사내 기업가정신(corporate entrepreneurship)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사업을 창출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다.”

 

사내 기업가정신 분야 석학인 도나 켈리(Donna Kelley) 미국 뱁슨대(Babson College) 교수는무조건 매출액을 늘려 기업 규모를 키운다거나 혁신을 추구한다고 해서 사내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사업 창출과 혁신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모두 결합돼 있는 게 사내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켈리 교수는 기업가정신 및 사내 기업가정신 분야 석학이다. 기업가정신 관련 국제 비교 연구인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 프로젝트의 총괄 관리기구인 GERA(Global Entrepreneurship Research Association)의 이사회 멤버이기도 하다. 인터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사내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우선 기업가정신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기업가정신의 기본은 신사업 창출(creating new business)이다. 새로운 매출원(new source of revenue) 발굴을 목표로 한다. 여기에 혁신 요소가 결합됐을 때를 사내 기업가정신이라고 한다.

 

생수 사업을 하는 중견 기업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엔 미국에서만 생수를 팔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다른 나라에서도 팔게 됐다. 당연히 매출액이 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도 미국 시장에서 팔던 제품과 똑같은 생수를 판매한다면 단순히 기존 사업을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활동은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생수 회사가 생수를 담는 용기, 용기 뚜껑, 라벨, 이 세 가지를 따로따로 만들지 않고 한 번에 생산해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고, 그로 인해 용기 조달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었다고 가정해 보자. 혁신을 통해 회사의 이익은 늘었을지 모르지만 매출액이 급격하게 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가정신의 주 목표는 이익을 확대하는 게 아니라 성장을 꾀하는 것이다. 비용 절감이 기업가정신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반면, 일반 생수가 아니라 비타민이 첨가된 물을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이어 비타민이 첨가된 주스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에도 성공해 매출액을 늘려간다고 가정하자. 이건 과거의 생수 업체에서 건강음료 회사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런 게 바로 사내 기업가정신이다. , 기존 비즈니스(생수)에 혁신(비타민)을 덧입혀 전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건강음료)를 만들어내는 게 사내 기업가정신의 핵심이다.

 

사내 기업가정신의 유형을 나눠 본다면.

 

크게 기존 역량을 활용해 신사업을 창출하는 유형과 기존 사업 대신 새로운 비즈니스로 재창안(reinvention)하는 유형 두 개로 나눠볼 수 있다. 전자는 기회주도형(opportunity-driven), 후자는 위기주도형(crisis-driven) 사내 기업가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기존 역량을 활용해 신사업 창출에 성공한 대표적 기업으로 아이로봇을 들 수 있다. 이 회사는 원래 한 대에 수백만 달러는 족히 달하는 고가의 군용 로봇 전문 제작 업체였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들에겐룸바라는 이름의 로봇 청소기를 만드는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아이로봇은 군용 로봇 제작을 통해 얻은 탁월한 전문성(기존 역량)을 바탕으로 일반 민간인 대상의 제품을 만들어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유통채널(: 월마트)을 구축해야 했고 소비자 대상 광고를 진행하는 등 과거와는 전혀 다른 역량 개발이 필요했지만 기본적으로 군용 로봇 제작에서 축적했던 기술적 전문성(기존 역량)에 기반해 신사업을 추진했다.

 

반면 몬산토는 화학 업체에서 생명공학 업체로 탈바꿈했다. 주력 시장이 저성장 국면에 처하고 수익성이 점점 압박을 받는 등 위기가 감지되자 아예 생명공학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몬산토처럼 비즈니스를 재창안한 경우에는 대개 기존 역량을 파괴해야만 성공적인 사업 재편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사업 재창안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존 사업을 버리는 과정에서 당장 일자리를 잃게 될 조직 내부 구성원은 물론 주가 하락을 걱정하는 주주, 공급선/유통망 변경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공급자/유통업체 등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반대 역시 잠재워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라 사내 기업가정신의 발현을 위해 요구되는 사항이 달라질 것 같다.

 

기업의 성장 사이클은 크게 창업기, 성장기, 성숙기, 쇠퇴기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초창기는 그 특성상 기업가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모든 것을 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업자를 비롯해 대부분 조직원들이 기업가적으로 행동한다.

 

문제는 성장기에 접어들면서부터 시작된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효율성이 중요해지고 그 과정에서 기업가적 정신이 사라지기 쉽게 된다. 따라서 성장기에는 신사업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확립하거나 참신한 아이디어 발굴을 위한 사내 경진대회를 개최하는 등 기업가적 정신이 조직 전반에 확산될 수 있도록 하는 경영 관행 확립에 주력해야 한다. , 조직의 효율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효율성이 창의성을 뭉개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성숙기를 맞은 기업이 성장의 속도를 늦추지 않으려면 기존 역량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신사업 창출에 힘써야 한다. 이때 리더의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역량이 특히 중요하다. 조직원들의 기업가적 역량이 기업의 전략적 목표와 일치해나갈 수 있도록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마구잡이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게 아니라 초점을 분명히 해 새로운 사업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신사업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제 추진하는 이들이 중간관리자라는 점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핵심 사업을 둘러싼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중간관리자들이다. 이들이 기민하게 외부 환경 변화에 반응해 새로운 사업을 일궈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enabling)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 쇠퇴기에 접어든 기업이 사내 기업가정신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선 최고경영진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쇠퇴기는 저성장 국면이라는 위기 상황을 맞아 조직 재창안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이다. 변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기존 핵심 사업을 버리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조직 내외부의 저항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사업 재창안에 실패해 결국 파산에 이른 코닥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다.

 

사내 기업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적합한 조직 형태가 있나.

 

크게 3M IBM을 비교해 볼 수 있다. 3M은 조직 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새로운 사업 기회 포착에 주력한다. 종업원 전체에게 기업가적 DNA가 흐르고 있기에 가능한 모델이다. 이른바 분산형 접근 방식(distributed approach)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IBM은 전사적 차원(corporate level initiative)에서 신사업을 추진한다. , 대부분 인재들은 현재 주력 사업(Horizon 1)이나 주력사업과 연관성이 높은 신규 사업(Horizon 2)을 추진하지만 일종의 R&D 영역으로서 계속적인 실험과 탐색이 요구되는 혁신적인 사업(Horizon 3)의 경우 기업 차원의 전략 그룹(corporate strategy group)에서 관리해 나간다.

 

3M처럼 별도의 전담 조직 없이 조직 전반적으로 사내 기업가정신 발현을 추진하는 접근법은 점진적 혁신에 적합한 반면 파괴적 혁신을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IBM처럼 기업 차원의 전략 그룹에서 혁신적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 향후 조직 내 주력 사업으로 통합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어떤 접근을 택할 것인가는 기업의 목적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어떤 모형을 택하든 중요한 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대로 평가하고 새로운 시도가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인사 관리 시스템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3M은 승진 심사 평가를 할 때 기업가적 활동에 큰 비중을 두고 조직원들을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관리자들을 평가할 때 현재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가운데 신규 사업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몇 개나 되는지, 각각의 신규 사업 프로젝트는 어느 정도까지 진척돼 있는지, 다른 부서와의 협조는 얼마나 어떻게 이루고 있는지 등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사용한다.

 

신사업을 평가할 때에는 재무적 성과 지표를 함부로 들이대선 안 된다. 적어도 3∼5년 정도 뒤에나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재무적 지표로 성과를 측정하겠다고 할 경우 신사업에 뛰어들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직원들이 장기적인 시각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도록 정성적 평가 지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정성적 평가를 한다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프로젝트 진척도에 따라 중요한 단계(milestone)를 구분해 평가하면 된다. 어떤 프로젝트든 세부 계획을 세우게 마련이고 이 과정에서 단계별 목표를 설정하게 된다. 평가도 그에 맞춰 진행하면 된다. 가령,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경우 3개월 뒤에 예상해 볼 수 있는 결과물은 무엇인가를 프로젝트 리더에게 물어 마일스톤을 세울 수 있다. 당연히 프로젝트별로 마일스톤은 달라진다. 어떤 이에게는 3개월 뒤까지 시장 조사를 끝내는 게 마일스톤이 될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정부의 허가를 받는 게 목표가 될 수도 있다.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시장 수요를 파악하는 것보다 정부의 허가를 받아낼 수 있는지 없는지가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3개월 뒤까지 시제품(prototype)을 제작하는 게 마일스톤이 될 수도 있다. 실제 기술적으로 구현이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중요 판단 요소가 될 수 있어서다. 부하 직원들의 인식 역시 중요한 평가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리더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얼마나 잘 수용하는가,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도록 적절한 코칭을 해 주는가 등에 대한 평가 결과도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사내 기업가정신을 조직 내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최고경영진이 기업가정신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입으로는 사업 구조를 완전히 바꿔버리겠다고 떠들면서 실제로 사업 재창안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이 요구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들이 많다. 장기적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기본 자세도 갖추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신사업은 지금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다. 돈을 빌려 준 바로 다음달부터 원금과 이자를 갚아내라고 닦달하는은행가(banker)’가 아니라 최소 5년은 기다려 주되 그때가 돼서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각오하는벤처캐피털리스트(venture capitalist)’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새로운 시도를 치하하는 승진과 보상 시스템을 통해 기업가정신을 고양해 나가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감수하는 도전적 인재에게 적절한 보상을 줌으로써 안전한 길만 따라가서는 승진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유연한 조직 구조를 통해 조직의 적응력을 높여야 한다. 흔히 많은 기업들이 3M식의 조직 문화를 우리 조직에도 도입하겠다고 섣불리 모방에 나서곤 하는데 사실 3M 방식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조직 구성원 하나하나가 모두 기업가적인 기질을 갖도록 만들기란 매우 어렵고 사실 모든 조직에서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산업 특성에 따라, 기업이 처한 상황과 목표에 따라 사내 기업가정신이 발현되는 최적의 모델은 다 달라진다. 따라서 섣불리 다른 기업의 모델을 모방하려 하기보다는 스스로 어떠한 조직 구조와 프로세스가 가장 적합할지 다양하게 실험해 나가면서 조직의 적응력과 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대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 후 2∼3년이 지나도 그 체제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변화를 시도한 노력 그 자체를 폄하하는 경우가 있다.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실패에서도 배울 점이 있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고 가급적빨리 실패하는시스템을 만들되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을 미래의 성공을 위한 자산으로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웰슬리(Wellesley)= 이방실 기업가정신센터장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smi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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