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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상사, 그분은 자기입장이 없어요

전재영 | 9호 (2008년 5월 Issue 2)
제가 일하는 부서에는 ‘투명인간’이라 불리는 상사가 있습니다. 중요한 의사결정 상황만 되면 입을 다물어버려 팀원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팀장이 이러니 정말 속이 터집니다. 특히 제가 중간 관리자이다 보니 팀장의 의견과 팀원들의 의견을 모두 들어 추진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팀원들의 의견은 대충 정리하면 되는데, 팀장은 도통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얘기하지 않으니 난감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한번은 용기를 내서 “팀장님, 의견을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고 정중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침묵을 깨고 나온 말은 고작 “글쎄, 잘 모르겠네. 실무자인 당신이 더 잘 아는 거 아냐?”하고 떠넘기는 식이었습니다.
 
팀장이 이렇다 보니 제가 어떤 일을 추진하려고만 하면, 팀원들은 “정작 팀장님은 가만히 있는데 왜 과장님이 나서세요?”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니 제 주장이 팀원들에게 먹히겠습니까? 중간에 낀 저만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후배라면 호되게 야단이라도 칠 텐데 상사에게 그럴 수도 없구요.
 
팀원들은 자기 할 일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꼭 저한테 들고 와서 해결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이때도 팀장의 행동은 가관입니다. 이제껏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문제가 터진 후에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며 마치 남의 일처럼 얘기합니다. 팀장도 아닌 제가 모든 책임을 혼자 떠안는 것 같아 참 억울합니다. 왜 저만 이렇게 손해보는 장사를 해야 하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ID: 답답남)
 
상대가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을 때 그 마음을 완벽하게 해독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달을 정복한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정복하기 어렵고 알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 마음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조직 내에서 상사가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을 때 아랫사람은 안개 속을 헤매듯 혼란스럽고 난감할 겁니다.
 
엄한 상사 밑에서는 고생스럽기는 해도 힘들다고 투정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동정과 연민이라도 얻지요. 하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사는 그 침묵을 잘못 해석하기라도 하면 자신만 나쁜 사람으로 몰릴 수 있으니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일 겁니다.
 
이것이 바로 침묵을 무기로 삼는 상사들이 노리는 결과입니다. 이를 역으로 이해하면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우선 침묵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모든 침묵이 다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말을 아껴 상대를 배려해주고자 침묵을 사용하는 긍정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위의 상사처럼 아랫사람이 의견피력을 요청했는데도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면피성 침묵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괜히 자기 의견을 얘기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거나, 책임질 일을 만들기 싫어 차라리 우아하게 뒤로 물러나 있겠다는 속셈입니다. 여기에 말려들면 답답남 님처럼 마음만 조급해지고 약이 올라 쩔쩔매는 상황에 휩싸일 겁니다.
그러면 중요한 의사결정을 앞두고 보여주는 상사의 면피성 침묵에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까요?
 
첫째, 공개석상에서 당당히 권한을 위임받으세요.
상사의 침묵은 당사자가 입을 열기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암호와 같습니다. 암호를 풀기 위해 애쓰다보면 정작 당신이 해야 할 업무는 어느새 뒷전으로 밀리고 답답함만 커집니다. 따라서 상사가 보여주는 침묵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데 에너지를 쏟지 말고 현재 당신이 해결해야 할 업무에 초점을 맞추세요.
 
먼저 공개적인 자리에서 당신이 진행하려는 사안에 대한 의사결정의 책임을 완전히 당신에게 위임했음을 상사에게 확인받으세요. 예를 들어 “팀장님께서 이번 사안에 대해 별다른 말씀이 없으니 이번 일은 제게 위임하신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니 이후 일어난 결과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팀원들 앞에서 공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당신이 당당히 권한을 위임받고, 추후 일어난 상황에 대해 책임을 추궁 당하는 억울함을 최소화할 수 있겠지요.
 
둘째, 문서로 우선순위를 정해 당신의 의견을 표현하세요.
의도적으로 의사 표현을 회피하려는 사람에게 똑같이 ‘말’로 승부하는 것은 깨진 독에 물 붓는 일과 같습니다. 말보다 문서를 적극 활용해보세요. 말은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고, 상대방 역시 그 말에 바로바로 반응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서는 상대방에게 잠시 생각할 여유를 주고, 문서라는 자료의 흔적도 남길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 상사가 발뺌할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문서 자료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으면 어떡하느냐고요? 이 경우에도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신이 “그냥 진행해도 괜찮다”는 의미로 이해했음을 상사에게 꼭 확인받으세요.
 
셋째, 상사의 침묵에 스스로 희생양이 되지 마세요.
상사가 침묵으로 일관할 때 대부분의 아랫사람은 일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긴장감을 갖기 쉽습니다. 아랫사람의 이런 태도는 상사의 침묵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빌미로 작용합니다. 이 상황에서 심리적 희생양이 되지 않으려면 상사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여기지 말고 상대적 참고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상사에게 당신이 이용당했다는 억울함을 덜 수 있습니다.
 
넷째, 상사에게 사적 자문 형태로 도움을 구하세요.
상사에 대한 침묵을 당신과의 대결 구도로 여기지 말고 상사에게 권한을 양도하십시오. 예를 들어 “팀장님, 이 사안에 대해 아무 말씀 안 하셨는데 이럴 때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말해보세요. 업무가 아닌 사적 자문 형태로 도움을 요청하면 상사의 반응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사가 침묵하는 의도가 무엇이든 이는 상사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기다림을 요청하는 일입니다. 기다림은 결국 각각에게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비록 인내의 과정은 쓰지만 상대를 포기하지 않고 먼저 당당히 손을 내밀면 당신의 진가가 더욱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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