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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과 조직의 인사 평가 시스템

잭 웰치와 이멜트의 GE, 평가부터 달랐다

이경묵 | 46호 (2009년 12월 Issue 1)
조직 관리의 두 축은 상벌에 의한 관리와 문화에 근거한 관리다. 상벌에 의한 관리는 법가 사상에 근거한 방식으로 조직과 개인의 관계를 정교한 거래로 본다. 구성원에게 해야 할 바람직한 행동, 역량, 성과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에 따른 보상과 벌도 명문화한다. 구성원들이 바람직한 행동을 했는지, 역량을 배양했는지, 성과를 냈는지를 정확하게 측정한 후 보상과 벌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동양에서는 성악설을 주장한 상앙, 순자, 한비자 등이, 서양에서는 경제적 인간관을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나 경영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프레드릭 테일러 등이 이 방식의 사상적 기초를 다져놓았다.
 
 

 
문화에 근거한 관리는 유가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양에서는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가, 서양에서는 미국 경영학자 더글라스 맥그레거나 인간관계론, 조직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이 분야의 사상적 기초를 다졌다. 이 접근법은 조직과 개인의 관계를 가족 구성원과 유사한 관계로 본다. 바람직한 조직 문화를 만들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에 헌신하도록 만드는 게 핵심이다. 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조직원 개인이 열심히 일하고 공헌하는 걸 당연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작은 조직에서는 명시적 평가나 보상 체제 없이 좋은 조직 문화만으로도 기업을 잘 운영할 수 있다. 그러나 거대 조직에서는 상벌에 근거한 관리와 문화에 근거한 관리 방식이 둘 다 필요하다. 그러려면 신뢰성과 타당성이 높은 인사 평가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이 평가를 바탕으로 기업의 성장과 발전에 공헌한 사람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줄 때, 기업 전체의 성장 및 발전 가능성이 높아지고, 바람직한 조직 문화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신뢰성과 타당성이 높은 인사 평가 시스템이야말로 조직의 비전 성취, 전략 실행, 바람직한 조직 문화 구축에 가장 필요한 도구다.
 
 
고성과 조직을 위한 인사 평가 시스템
고성과 조직을 만들려면 기업이 추구하는 비전, 문화 전략을 인사 평가 시스템에 철저히 반영해야 한다. 무조건 원대한 비전, 이상적인 조직 문화, 멋진 성장 전략을 설정하라는 뜻이 아니다. 조직의 각 부문, 팀, 개인들이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에 맞는 행동을 하고, 역량을 쌓고, 성과를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의 비전, 문화, 전략의 실행을 위해 조직의 각 부문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설정하고, 각 부문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위 부문이나 팀, 개별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직의 각 구성 단위가 각각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는지를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해야 한다. 그래야 말단 직원들의 이해관계, 관리자들의 이해관계, 최고경영자(CEO)의 이해관계, 기업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다. 기업의 모든 구성원이 그 기업이 추구하는 비전, 문화, 전략의 실행을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만 고성과 조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의 인사 평가 시스템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이나 조직 문화가 인사 평가 시스템과 상당한 괴리를 지녔다는 점이다. 이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지를 GE와 시어스 백화점의 사례로 논의해보자.

한국 기업 인사 평가 시스템의 문제점
한국 기업의 인사 평가 시스템은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단기 성과 위주의 평가로 인한 장기 성장 동력의 훼손, 상대 평가로 인한 구성원 간의 과도한 경쟁 유도, 보상 목적의 평가로 인한 평가 결과의 교육 훈련용 활용도 부족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큰 문제점은 앞서 말한 대로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 성장 전략, 구축하고자 하는 문화가 인사 평가 요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위 경영진 또한 회사의 비전이나 조직 문화와 전혀 관계없는 행동들을 많이 한다.
 
삼성그룹은 1993년부터 신경영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때까지 신경영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다. 당시 삼성은 평가와 보상에서 일본식 직능 자격 제도를 바탕으로 한 능력주의를 추구했다. 하지만 이 제도는 신경영이 지향했던 시장선도자 전략, 사업 구조 고도화와 전혀 맞지 않았다. 연봉제, 생산성 격려금, 이익 분배 등의 성과 위주 평가 및 보상 시스템을 도입한 후에야 신경영을 제대로 실천하며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삼성그룹은 이제 창조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 새로운 제품을 가장 먼저 출시하여 시장을 선도해나가는 기업이 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직 삼성의 평가 및 보상 체제에는 창의성, 혁신, 도전 등 창조 경영이 요구하는 핵심 행동, 역량, 성과가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성과 위주 시스템을 도입했지만 아직 단기 목표 달성 여부만 중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고경영자는 창조 경영을 강조하고 있지만, 평가 시스템이 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면 창조 경영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이는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성장 동력을 찾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겠다고 외치는 많은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단기 성과에 치중한 평가를 하고 있다. 바람직한 조직 문화 구축도 마찬가지다. 많은 기업들이 그럴 듯한 비전과 핵심 가치를 설정해놓았지만 임직원을 평가할 때 핵심 가치의 실천 여부를 평가 항목에 제대로 반영한 기업은 거의 보지 못했다. 회사의 핵심 가치가 요구하는 행동을 한 구성원에게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래서야 제대로 된 성장 전략을 실행하고, 새로운 조직 문화를 구축할 수 있겠는가.
 
 
평가 시스템 변경을 통한 GE 전략 실행
평가 시스템의 변경을 통해 새로운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한 GE를 보자. 카리스마 넘치는 잭 웰치 전 회장의 후임자인 제프리 이멜트가 새로운 수장으로 등극하면서 GE는 웰치 시대의 유산과 안녕을 고했다. 인수합병(M&A)을 통한 성장을 지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 및 시장 개척을 통해 연간 8% 이상의 유기적 성장을 한다는 전략을 내놨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고성장 시대가 가고 저성장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에 사업 포트폴리오의 조정보다는 기존 사업의 강화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게 이멜트의 목표였다. 웰치 시대의 화두였던 효율, M&A, 매출 증가가 아닌 혁신, 돌파구, 성장을 새로운 화두로 선택한 셈이다.
 
이멜트는 기업 전략의 변경에 따라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 지표부터 바꿨다. 과거 GE는 CEO의 성과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재무 지표로 매출액, 주당순이익, 총자본이익률 등을 중시했다. 이멜트는 여기에 순현금 흐름과 순이익 등 유기적 성장과 관련이 깊은 항목을 대폭 추가했다. 이 지표의 달성도에 따라 이멜트에 대한 보상도 달라졌다. 다른 임원들의 보상을 좌우하는 평가 지표도 새로운 전략이 요구하는 행동에 연계시켰다.
 
사업 부서도 과감히 정리했다. 이멜트는 자신이 CEO가 되기 전 오랫동안 몸담았던 플라스틱 사업부를 매각했다. 수익은 비교적 많이 났지만 매출액이 늘어나는 사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사업부의 매각은 이멜트 본인과 GE 전체가 새롭게 설정한 목표에 부합하는 행동이었고, 당연히 이멜트는 높은 평가와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GE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가전 사업부의 매각도 시도했다.
 
GE는 2002년에서 2005년까지 300억 달러의 사업을 매각했다. 또 M&A를 위해 650억 달러를 사용했다. 성장이 정체된 사업을 매각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사업을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사업의 지속적 성장과 혁신 역량 강화를 위해 기술, 마케팅 분야에 대규모 투자도 단행했다. 임직원이 회사의 새로운 전략을 효과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평가 및 보상 시스템을 바꿈으로써 임직원들의 행동을 바꾸고, 결과적으로는 개개인과 조직 전체가 많은 혜택을 누린 셈이다.
 
이멜트는 보상뿐 아니라 임원의 임명과 승진을 결정하는 제도도 수정했다. 과거 웰치가 강조했던 효율성을 강조하는 관리형 리더만으로는 유기적 성장을 도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멜트는 성장 리더(growth leader)를 GE가 추구하는 새로운 인재 상으로 삼았다. 전 세계 31만 명의 GE 임직원이 자신이 일하는 사업 부서의 성장을 자신의 개인 미션으로 여기도록 하고, GE의 조직 문화를 위험을 감수하고 기업가 정신이 충만한 문화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GE는 2004년부터 GE의 고위 임원 600명과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는 세계적 기업들의 리더 특성을 조사하여 성장 리더의 5가지 특성을 추출해냈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집중력, 명확하게 생각하는 능력, 상상력, 포용력, 전문성이 바로 이 5가지 특성이다. GE는 2006년부터 이를 관리자의 역량 평가 요소로 활용하면서 승진 때 반영하고 있다. 이멜트는 자신의 시간 중 70%를 성장 리더를 키우는 일에 사용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GE는 2004년 18.6%, 2005년 10.4%, 2006년 10.1%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했다. 전체 이익 중 성장 동력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0년 67%에서 2005년 90%까지 끌어올렸다. 평가, 보상, 승진 시스템의 변경이 GE가 추구하는 새로운 전략의 실행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평가 시스템 변경과 시어즈 백화점의 새로운 조직 문화 구축
시어즈 백화점은 1992년 무려 39억 달러의 적자에 허덕였다. 그러나 구조조정을 통해 불과 1년 뒤인 1993년 7억5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내는 회사로 변신했다. 시어즈 경영진은 지속적으로 이익을 내는 회사가 되려면 조직 문화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업원이 자신의 직무에 만족하고, 회사에 애정을 느끼며, 고객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새로운 조직 문화의 핵심이었다. 종업원-고객-이익의 관련성을 통계 분석한 결과, 종업원이 자신의 직무와 회사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때 고객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많은 고객을 유치해 매출과 이익이 증가한다는 점이 뚜렷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시어즈는 새로운 조직 문화를 뿌리내리려면 우선 관리자들의 행동부터 바꿔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임원 평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변경했다. 평가 요인을 크게 고객에 대한 열정, 종업원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 성과 리더십이라는 3가지로 구분한 후 이 밑에 12개의 리더십 항목을 추가했다. 모든 관리자에게 이를 바탕으로 한 360도 다면 평가를 시행하고 이를 승진, 보상, 교육 훈련에 활용했다. 1996년부터는 최고 경영진의 장기 인센티브에도 이를 적용했다. 이후 시어즈는 지금까지도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임원 평가 시스템을 수정함으로써 관리자의 행동부터 바꾸고, 이게 다시 판매원 및 말단 직원들의 태도 및 행동 변화로 이어지면서 고객 지향적인 문화를 구축하고, 꾸준한 수익을 내는 백화점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GE와 시어즈 사례에서 보듯 인사 평가 시스템은 조직의 전략 실행과 바람직한 조직 문화 구축의 기본 도구다. 인사 평가 시스템에 조직이 요구하는 행동, 역량, 성과 요인이 철저히 반영돼야 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실행될 가능성, 올바른 조직 문화가 구축될 가능성이 모두 높아진다. 하지만 아직 한국 기업의 인사 평가 시스템에는 회사가 추구하는 비전과 전략, 구축하고자 하는 조직 문화가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 전략의 실행을 위해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과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구성원들이 해야 할 일이 다르다는 뜻이다.
 
한국 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조직의 전략과 문화가 요구하는 행동, 역량, 성과를 인사 평가 시스템에 철저하게 반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회사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가 개별 조직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요구하는지부터 잘 정의하고, 이를 구성원의 평가 요소로 활용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이해관계와 회사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라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명제를 실천해야 세계적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경묵 교수는 서울대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미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 연구 분야는 인사 관리, 조직 이론, 전략 경영 등이다. 미국경영학회가 발행하는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서 2002년 최고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적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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