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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문화의 묵직한 힘

김남국 | 4호 (2008년 3월 Issue 1)
 
혁신의 성공을 가져다주는 핵심 요인은 무엇일까?’ 수많은 기업가들은 이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경험이나 처한 환경에 따라 성공 요인을 다르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실제 종업원의 역량, 기술개발 능력, 재무적 자원, 리더십, 운(luck), 경기 상황 등이 혁신 성공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친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몇몇 경영학자들은 대담한 리서치를 실시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제라드 텔리스(Gerard Tellis) 교수 등이 집필한 ‘국가별 기업의 혁신(Innovation in companies across nations)’이란 제목의 워킹 페이퍼(working paper, 아직 게재가 확정되지 않은 논문)가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미국과 일본 영국 한국 중국 등 17개국 759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보통 혁신 성과는 해당 기업의 특허 숫자 등으로 측정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텔리스 교수 연구팀은 기업의 혁신 혹은 기술 담당 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자사 제품이 다른 경쟁사 제품에 비해 얼마나 앞서간다고 느끼는지를 측정했다. 얼마나 차별화된 제품으로 시장에 진입했느냐가 특허 숫자보다 훨씬 더 객관적으로 혁신 성과를 드러내는 지표라고 연구진은 판단한 것이다. 텔리스 교수 등은 이를 토대로 확보한 데이터와 국가 정보, 특허 숫자 등을 결합해 통계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여러 요인 가운데 기업의 ‘조직 문화’가 혁신 성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특허 수나 종교, 지정학적 요건, 지적재산권 보호 같은 국가적 특징들은 혁신 성과에 별반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기업별 연구개발비 지출 규모는 혁신 성과에 영향을 끼치기는 했지만 기업 문화보다는 덜 중요한 요소로 나타났다.
 
특히 더욱 미래 지향적이고 자사 제품에 피해가 가더라도 신제품을 출시하려 하며(willing-ness to cannibalize) 위험을 보다 적극적으로 감수하는 문화를 가진 기업들의 혁신 성과가 매우 좋았다. 혁신 성과에 대한 각종 보상 정책들도 중요한 요소이긴 했지만 이 세 가지 요인에 비해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이 연구는 위대한 기업을 벤치마킹해 다양한 혁신 기법을 도입했는데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많은 기업들에게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GE나 도요타는 각각 식스시그마와 도요타생산방식(TPS)같은 혁신 기법을 도입해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GE나 도요타가 성공한 가장 근본 요인은 기업 문화다. GE가 플라스틱 사업부처럼 핵심 사업부까지도 과감하게 팔아치우고 시대에 맞는 최고경영자를 육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100년 넘게 이어져온 GE의 기업 문화 덕분에 가능했다.
 
도요타도 마찬가지다. 초단위로 공정을 관리하는 TPS는 도요타 직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실제 도요타 공장에는 한 때 ‘하루 수면시간은 5시간’이란 현수막이 붙었다고 한다. 깜짝 놀란 방문자는 “종업원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하지만 도요타 직원은 “직원들이 하루에 23시간밖에 자지 않아 5시간이라도 잠을 자도록 유도하기 위해 현수막을 붙였다”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혁신 기법은 기업 문화를 형성하는 원인이라기보다는 그 결과에 가깝다. 따라서 혁신 기법을 아무리 벤치마킹 해봐야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잘못 따라하다가는 손해를 볼 수도 있다.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좋은 기업 문화를 형성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기업 문화의 변화는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 김남국 김남국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편집장
    -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정치부 IT부 국제부 증권부 기자
    - 한경가치혁신연구소 선임연구원
    marc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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