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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로 꽉 막힌 ‘사일로’를 깨라

에드워드 베이커 | 39호 (2009년 8월 Issue 2)
세계 각국 기업들이 분권화(decentralization)를 추진하고 있다. 분권화는 개별 사업부들이 지역 영업 조직이나 소규모 제품 포트폴리오를 직접 관리하는 현상을 뜻한다. 각국 기업들의 분권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분권화를 통해 유연한 조직 구조를 이뤄낸 기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분권화로 유연한 조직을 만들면 시장과 고객의 요구에 일사불란하게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분권화가 진행되면서 오히려 이 전략이 역효과를 낳을 수 있음을 실감한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세계적인 마케팅 구루 데이비드 아커 교수는 ‘사일로(silo)’라는 용어를 통해 급격한 분권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일로는 원래 곡식을 저장해두는 원통형 창고를 말하지만, 경영학에서는 조직 내 부서 간 장벽이나 부서 이기주의를 뜻한다. 즉 ‘독자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 다른 부서와 협력하거나 활발한 의사소통을 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현상, 혹은 부서 그 자체’가 사일로다.
 
 

 
최근 저서 <스패닝 사일로(Spanning Silos)>를 출간한 아커 교수는 사일로야말로 현대 기업이 풀어야 할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 전략 컨설팅회사 프로핏의 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특히 마케팅 분야에서 사일로 현상이 두드러진다며 이를 우려했다. 그리고 향후 기업의 브랜드 및 마케팅 전략 핵심은 사일로의 문제점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조언했다.
 
마케팅 분야에서 나타나는 사일로 현상의 대표적인 문제점은 비효율성, 자원 소모, 불분명한 브랜드 이미지 고착 등이다. 아커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기업들은 사일로가 야기하는 문제점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커 교수는 최근 <Strategy+Business>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기업이건 마케팅의 성공 여부는 최고마케팅책임자(CMO)의 역량에 달려 있다. 영업 기회 확대, 광고 기획, 웹사이트 구축 등 세부 전술만 구사하는 사람 대신 일관된 비즈니스 전략을 구사하는 사람이 CMO의 적임자다. 기업이 전략적 사고를 해야 조직 내에 만연한 사일로를 없앨 수 있다”고 강조했다.
 
Q: Strategy+Business(이하 S+B): 지난 20년간 마케팅 전략이 어떻게 변했다고 평가하는가.
 
A: 아커:분권화된 기업의 마케팅 부서가 담당 제품별, 부서별, 국가별 장벽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뒀던 시기도 분명 있었다. 한때 분권화는 참신한 조직 개념으로 각광받았다. 사업 단위별로 움직이는 조직의 부서원들은 자신이 맡은 제품과 기술에 통달해 있다. 시장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응한다. 그만큼 책임 소재도 명확하다. 즉 분권화는 대기업 관리에 적합한 전략이다.
 
하지만 사일로가 가져다주는 자율성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브랜드, 고객, 미디어가 제품과 국가를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제품, 서비스, 브랜드, 마케팅 업무를 개별 부서로 나누어 관리하면 혼돈만 나타날 뿐이다. 특히 사일로는 각 부서의 독단적인 행동을 부추긴다. 사일로가 활개치기 시작하면 기업 전체의 성과보다 자신이 속한 부서의 성과 극대화에만 열을 올리는 기업 문화가 나타난다.
 
나는 많은 기업의 최고 경영진과 브랜드 및 마케팅 문제를 논의했다. 이때 대다수 경영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아시다시피 우리 회사는 다른 회사와 많이 달라요. 분권화된 조직이라 누구나 자율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있어요.” 이런 분위기가 도처에 만연해 있다. 분권화 그 자체가 절대 선(善)이 아님에도 말이다.
 
S+B: 어떻게 하면 기업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마케팅 전략을 짤 수 있는가.
 
아커:첫째,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사일로, 즉 어떤 조직의 한 부서가 단독으로 올림픽 스폰서십을 관리할 수는 없다. 둘째, 효율적인 자원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장점이 많은 제품, 지역, 프로그램에 자원을 집중하고, 반대의 상황에는 자원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은 분권화 조직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배분을 위한 공정한 분석이 이뤄지기 어렵고, 개별 부서마다 자신의 자원 극대화에만 신경 쓰기 때문이다. 셋째, 개별 제품이 아니라 제품 사일로끼리 연계된 브랜드를 추구하는 고객들을 노린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넷째, 기업 전체의 브랜드 관리 체계를 갖춰 일관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개별 부서의 비즈니스 전략에도 들어맞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S+B: 각 기업이 사일로와 관련해 당면한 문제들은 어떤 게 있나.
 
아커:기업의 업종마다 다르다. 소비재 업계에서는 사일로 때문에 나타나는 자원 배분 문제가 가장 큰 골칫거리다. 프록터&갬블(P&G)의 성공 이유는 경영진이 각각의 소형 브랜드에 자원을 찔끔찔끔 나눠주는 대신, 차세대 사업과 대형 브랜드에 자사의 자원을 대거 몰아줬기 때문이다. 첨단 전자업체 대다수는 아직도 제품별 사일로에 얽매여 있다. 이들은 최근에야 간신히 제품 간 사일로 연계를 시도하고 있다. 요즘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은 통합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IBM의 사례를 보자. 1990년대 초반 루이스 거스너가 IBM의 최고경영자(CEO)로 뽑혔을 때, IBM 내부에는 제품 위주의 사일로 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일부 경영진은 IBM을 7개 기업으로 나누는 일을 검토했을 정도였다.
 
거스너는 몇 가지 획기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전체 마케팅 예산에서 차지하는 주력 부서의 마케팅 예산 비중을 과거 10%에서 50%로 확대했다. 70개였던 광고 대행 업체도 1개로 줄였다. 직원들의 협력 수준도 엄중히 평가했다. 보수 체계를 개편해 직원이 개별 부서가 아닌 회사 전체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근거로 임금을 정했다.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감히 퇴출시켰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가 IBM을 제품 지향적 조직에서 고객 지향적 조직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사실이다. 과거 IBM 영업 직원들은 두둑한 예산을 앞세워 개별 신제품 홍보에만 주력했다. 그러나 IBM의 고객들은 개별 제품이 아닌 종합 시스템 솔루션을 원했다. IBM은 소비자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거스너의 조직 개편 이후, IBM의 마케팅 및 영업 부서는 눈에 띄는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그들은 부서, 지역을 불문하고 고객을 대상으로 한 통합 솔루션 판매에 나섰다.
 
S+B: 사일로 문제를 다룰 때 기업이 부딪힐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인가.
 
아커:완전한 탈바꿈은 항상 어렵다. 사일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은 중앙 집권적인 마케팅 조직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낀다. 자신들의 사고 방식이나 이제껏 익숙했던 보상 체계와는 다른 매우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과거 항상 자신이 속한 부서의 실적에 의해 보상을 받았다. 중앙 집권적인 마케팅 조직을 구축하면 단기적으로는 부서별 실적이 타격 받을 수도 있다. 당연히 갈등도 일어난다. 이 갈등을 풀려면 꽤 긴 조정 기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사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상 체계, 직무 평가 제도 자체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경영진은 커뮤니케이션, 협력 수준, 팀워크, 팀 차원의 해결책 등을 모두 고려해 보상을 실시해야 한다.
 
반(反)사일로 마케팅의 목표를 중앙 집권적 조직 체계 구축과 표준화에 둔다면 조직 내 저항이 상당할 것이다. 심지어 파업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중앙 집중화와 표준화가 조직 내 활기, 유연성, 명확한 책임 소재를 억누른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反)사일로 마케팅의 목표는 그간 사일로가 일으킨 문제점의 해결책, 즉 커뮤니케이션, 신뢰, 협력 증진에 있다. 사일로를 없애는 데만 집중하지 말라. 중앙 집권적 조직 구축과 표준화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S+B: 마케팅 전략이 급변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아커: CMO가 변화의 이행 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CMO가 지나치게 공격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각 부서의 책임자가 지닌 권한과 유연성을 뺏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거듭 말하지만, CMO는 변화의 목표가 사일로 마케팅 때문에 생긴 문제점을 해결하는 일임을 조직원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 조직원들이 변화의 목표가 일률적 중앙 집중화와 표준화에 있다고 생각하게끔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사일로 문화는 예상보다 조직 내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때문에 CMO는 중재자, 서비스 제공자, 컨설턴트 등 위협적이지 않은 역할들을 도맡아야 한다. 이를 통해 조직 내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협력을 장려해야 한다. 이는 CMO의 가장 중요한 임무다. 사일로가 야기한 문제점은 대부분 의사소통 및 협업 부족이다.
 
조직원들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고 협업 수준도 향상된다면 한층 명확하고 일관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다. 부서별로 연계된 제품이나 서비스의 판매 기회도 창출할 수 있다. 조직 전체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단행할 수 있다.
 
CMO는 사용이 간편한 인트라넷을 구축하고 각 부서 간 교류 기회를 늘려야 한다. 개별 부서를 자주 방문해 회사 전체의 전략을 설명하고, 각 부서별 의견도 수렴한 후 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어라. 이러한 리더십이 없다면 어떤 마케팅 전략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번역 |서정아 blurmanics@gmail.com
 
편집자주 이 글은 컨설팅회사 부즈 앨런 해밀턴이 펴내는 경영 전문 계간지 <Strategy+Business>에 실린 데이비드 아커 UC 버클리대 교수의 인터뷰 ‘Get Out Of The Silo’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NYT 신디케이션 제공)
 
에드워드 베이커는 경영 전문지 의 전 편집인이자 <Strategy+Business>의 객원 편집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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