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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재미, 창의성

재미와 창조는 동의어…행복한 기업 만들라

김정운 | 38호 (2009년 8월 Issue 1)
나는 심리학자다. 독일에서 문화심리학을 공부했다. 나는 귀국하면서 내 학문을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곳에 쓰고 싶었다.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 결론은 아주 간단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는 게 하나도 재미없는 남자들’에 있었다. 한국이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재미없기 때문이다.
 
내가 명지대 대학원에 국내 최초의 여가학 석사 과정인 ‘여가경영학과’를 개설하자, 친구가 전화를 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정말 우리나라에 필요한 학문이야,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여자경영학과, 그거 정말 필요해!” 아, 이런. 친구여, ‘여자경영학과’가 아니라 ‘여가경영학과’란다. 여가경영학과! 내 친구는 차마 상상도 못한 것이다. 여가경영학과라니,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여가를 경영한다는 건가? 그러나 조금만 상황을 달리 생각해보자.
 
 

 
더 일하고 덜 버는 한국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가 과연 뭐라고 생각하는가? 일을 열심히 안 해서?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는 여전히 OECD 국가 중 노동 시간이 제일 길다. 그런데 노동 생산성은 꼴찌 수준이다. 한국인은 연간 약 2400시간을 일하는데, 1년에 6만8440달러(2006년)의 평균 소득(GNI)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인들은 1400시간도 일하지 않는다. 일본이나 미국, 독일인들도 1800시간 안팎을 일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이들보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적게 버는 셈이다.
 
도대체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 이외의 영역이 형편없이 망가져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8시간 동안은 세계 최고의 수준이지만 그 나머지 시간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일하는 시간만으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전체의 삶의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그 형편없이 망가져 있는 영역을 뭐라 하는가? ‘여가’라고 한다.
 
일하는 8시간을 위한 경영학은 아마도 한국이 최고 수준일 것이다. 대학마다 경영학과가 있고, 각 대학의 경영학과에는 성적이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진학한다. 뿐만 아니다. 밤마다 직장인을 위한 각종 MBA 과정, 최고위 과정이 개설돼 있다. 인구 1000명당 경영학 석사, 박사 비율을 따지면 아마 대한민국이 가장 높을 것이다. 그런데도 선진국 문턱에서 이토록 오랫동안 헤매고 있다. 도대체 왜일까? 일의 영역에 관한 경영은 세계 최고이나, ‘일 이외의 영역’에 관한 경영 노하우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가경영학’은 정말 한국 사회에 필요한 학문 아닌가?
 
선진국형 삶이란 ‘일과 여가가 조화로운 삶’이다. 일상이 사소하고 흥미로운 재미로 가득 차 있는 삶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이야기다. 21세기 국가 경쟁력도 바로 이 사소하고 흥미로운 삶으로 결정된다. 문화 다양성과 창조성은 바로 이 재미있는 일상의 결과로 나타난다. 재미는 곧 창조이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은 ‘개발도상국’적 사고
 
안타깝게도 산업사회의 성공을 경험한 이 시대 경영자들은 여전히 ‘얼리 버드’만 외친다. 열심히 일하면 창조적이 된다고까지 생각한다. 자신이 아는 방식으로만 성공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미 아는 방식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세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아침형 인간’은 ‘개발도상국’적 사고다. 개발도상국이란 후진국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후진국에서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다.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 수준은 이제 단순히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할 단계가 결코 아니다.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선진국이 된다. 이 ‘어떻게(how)’의 차원이 해결돼야 ‘무엇(what)’이 해결된다. 이게 선진국이 먹고사는 방법이다. 이 인지적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21세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근면성실하기만 한 사람’이다. 이제 근면성실해서 되는 일은 기계가 다 해준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일은 외국인 노동자가 와서 해준다. 21세기에 ‘근면성실하기만 한 사람’이 설 자리는 없다. 그래서 ‘창조 계급(creative class)’이 주도하는 지식 기반 사회라고 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재미’와 ‘창조’는 동의어다. 창조의 핵심은 ‘맥락에 따른 지식의 재구성’이다. 사회 문화적 상황에 의해 지식이 얼마나 능동적으로 빠르게 전환되는가에 따라 창조성이 결정된다. ‘맥락에 따른 지식 재구성’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도끼, 망치, 나무, 톱. 이 4가지 중 하나를 빼라면 당신은 무엇을 뺄 것인가. ‘나무’를 뺀다면 당신은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분명하다. 왜 나무를 빼는가? 나무는 대상이고, 나머지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도구’와 ‘대상’이라는 추상적 지식(abstract knowledge)의 틀에서는 ‘나무’를 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망치’를 뺀다면 당신은 시골 사람이다. 도시에서 자란 사람인데도 ‘망치’를 뺐다면 당신도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시골에서 직접 나무를 잘라본 사람은 절대 ‘나무’를 빼지 않는다. ‘나무’ 없는 도구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민하다 ‘망치’ 정도는 없어도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 지식(concrete knowledge) 혹은 실천적 지식(practical knowledge)이라고 한다. 동일한 구성 요인을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하는 지식의 유연함이 한 사회의 경쟁력을 결정한다. 각 개인의 경쟁력도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맥락에 따른 지식의 재구성’을 가능케 하는 심리학적 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재미’다. 재미는 능동적으로 맥락을 바꾼다. 어른은 빗자루를 보면 바닥을 쓸 생각밖에 안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생각을 한다. ‘청소’의 맥락에서의 빗자루와 ‘하늘을 날아가는 상상’에서의 빗자루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이 하늘을 날아가는 빗자루 이야기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게 바로 ‘해리포터 시리즈’ 아니던가. 그럼 아이들은 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닐 생각을 하는가? 간단하다. 재미있으려고. 아이들은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하지 않는다. 재미있을 생각. 그래서 아이들은 맥락을 아주 간단히 바꿀 수 있다.
 
 
삶이 즐거워야 창조성 발현
 
아이들의 문제는 너무 재미만 생각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회적 맥락까지 바꿔버린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사회화 교육을 실시한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사회화를 진행한 결과가 바로 우리다. 재미만 쏙 빠져나간 것이다. 의무와 책임만 남아 어쩔 수 없는 삶에서는 어떠한 창조성도 기대할 수 없다. 맥락을 바꾸고, 지식을 재구성하는 심리적 동기가 박탈됐기 때문이다.
 
위대한 기업은 어떻게 해서든 직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한다. 삶이 즐겁고 행복한 직원만이 창조적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돈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권력으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 도대체 어떤 직원이 회사에 충성하는가? 그 회사에서 일하는 게 재미있는 직원만이 열심히 일한다. 아침마다 ‘아, 남의 돈 따먹기 힘들다’며 출근하는 직원에게 도대체 어떤 자발적 창의성을 기대할 것인가. 그래서 서구의 앞서 나가는 기업들은 한결같이 ‘일과 삶의 조화(work-life-balance)’를 외친다. 일과 일 이외 영역이 조화로운 삶이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이다. 삶이 재미있어야만 창조적이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로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회다. 21세기에는 재미와 행복이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기업만이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될 수 있다. 행복하고 재미있는 삶이 지속 가능한 삶이다.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직원들이 모인 회사가 지속 가능한 경영을 이뤄낼 수 있다.
 
이래도 재미없이 기업을 경영할 것인가?

필자는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석사와 박사(문화심리학 전공) 학위를 받았다. 현재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여가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과 <휴테크 성공학> 등이 있다. 한국여가문화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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